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339)... 統一과 ‘食糧難세대’ 관리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반도 통일(統一)과 복지(福祉)
오늘(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청와대 춘추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통일 대박(bonanza)론을 제기한데 이어 대통령직속기구를 통한 통일청사진(統一靑寫眞)을 제시키로 함에 따라 통일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통일한국의 인구 문제와 사회복지 제도를 주제로 개최된 포럼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이석 박사는 “1990년대 중ㆍ후반 북한의 대기근(大饑饉) 때 출생하거나 영유아(嬰幼兒) 시기를 보낸 세대와 50대 이상 연령층은 정산적인 노동력이라고 간주하기 힘든 ‘특이(特異) 인구’이므로 통일 이후 새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1990년대 북한이 대기근으로 ‘고난의 행군(行軍)’을 할 시기에 태어나거나 자라서 심각한 영양실조(營養失調)를 겪었던 10〜20대 상당수는 신체(身體) 발육이나 지능(知能)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상적인 노동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식량난을 겪은 ‘특이세대’ 인구는 약 426만명으로 북한 전체 생산가능 인구의 약 25%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특이세대와 영유아 영양문제를 방치할 경우 통일 이후 복지(福祉)비용을 급증시켜 재앙(災殃)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에 ‘식량난 세대’를 관리하면서, 아동과 청소년 등 ‘미래 세대’는 이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특히 임산부(姙産婦)와 영유아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미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통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적절한 인구 증가와 북한의 경제 및 사회발전이 필요하다. 이에 남북한의 합계 출산율(出産率)이 2.1명(2020년 기준)이 되어야 적정인구에 근접할 수 있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2032년 남북한 총인구가 7859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 후 국력을 끌어올리려면 인구의 양(量)과 질(質)을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동독(東獨) 지역의 결혼 및 출산율이 크게 떨어졌다. 1980년대 후반까지 매년 13만건 이상을 유지하던 혼인(婚姻) 건수가 1990년에는 10만1913건으로 그리고 5만529건(1991년), 4만8232건(1992년)으로 계속 감소하여 1980년대 평균의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출생아(出生兒) 수도 20만명 이상 유지하였으나 1990년에는 17만8476명으로, 그리고 10만7796명(1991년), 8만8320명(1992년)으로 급감했다. 이에 1993년 말 동독 지역의 출산율은 통일 전의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독일은 통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오히려 결혼과 출산율이 모두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과거 동독은 공산정권의 특성상 출산장려정책(出産獎勵政策)을 폈으나 통일 이후 이것이 사라졌으며, 또한 동독 지역의 급격한 실업률 증가, 동독 여성들의 서독 이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동독 지역 출산율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회복되어 2008년 이후에는 서독 지역보다 높아졌다.
또한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재원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분야가 사회복지(社會福祉)분야이다. 전문가들은 통일 후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남북의 사회복지 제도를 통합하면 국가의 재정 부담이 커져 위기가 올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독일도 통일 초기 동독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를 사회복지비용으로 사용했다.
사회주의 국가는 국민의 충성심 고취를 위해 ‘무상(無償) 복지’ ‘무상 치료(治療)’의 개념이 강하다. 이에 북한은 해방 이후 ‘국가사회보험제’를 만들었으며 의료보험(醫療保險)보다 강력한 ‘무상 치료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나, 통일 후 북한의 복지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가재정이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통일 이후 사회보장 제도 통합 과정은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업무와 관련하여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문은 2005년 6월 28〜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상임위원 겸 사단법인 남북나눔공동체 이사 자격으로 금강산 온정리를 방문하였다. 대북지원물품으로 영유아 분유(粉乳)와 가정용 보일러 등을 전달하였다. 농촌 가정과 농장을 방문한 후 북측 인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필자는 영유아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방문은 통일부의 ‘대북지원 전문가’ 자격으로 북한을 2007년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방문을 하였다. 방문 목적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콩기름 공장과 의사 왕진가방 지원사업을 모니토링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장을 점검한 후 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 기관 인사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보건영양학분야 전문가로서 대북지원 보건의료 및 영양사업에 대하여 소견을 말하고 토론을 하였다.
