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심의 피서지(避暑地)
- 완산팔경의 바람 골 쉼터를 찾아서-
행촌수필,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중복을 넘기면서 짧은 장마가 자취를 감추고,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여 일간 말복 무렵까지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계속되고 있다. 연일 기온이 섭씨 33도~36도를 오르내리며, 열대야가 계속되고, 전국적으로 10여명의 노인이 일사병과 열사병 등으로 사망했다는 보도다.
곡식이 익으려면 삼복더위를 참고 견뎌야 한다. 하지만 금년의 폭염과 가뭄은 견디기 어려운 찜통 폭서(暴暑)의 연속이다. 나는 형님을 모시고 전주시내 도심 속의 피서지를 찾아서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제일 먼저 찾은 쉼터는 남천교의 청연루(靑煙樓)다. 남천교는 내가 사범학교 다닐 때 3년간 발이 닳도록 건너다닌 다리요, 젊은 날 전주남초등학교 재직시절에 수년간 밟고 다녀 추억이 어린 다리다. 승암산 골짜기의 골바람이 한벽당을 돌아서 불어와 예로부터 서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빨래터로 애환이 서린 곳이다. 옛날의 남천교는 무지개형상으로 오홍교(五紅橋), 다리위에 다섯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오룡교(五龍橋)라는 별칭이 붙었었다. 그러나 전주 인구가 60여만 명으로 불어나고 교통량이 많아지니 그 옛날 다리는 사라지고, 2009년에 폭이 50m나 되는 널찍한 8차선 인도교로 새로 태어났다.
다리위에 동편으로 널따란 마루를 놓은 정자를 신축하고 “청련루”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청연루(靑煙樓)라는 명칭은 아마 완산팔경의 하나인 한벽청연(寒碧靑煙)에서 유래한 듯싶다. 예로부터 완산팔경의 첫째인 기린봉이 달을 토해낸다는 기린토월(麒麟吐月)과 함께 한벽청연은 교동 한벽천 옥류동, 한벽당 아래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청아한 풍경을 노래한데서 유래한다. 내 생각으로는 청연루보다 청수정(淸水亭)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새로 다리를 건설하는 장면을 보고 지날 때면, 너무나 거대한 다리로 예산낭비가 아닌가 하는 비판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한옥마을에 5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이면서 이 청연루는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쉬어가면서 감탄하는 명소요, 시원한 쉼터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요즈음엔 밤에 서민들이 나와서 더위를 식히며 잠을 자기도 한다. 다리의 남쪽 코너에는 옛날 6·25전쟁 뒤 한벽당 아래에 버려졌던 비석을 전주교대 최근무 교수가 실어다 전주교대에 두었다가 최근에 남천교 남쪽 코너에 복원해서 남천교 수백 년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남천교는 1791년 정조 때에 황방산의 돌을 날라, 다섯 간의 돌다리 홍예교를 놓은 것이 시초라 한다. 그 뒤에 일제 말엽에 콘크리트 다리로, 2009년 현재의 다리로 변모되었다. 남천교의 청연루 정자는 전주 도심 속의 자연냉방 누각이요, 남부시장 인근의 주민과 한옥마을 관광객들의 쉼터로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나는 형님을 모시고 몇 년 전부터 이곳 청연루에서 피서를 한다. 특히 금년 같은 혹서에 이만한 시원한 곳이 시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바로 인근에 강암서예관도 있고, 진미집이라는 소바 실비식당이 있어서 오가는 길손들의 여름철 입맛을 돋우어 준다.
다음으로 찾는 피서지는 완산초등학교 앞 전나무 숲, 완산공원 약수터 모정이다. 이곳은 곤지산에서 망월을 감상한다는 유래의 곤지망월(坤止망월)과 전주천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모습을 일컫는 남천표모(南川漂母)와 함께 전주10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완산공원 입구에는 곤지중학교가 완산초등하교와 나란히 한 교정에서 옛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는 봄이면 이 공원 투구봉 아래 벚꽃과 철쭉꽃 축제로 방문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름이면 이 공원 약수터 전나무 숲속의 2층 정자는 피서지로 명성을 날린다. 해마다 여름이면 나는 형님을 모시고 이곳 모정에서 무더위를 식히고 정담을 나누며 맥주를 마시면서 피서를 즐긴다.
세 번째로 찾는 곳은 덕진 연못의 취향정(醉香亭)이다. 덕진 나루터의 연꽃을 채집한다는 뜻의 덕진채연(德津採蓮)으로 완산팔경의 하나이다. 3만 평의 연못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놓인 현수교로 연꽃을 감상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이어 걷고 있으며, 서편에는 음악분수가 춤을 추고 오리보트가 둥둥 떠다니며 놀이를 즐긴다. 동편의 연못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연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전주시민의 쉼터인 덕진공원 안의 취향정(醉香亭)은 일제 때 금암동의 한 지주가 논 2천여 평을 팔아 이곳에 정자를 짓고 시조를 읊으면서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현재는 개방하여 시민 누구나 휴식을 취하며 피서를 한다. 나는 형님을 모시고 금년 여름에도 이곳에서 7월 중순부터 연꽃을 감상하고 취향정에서 더위를 식히니 신선이 된 느낌이 들었다.
인근에 도립국악원이 있어서 주차하기도 좋고, 인근 노인들이 취향정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바둑과 장기도 두는 등 피서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취향정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노인들의 피서지로 최상이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형님 내외분을 모시고 대명리조트, 보령해변 JI호텔, 무주리조트 등지로 피서를 다니기도 했지만 금년 4월초에 형수님이 별세 하시니, 87세 독거노인이 되신 형님이 외지로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이사 전주시내에서 피서지를 찾는 기회가 많아졌다. 형수님이 좀 더 생존하셔서 함께 쉼터를 찾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밖에도 전주 근교에는 더위를 식힐만한 쉼터가 많다. 중인리 계곡의 폭포는 학전마을에서 달성사 방면 모악산으로 깊숙이 올라가면 전주의 숨은 비경인 중인리 계곡이 펼쳐진다. 아중역에서 은석골까지 마실길 계곡도 쉼터로 좋다. 이 뜨거운 날씨에 피서지마다 차량이 막히고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데, 구태여 멀리 피서를 떠나는 것보다 전주 도심이나 근교의 쉼터에서 피서를 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201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