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0일은 전북 현대의 센터백 김민재가 축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KEB하나은행 K리그 어워즈 2017에서 영플레이어상과 베스트 일레븐, 2개의 트로피를 들었다. 성공적인 프로 데뷔 시즌의 평가는 더할 나위 없었다. 이미 A대표팀까지 데뷔해 한국 수비의 미래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96년생 김민재는 이미 K리그의 현재기도 하다.
축구 인생 최고의 날이 지나고도 김민재는 화제였다. 하루 뒤인 21일에는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웃어야 했다. 오전에는 EAFF E-1 챔피언십(명칭 변경 전: 동아시안컵)에 나서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10월 오른쪽 무릎 반월 연골판이 미세하게 찢어져 수술을 받았던 김민재는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도 신태용 감독은 재활을 겸하고 지난 9월과는 달라진 대표팀 전술과 분위기를 익히는 차원에서 김민재를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특별한 배려를 받을 정도로 김민재가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증거였다.
오후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최근 일어난 ‘급식체 쓰는 수비수 김민재’라는 루머 때문이었다. 지난 8월 한 인터넷 방송에서 김민재가 수비할 때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인 급식체를 쓴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 축구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크게 번졌다. 최근에는 아예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김민재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다.
23일 가진 인터뷰에서 김민재는 우선 루머에 대해 재항변했다. 그는 아직도 그게 사실처럼 퍼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하고 많은 루머 중에 급식체 쓴다는 게 제 인생의 첫 루머가 될 줄은 몰랐어요.”
지난달 지인과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김민재는 애써 무시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팬들이 지어낸 얘기겠지 싶었다. ‘슈퍼 베이비’, ‘우량아’라는 별명이 있어 그런 이미지로 보인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이상해진다는 걸 느꼈다.
“처음엔 웃어넘겼어요. 그 뒤 페이스북을 보는데 축구 관련 페이지에서 김민재가 급식체를 쓰는 선수라고 못 박아서 게시물을 게재하고 팬들이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걸 봤어요. 이건 좀 심각하겠다 싶어서 제 견해를 밝히기로 했어요.”
김민재는 오해도 아닌, 애초에 사실이 아닌 정보라고 말했다. 그가 대학생 시절이던 2년 전만 해도 급식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유행어였다. 그 이야기가 최초 알려진 방송도 직접 확인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라고 이해는 하지만 너무 사실처럼 얘기하시는 바람에 당황했죠. 불쾌하거나 원망스러운 건 아닌데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너무 퍼지니까 점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가’ 싶어서 입을 닫고 있기보다는 제 입장을 밝히는 게 맞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급식체 안 쓴다고 보도자료나 기사 내 달라고 할 수는 없어서 제 개인 SNS 계정을 통해서 밝혔어요. 그 뒤에는 조금 잠잠해진 거 같아요.”
그만큼 김민재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지난 8월 나왔던 방송 내용이 3개월이 지나 화제가 되고 루머가 꼬리를 물며 확대됐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루머긴 했지만, 김민재도 이번 일로 배운 것이 있다.
“많은 분으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관심을 받는 게 이런 반대 작용도 일으키는구나 싶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앞으로는 떨어지는 낙엽조차도 조심해야겠다 싶고요. 말 하나, 행동 하나도 신중해야 할 거 같고요. 그런데 꼭 주변에다 얘기해주세요. 김민재 급식체 안 쓴다고. 저도 지금은 웃어넘기고 있어요.”
E-1 챔피언십 대표팀 발탁은 전혀 생각 못 했던 소식이었다. 실제로 김민재는 20일 시상식 중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은 몸 상태가 안 됐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 당시 경기에 뛰지는 못했지만, 주장 기성용이 합류해 동행했던 효과가 11월 평가전으로 나타났다고 믿고 있다. 김민재 선발도 같은 의도다.
“일단 기분 좋은 소식이었죠. 몸이 100%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대표팀 의무팀의 관리 속에 재활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새로운 코치님들이 오며 달라진 전술과 분위기에도 빨리 적응할 수 있고요. 사실 대표팀은 여전히 많이 낯선 곳이거든요.”
