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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목사
복 받는 교회생활[5] _성경적 경제생활
180318(주일오전)
마 6:19-34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공동체를 말하며, 시 84:4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6절에 “그들이 가는 곳이 비록 눈물 골짜기일지라도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고, 이른 비가 복을 채워준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는 말씀과 같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국가와 개인의 발전과 부흥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곳이 교회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건물이나 조직체 중에 교회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귀중한 것은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1. 교회의 중요성
① 교회는 천국 열쇠를 나눠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마16:16).
② 교회는 복의 전당이기 때문입니다(시84:4-12).
③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입니다(딤전 3:15).
④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학개1:8, 2:7,9).
⑤ 교회는 예배, 즉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⑥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시키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고후5:18-19).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와 같은 복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2. 복 받는 교회 생활의 비결
①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출20:8-11).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 하루를 구별하여 복 주시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 육신의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안식하는 것입니다(출20:8-11). 둘째, 주일에는 사사로운 여행이나 오락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사 58:13-14). 셋째, 생명을 살려내고 돌보는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마12:12).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뜻과 의지를 따라 교회생활을 하기에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바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교사들이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마22:29,막7:8,9,13,눅11:52).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고 순종하려면,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 그리고 성경자체의 문맥에 집중하여 그것으로 우리의 신앙과 성경해석의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해내야 합니다(딤전6:3-5).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순종하여 복 받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③ 목회자의 영적 귄위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학생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고 잘 이끌어가는 교사들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 성도들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독려하고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란 (하나님의 양 무리인) 교회의 성도들을 (사나운 이리와 같은) 이단의 세력들로부터 안전하게 잘 보호 감독하고, 그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도록 성령님께서 세워주신 교회의 영적 지도자를 말하며 장로, 감독, 목사로 호칭됩니다(행20:28).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말합니다.
(벧전 5:5-6)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목회자)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목회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복 받는 교회 생활을 원하신다면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의 영적권위와 영적질서를 잘 알고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에 기쁨으로 순응하는 동역하는 믿음의 길을 걸아가시기 바랍니다.
④ 주님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골 3:22-24)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마25:14-30의 달란트 비유를 보시면,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착하고 충성됨”입니다.
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특징도 있습니다. 그것은 또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악함과 게으름”입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루 하루의 삶 가운에 주어진 모든 일을 주님의 일로 알고, 그 일에 힘쓰는 충성된 자들이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큰 상급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 받는 교회생활의 비결은
⑤ 성경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가난의 영이 이 공간과 우리들의 생각과 감정에서 즉시 떠나갈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라. 성령님 저희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다스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인들은 부요해서는 안 되며,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요함에 관한 성경의 진리들을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부요함을 가르치는 부모 가난의 영을 심는 부모」라는 책을 쓴 “트레버 뉴포트”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해봅니다.
...........기독교인이 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 영적인 지식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었던 내게 많은 변화들이 극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뒤돌아보니 그때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한 가지 특별한 태도를 새롭게 갖게 되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한 직후, 나는 좋은 옷들을 다 버리기로 다짐했던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독교인은 어떤 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으로 가득 찼습니다. 굶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새 옷을 사거나, 새 물건을 사는 것이 죄악으로 느껴졌습니다. 회심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요?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신령한 생각이었을까요?(중략)
가난은 대부분 부모들에 의해 자녀에게 물려집니다. 나는 여러 세대를 거쳐 흘러내려 온 가난의 영의 희생자였습니다. 가난의 영은 내 마음 깊이 새겨져서 그리스도인 된 처음 몇 년 동안 내 마음을 강탈해 갔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부요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시작할 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은 있는 이때에 우리가 부요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마귀에 의해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한 유명한 설교자가 치유와 승리, 권세와 평화, 그리고 기쁨에 대해 선포했을 때, 나는 그가 말했던 모든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요에 대해서 말하자마자 나의 안색은 즉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나의 삶에 견고하게 세워진 가난의 영이 불뚝 일어나서 부요에 대한 모든 말씀들을 대적하게 했던 것입니다.
몇 달 정도 성경을 공부했는데, 그때 번성에 대한 계시가 내게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묶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기본적인 필요들만을 공급해주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항상 궁핍했고, 기적을 필요로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는 대로 되는 법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Trever Newport. 「What the Bible says about Your Provision and Prosperty, 부요함을 가르치는 부모 가난의 영을 심는 부모」. 김덕관옮김. (서울: 은혜출판사, 2009). pp.7-9.]
