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란덴선을 타고
교토 서쪽 아라시야마 지역으로 가서
버스 1일 패스를 이용,
교토 서북쪽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란덴선은 교토에 남아있는 마지막 지상철로
환승역이 하나 있는 두개의 노선으로 되어 있다.
220엔 티컷은 역에서 구입하여 내릴때 낸다.
(빨간 노선은 두칸, 파란 노선은 한칸 열차)
교토 시영버스는
교토시내버스(교토시 중심위주로운행)
교토버스(교토시 외각 위주로 운행)
라쿠버스(관광지 위주의 급행버스) 3종류인데
교토시내버스와 라쿠버스만 1일 패스(600엔)로 이용할 수 있는다.
교토시내버스는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계산하고) 내리고
라쿠버스는 앞문으로 타서(계산하고) 뒷문으로 내린다.
(1일 패스는 운전사에게 구매했다.)
[파일:235]
어제 밤 봐두었던 500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려했으나..상황이 여의치 않아 변경,
가까운 편의점서 사온 도시락을 먹고
시조 오미야 역으로 간다.
(시조 오미야 역..지상 1층에 있다.)
30분 정도 가면 아라시야마 종점이다.
아라시야마는 신라계 도래인인 하타(秦)씨의 본거지였고
(하타씨들은 치수와 양잠에 능하였다 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귀족 별장지로 개발된 지역이다.
(이 지역 비단이 유명하다고..)
(아라시야마 역)
(도월교)
(우측 멀리)
(신라 도래인들이 만들었다는 대언천 제방이 보인다.)
(가끔 끌어보고 싶은 인력거)
(대본산 천룡사)
천룡사는 교토 5대 본산 중 하나로
덴노신정(新政)을 꿈꿨으나 실패하였던 풍운아,
고다이고 덴노의 명복을 빌기위해 세운 절이다.
가마쿠라 막부시대를 시작했던
쇼군의 가문, 겐지(源氏)가의 적통이 끊어진 후
외척인 호조(北條)가문이 막부의 실세였는데
겐지 가문 일원이였던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고다이고 덴노가 힘을 합쳐 호조가문을 물리쳤으나...
동상이몽이였던 둘은 이내 갈라져
일본 최초로 남북조 시대를 열고 60년간 대립하다가
(1336~1392년, 두명의 덴노와 정부)
무로마치 막부가 있던 북조의 승리로 끝났는데
고다이고 덴노의 사망후 그의 명복을 빌기위해
정적이였던 다카우지가 천룡사를 세웠다 한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원한을 두려워하는 일본 풍습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한다.
지금 란덴선의 환승역이 있는
가타비라노쓰지역까지도 천룡사 경내였다고 하는데
오닌의 난, 막부 말기에 일어난 교토 대화재(금문의 변) 등
거듭된 화재로 크게 소실되고 거의 모든 건물을 잃어버려
20세기에 재건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수 많은 화재에도 방장 정원은 원형을 유지하였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방생지에는 연꽃이..)
(절내로 들에가는 길에는 주차장과 탑두사원이 있다.)
(탑두 사원중 하나)
탑두사원이란 대사찰을 둘러쌓고 있는 작은 사찰로
우리의 사내 암자(庵子)와 비슷하기는 하나,
은퇴한 주지나 고승이 죽은 후 그 승탑(僧塔)을 짓고
제자들이 수행하던 곳이 사찰로 성장한 것이다.
(법당)
(비운관음상)
관람 코스는 2가지이다.
정원만 보거나
정원 + 고리로 들어가 방장을 지나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보전(고다이고 덴노의 목상이 있다.)을 보는 것인데
건물은 근대의 것이니 정원만 감상하기로 한다.
(고리)
(방장 앞 정원으로 입장..)
일본 사찰의 정원은 고산수식과 지천회유식이 있는데
고산수(마른 산수)식 정원은 어제 건인사에서 보았듯
모래와 돌로 물과 나무, 섬등을 표현하여 참선수행하는 것이고
지천회유식 정원은 연못을 중심으로
실제경치를 축소해놓은 축경(縮景)을 조성하여
정해진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것인데,
이곳 천룡사의 방장 정원은 그 둘의 중간 형태로서
중세 일본 정원의 대표작이라 한다.
