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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땅끝 사랑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회복의 은혜를 받고 왕상 19:1-18, 요 21:15-22
로버트 로빈슨(Robert Robinson)은 8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는 14살 때에 런던으로 가서 이발 기술을 배웠지만 그곳에서 못된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급기야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17세 되던 해 그 당시의 유명한 조지 휫필드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지 못하였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를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찬송가의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가 그가 쓴 시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도 점차 식어갔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방황하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시집을 읽다가 그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런 훌륭한 시를 읽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여인이 펼쳐 놓고 읽고 있던 시는 자기가 지은 ‘복의 근원 강림하사’이었습니다.
현재 그가 가진 신앙과 동떨어진 시라 생각되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지만 여인은 끈질기게 그 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믿음이 동요될 때마다 이 시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었다고 간증하면서 그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체념한 그는 그녀가 읽어주는 시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를 들으며 그는 첫 믿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정식교육을 받아 유명한 케임브리지대학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찬송가 28장의 가사는 250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복이 많아 뜨거운 신앙이 식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여 우리의 식어진 신앙을 다시 불붙여 주시려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로빈슨 목사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한 때 뜨거운 믿음으로 사역을 감당했던 사역자들도 때로 깊은 신앙의 침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받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신앙의 침체를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구약 본문 왕상19:4에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했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앗세라 거짓 선지자 850명을 상대로 제단에 불이 떨어지는 표적을 통해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백성들 앞에 밝혀 모두 척결한 후의 일입니다. 이세벨 왕비는 이 소식을 듣고 반드시 복수하여 엘리야를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에 찬 말을 듣고 낙망하여 한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한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BC 9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일정한 주거가 없이 광야에 기거하면서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다녔습니다(왕하1:8). 그는 신앙과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으로 아합왕의 잘못을 거침없이 담대히 책망했고, 그 당시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던 바알과 앗세라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척결에도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용기의 사람, 신앙심이 깊은 사람, 정의감과 애국심이 강한 사람 등 등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엘리야의 활동에 관한 기사는 구약 열왕기상 17장에서 21장 사이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의 활동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행한 능력과 기적들입니다. 기근의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 때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통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이 그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왕상17:8-16)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주께 기도하여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상17:17-24) 백성들의 죄에 대한 징계로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가 그의 간절한 기도로 가물었던 땅에 비가 오게 되었습니다.(왕상 18장)
이처럼 담대하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가진 뛰어난 신앙을 가지고 범죄 한 아합왕을 책망하고, 기적을 행하고, 바알우상의 전을 무너뜨리던 엘리야가 본문의 말씀을 보면 탈진과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 당시 아합왕의 왕후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 이세벨이었습니다. 이세벨은 그가 섬기던 바알 신의 선지자들을 엘리야가 다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 는 통첩을 했고 그 통첩을 받은 엘리야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을 치다가 로뎀 나무 밑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 요21:15에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나를 따르라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선뜻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따르면서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봤고, 자기도 능력을 행했었습니다. 주께서 훌륭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시고, 칭찬을 들었던 그였습니다. 한 때 자신은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른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제 베드로에게서 신앙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열심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따르기도 하고, 열심히 사역도 하다가 엘리야처럼,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처럼 때로 주님을 거부하고 자주 실수 하고, 첫 사랑을 잊고,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낙심 가운데 처하기도 합니다. 그 때 우리에게는 주님과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한때는 많은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비밀로 해야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던 암호인사가 있었는데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숲속에 들어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암호인사는 `당신은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신앙을 버리지 않고 숲속 교회당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하는 말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 암호인사에서 우리는 귀중한 신앙생활의 비결을 배웁니다. 우리들도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질문을 언제나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박해와 환란 보다 우리의 신앙을 와해시키는 것은 생활의 풍요함에서 오는 신앙생활의 나태함과 세상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의 침체를 벗어나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침체 중에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늘 감싸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왕상19:5-7에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생활 하다 어려움 당할 때 홀로 두거나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아픔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시어 같이 아파하시고, 함께 고난을 당하십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위로 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성도가 신앙의 침체를 만나고, 낙심하게 되는 요인을 보면, *나만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물으실 때, 본문 왕상 19:10에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홀로 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55세 된 남편이 성인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미망인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채 고통 하다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혼자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나는 그이 곁으로 가고 싶다. 그이가 나를 기다린다." 는 요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딸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시집식구들이, 가까운 이웃동네에는 친정집이, 여기 저기 친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이해하고 돕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는 혼자다. 나는 홀로 남았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로웠고, 고독했고, 우울했고, 그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도들 곁에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만 외롭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숭배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자 7,000명이 남아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생명의 위협 때문입니다. 왕상19:10 하반 절에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고, 14절 끝에서도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까봐 겁내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19:4를 보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산 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이세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손에 죽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실패, 이별, 고통, 명예를 잃는 것, 원한, 억울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그것은 생의 종지부이며 마침표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담하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종착역이고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면 죽음 앞에서도 담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신앙 침체에 빠져 낙심하여 다시 옛 직업으로 돌아 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께서 찾아와 주셔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서로 믿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일이요, 또 하나 가장 불행한 일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불행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괴로운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책인 동시에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믿음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을 가리켜 믿음의 사도요 사랑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를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잃어버린 신앙과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시간에도 예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사랑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소망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지금도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가 신앙의 침체를 만날 때에도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중보하고 계시는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성령께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심을 믿고 다시 침체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회복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엘리야가 영적인 면에서 위대한 일들을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엘리야는 영적인 면에서 탈진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입력하는 것보다 출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다보면 몇 년에 한번 씩 밧데리를 교환해야 합니다. 밧데리 안에 있는 전기가 다 방전이 되면 시동을 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운전자들은 흔히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점프 선을 이용해서 다른 자동차의 밧데리와 자신의 자동차 밧데리를 연결하여 충전 시키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점프 선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는 일은 등한히 하면서 열심히 영적인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인 고갈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고갈 될 때 침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졌던 엘리야가 천사의 어루만짐과 천사를 통해 예비한 물과 떡을 먹고서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침체에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8절에 보면 엘리야는 힘을 내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갑니다. 여기 호렙산은 모세가 양을 치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요, 부르심을 받은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산, 하나님의 산(8절)의 다른 이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영적인 유익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유익이 되고 정신적으로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라고 하셨다. 엘리야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람, 지진, 불이 엄청난 위력으로 차례로 지나갔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드럽고 조용하게 세미한 소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때로 잘 못 갈 때도 잠잠히 지켜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여전히 조용하게 머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고,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마친 후 영광스럽게도 불 병거를 타고 승천하는 영광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역시 다시 찾아와 만나 주신 예수님 때문에 지금 새 사람으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베드로는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믿음과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 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믿어 주고 당부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주시마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처럼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과 믿고 따르던 무리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여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주와 복음을 전하다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죽임 당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죽기까지 충성했고, 승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받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신앙의 침체를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침체 중에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늘 감싸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회복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아멘.
<2019. 8. 28. 호현낙선.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