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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곤근(昆劇) 『완사기(浣紗記)』 제2막 「봄나들이」
2020년 9월 5일
명나라 만력 연간에 전국에서 유행하였던 양신어(梁辰魚, 1519-1591)가 지은 곤극의 일부입니다. 여자 주인공 서시를 용감하고 사랑을 지키고 애국하는 여성으로 그렸습니다. 전국시기 월나라 범려(范蠡)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자 주인공의 사랑과 애국심을 두드러지게 나타냈습니다. 서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연극 줄거리는 가슴 아픈 슬픈 이야기입니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군대를 끌고 월나라에 쳐들어와서 월나라 왕 구천(勾踐) 부부와 범려를 잡아가서 인질로 삼았습니다. 범려는 서시에게 월나라 왕을 구출한 뒤에 관직을 사퇴하고 멀리 가서 함께 살자고 달랩니다. 서시는 범려를 원망하며 어떻게 사랑하는 여자를 버리냐고 말하면서도 범려를 믿고 또 월나라 왕을 구하려고 오나라 왕 부차에게 시집갑니다. 그녀는 왕의 판단력을 어지럽히고 신하들을 이간시켰습니다.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월나라 왕을 죽이라고 건의하여도 부차는 오히려 간신 백비(伯嚭)의 아첨을 듣고 오자서를 내쫓았습니다.
강소성과 절강성 사람들이 순간순간 상황에 맞는 말을 잘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합니다. 서시는 자기 뜻을 조금도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하고, 범려는 여자의 뜻을 잘 읽고 이리저리 능글능글하게 잘 이끌어갑니다.
여자 주인공 서시의 정의로움과 애국심은 명나라 말기 일부 지식인들의 경세사상과 청나라 초기에 반청운동에 정서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세상이 바뀌는 것을 가장 먼저 자각하는 것은 문학과 예술입니다. 학술이나 철학사상이나 어떤 정책도 문학과 예술 뒤에 나타납니다.
각본 일부를 번역하면서 임진왜란 때 논개가 떠오릅니다. 젊은 논개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애국을 하려고 잠시 사랑도 내려놓고 목숨까지 버렸답니다.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곤근(昆劇) 『완사기(浣紗記)』는 지금도 중국 사람들이 자주 보는 연극입니다. 특히 충신 오자서는 오나라가 멸망할 것 같아 아들을 제(齊)나라 포숙아 후손 포목(鮑牧)에게 맡기러 가며 아들과 생이별하는 「기자(寄字)」를 많이 봅니다.
구글에서 한자로 써서 浣紗記를 찾으시면 중국 곤극을 보실 수 있고 水紅花 노래도 찾으면 들을 수 있습니다.
번역하면서 어떤 구절은 무슨 뜻인지 몰라 의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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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어 『완사기(浣紗記)』 제2막 「봄나들이」
梁辰魚,『浣紗記』,第二出,「遊春」:
前訪
〔生扮範蠡便服上〕
〔젊은 남자 배우가 범려(範蠡)를 분장하여 편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온다.〕
【遶地遊】
【무대를 빙빙 돌아다닌다.】
尊王定霸,不在桓文下。爲兵戈幾年鞍馬,囘首功名,一場虛話,笑孤身空掩歲華。
少小豪雄俠氣聞,飄零仗劍學從軍。何年事了拂衣去,歸臥荊南夢澤云。下官姓範,名蠡,字少伯,楚宛之三戶人也。倜儻負俗,佯狂玩世。幼慕陰符之術,長習權謀之書。先計後戰,善以奇而用兵。包勢兼形,能以正而守國。爭奈數奇不偶,年長無成。因此忘情故鄕,遊宦別國。蒙越王拔於眾人之中。廁之大夫之上。志同道合,言聽計從。邇年以來,邦家多故,廟乏善策。外有強鄰,正君子惕勵之時,人臣幹蠱之日。
今日春和景明,柳舒花放。暫解印綬,改換衣裳。潛遊田野。正欲問俗觀風,浪跡溪山。兼可尋眞訪道,迤邐行來。早是山陰道上了,只見千岩競秀,萬壑爭流。雲木周遭,溪山罨畫。家家耕牧,燕雀賀生成。處處歌謠,桑麻深雨露。正是旭日初升,海上紅雲萬國。東風布暖,湖邊細雨千家。其實好遊行也。
범려는 월나라 왕 구천(勾踐)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제후국의 우두머리를 만들었고 주나라 왕실을 높였다. 공적은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에 못하지 않다. 전쟁터에서 몇 년 동안 말을 몰고 다니며 세웠던 전공을 돌아보니 모두 헛소리가 되었구나. 혼자 지난 세월의 기억을 더듬으며 쓴웃음을 짓는다.
