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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7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허호준 한겨레 기자 "소련 개입설은 가짜뉴스"

▲ 제주4.3연구소가 4일 오후 제주칼호텔에서 제주4.3 7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제주4.3, 진실과 정의'를 개최했다. 발표하는 허호준 한겨레신문 부국장(오른쪽에서 두번째).1948년 제주4.3 당시 제주도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미국이 알고 있었음에도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무자비한 토벌을 응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미국은 한국을 아시아에서 반공 보루로 인식, 제주도를 대소 봉쇄를 위한 전진기지로 간주해 소련의 제주도 침투설 또는 연계설 등 ‘가짜 뉴스’들을 여과없이 보내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4일 오후 제주칼호텔에서 '제주4.3, 진실과 정의'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허호준 한겨레신문 부국장은 '제주4.3의 전개와 미국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허호준 부국장은 "1947년 3월1일 사건 이후 제주출신 도지사 박경훈에 이어 유해진의 도지사 부임은 제주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미군정청 특별감찰실은 1947년 11월12일부터 1948년 2월28일까지 특별감찰을 실시했고, 두차례에 걸쳐 유해진의 경질을 건의했지만 군정장관 딘 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허 부국장은 "미군정 수뇌부가 제주도의 정치적.사회적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유해진 도지사를 유임시킨 것은 좌파 탄압 및 극우강화정책이 5월10일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 부국장은 "1948년 5월10일 치러진 남한 단독선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3개 선거구 가운데 2개 선거구가 투표수 과반 미달로 무효화됐다"며 "선거후 이틀 후인 5월12일 미구축함이 제주도 연안에 급파됐고, 미 6사단 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이 제주도에 파견됐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직후 현지에 미군 지휘관을 파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그리스 내전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허 부국장은 "브라운 대령의 지휘 아래 경비대 11연대는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공산주의자'라는 가정 아래 무차별 대량 살륙을 자행했다"며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9년 4월1일 작성한 정보보고서에는 9연대가 '적극적인 공격으로 만족할만한 성공'을 거뒀으며, 그 이민에는 '민간인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고 돼 있다"고 공개했다.

▲ 제주4.3연구소가 4일 오후 제주칼호텔에서 제주4.3 7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제주4.3, 진실과 정의'를 개최했다. 발표하는 허호준 한겨레신문 부국장.그는 "주한미사절단이 제주도민들의 인명피해가 가장 심했던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국무부에 보낸 문서들은 한국 정부가 제주도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토벌을 재촉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4월9일 보낸 문서에는 '정부군과 게릴라 양쪽 모두 비정상적인 가학적 경향이 있다. 마을 주민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의미하는 잔혹행위 증가가 보고됐다'는 내용을 보고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허 부국장은 "최근 일본에서 발굴된 자료에 따르면 미 해군함정이 1949년 1월25일 제주에 기항해 미군 고문관과 제주경찰청장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무초 대사에 따르면 당시 미 해군 함정의 제주도 기항은 애초에 계획이 없었지만 한국정부의 간절한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과 이승만 정부의 긴밀한 교감 속에 제주도 사태를 주시하거나 개입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부국장은 "초토화 작전 시기에 소련 잠수함 출현설이 몇차례 나오고, 미국은 물론 동남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언론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며 "하지만 이런 정보보고나 언론보도는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 가짜 뉴스들은 제주도를 소련의 전초기지로서, 미국의 대소봉쇄를 위한 전진기지로 간주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허 부국장은 "제주 4.3 당시 국내에 있는 미 당국의 제주도 관련 보고서에는 '대량 처형', '대량학살', '대량 집단학살' 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그만큼 제주도에서 이뤄진 대량 학살을 미국이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미군 관리들은 제주도 사태의 토벌을 격려하고 고무했다"고 지적했다.
허 부국장은 "여전히 미국의 개입에 대한 의문은 자료 발굴을 통해 더 규명돼야 한다"며 "1947년 11월말 미군정장관 제주도 방문 목적, 1948년 5월5일 제주도에서의 회의 내용, 초토화 작전 시기 군사고문단의 제주도 진압작전 개입에 대한 기록, 미 국무부의 지시 유무 등은 앞으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