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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체험의 신경학적 & 생물학적 요소의 과학적 증명 1
명상 수련을 오래 했다. 현실의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해서 및 운명의 변화를 목적으로, 시작한 명상 수련이 이제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7년의 새벽 기도에 이어 명상 수련을 8년 이상 했음에도, 술을 끊는 등 부분적인 인격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괴로워 하고, 다혈질에다 쉽게 흥분하고, 속도 좁고 편협하며,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얄팍하고,
인정받으려하고, 주변 환경에 쉽게 동화되고, 생각도 깊지 못하며, 다투는 마음도 쉽게 일어나는 등 아직도 인격이 본질적으로
변용metamophorsis되지 않고 있다.
워낙 천성이 아둔하고 강팍해서인지 인격 변화가 더디고 발전이 없어서, 전력을 다해 수련하는 나의 명상 방법을 반복 의심한다. 개선을 하고 발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관련이 있는 책이라면 장르에 관계없이 우선 읽고 본다.
아래 뇌 과학 책은 4년 전에 여러 번 읽었었는데, 마음 속 문득드는 끌림으로 다시 꺼내어 또 읽으니, 그 내용과 의미를 보다
더 명확하고 통일된 관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명상은 기본적으로 집중을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수행이다. 마음이 절대적으로 고요와 평화의 상태가 되면
명상으로 깊은 내면에서부터 불가사의한 존재의 기쁨이 번져나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 내지 신을 만나게 된다. 존재의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에너지 장의 진동 주파수가 높아져서 몸이 더욱 건강해지고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절대적 고요의 상태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존재의 심오한 상태다. 자신의 진정한 존재와 내적으로 연결된 상태이다. 그런 상태는 마음 너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대립이 없다.
깨달음의 아름다움은 현존의 고요함에서 생겨난다. 절대적으로 고요한 상태를 불교의 선사들은 '삼매'라고 한다. 삼매는 영속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그 순간 우리는 깨달음을 맛보게 된다.
'아잔 브람'이 쓴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에서 선정은 고요한 멈춤의 과정이고 감정의 정점순간으로 선정 중에는 어떤 지혜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선정을 원인으로, 선정의 경험을 조건으로 지혜가 일어난다. 선정의 강렬한 경험을 통해 지혜가 모이고, 선정으로 강해진 마음챙김의 힘으로 그 데이터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반조의 지혜이다.
이러한 명상의 영적인 체험은 공상이나 망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실제 생물학적 요소를 갖고 있다.
아래 내용은 '앤드류 뉴버그'가 쓴 (믿는다는 것의 과학) 중 명상의 영적 체험이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구조와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길어서 내용을 나누어 포스팅.
기도하는 뇌, 명상하는 뇌
리처드 버크: 불꽃 같은 구름, 기쁨과 황홀감, 형언하기 어려운 지적 깨달음의 초월적 깨달음의 순간의 내면의 빛체험 내용.
초월성과 인간의 뇌
의식의 변용상태는 정신을 종교적 심상이나 생각에 의식적으로 집중시켜, 뇌의 신경처리과정을 의미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킴.
명상할 때의 신경학적 변화는 지각과 감정,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처리과정을 중단시켜 그 체험을 형언할 수 없을만큼 경이롭고 통합적인 지워지지 않는 현실로 만든다. 불기사의하고 초월적인 그리고 영적인 체험이 실제 생물학적 요소를 갖고 있음을 연구실에서의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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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체험의 신경학적 & 생물학적 증명 2
향심기도명상법centering prayer은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에 소개됨.
사라 수녀
신의 사진을 찍다
단일광자방출 단층촬영SPECT이라는 영상 조영 기술을 사용해서 뇌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혈류를 측정. 컴퓨터 영상은 기도가
최고점에 달한 순간 뇌에서 발생한 상황을 보여준다.
신을 명상하다
뇌스캔 후에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에, 향심기도를 하는 수녀와 선정 수행을 하는 티벳 불교 명상가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눈 바로 윗부분 위치한 전두엽, 특히 전전두피질에서 왕성한 활동이 나타남.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두 실험자의 차이는 기도를
하는 수녀는 언어 중추가 활성화되고, 명상을 하는 불교 수행자는 심상에 몰두하여 뇌의 시각 처리 영역인 하위 측두엽이
활성화됨. 이 실험의 연구 결과는 2003년 지각 기술과 운동 기술(Perceptual and Motor Skills)에 발표.