소년 시절부터 영웅호걸의 의협심을 가졌고 혼자 장검을 차고 병법을 배웠습니다. “언제나 전쟁을 끝내고 훌훌 군복을 벗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고향 형남지역에 돌아가서 강 남쪽에 있는 몽택(夢澤, 楚 지역에 雲澤과 夢澤이 있는데 雲澤은 江北에 夢澤은 江南에 있었답니다. 현재 洞庭湖 일대를 말합니다.)에 돌아가서 구름을 베고 쉴 수 있을까?”라고 혼자 말을 한다. 본관 성은 범(范)씨이고 이름은 여(蠡)이며 소백(少伯)이라고 부르며 초나라 완지 삼호(宛地 三戶) 출신입니다. 타고난 성격이 유별나서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기에 미친놈처럼 세상을 우습게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강태공의 병법을 배웠고 자라서는 권모술수 경세 서적을 읽었습니다. 작전계획을 세우고 전쟁하지만 때로는 기발한 방법으로 전쟁하여야 하고, 국가 간의 형세도 파악하여 정의를 갖고 나라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특별한 재능은 임자를 만나지 못하여 중년이 되도록 큰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 취직하려고 고향을 잊고 떠났습니다. 월나라 왕은 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발탁하여 대부(大夫)보다 높게 곁에 가까이 두셨습니다. 나와 왕은 서로 목표가 같고 해결방법도 같아 잘 맞았습니다. 내가 올린 부국강병의 건의와 계획을 왕이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에 어려움이 많으나 조정에서는 좋은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웃한 오나라는 강력한데 군주는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분발하고 신하들은 날짜를 다투어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요즘 봄날이 따듯하고 해도 길어지고 버드나무가 늘어지고 꽃은 향기를 내뿜습니다. 그래서 잠시 관청 업무를 멈추고 옷을 갈아입고 들판에 나가서 산보하였습니다. 산보하는 동안에 농민들의 생활과 의견을 살피려고 이리저리 걷다가 산골짜기까지 들어갔습니다. 아울러 훌륭한 사람을 만날까 생각하고 꼬불꼬불한 마을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아침 일찍 소흥부(山陰) 길을 따라 걸어가니 바위들이 멋있고 골짜기에는 시원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구름이 나무들을 감쌌는데 엄화(罨畫)라는 산골짜기였습니다. 집집마다 농사짓고 가축을 길렀고 새로 집을 지었는지 제비와 참새들은 자기들도 처마 밑에 집을 지을 곳이 생겼다고 지저귀며 축하하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고 밭에는 뽕나무와 마가 잘 자라서 이슬에 젖어있었습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르자 바닷가의 붉은 구름이 온 세상을 붉게 비추었습니다. 봄바람이 불어 따듯해지자 호숫가 마을에는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오늘 정말로 산보를 잘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
杜甫,「屏跡」(第一首):
用拙存吾道,幽居近物情。桑麻深雨露,燕雀半生成。
村鼓時時急,漁舟個個輕。杖藜從白首,心跡喜雙清。
【金井水紅花】
【우물가에서 「여귀꽃(水紅花)」 노래를 부르다.】
農務村村急,溪流處處斜。迤邐入煙霞,景堪誇,峯巒如畫。拚把春衣沽酒,沉醉在山家,唱一聲「水紅花」也囉。偶爾閑步,試看世情,奔走侯門,驅馳塵境。我仔細想將起來,貧賤雖同草芥,富貴終是浮雲。受禍者未必非福,得福者未必非禍。與時消息,隨世變遷,都是一場春夢也!