(연못의 이름은 조원지이다.)
(봉래산)
(삼존석이 저긴가?)
지천회유식 정원의 연못은 한눈에 전체 모습이 보이지않고
같은 경치를 두 곳에서 볼수 없다고 한다나..
(조원지)
(섬의 돌다리, 일본 정원 돌다리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방장에서 다보전으로 이어지는 회랑)
(재물신 변제천상?)
(동전이 수북하다.)
(다보전과)
(유명하다는 산벚나무)
(벼루비석)
후문으로 나가니
아라시야마 죽림(지쿠린)이 나오는데 인산 인해..
일본서 사용하는 대나무의 90 %가 여기서 나온다고.
(지쿠린-대나무숲)
인파를 피해 노노미야 신사로 간다.
노노미야신사는 이세신궁의 신녀로 가는 공주들이 몸을 재계하던 곳으로
1001년도 쓰여진 세계 최고(最古)의 대하소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주인공 겐지가 이세신궁으로 가는 연인과 헤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사랑의 신사로 유명하다.
(이세신궁은 덴노 가문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사이다.)
(일본 유일의 검은 도리이)
(거북이 닮은 신석)
도로로 나와 대각사행 버스를 탄다.
우리와는 좌우 통행이 반대이니 주의!!
(대각사)
대각사는
(794년 교토로 천도하여)헤이안시대를 열은 간무덴노의 아들인
사가덴노의 이궁이였는데 그의 사후에 사찰로 바꾼 것이다.
당시의 유명한 공해스님이 오대명왕을 여기에 안치한 이후
대각사가 되어 덴노가문 출신이 주지를 맏는 문적사원이 됐다.
(대각사=>사가 어소라고도 한다.)
대각사는 외진 곳이라
웨딩 촬영중인 커플외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신혼부부 이뻐보여 도찰..ㅎㅎ)
문안으로 들어가면..
(누운 소나무와)
(꽃꽃이가 보인다.)
사가덴노는 꽃꽂이로도 유명한데
지금까지 내려오는 화도(華道) 중 사가어류의 시조이기도 하다고.
(현관의 휘장에는 덴노가의 문장인 이중국화가 보인다.)
(고우다 덴노가 사용하던 가마)
(금벽화)
500엔 입장료를내고 들어가면 신전 앞 백사 마당이 나온다.
정원에 매화와 귤나무가 심어져있는데 궁궐의 전통이라고 한다.
(원래 문관, 무관의 상징은 벚나무와 귤나무이지만 밪꼿 대신 매화를 심음.)
신전(宸殿)은 일상적인 거주 공간으로 궁궐에 해당한다.
(귤나무와 멀리 좌측 매화나무, 칙사문은 공사중임)
(신전의 유명한 모란 장벽화)
장벽화로 유명한 가노파는
가노 후대에 교 가노파(교토)와 에도 가노파로 나뉘는데
혈연보다는 실력 위주로 대를 이어갔던
교 가노파의 가노 신라쿠의 작품이라 한다.
(학 장벽화)
(정침전과 신전 사이의 정원)
(홍매)
신전을 돌아보며 장벽화를 감상하는데
또다른 유명한 노송도와 버드나무 그림은
수리중인지 안보인다.
(정침전을 배경으로..)
(멋진 소나무)
이제 어영당으로 간다.
어영당은 종단의 개조를 모시는 곳이라 한다.
(어영당)
좌측부터 사가 덴노,고우다 덴노
그리고 홍법대사(공해스님),항적입도친왕의 상이 라는데,
멀어서 구분이 어렵다..
(어영당서 본 백사마당의 무학대)
무학대는 춤이나 악기공연을 하는 곳이라고.
(팔각경장)
경장은 경전(불경)을 보관하는 곳이다.
오색실이 밖으로 나와 있는데
경장안에 봉안된 약사여래상과 이어져 있다 한다.
(줄을 만지면 약사여래를 만지는 것과 같은 효과..)
(어령전)
(고미즈노오 덴노;자의사건으로 물러난 에도시대의 덴노로 여기 머무른 적이 있었다 한다.)
본당인 오대당은 신전의 동쪽 맞은편, 어영당 옆에 있다.