이 시간 성경적인 번성의 계시가 저와 여러분에게 흘러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에 가운데 경제적인 궁핍함이 임하여, 먹고 입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먹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딤전 6:8, 한글킹)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 마태복음 6:31-32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염려와 고민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공급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먹고 입을 수 있는 능력을 재물(돈)에 담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재물을 보물로 여기게 됩니다. 먹고 입을 것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며 다른 이들을 돕고 더불어 살아가기 보다는, 점점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하여 이렇게 저렇게 투자하며 이런 저런 재테크들을 벌입니다. 그 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기도 하고, 은행에 현찰로 저축하기도 합니다. 그런 행위들에 대하여 주님은 본문 마6:19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행위”로 규정하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러한 재물을 빼앗고 약탈해가는 좀과 동록 그리고 도둑이 있다는 것입니다. 좀과 동록은 쌓아놓은 재물의 가치가 갑작스럽게 하락해서 무가치하게 바뀌는 사건을 말하고, 도둑은 쌓아놓은 남의 재물을 몰래 빼가는 사기꾼들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재물을 쌓아보지만 어느 순간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사기꾼들에게 도둑질을 당하여 그 모든 재물들이 다 사라져버리거나 빈약해져 버리는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큰 부자가 되는가 싶더니, 또 어느 한 순간에 노숙자 신세가 되고 거렁뱅이가 되어버리는 변화무쌍한 세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재물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재물을 영원무궁토록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 등,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6:19-20의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마 6:19-20)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여기에 기록된 “하늘”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세상의 영역을 “땅”으로 표현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려주시는 영역을 “하늘”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인데, 유대인들은 십계명 중의 제 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대유법적 의미로 하나님에 대한 대유어로 “하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나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복음서인 마가복음 1:15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는 말씀이 유대인의 복음서인 마태복음 4:17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물질을 이 세상의 방식대로 사용하며 저축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용하며 저축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남은 생애의 재정적인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6:19-20에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이 이 세상에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재물을 이 세상에 쌓아두게 될 것이고, 우리의 마음과 믿음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면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께 쌓아두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세상과 하나님 중,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우리의 재물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물질이 가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가는 법입니다. 참으로 십자가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물질을 표현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가 아무리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고 해도 그 믿음은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칙을 주셨는데, 시간의 7분의 1을 거룩히 구별해 주님께 바칠 것과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거룩히 구별하여 주님께 바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레27:30). 또 다른 10분의 1을 가족들을 잘 돌보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봐주는 것으로 사용하고(신14:22-27,딤전5;4,8), 또 다른 30분의 1은 객과 고아와 과부와 분깃 없는 레위인들 즉 불우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사용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신14:28-29).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신15:4-5).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318명의 적은 군사를 가지고 그돌라오멜과 그 연합군과 싸워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이며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와 환영하며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 줄 때에 아브라함은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리며 축복을 받았습니다. 멜기세덱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일조를 드리며 복 빎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꼭 해야 될 일입니다.
(히 7:6) 『...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율법이라고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모세가 율법을 받기 4-50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며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며 복 빎을 받은 것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일조를 드리며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태복음 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전체가 하나님의 것인데 왜 10분의 일만을 바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구별해 드리는 것이 곧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10분의 1도 못 바치면서 어떻게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빚이 있어서 못 바친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멘솔레담(Mentholathum)을 만들어 거부가 된 A. A. Hyde는 그 옛날 10만불(1억2천만원)의 빚을 진 상태에서 십일조를 드렸는데, 모두 그를 미쳤다고 할 때 그는 "하나님은 제일의 채권자이다(The God is First creditor)"라고 하면서 십일조를 계속 드려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빚을 먼저 갚아야 사람의 빚도 갚을 날이 오는 것입니다.
○ 너무 많아서 못 바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90%는 많아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10%만 커 보이는 것은 믿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아까우면 암병이 들어 수술비용으로 사용한 셈을 치고라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 십일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마아세르”가 “열 번째를 의미하는 데, 성경에서 10은 완전한 수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 모든 것의 대표, 가장 첫 번째”를 의미하고, 결국 이것은 수입의 10분의 1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제는 십일조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요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강조하려는 것 까지는 문제가 없겠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성경해석의 이단사설입니다. 딤전 4:1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즈음 온라인 이리 저리 떠도는 설교와 성경공부들 가운데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들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성경자체의 전후문맥과 문학쟝르를 따라 잘 검검해 보고 분별해야 할 설교들이 너무도 많음을 봅니다. 원어가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성경의 해석을 엉뚱하게 이끌어가는 매우 사악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전기한 바처럼, 십일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마아세르”가 “열 번째를 의미하는 데, 성경에서 10은 완전한 수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 모든 것의 대표, 가장 첫 번째”를 의미하고, 결국 완전하신 분, 가장 중요한 것, 모든 것의 대표, 가장 첫 번째를 충족시킬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니 십일조(마아세르)는 수입의 10분의 1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빨게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그러므로 원숭이 똥구멍은 반도 삼천리다.”라는 요설만큼이나 황당한 요설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10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이 맞고, 완전한 수를 의미하는 것도 맞지만 그래서 완전하신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요설이요, 이단사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회막과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게 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해 십일조를 하게 하셨습니다.