농사짓느라고 마을마다 바쁘고 개천물도 덩달아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안개 핀 길로 들어서자 풍경은 자랑할 만하니 산봉우리와 산등성이가 산수화 같구나. 새로 지은 봄옷을 벗어주고 술을 사서 산속 집에서 마시고 많이 취하였는데 농촌 사람들이 부르는 「붉은 여귀꽃」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더니 기분도 좋았습니다.
한가롭게 산보하면서 세상을 살펴보니 신분 높은 귀족의 대문 앞에는 사람들이 뛰어다니듯이 드나들고 속세에서는 바쁘게 살아가는구나. 나는 천천히 생각해본다. 지난날 가난하고 천한 신분이었을 때는 길가에 말라버린 풀잎처럼 하찮았지만, 지금은 부유하고 높은 신분이더라도 결국에는 뜬구름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화를 입은 것이 복이 아닐지, 복을 받은 것이 화는 아닐지 모릅니다. 운세에 따라 출세하고 몰락하고 이렇게 저렇게 인생이 바뀌는데 모두 봄날 개꿈이더라.
【前腔】
【앞에서 부른 곡조에 따라】
我更衣變服,究古論今,較勝爭强,不知何年纔罷?笑你驅馳榮貴,還是他們是他;笑我奔波塵土,終是咱們是咱。追思今古,都付漁樵話!
行過山陰了,不免到諸曁走一遭。正是:為愛山林最深處,令人忘却利名心。(下)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앉아 옛날 통치 경험과 현재 정책을 연구하면서도 국가들이 서로 싸워서 이기려고 들고 누가 제일 강력한지 경쟁하는 세상이 언제나 끝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귀족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바쁘게 사는 것이 우습지만 귀족은 끝내 귀족대로 사는 것이고, 나처럼 낮은 신분이 세상을 바쁘게 살더라도 아무래도 나는 가난하고 천한 나일뿐이다. 옛날이나 지금의 사례들을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들은 고기 잡는 어부와 땔나무꾼 같은 무식한 사람들의 쓸데없는 소리다.
소흥(山陰)을 지나니 제기(諸曁)까지 왔고, 정말로 산골짜기가 좋아서 아주 깊은 곳까지 왔더니 사욕과 명예심도 잊었습니다. (남자 배우가 무대에서 내려온다.)
참고자료 :
杜甫,「春日江村」(第一首):
農務村村急,春流岸岸深。乾坤萬里眼,時序百年心。
茅屋還堪賦,桃源自可尋。艱難賤生理,飄泊到如今。
〔小旦素衣持竿浣紗上〕
〔젊은 여주인공 배우가 물감 들이지 않은 흰옷을 입고 작대기를 들고 빨래하려고 비단 옷감을 들고 무대에 올라온다.〕
【遶地遊】
【무대를 빙빙 돌아다닌다.】
苧蘿山下,村舍多瀟灑!問鶯花肯嫌孤寡?一段嬌羞,春風無那,趁晴明,溪邊浣紗。
溪路沿流向若耶,春風處處放桃花。山深路僻無人問,誰道村西是妾家?奴家姓施,名夷光,祖居苧蘿西村,因此喚做西施。居旣荒僻,家又寒微。貌雖美而莫知,年及筓而未嫁。照面盆爲鏡,誰憐雅澹梳妝?盤頭水作油,只是尋常包裹。甘心荊布,雅志貞堅。年年針線,爲他人作嫁衣裳。夜夜辟纑,常向隣家借燈火。今日晴爽,不免到溪邊浣紗去也。只見溪明水淨,沙暖泥融。宿鳥高飛,遊魚深入。飄颻浪蕊流花靨,來往浮雲作舞衣。正是日照新妝水底明,風飄素袖空中舉。就此石上,不免浣紗則個。
절강성 제기현(諸曁縣) 저라산(苧蘿山) 아래의 마을에는 집들이 깔끔하게 지어졌네요. 꾀꼬리와 꽃(예쁜 여자아이)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혼자된 여자라고 여길 것 같네요. 예쁘고 부끄럽지만 봄바람을 어찌할 수 없어 맑고 좋은 봄날 개천가에서 비단을 빨래하고 있습니다.
