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8-23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라 / 박지온 목사
지난 2년 동안 학원 사역을 하면서 예수 믿는 우리 자녀들이 학원 현장 속에서 예수 믿는 표시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 믿는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손 한 번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심 시간에 식사 기도하는 학생도 거의 없습니다. 자녀들이 학교 점심 시간에 식사 기도를 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청년들도 마찬가지 실정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불신자들이 놀려댑니다. 교회에 가는 것을 보고 '정신 병원에 가느냐?'라고 빈정댑니다.
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예수 믿는 표시를 내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현장을 정복할 수 있는 엄청난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불신자들에게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큰소리 치며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신앙 생활에 성공했던 살람들이 모두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살았으며 세상을 정복했다고 밝힙니다.
(1) 모세
바로왕이 결국은 모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모세에게는 바로왕을 압도하는 영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판단하신다고 했습니다. 바로왕은 시골 영감같은 모세를 보고 엎신여겼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큰 코를 다쳤습니다. 모세 스스로도 처음에는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자로 여겼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확인시켜주신 후에는 담대히 바로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2)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느부갓네살왕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자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줄로 알고 그들을 불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느부갓네살왕은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강열한 풀무불 속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걸어다녔습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고 불 속에서 다니니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결국, 느부갓네살왕은 중요한 선포를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느부갓네살왕은 불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엄청난 고백이 터져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을 정복하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3) 다윗
사울왕이 군대를 풀어서 다윗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헛수고에 불과했습니다. 불신자들은 힘과 권력으로 누르면 되는 줄로 알고 있으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사울과는 도저히 싸움의 상대가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울과 다윗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 배경에 있습니다. 즉, 사울은 인본주의의 배경이었고, 다윗은 신본주의의 배경이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실패했고, 다윗은 성공했습니다.
또한, 다윗이 아들을 피해 도망하던 중에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에게 엄청난 저주를 했습니다. 그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즉, 옆에 있던 아비새 장군이 시므이의 목을 벨려고 할 때에 다윗은 말렸습니다. 아들도 아버지를 치려고 하는데 하물며 사울의 자손은 오죽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고, 만약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인도하신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본주의였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브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전쟁에 앞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인 사무엘의 도착이 지체되자 사울 자신이 제사장을 대신해서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아주 융통성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제사장 외에는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이므로, 전쟁에서 지더라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을 없애려는 것도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인본주의의 극치를 보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격이나 능력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 들어가면 됩니다.
본문에 엘리사 선지자가 나옵니다.
이 엘리사 선지자는, 이미 아람 나라 왕에게 완전히 인정을 받은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그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을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불신자들이 우리들 앞에 와서 무릎을 굻을 수밖에 없는 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최대의 존경과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속국으로 삼으려고 애썼으나 번번히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영감으로 침략 계획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어서 미리 막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람왕이 신하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신하 중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있어서 왕이 침실에서 하는 말까지도 다 알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아람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 이 사실까지도 엘리사가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들의 눈이 어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마리아성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왕이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가 저들을 쳐죽일까요?"라고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왕이시여, 하지 마소서. 도리어 떡과 물을 먹이소서."라고 답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왕은 알아차렸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전혀 엉뚱한 말이지만 그대로 순종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왕이 그대로 순종한 뒤, 23절에 다시는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 침범하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영적 권세를 가진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불신자들을 압도하고 리더하는 영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이 너무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때에 문제가 오게 됩니다.
이삭에게 불신자들이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있어서 복을 받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불신자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있어서 복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수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유대인들도 초대교회를 멸망시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베드로에게 더 이상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수많은 불신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베드로는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멸절시키지 못했던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불신자들을 압도하는 영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권력이나 돈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영적 힘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나갈 때 승리합니다.
창세기 3장의 위력이 엄청나게 다가오고 불신자들이 큰소리 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영적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가 따라와야 합니다.
요즘 성도들은 쉽고 편하게 생활하고자 합니다. 힘들고 어렵던 때는 열심히 기도했는데, 조금 여유가 있다보니까 쉽게 믿기 위해서 기도를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기도의 힘을 잃지 않았습니까?
언젠가 갑자기 큰 위기가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어떻게 그러한 위기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영적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기도의 힘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영적 힘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불신 현장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말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