무릎 수술 후 김민재는 재활센터에서 기초 훈련을 마치고 최근 조깅을 시작한 단계다. 일주일가량 조깅을 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23일 오전에는 남산에 오르며 운동 강도를 서서히 올렸다. 연골판이 미세하게 찢어진 부상은 가벼운 봉합 수술 후 바로 운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전북과 최강희 감독은 멀리 보고 일찌감치 김민재를 시즌아웃시켰다. 전부터 좋지 않았던 부위를 수술로 깔끔히 정리한 김민재도 몸도 마음도 한층 가벼워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김민재에 대한 지나친 특혜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A매치 2경기에 출전한 신인에게 지나친 배려를 했다는 것. 그만큼 신태용 감독은 김민재가 최종예선 2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 그리고 소속팀에서 증명한 일관된 실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김민재도 대표팀의 배려가 특혜 시비로 빚어지지 않도록 성실하게 재활한 뒤 1월 전지훈련부터는 실력으로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만큼 더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태용 감독님이 소집 명단을 1명 늘려서까지 저를 뽑았으니까요. 모든 건 제 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11월 A매치를 밖에서 보면서 형들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몸도 근질근질하고, 저 안에서 경쟁하려면 더 잘해야 한다는 경각심도 생겼어요. 1월 전지훈련과 3월 평가전까지 잘 해내도록 이번 배려를 잘 활용하려고요. 안주하지 않고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프로 데뷔 시즌도 쉽지 않았지만, 김민재를 기다리는 2018년은 더 힘들 수 있다. 높아진 기대감에 부응해야 한다. 소속팀은 AFC 챔피언스리그라는 빡빡한 일정과 수준 높은 경기를 병행한다. 대표팀 소집과 월드컵 출전을 위한 준비까지 삼중고다. 월드컵 이후에는 아시안게임에 나설 23세 이하 대표팀까지 김민재를 기다리고 있다.
“몸 관리를 정말 잘해야 할 거 같아요. 올해 부상과 수술을 겪으면서 몸 관리 방법도 제대로 배웠고요. 모든 출발은 소속팀에서라고 생각합니다. 전북에서 잘해야 성인 대표팀, 23세 이하 대표팀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어요. 제가 처음 대표팀 가는 기회를 얻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있어요. 내년엔 경기 수도 올해보다 훨씬 늘어날 테니 지금부터 잘 준비하겠습니다.”
시상식 당일 통영 중앙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민재의 부모님은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닫고 상경했다. 10년 넘게 뒷바라지 한 둘째 아들이 K리그 최고의 젊은 스타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민재는 2개의 트로피를 사이 좋게 하나씩 부모님 품에 안겼다. 트로피는 모두 통영 집으로 내려갔다. 처음 대표팀에 선발됐을 때는 시장 입구와 통영 시내 곳곳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재활을 위해 서울에 남은 김민재는 쑥스럽다며 이젠 플래카드는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쁨의 2017년이지만 김민재는 지나치게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매긴 점수는 80점이었다.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경고, 지나치게 도전적인 플레이를 하다 내준 페널티킥 2회, 그리고 퇴장 1회는 잊지 않고 곱씹는다. 자신의 판단 미스로 팀에 준 피해였다. 올 시즌 좋지 않았던 플레이를 반복해서 보며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재활과 휴식 중이지만 머릿속에는 축구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2016년 프로 진출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학을 떠나 실업 무대로 향할 때만 해도 불안했던 김민재의 시간은 1년 사이 밝은 미래로 변신했다. 2017년을 김민재는 ‘고진감래’로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의 달콤함에 취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더 큰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2016년은 힘들었어요. 성인 무대로 오는 과정에서 축구 외적인 일들이 생겨서 많은 걸 느꼈죠. 실업팀에서는 성인 무대가 어렵다는 걸 느꼈고요. 전북에 오기 전 힘든 환경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한 시간 덕분에 K리그에서 빨리 적응한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데뷔 시즌을 맞고 마지막에 상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국가대표도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지는 않겠죠. 또 힘든 일이 오겠지만 결국 제 자세와 노력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달콤함에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운동하러 남산에 갔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아직 멀었어요. 하하.”
글=서호정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