산골짜기 길은 개천을 따라가면 약야산(若耶山, 소흥 남쪽에 있고 골짜기 물은 북쪽으로 흘러 운하로 들어갑니다.)으로 갑니다. 봄바람에 곳곳마다 복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갈수록 산은 깊고 길도 외져서 물어볼 사람도 없습니다. 서쪽 마을에 우리집이 있다는 것을 누구 알까요? 저는 시(施)씨이고 이름은 이광(夷光)이며 먼 조상부터 저라산(苧蘿山) 서쪽 마을에 살았기에 저를 서시(西施)라고 부릅니다. 황량하고 편벽한 곳에 사는 데다가 집안도 보잘것없습니다. 모양은 이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비녀 꽂을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 시집가지 못하였습니다. 거울이 없어 대야 물에 얼굴을 비춰보며 깨끗이 머리 빗고 꾸미는 것을 누가 안타깝게 여기겠습니까? 머릿기름이 없어 머리를 틀어 올릴 때도 물을 발라서 다듬고 보통 헝겊으로 싸놓습니다.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막대기로 비녀 삼아 꽂고 베 헝겊 치마를 두르고 살더라도 좋습니다. 마음만큼은 곱고 굳게 지키고 살겠습니다. 해마다 바느질하여 남의 시집가는 여자의 옷을 지어주고, 밤마다 삼베 실을 꼬느라고 등 기름이 떨어지면 이웃집에서 등 기름을 꾸어오겠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맑고 봄바람도 따듯하여 어쩔 수 없이 개천가에 나와 비단 옷감을 빨래하러 왔습니다. 개천물이 맑고 깨끗하고 모래도 따듯하고 부드럽습니다. 잠을 깬 새들은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도 물속 깊이 헤엄칩니다. 하늘거리는 꽃잎을 앞이마에 바르고(花靨, 화엽은 앞이마에 화장하는 것) 흘러가는 구름으로 춤추듯이 예쁜 옷을 짓고 싶습니다. 이때 모습이야말로 예쁘게 꾸민 모습이 밝은 햇빛에서는 시냇물보다 맑고 옷소매는 따듯한 봄바람에 나풀거립니다. 바위 위에서 비단 옷감을 빨래하고 있으렷다.
【金井水紅花】
【우물가에서 「여귀꽃(水紅花)」 노래를 부르다.】
綠水全開鏡,淸溪獨浣紗。波冷濺芹芽。濕裙釵。嬌羞誰訝?弄得懨懨春倦,不覺髻兒斜,唱一聲「水紅花」也囉。
푸르른 봄 풍경이 활짝 열렸고 맑은 시냇가에서 혼자 비단 옷감을 빨래하고 있었습니다. 빨래하느라고 조금 차가운 시냇물이 미나리 싹에 튀고 여자 옷도 적십니다. 부끄러움 타는 아가씨가 누구더냐? 빨래하다 힘들고 지쳐서 틀어 올린 머리가 비스듬히 기운 것도 모르고 「붉은 여귀꽃」 노래를 부릅니다.
浣紗已畢,且收拾囘去罷。
〔收竿,起身整衣,長歎〕
빨래를 마치고 가져온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막대기를 들고 일어나서 옷매를 여미고 한숨을 쉬듯이 말한다.〕
梅花雖好,浪影溪橋。燕子多情,空巢村店。我仔細想將起來。世間多少佳人才子,不能成就鳳友鸞交。我旣不能見他,他又不得遇我。日復一日,年又一年,不知何時得遂姻緣也。
매화꽃이 활짝 피었어도 시냇가 다리 아래 물에만 비춰지고, 제비들은 정이 많은지 마을 촌집에 지어놓은 집을 비워놓았다. 나는 천천히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잘나고 잘생긴 남자들이 얼마나 많겠지만 나는 그들과 사귀지도 못하여 친구도 못한다. 내가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런 남자도 나를 만나지 못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보내니 어느 때에야 인연을 맺을지 모르겠다.
【前腔】
【앞에서 부른 곡조에 따라】
朝朝自出,夜夜空歸,樹黑山深,恰又夕陽西下。笑我寒門薄命,未審何時配他。笑你王孫芳草,未審何年配咱。花枝無主,一任東風嫁。
아침마다 혼자 나갔다가 저녁에는 홀로 돌아온다. 나무는 우거지고 산골짜기도 깊은데 마침 저녁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구나. 나처럼 가난한 집안의 보잘것없는 목숨이 우습구나, 어떻게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으랴? 너처럼 그리운 남자가 우습구나, 어떻게 나 같은 짝을 만날 수 있으랴? 활짝 핀 꽃은 알아주는 사람 없는데 봄바람에 맡기련다.
