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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야 한다는 것[요3:1~15]19.11.24 주일 2부-4부설교
어느 날 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하는 중에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됩니까?”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당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앉아 있으면 아무리 들어도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육이 앉아서 영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 주셔서 육이 변하여 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식을 집행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셔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거듭날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요 3:6)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육의 세계하고 영의 세계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육의 사람은 알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태어나야만 영의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1. 죄로 인한 아담의 타락
그런데 여러분, 인간이 원래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기록됩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굉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기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 가지고 직접 코에 ‘후~’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손에 의해서 지음을 받은 것이 여러분과 나, 사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마귀의 꾐에 빠져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자 그 영이 죽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영이 죽었기 때문에 아무도 애를 써도 영적 세계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에덴에서 쫓겨나서 저주와 엉겅퀴가 가득한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피땀을 흘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7~19)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죄와 허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질병과 삶의 저주, 그리고 죽음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면 모든 일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니 부부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부모 자식 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형제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업장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가시와 엉겅퀴는 되살아나는 저주의 땅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절망인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인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고 인류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간은 아담 이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인간의 지위와 권세를 유지하려고 제2의 선악과, 즉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받들어야 될 것인데 “야, 우리 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물로써 죽게 못하게 만들자. 우리 도시를 건설하되 큰 탑을 세워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리 비를 내려도 우리는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동등하자.” 그런 생각으로 아주 무시무시한 반역을 또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문화를 혼돈하게 하심으로 위에서 “돌멩이를 올려라.”하는데 흙더미를 올리고 “흙을 올려라.”하는데 돌을 올리고, 서로 말이 안 통하니까 건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시도는 지리멸렬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자기가 힘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겠다고 여러 가지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도 없고 죽음 이후의 세계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자.” 이런 어리석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막에서 사냥꾼에서 쫓긴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쳐박아 버리고 눈에 안 보이니까 사냥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이후의 심판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회복된 인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죄 용서를 받고 죄 때문에 강등된 인간의 지위와 권세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으로 난 사람은 아무리 잘 먹여도 육이고 아무리 잘 입혀도 육이고 아무리 교육을 잘 시켜도 육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언제나 육에 속할 뿐입니다.
[예화]
저는 어릴 때 참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외갓집에서 계란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오리 알을 안겨서 오리 새끼를 깠습니다. 오리 새끼가 처음에는 어미닭을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물가에 가자 오리 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기나 한 듯 일제히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새끼인 줄 알고 있는 어미 닭은 제 새끼가 물에 빠진 줄 알고 “꼬꼬댁! 꼬꼬댁!”하면서 안달을 하는데 오리새끼들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오리가 물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오리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허탄한 것을 좇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는 것은 그들이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물에 뛰어 들어가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낼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이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요한복음3장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광야에서 독사의 독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의 놋뱀을 바라보고 믿으면 살아났습니다. 이와같이 “나도 너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높이 들려서 속죄제물이 될 터이니 나를 보고 믿는 자마다 거듭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옛사람이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이 살아나려면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1)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 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가리켜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그러므로 첫 번째 보혜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처음 보혜사 아니냐? 내가 너희를 3년 동안 인도하고 가르치고 보호하고 돌보고 도움이 되지 않았느냐? 처음 보혜사인 나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해서 승천할 것이지만 내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는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로 오셔서 죄악과 질병, 저주와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그 다음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로 오셔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게 도와주시고 인도하는 역할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르다’라는 말에는 헬라어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은 ‘헤테로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하실 때에는 ‘알로스’라는 말을 쓰십니다.