(민 18:21,24)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구약시대 회막과 성전의 봉사자들처럼, 신약시대에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여전히 십일조가 필요함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9:13-14)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전임사역자들을 위하여 십일조가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철없는 젊은 목사님이 십일조에 대하여 설교하며 하는 말이,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우리들의 돈을 요구하실 분이 아니시고, 돈 놓고 돈을 벌어간다는 식으로 십일조를 복의 조건으로 내거시는 분이 아니시며, 하나님은 우리들의 돈이 필요없는 분이시다."라고 하면서, "십일조는 더 이상 율법이 아니고 개인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면 되고, 교회의 필요들이 생기면 채우는 수준에서 헌금하면 된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휴~~~
성도들이 내는 십일조가 없으면 교회들이 어려워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에 큰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느혜미야 시대에 그런 현상이 발생했고(느13:10), 지금 이 시대에도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펼쳐지는 십일조 무용론과 폐지론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봅니다. 수많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목회의 일선에서 벗어나 택배일를 하고, 택시 운전기사를 해야만 먹고사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전임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성도들의 자발적인 십일조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 십일조를 드려야 할 이유
첫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축복의 약속이 없어도 명령대로 살아야 할텐데 이 명령에는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얼마 전 인생을 졸업하신 빌리 그레함(Billy Graham)박사가 "하나님의 동업자"란 제목으로 설교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범하는 가장 큰 죄 중에 하나는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도적질하는 죄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을 때 빚을 갚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될 의무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미국이 오늘날 잘 사는 비결은 그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십일조를 철저히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축복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도 잘못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상한 불신앙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시험해 보라"고 하셨고, "하늘 문을 열고"라는 말씀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십일조로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는가 안 하는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부터 지금까지 3500년 동안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3500년 동안 시험하여 보았으면 검증이 될 만 할 것입니다. 확실한 축복의 방법이 십일조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십일조를 제일 잘 하는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조 농사를 지으면 조를 세어서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3500년 동안 드렸습니다. 가장 부요한 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대인입니다. 세계적으로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40대 재벌 중 24명이 유대인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덴막, 뉴질란드, 호주 모두가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나라들이 다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박재봉 목사님이 십일조 드린 4,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3,990명이 복을 받았습니다. 10명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었습니다. 십일조는 이미 검증이 끝난 축복의 방법입니다.
뉴질랜드의 거부, 로버트 A. 레이드(Robert A. Laid)란 사람은 “왜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란 책을 썼고 30개 국어로 번역되었는데 거기에 보면 18세 때 주급 3불을 받고 십일조를 시작했는데, 2년 후에 15%를, 그 다음에는 20%, 25% 하다가 50살 때는 50%를 드렸다고 합니다. 45년 후에는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에서 100배로 축복해 주셨는데, 18살에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드리기로 시작한 뒤부터 나의 기대 이상으로 신뢰받는 청지기로 살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조만식 장로님과 더불어 또 한 분이 계신데, 유계준 장로라는 분입니다. 그 분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은 물론 나무 장사를 해 가며 순교자의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후에 그는 큰 거부가 되었고, 자신도 순교했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는데 첫째 아들이 유기원 박사인데, 메디칼 센터(Medical Center)의 원장이었고, 둘째는 유기형 의학박사, 셋째가 유기선 의학박사, 넷째가 유기천 박사 서울법대 학장이었고, 다섯째가 유기진 의학박사, 여섯째가 유기옥 의학박사, 일곱째가 유기숙 약학박사, 여덟째가 유기묵 의학박사입니다. 유계준 장로님의 손자 증손자까지 108명인데 거의 다 의사, 박사, 교수라고 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 때에 자손 대대로 축복해 주신다는 것이 틀림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기대하며, 복된 교회생활의 원리를 따라
1. 성일(주일)을 온전히 구별하여 본교회에서 거룩히 지킵시다.
2. 내 생각과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3. 목회자의 영적권위에 순응하는 순전한 양이 됩시다.
4. 매사를 주님의 일로 알고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삽시다.
5. 온전한 십일조를 드립시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영혼 구원만 받지 말고, 복 받는 교회 생활의 비결대로 살아 큰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