(오대명왕)
명왕은 우리에겐 낯선 이름인데
명왕의 명(明;범어로 비드야)은 지식, 학문을 의미하는 명사로써
명왕은 부처의 지혜 자체를 형상화한 부처의 화신이며 독립된 신으로
중앙과 동서남북의 네방위를 각각 담당하는 명왕이 오대명왕이다.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이나 이교의 신을 개종시키는 역할이라
모두 분노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멀어서 잘 안보이고
원본은 봄,가을에만 공개하는 보물관에 있다 한다.
오대당 동쪽에는 대택지가 있다.
사가 덴노가 중국의 동정호를 모방하여 만든 인공 연못인데
명승으로 지정된 것중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라고.
(대택지의 관월대)
되돌아 나와 정침전 쪽으로 간다.
대각사에는 회랑이 유명한데
자객의 침입을 막기위해 회랑을 걸어가면
꾀꼬리 소리가 나게 만들었고
무기 사용을 어렵게 하기위해
바닥의 높이가 다르게 만들었다 한다.
(대각사의 무라사메 낭하)
회랑의 기둥들이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하다 하여
무라사메(村雨) 낭하(복도)라 하는데
난간 청소중인 노인네가 오래 앉아 있어 옥의 티..
(정침전)
정침전은 고우다 덴노가 원정(院政)을 하던 곳이다.
원정이란 덴노 은퇴후 상황(上皇,조우고)이 되어
원에서 실제적인 섭정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가마쿠라 막부시대의 말기,
고우다 덴노의 할아버지인 고사가 덴노가 출가한 뒤
법왕이 되어 대각사에 4년간 거주하였는데
장남이 아닌 차남의 아들(고우다 덴노)을 덴노로 지명하고
원정의 중심인 상황을 정하지 않고 사망하여(1272년),
고우다 덴노 이후에는 막부의 중재 아래
지명원통(장남 고후카쿠사의 혈통-북조)과
대각사통(차남 가메야마의 혈통-남조)에서
번갈아 가며 덴노에 즉위하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고
나중의 남북조 혼란기(1336~1392년)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지명원은 장남 고후카쿠사 조우고가 유배 되었던 곳.)
비로 여기 정침전에서
남조가 덴노의 3종 신기를 북조에게 넘겨주고
60년간의 남북조 시대가 끝났으니
대각사는 남북조 시대의 빌미와 마침을 제공한 절이 되었다.
(정침전의 수묵 장벽화와 칸막이 아래 동물 그림)
(정침전서 본 낭하)
유홍준 저 교토 문화 답사기에서는
정침전 쪽에서 보는 낭하가 제일 멋지다 하였는데
어영당쪽서 본 낭하가 더 인상적이였다.
이제 영명전으로 간다.
영명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신전으로
태평양 전쟁 후 옮겨 온 것이라고.
(영명전)
영명전을 다녀와 절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정침원쪽으로 가서 낭하를 바라보는데
웨딩 촬영중이라 숨어서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어영전쪽에서 본 낭하만 못했다.
대각사를 나와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하나노조역 근처에서 내려 인화사 근처로 걸어간다.
(약 1.2km 도보이동)
(란덴선을 건너간다.)
유명하다는 아게타테이 덥밥집으로 갔으나 저녁에만 영업을 하여
그 옆 kabe 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아내와 딸은 대만족!!
점심을 먹은 후 두사람의 표정을 보니
용안사와 인화사 두 사찰을 다 보기는 어려울 듯하여
가까운 인화사를 들려 보고 금각사를 구경하기로 한다.
(그런데 인화사의 인왕문은 공사중이다.)
지은원, 남선사와 함께 교토 3대 삼문에 들어가는
인왕문에는 두명의 금강역사가 문을 지키고 있다.
(우리와는 달리 단청이 없다.)
('아' 형 인왕)
('옴'형 인왕)
(인왕문 안으로 들어가면)
(멀리 중문과 넓은 경내가 눈에 들어온다.)
(돌아다본 인왕문)
닌나지(仁和寺, 인화사)는
헤이안시대 초기 고코덴노가 건립을 시작했으며
그의 사후 우다덴노가 낙성하였는데
덴노 가족이 주지로 부임해오는 일본 최초의 문적 사원이다.