전두엽은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감시하여 주어진 일에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전두엽을 주의력 영역이라고도 한다.
언어, 기억, 자기성찰적 의식, 복잡한 사회적 기능, 쾌락 등의 처리과정에서 필수적 역할을 하는 전두엽은 종교적 믿음의 처리 과정에서도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명상이나 기도를 할 때 수행자는 신을 체험하겄다거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의식을 집중하는데 이는 모두 주의력 영역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명상에 들어가면 앞이마에 압력이 크게 높아지는 이유이며 손오공의 머리띠가 상징하는 현상)
시간과 공간의 정지 상태
두정엽은 방위영역(orientation area)으로 불리며, 주위환경을 3차원으로 창조해 감각정보를 해석해, 우리의 신체는 다른 사물이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지각한다. 두정엽이 손상되면 신체이미지와 공간적인 관계를 파악하는데 이상발생. 두정엽의 활동이 감소하면 자각의 일시적 정지나 상실을 느끼게 된다.
또, 두정엽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녀들의 향심기도, 불교 승려들의 선정에 들어갈 때 전두엽이 극도로 활성화된다. 또 명상할 때 두정엽의 활동을 자유롭게 감소시켜 시공을 초월한 상태로 들어가게 만든다.
격렬하게 운동할 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거나 어떤 일에 몰입하면 시간과 공간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뇌의 방향제시 영역에 들어 가는 모든 정보, 이를테면 소리, 광경, 문 앞의 개, 부엌의 타이머, 주변 세계를 구성하는 일반 사물 등의 정보의 공급을 전두엽이 물리적으로 차단해, 방향제시영역으로의 정보의 입수가 차단되 우리는 자아감각, 시간감각, 공간감각을 잃게되어, 초월적인 상태로 들어가 존재의 근원과 완전한 합일된 상태가 된다.
참조로 두정엽에 보내는 정보가 통제되면, 불교의 명상-선정禪定에서 명시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진입하게 된다. 공간상에서 나와 대상 그리고 주변과의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
믿음을 찍은 사진
명상 체험의 신경학적 & 생물학적 증명 3
새로운 현실의 지각
시상thalamus은 유입된 감각정보를 뇌의 여러부분, 전두엽에 있는 고도의 인지처리중추 등에 보낸다. 사람들이 깨어있을 때 시상과 두정엽이 동시에 활성화 되지만, 그러나 명상이나 기도하는 동안 시상의 활동이 증가했을 때 방위 영역 활동은 매우 이례적으로 그와 비례해 감소한다.
명상을 하면 일상적인 지각은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시상은 정상적인 체험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명상 수행자의 의식은 충분히 남아 있지만 그의 뇌는 매우 다른 현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시상은 이 명료한 현실감을 전두엽으로 전달한다. 이제 명상가는 그것을 인지하고 본래 유지하고 있던 믿음에 준하여 체험을 해석한다.
그래서 수녀들은 신의 존재를 보았다거나 체험했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 명상가는 청정한 자리에 들었다고 느낀다.
이 사실로부터 시상은 인지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원천에서 유입되는 자극에 반응하고 있지만, 또한 뇌의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는 개념적 활동에도 반응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믿음이 현실 창조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SPECT연구로 '시상활동'과 '주의력 영역 활동' 사이의 관계를 발견했다.
다양한 종교 전통에서, 정신적 스승들은 세상에 대한 모든 지각이 본질적으로 인지적 해석이라고 간주한다. 만약 수행자들이 명상을 통해 해석 지향적인 뇌의 성향을 중지시킬 수 있다면 좀 더 참된 현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참된 현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란 본질적으로 고도의 해석 기능이기 때문이다.
시상은 시각, 청각 등 감각정보를받아들여, 이 정보를 뇌의 다른 부위에 전달하는 역할, 즉 교통정리를 하는 뇌의 작은 부위다. 수녀나 승려의 시상은 일반인들과는 달리 양쪽 시상의 횔동이 불균형하다.
뇌 스캔의 가장 놀라운 결과 중 하나는 수녀들이 휴식하는 동안 그들의 시상에서의 활동이 비대칭적으로 왼쪽 보다 오른 쪽이 더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불교 명상 수행자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신경질환이 없는 정상인들에게 이런 비대칭의 발견 사례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
참조로 시상의 활동을 통제하면, 시각과 청각 등 감각 정보가 뇌의 다른 부위에 전달되지 않게된다. 이 결과 외부의 지극이 유입되지 않아, 우리 마음은 고요해지고, 우리는 현실을 초월하는 의식의 영역에 진입한다. 이 상태를 불교의 명상-선정禪定에서는 식무변처(識無邊處)라고 한다.