‘알로스’는 똑같은 것인데 ‘또 다른 하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예수님을 나타내십니다.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죄악 가운데 살면서도 자기가 죄인이라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는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기의 죄가 안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캄캄한 방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쥐가 와서 쥐똥을 싸고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있어도 어두우면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커튼을 열고 밝은 빛이 들어오면 얼마나 더러운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밝은 빛이 마음속에 비쳐서 자기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인인 것을 알게 되면 그때는 거꾸러져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령이 죄에 대하여 우리를 꾸짖어 주셔야 우리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화]
이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만 믿으라고 그러는데 이 세상에는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고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설교하지 말고 모든 종교는 다 똑같이 좋은 것이니 모두 다 화목해서 손잡고 잘 지내라고 설교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대답했습니다.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으니 천한 인간의 구원의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개인 전도를 했지만 어떤 때는 너무 답답해서 가슴을 치게 됩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주먹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도를 알고 믿게 된 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순식간에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그 사람이 성령 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하셨습니다.
성령 없이는 모두 다 고아와 같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 보혜사이신 예수님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두 번째 오신 보혜사 성령 없이는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능력으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마치 대기가 지구를 덮음과 같이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공기가 있어서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것처럼 성령님은 눈에 안 보이지마는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공기가 그 아이의 폐 속에 가득 차고 공기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아기를 둘러쌉니다. 그리고 아기가 어른이 되고 이 지구를 떠날 때까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때, 바람 같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영은 헬라어로 바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바람이 지구를 안고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 중생한 성도들을 끌어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으로 공기가 움직임 같이 성령께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얼싸안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3)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부름을 받아 돕기 위하여 곁에 와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곁에 성령께서 돕기 위하여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연약해서 기도도 잘 못하고 믿음도 약하고 순종도 잘 못하고 전도도 잘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어떠한 면에서 우리를 도와주실까요?
⓵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회개가 안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죄를 짓고도 회개 안 합니다. 남편 미워한 것, 아내 속인 것, 그렇지 않으면 서로 비난한 것,
이와 같이 조그마한 죄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이렇게 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큰 방죽이 바늘 구명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작은 여우가 와서 포도원 뿌리를 다 싹둑 싹둑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적은 미움과 작은 불평, 직은 거짓말,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우리 마음을 비추면 이러한 것을 다 뿌리 뽑고 회개하고 자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와 진리의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⓶또, 성령님은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힘으로 기도하라면 5분 내지 10분하고 기도하면 그로서 그칩니다. 적어도 30분, 1시간 이상 기도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말합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목회하며 교회를 세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합니다. “나의 목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도들을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와서 사분오열 시켜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게 가장 큰 책임은 기도하는 책임이요, 가장 힘든 것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저는 기도할 때마다 “보혜사 성령이여, 나를 도우소서. 내 마음에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내 육체에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인내력을 주시옵소서. 성령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양 무리를 지키고 돌볼 수 없사오니 성령이여, 도와주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저녁 늦게도 기도할 수 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도 기도할 수 있고 밤이나 낮이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도와주셔서 그러한 것입니다.
⓷그다음, 성령은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 고치는 일을 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성령이 함께하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든 자를 고치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지금도 예수님 이름으로 병 고치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고 해서 이제는 병 고치는 역사가 그쳤다고 생각하면 중대한 잘못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꼭 같으신 분, 또 다른 보혜사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그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병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일평생의 원수로 삼아 대적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1/3을 병자를 고치는 데 소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안식일에도 병을 고치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험을 수차례 겪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병을 미워하셨기 때문에 열두 제자와 칠십 인의 제자들을 복음 전도하러 보낼 때도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또, 성령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깨닫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의의 길, 승리의 길, 축복의 길, 영광의 길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⓸그 다음, 성령님은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각종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전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의 지혜가 되시고 나의 총명이 되시고 모략이 되시고 재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머릿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도저히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지혜와 지식을 받기 때문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⓹성령님은 또한 늘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지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위로와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그래서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께서 미움을 사랑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 와 계시는데 성령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보자’고 고집하다가 납작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셔도 우리가 성령님을 무시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께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없이 복음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기도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그릇입니다. 그릇대로 충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기도와 말씀으로 그릇을 준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같이 찬양 – 성령 하나님 나를 만지소서!(미가엘205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