참고자료 : 王孫芳草
王維,「山中送別」:
山中相送罷,日暮掩柴扉。
春草明年綠,王孫歸不歸。
〔作下,遇小生上,住階〕
〔여자 배우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남자배우를 마주치고 계단에 서서〕
(小生)轉過若耶渡,來到苧蘿村。呀!小娘子拜揖。
(남자배우) 약야산 개천을 건너 걷다보니 저라촌에 왔습니다. 아! 젊은 여자가 있기에 인사합니다.
(小旦)客官萬福。
(여자배우) 안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小生背階)世間有這等女子,豈非天姿國色乎?小娘子,我且問你,你何方居住?姓甚名誰?莫非采藥之仙姝,必是避世之毛女,緣何在此,乞道其詳。
(남자배우가 돌아보며 말하길)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다니 하늘에서 내린 최고 미인이 아니냐? 아가씨! 말 좀 여쭙겠습니다. 어디 사세요? 이름은 무엇입니까? 불사약을 얻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니면 진시황 궁궐에 살던 모씨 여자일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지 자세히 말해보시오.
참고자료 : 毛女
漢、劉向,『列仙傳,毛女』:“毛女者,字玉姜,在華陰山中,獵師世世見之。形體生毛,自言秦始皇宮人也,秦壞,流亡入山避難,遇道士谷春,教食松葉,遂不饑寒,身輕如飛,百七十餘年,所止岩中有鼓琴聲云。”
(小旦)客官。妾就住苧麻山口,寒家姓施。世居西村,名喚西施。
(여자배우) 손님, 저는 저마산(苧麻山) 입구에 살고 있으며 가난한 서씨 집안의 딸입니다. 대대로 서쪽 마을에 살기에 서시라고 부릅니다.
(小生)小娘子,你靑春幾何?曾嫁人否?
(남자배우) 아가씨, 청춘이 얼마인지요? 시집은 갔습니까?
(小旦)年方二八,尙未適人。
(여자배우) 성인이 된 올해 나이 16살(8×2=16)이며 아직 시집가지 않았습니다.
(小生)小娘子,我不敢容隱,下官就是越國上大夫範蠡,尋春到此。
(남자배우) 아가씨, 저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월나라 대부 범려이며 봄나들이 나왔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小旦)賤妾不知貴人,失於退避。
(여자배우) 저는 당신이 높으신 분인지 몰라 길을 비켜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小生)你是上界神仙,偶謫人世。如此豔質,豈配凡夫?你旣無婚,我亦未娶,卽圖同居丘壑,以結姻盟。但以身常許君,遭時多難。敢冀少停旬月,卽當奉遣冰人,乞吿嚴親,萬勿他適。
(남자배우) 당신은 하늘에 사는 신선인데 인간 세상에 귀양 왔겠지요. 이렇게 예쁜데 어찌 보통남자의 짝이 되겠습니까? 당신도 시집가지 않았고 나도 장가가지 않았으니 시골에서 함께 살며 부부가 됩시다. 그런데 저는 임금을 모시는데 지금 어려운 시기를 만났습니다. 열흘이나 한 달 정도 기다리면 중매인을 보내겠습니다. 지금 부모님께 알리시고 절대로 다른 곳으로 시집가지 마세요.
(小旦)蓬茅陋質,田野村姑,蒙君子不遺葑菲之微,實賤妾得荷絲蘿之托。雖遲年歲,豈敢變移?
(여자배우) 가난한 집안에서 못나고 시골 아가씨인데 당신께서 하찮은 못난 사람을 알아주시고 저는 헤어지지 말자는 부탁까지 받았습니다. 열흘 한 달이 아니고 해가 가더라도 어찌 변심하겠습니까?
(小生)敢問小娘子,你手中拿的甚麼東西?
(남자배우) 아가씨, 당신 손에 쥔 것이 무엇입니까?
