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상>
박경선
남편의 둘째 외숙모님 되는 분이 돌아가셨다. 영주 장례식장을 찾아갔더니, 요즘은 장례식장을 장례문화원이라고 명칭을 바꿔 불렀다.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의 태도가 '공포와 기피'에서 '존중과 추모'로 진화하는 과정인 듯, 지역 주민들에게 주는 거부감을 줄이고, 친숙하고 전문적인 서비스 기관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일 것이다. 일반 문화원 행사는 전시, 공연, 강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즐거움과 강좌, '축제와 교육'을 담당하지만, 장례 문화원은 고인의 '추모 전시회', '작은 음악회' 등 어두운 의식을 밝은 문화로 변화시켜 가는 과정인 듯하고, 미래를 볼 때, 1인 가구 증가와 가족장 선호 등의 인구 구조에 맟춰 더 다양한 이별식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 같다.
복도로 들어서는데 조화 화환이 긴 복도를 양쪽으로 늘어서 끝까지 채우며 서 있고, 복도 끝을 둘러선 조화 꽃다발들이 그대로 둥글게 늘어서서 꽃 정원을 이루듯 찬란하게 보였다. 외숙모와 외삼촌이 낳아 기른 세 아들이 얼마나 출세를 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들들이 서울시장이나 신세계백화점 부사장과 격을 같이하는 아들들로 성장한 현재의 영광을 대변하는 화환인 듯했다. 조의를 표하는 사람의 높은 직책 이름을 매단 꽃다발들은 따로 한곳에 전시해 두었다. 보낸 사람의 직함과 직책에 따라 꽃다발도 자리 배정의 예우를 받으니 한 편의 동화가 그려졌다.
외할머니는 우리 시어머님을 10남매의 장녀로 낳으시고 나서 밑으로 계속 딸을 낳으시다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자식을 아들 쌍둥이로 낳으셨다. 그 덕을 네 번째 이모할머니에게 돌려, 이모할머니는 여자지만 유일하게 고등학교까지 학교 진학을 할 수 있었고, 우리 시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안 보내주셨다. 아들들은 모두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었고, 이번에 외숙모를 떠나보내신 다섯째 외삼촌은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다. 철도 공무원으로 월급이 부족해서 연탄 가게를 했는데, 아들들이 어려서부터 연탄 배달도 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하며 자랐단다. 그런데 이제 맏아들은 어느 도의 행정 부지사이고, 둘째 아들은 중국 하문에서 한국 신세계 백화점보다 더 큰 회사의 부사장으로 있고 셋째 아들도 높은 공직에 있단다. 꽃다발이 어마 무시하게 많이 와서 아들들을 잘 키웠구나 부럽지만, 외숙모 돌아가시고 홀애비가 된 구십 외삼촌이 저 꽃다발을 보았다고 여생을 즐겁게 잘 지낼수 있을까? 허우대 멀쩡하게 서 있는 수많은 꽃다발도 이 시간이 끝나면 쓰레기장으로 갈 테니 부러울 게 없다.
요즈음 ‘내게 남겨진 시간 안에, 어떻게, 어떤 일을 하다 죽으면 잘 죽을까?’하는데 온통 마음이 가 있다.
유튜브에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 씨 뿌리고 가꾼 일이다.’는 송파 이재연 사장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에도 주말이면 수목원을 찾아 ‘일구는 즐거움’으로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한 그루씩 심었던 나무들이 이룬 울창한 숲에 한 두 마리 놓아 기르던 반달곰, 비단잉어가 일가를 이루어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사랑을 깨닫는 아름다운 수목원과 100여 마리의 곰과 식물이 내방 원들에게 제공되며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꽃사슴, 공작, 백조, 비단잉어 등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생명의 생생한 숨결을 마주하며 지낸단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집세, 전기세, 수도세까지 대어주는 복지가 잘 되어 있어, 가족인 듯 오래 머무는 직원이 많단다. 계절마다 아람다움을 꽃 피우는 자연 속에 묻혀 일하고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먹거리를 즐기는 이곳 생활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겠다. 이런 공간을 일구며 지내는 95세 이재연 사장은 나날이 더 건강해져가는 듯했다.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늘 축복을 받는 것 같다. 자신 뿐 아니라 둘레의 사람들에게도 덕을 베풀며 참 잘 살아오셨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2014년에 시골집을 마련하여 남편의 퇴임식을 정원에서 한 뒤 2026년 현재까지 동네 어르신들과 여기저기 단체나 시설 사람들을 초대하여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주는 놀이를 즐기며 살았다. 방명록에 1,252명이 다녀갔다는 기록만 남을 뿐 나는 잘 놀기만 했다. 정원 한가운데 대왕 소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두 아들 모두 이 집에 흥미가 없으니 내가 죽어 수목장으로 이 나무 밑에 묻히고 싶은 것도 부끄러운 사치이다. 경남 고성 ‘동동 숲’ 새김 돌에 ‘동화 작가 박경선’ 이름의 동백나무 한 그루 얻어둔 것으로 감사하며 바람 타고 떠나가리라.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