감정의 현실 창조
우리 생각은 감정을 조절함으로 현실감을 창조한다. 예를 들어 즐겁고 낙천
적인 생각을 하면 이완작용이 활발해져 행복 화학물질인 도파민을 방출하게 된다. 그 순간 뇌는 세상이 안전하다고 가정한다. 이와 반대로 불안한 생각은 뇌의 감정중추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면서 몸은 경계상태에 돌입하고 여러가지 스트레스 호르몬(싸움 혹은 도주반응)을 방출하게 된다. 불안한 생각이 실제로 일어난 외적 위험이든 단지 환상에 불과하던 상관 없다. 뇌는 그 생각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그 사고가 불러일으킨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명상을 하면서 일상적 현실의 정상적인 처리 과정을 변용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우리의 뇌의 감정 중추에도 불이 들어와 깨어 있는 의식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연구에서 이 가설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fMRI를 이용한 연구 결과는 명상 중에 주의력(전전두피질)과 자율 신경계에 관련된 다른 부위들뿐만 아니라 변연계 영역에서도 활동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자인 제프리 세이버와 존 레이번은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경이롭고 강렬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변연계가 우리가 왜 어떤 것은 영적으로 생각하고, 왜 어떤 것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가늠하는 일차적인 감독관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강한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면, 감정은 현실로 지각되기 때문에 그것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감정적 반응에는 뇌에서 일어나는 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이 관여되어 있다. 뇌와 신체를 연결하는 자율 신경계는 우리 신체가 각성과 안정을 느끼게 해 준다.
실제로 깊은 명상 후에 수행자들은 강한 각성과 환희의 절정뿐 아니라 깊은 평안과 고요도 느낀다. 이 상태를 불교의 명상-선정禪定에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특정한 대상이나 믿음에 초점을 맞춰 명상할 때, 편도체와 변연계는 이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자율신경계가 가동되기 시작하고, 시상은 모든 것이 실제로 느끼게 해준다. 이 정보는 전두엽으로 돌려보내지고, 거기서 의식이 인지된 후 우리 믿음에 알맞게 재해석된다. 그 것은 해마에도 기록되어 그 경험을 장기적인 감정기억으로 저장한다. 명상을 반복하면 그 사건의 기억은 더욱 강해진다.
이 모든 뇌 활동의 최종적인 결과는 명상의 대상이 생생한 현실감과 융합된다는 것이다.
이 과학적 가설이 의미가 있는 것은 불교 명상가나 수녀에 대해 우리가 설정한 절차를 걸쳐 연구실에서 쉽게 시험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어떤 경험에 대한 현실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뇌가 어떻게 그것을 사실이라고 판정하고 기억하는 지를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 사실이고 또는 사실이 아닌지를 증명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의 존재를 경험한 수녀의 뇌 스캔은 그런 체험을 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신의 존재나 신이 그 방에 실제로 나타났었는지를 증명하거나 반증하지 않는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3회로 나누어 소개한 내용에 의하면 불교의 무색계선정 (無色界禪定)의 체험들이 우리 뇌의 신경학적 & 생물학적으로 증명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내용을 4년 전에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었었다.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을 완성한 지금 그 의미의 이해뿐만 아니라, 내가 해온 수행이 환상 내지 허무한 것이 아닌 사실적이고 실재적인 것임을 확신하게 되어, 더 발전을 위한 격려가 되었다.
명상으로 쿤달리니 차크라가 열리고, 무상삼매의 마지막 단계인 비상비비상처에도 도달했지만, 아직도 인격이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위 내용에 따르면 명상으로 인격이 변화되고 깨달음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처음에 명상을 시작할 때는 내 두웅박 팔자가 변하여 모세나 징기스칸과 같은 대기만성의 삶을 살게되고, 또는 어리석게도
육신통(六神通)이나 성령의 은사 중 하나라도 얻게될 것이라고 욕심냈었다. 큰 지혜도 얻는 것을 바랬다.
세상적 성취는 불가능한 환영이란 것과 게다가 아둔하고 소질이 없는데 큰 지혜를 얻겠다는 것은 욕심이란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남은 인생을 세상적 욕망을 떨쳐버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제약없이 평화로운 삶을 사는 능력을 얻고 이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명상의 목표이다.
구경회 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