(小旦)家貧無以營生,聊以浣紗爲業。
(여자배우) 집안이 가난하여 다른 일은 없고 겨우 비단 옷감 빨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小生)下官微行,失帶禮物。卿是漢女,僕乃鄭生。敢借溪水之紗,權作江皋之佩。持此爲定,勿背深盟。
(남자배우) 저는 편히 산보를 나오느라고 예물이 없습니다. 당신은 한수(漢水) 물가에 놀러나온 여자 신선이고 저는 당신과 사귀고 싶은 보통사람입니다. 감히 시냇가에서 빨래한 비단 옷감을 한수 여자 신선의 패물로 삼아 저에게 정표로 주세요. 이 정표를 나눠 갖고 절대로 맹세를 어기지 말아요.
참고자료 : 漢女와 鄭生
漢、劉向,『列仙傳,江妃二女』:
“江妃二女者,不知何所人也。出遊於江漢之湄,逢鄭交甫。見而悅之,不知其神人也。謂仆曰:“我欲下,請其佩。”
仆曰: “此間之人皆習於辭,不得,恐罹(悔)[侮]焉。”
交甫不聽,遂下與之言,曰:“二女勞矣。”二女曰:“客子有勞,妾何勞之有?”
交甫曰:“橘是柚也,我盛之以笥,令附漢水,將流而下。我遵其旁,采其芝而茹之,以知吾爲不遜也。原請子之佩。”
二女曰:“橘是抽也,我盛之以莒,令附漢水,將流而下,我遵其旁,采其芝而茹之。”遂手解佩與交甫。
交甫悅,受而懷之,中當心,趨去數十步,視佩,空懷無佩。顧二女,忽然不見。
(小旦將紗遞小生)小物輕微,不足留贈。
(여자배우가 비단을 남자배우에게 건네며) 이것이 너무 가벼워서 드릴만 하지 못합니다.
(小生)
【玉胞肚】
(남자배우)
【옥띠를 두르면서】
行春到此,趁東風花枝柳枝,忽然間遇著嬌娃,問名兒喚作西施。感卿贈我一縑絲,欲報慚無明月珠。
봄나들이 나왔다가 봄바람에 피어난 꽃나무와 버드나무를 따라왔고 갑자기 예쁜 여자를 만나 이름을 물어보니 서시라고 하더라. 내 뜻에 감동하였는지 나에게 비단 옷감 조각을 주었는데 나도 정표를 보답하려니 귀한 보물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小旦)
(여자배우)
【前腔】
【앞에서 부른 곡조에 따라】
何方國士,貌堂堂風流俊姿。謝伊家不棄寒微,卻敎人惹下相思。勸君不必贈明珠,猶喜相逢未嫁時。
어느 나라 관원이기에 모습이 늠름하고 행동거지가 예의 바릅니까! 당신께서 가난하고 미천한 저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리움을 남기셨습니다. 당신께서 귀한 보물을 정표로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시집가기 전에 당신을 만난 것이 기쁩니다.
(小旦)日暮途黑,就此吿歸。
(여자배우) 해가 져서 길도 어두우니 집에 가야겠습니다.
(小生)多謝娘行,前途保重。芙蓉脂肉綠雲鬟。
(남자배우) 아가씨 허락해주어 고마워요, 조심해서 잘 가세요. 당나라 시인 시구 “부용 같은 몸매에 까만 긴 머리”를 읊었습니다.
참고자료 :
唐、元稹(779-831),「劉阮妻」(二首):
芙蓉脂肉綠雲鬟,罨畫樓台青黛山。
千樹桃花萬年藥,不知何事憶人間。
(小旦)罨畫樓台靑黛山。
(여자배우) 엄화 골짜기에 누대가 있고 눈썹 같은 산이 있어요(?)
(小生)千樹桃花萬年藥。
(남자배우) 서왕모 사는 신선 세계에 천 그루 복사꽃은 오래 사는 불로약이라고 합니다.
(小旦)不知何事憶人間。(下)
(여자배우) 무슨 까닭에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다.)
(小生)今日偶然邂逅遇着,眞個好有緣也!(下)
(남자배우) 오늘 우연히 아가씨를 만났는데 정말로 좋은 인연이구나!
(무대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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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반두(盤頭) 머리 모양
화엽(花靨)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