필자는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하여 북한 아동의 심각한 영양 및 건강문제에 관하여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였다. 아래는 필자가 민주평통 신문(2004년 3월 31일자)에 <북한 어린이를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내용이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캐럴 벨러미 총재는 최근 북한을 방문한 후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어린이들 삶의 질은 지난 97년 방문 때보다 향상됐지만, 아직도 7세 미만의 북한 어린이 42% 정도는 만성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이중 7만여명은 응급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극심한 영양실조를 격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로스엔젤스 타임스」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과 엇비슷할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40대 이상 성인들은 신장(키) 차이가 없지만 1990년대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한 20대 이하에서는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인하여 발육부진과 왜소한 체구를 초래하여 남북 아동과 청소년들 사이에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 인간은 영유아기와 청소년기 두 번의 급성장기가 있다. 이 시기에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여야 성장 발육이 제대로 된다. 특히 영유아기의 영양실조는 어린이의 성장과 발육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두뇌 발달에도 나쁜 영향을 초래하여 지능지수(IQ)가 떨어진다.
출생시 뇌의 무게는 성인의 25% 정도이며 매분 1mg의 속도로 성장하여 생후 6개월이 되면 성인 뇌의 50%, 2년 6개월이 되면 70%, 5살이 되면 약 90%에 도달한다. 한편 뇌세포 수는 3〜4세 때 벌써 성인의 90%가 된다. 이 시기에 소아의 지능 발육의 대부분이 완성된다.
심한 단백질 결핍증을 쿠아시오커(Kwashiorkor)라고 부르며 키와 체중이 증가하지 않는다. 단백질 결핍증이 생기면 손, 발, 얼굴 등이 부어오르며 심할 경우에는 복수가 생겨 얼핏 보면 살이 찐 듯이 보인다. 또한 피하지방이 소실되고 근육은 약해지며 심한 빈혈이 생기기도 한다. 단백질과 에너지(열량)이 모두 결핍된 상태를 마라즈무즈(Marasmus)라고 하며 신체 조직의 소모가 심해지며 체중이 감소하고 피하지방이 없어서 노인과 같이 주름이 잡히고 마치 ‘애늙은이’ 같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60대 연령층은 한국전쟁 후 1953년부터 유니세프(UNICEF)가 지원한 분유를 학교 운동장에서 끓여 제공한 우유죽으로 허기를 채운 기억을 갖고 있으며, 그때의 무상급식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또한 유니세프는 1970년대 농촌지역 아동영양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농촌 주부들이 두유(soybean milk)를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급식할 수 있도록 믹서기 등 기구를 제공하여 농촌 어린이들의 영양상태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북한 어린이들의 심각한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두유(북한에서는‘콩우유’라 부름) 제조기와 콩을 지원하여 영유아들에게 매일 두유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국내 민간단체(NGO)가 북한에 두유제조기 10대를 지원하여 유아원 어린이들에게 두유를 공급한 결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으로 만든 두유 1컵(200cc)에는 열량 110칼로리, 단백질 7g, 지질 5.6g, 당질 9.6g을 위시하여 무기질, 비타민 등이 들어 있어 어린이에게 좋은 영양식품이다. 또한 두유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비지에 설탕을 첨가하면 어린이들에게 간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 한국인 기업체가 두유제조기를 생산하며 1세트(콩 분쇄기, 두유제조기, 보온통) 가격은 약 3천달러이나 대량으로 구입하면 2천5백달러(약 3백만원)로 구입이 가능하다. 북한 당국도 농민들에게 콩 재배를 독려하고 있으므로 우량 콩 종자를 북한에 보낼 수도 있다. 대두 1톤(중국 현지 가격 약 5백달러)이면 약 3〜4톤의 두유와 비지를 만들 수 있다.
현재 민주평통 사무처에서 추진하고 있는‘북한어린이돕기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시․군․구 지역협의회가 두유 제조기 1대씩을 구입하여 북한에 보내는 캠페인을 벌릴 것을 제안한다. 영양불량으로 성장발육 뿐만 아니라 고귀한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인도적 차원에서 동포애를 발휘합시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인해 아동들에게 심각한 신체 및 정신적 결함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영유아 및 임산부 대상 영양개선, 질병관리 분야에 종합지원이 필요하다. 북한의 취약계층 지원은 인도적 당면과제이자 국가 장기발전 전략에 따라 통일대비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정부지원을 위시하여 민간단체 및 국제사회 지원 등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339). 2014.2.25. www.nandal.net www.ptc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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