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이가 되면 편해진다
“ 나이 들어 죽는다는 것이 아주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미처 가보지 못하면서 여러 생각하게 되어요. 친척의 죽음에 조문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직장 동료 결혼식과 친구의 생일에는 신경을 쓰잖아요.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
「나로 늙어 간다는 것」으로 번역된 독일의 작가 엘케 하이덴히는 1970년부터 방송작가와 진행자로 살았고 드라마 각본, 시나리오를 쓰며 지금도 80세를 넘긴 나이에 독일 퀼른에 거주하며 지금도 출판 평론가 활동을 한다. 이분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이 들어간다는 주제로 내가 집단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생각하면서 25년 한 해 동안 자주 이것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물론 나이 나이가 상징하는 나이 들어감에 대한 의미도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죽음이라는 주제는 산다는 말과 같이 항상 곁에서 사유하게 하는 주제다.
최근 고모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말을 전달받고 면회 가려 했지만, 중환자 실이라서 볼 수 없으니 먼 거리 가지 말라는 말에 순응하며 지내다 보니 결국 임종 소식을 듣게 되어 버렸다. 미루지 못하는 선 예약이 있어 장례식도 가지 못한 체 이런저런 추억이 떠오른다. 중학 시절 조금 더 큰 도시고등학교를 가려면 입시 시험을 보는 시절이어서 차로 이동해야 했다. 차멀미가 너무 심하게 미리 도시로 나와 고모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시험 날 아침은 내 키만큼 눈이 왔고 나는 눈을 치우며 시험장을 간 일이 생생하다. 이후 나는 몇 번의 만남 이후 서로 삶을 찾아 다른 방향으로 살다 보니 잘 만나지 못한 채 살았다. 이런 나의 기억엔 고모는 똘망한 눈과 작은 키에 키다리 아저씨 같은 고모부를 만나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나에게도 강요하여 중학교 때 잠시 교회를 나갔다. 이런 나의 기억에 살아있는 고모는 당시엔 서로 가난하여 공부 잘하는 딸과 아들만 공부시켰던 할머니 세대에 늘 공부를 안 시켜준 할머니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투정하던 고모 모습이 내 어릴 적 기억이다. 나의 기억 속 고모는 아직도 젊다.
우린 모두 나이 든다.
같은 시간인 듯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나이 든다. 「나로 늙어 간다는 것」의 작가도 젊은 시절 푸릇한 성격으로 인해 실수와 절망으로 인생의 내리막을 진솔하게 적으며 파란만장한 자신 삶에 대해 기억하며 이러한 날이 선 자신의 성격이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으로 인해 순화되고, 나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자신 모습을 아주 편하게 글로 적었다. 글 속에서 느껴오는 진정한 수용, 공감이라는 글로 우리는 원하는 것이 강할수록 현재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그린다.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나보다 못난 사람들이 더 잘나가는 꼴을 보면 화를 내고 충돌하며 갈등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지나친 자기 확신과 자기 긍정 에너지가 자기 내면 진정성과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스스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불평, 불만으로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아무런 갈등이 없는 조용한 침묵은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존재라는 인식이 들며 더 강하게 충돌하게 된다. 충돌 안의 내면은 인정욕구로 누군가로부터 받으려는 인정에서 출발한다. 만약 인정이 자신 내면에서 충분히 이루어진 진정한 자기수용이었다면 아마 타인의 인정에 그렇게 화를 내거나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에너지가 밖에서 쓰다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타인에게 넘겨 주었던 많은 결정과 관심, 그리고 관계 속 애착들도 나이가 들면서는 자신과의 대화로 돌아옴으로 자신에 대한 반문이 늘어난다. 과연 ‘나답게’ 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다. 가장 쉬운 듯하면서도 나답다는 것은 늘 흔들리는 존재이며 좌충우돌하면서 지내온 시절들이 더 많게 느껴진다. 사는 동안 ‘내가 누구인가’를 세심히 들여다볼 시간이 많지 않았음을 인식하는 시간이다. 나답게 나이 들어감을 주제로 나는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구나 진심으로 수고한 나를 수용하게 되는 시간을 조용히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