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인증샷 문화의 출발지
물론 도슨트 및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에 활성화만으로 미술에 관심 없던 대중이 미술관을 찾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국내외 미술관에는 도슨트 안내를 진행하며 살고 있는 나의 경험 안에서는 해외의 사례는 제외하고 국내 사례에만 집중해서 봤을 때, 미술관에 큰 관심이 없던 다수의 대중이 미술관 방문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미술관 내부에서의 인증샷 즉 기념사진 촬영이 허용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시기를 명시하긴 어렵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국내 미술관은 전시장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지했었다.
사진을 찍을 때 들리는 촬영음이나 인증샷을 위해 작품 옆에 머무르는 행위 등이 다른 관람객에게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데 큰 변곡점이 된 전시가 2013년 대림미술관에서 진행된 라이언 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대림미술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던 필립 할스만-점핑 위드 러브에서 도슨트로 근무 중이었는데, 양쪽 전시 모두 사진 전시였음에도 필립 할스만-점핑 위드 러브는 기존에 관례대로 체험존 외 전시장 내부 사진 촬영 불가능한 형태로 운영되었고, 라이언 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은 당시로선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장 내외부 전 구역 사진 촬영을 허용했었다.
물론 이미 관광지화된 해외 주요 미술관들은 과거부터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에 전시장 내부 사진 촬영을 최초로 허용한 사례가 대림미술관이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이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꼈던 회화나 현대미술 전시가 아닌, 동시대 사진작가의 청춘을 주제로 한 트렌디한 사진을 볼 수 있었던 이 전시는 이제 막 미술관 방문을 시작해 보는 20대, 30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여기에 전 구역 사진 촬영 허용은 한창 블로그와 sns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마케팅 측면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대림미술관은 뒤이어 진행된 사진전 린다 매카트니-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에서도 특유의 젊은 기획 감성과 전시장 내부 사진 촬영 가능이라는 운영 방침을 유지했고, 이는 많은 관람객이 스스로 추억을 남겨 온라인에 업로드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바이럴 마케팅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남았다.
이런 방식은 당시로서는 낯선 것이었지만, 대림미술관의 성공적인 기획과 운영에 의해 다수의 미술관이 내부 사진 촬영 및 인증샷을 허용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국내에서 대중적인 전시를 기획할 때 "인증샷 찍을 예쁜 공간이 없는 전시는 망한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전시 관람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만한 공간은 전시의 기본 값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증샷 문화는 나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가 가는 수준의 사진 촬영은 문제일 수 있겠으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미술관에 운영 방침에 맞춰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감상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간접적으로 전시 홍보에 영향을 미쳐 더 많은 이들이 방문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미술관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일에는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한다.
2021년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작품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훼손된 작품은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이 통일신라시대 최고 명필로 꼽히는 지서 김생의 글씨를 가로 39cm, 세로 19.8m 두루마리 화지에 모필한 작품으로 책정가 1억 원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당시 미술관에 아이 두 명과 함께 방문한 아버지는 먼저 전시실에 뛰어 들어가 작품 위에서 장난을 치며 작품을 훼손하고 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예쁘다며 기념 사진을 찍어준 후 자리를 떠나 논란이 되었다.
입장 시 작품은 눈으로만 감상해 달라는 안내가 공지되었고, 작품 주변에도 관람에 주의해 달라는 안내문구가 있었지만, 훼손 후 발생 후 cctv를 확인한 미술관 측이 가족을 찾아 항의하자 아버지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 것인지 몰랐다. 죄송하다."라는 인사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박대성 화백은 아이는 그럴 수 있다며 아이를 문제 삼지 말아 달라고 오히려 부탁했고, "이 또한 작품이 세월을 타고 흘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일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어떠한 보상이나 복원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 사례는 박대성 화백의 넓은 마음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지만,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해외 유명 유적지나 미술관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다 작품을 훼손하거나 주변에 피해를 입힌 사례는 왕왕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비단 특정 관람객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미술관 방문을 즐기는 관람객이 늘어가는 과정에서 전시 관람이 낯선 이들도 관람 예절과 운영 방침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고민을 하고 전달 장치를 준비해 나가야 할 미술관과 미술계의 과제이기도 하다.
미술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중에서
김찬용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