이지역 이름이 오무로인데 오무로란 어소란 뜻으로
덴노 가족이 방문했을 때의 숙소인 어소가 이절에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 한다.
오닌의 난때 서군의 본거지여서 다 소실 되었던 것을
에도막부시대에 복원하였다고..
인왕문 옆의 매표소에서는
어소쪽, 관음당쪽, 금당쪽 세가지 입장권을 팔고 있었는데
어소 입장권을 산 다음
경내를 잠시 들려본 다음 어소로 들어간다.
(어소쪽 칙사문)
(중문)
(중문의 사천왕들)
(납경소와 오층탑)
(오층탑-교토에선 동사 오층탑 다음으로 높다 한다.)
오층탑 서쪽에는 벚꽃정원이 있는데
오무로사꾸란 안내판이 보인다.
(금당)
(금당에서 본 중문)
삼문근처로 되돌아 나가 어소로 들어간다.
어소에는 백서원, 흑서원,신전,영면정이 있는데
신전은 보수 공사중이다.
(누운 소나무가 있고)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작품 전시중인 백서원)
(백서원의 만다라)
(흑서원에서도 작품 전시 중이다.)
(흑서원의 수묵화)
(흑서원)
보수공사중인 신전으로 간다,
(신전의 문)
(남쪽,신전 앞 백사 마당,칙사문과 삼문이 보인다.)
(공사중이라 어두운 신전)
북쪽,신뒤로 돌아가니 지천회유식 어전 정원이 나온다.
(연못과 다실과 오층탑)
(또다른 다실인 요곽정은 비공개)
회랑을 따라 어소안의 기도처인 영명전을 간다.
(15cm 의 비불인 약사 여래상)
(영명전)
다시 버스를 타고 금각사로 간다.
금각사는 정식명칭이 녹원사로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쇼군에서 은퇴해 출가한 후 머물던 별장을
그의 사후 사리전으로 개조한 것이 금각이다.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가마쿠라막부을 끝낸 아사카가 다카우지의 손자로서
정치적으로는 60년간의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쇼군이면서 조정의 대정대신까지 겸직하여
무사와 귀족을 아우르는 강력한 권력을 잡았고,
( 명과 교류, 일본국왕 호칭을 얻음)
종교적으로는 교토 5산10찰 제도를 확립하고 승적제를 만들었고
문화적으로는 렌가(일본 시),노가쿠(가면 악극),작정(정원 조성)등에 능하여
귀족과 무사, 선종의 문화를 혼합한 북산문화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금각으로
1층은 귀족의 공가(침전조; 요시미쓰의 초상조각과 보관석가여래상이 있다.)
2층은 무사의 무가(서원조;조음동이라는 이름으로 관음과 사천왕이 있다.)
3층은 절의 선종 양식(사리함이 있고 구결정이라고 부름.)으로 되어 있다 하는데
내부가 공개되지 않아 궁금할 뿐이다.
지금의 금각은 1950년 방화사건으로 인해 소실된 것을
메이지시대의 '해체수리 보고서'에 따라 1955년 복원한 것이다.
(21세의 조현병 앓는 스님이 방화)
(마주소)
관람 동선은 경호지와 금각을 보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석가정(다실)을 보고
부동명왕정과 후문으로 이어진다.
(배모양의 석조)
(금각)
(경호지 내 왼쪽 소나무 섬은 봉래섬)
(봉황-금각, 은각 그리고 평등원에만 지붕에 봉황이 있다.)
(섬을 감상하기 위한 작은 복도)
(어느 것이 학섬이고, 거북섬일꼬?)
(엄하수 우물)
(용문롱 폭포)
(물 맞이 돌을 잉어돌'鯉魚石'이라 한다.)
(지장보살 앞 동전 던지기)
언덕위에도 '안민택'이란 인공 연못이 있는데
올라오며 보았던 용문롱 폭포를 통해 경호지로 물이 흘러간다.
(안민택 연못 안 백사의 무덤탑)
언덕의 다실인 석가정에 왔다.
여기서 보는 저녁이 아름답다하여 생긴 이름.
(석가정)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사용했다는 손 씻는 수조)
석가정 앞에는 돌의자가 있다.
후문 옆에는 부동당이 있는데
금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가마쿠라 막부시절)로
공해스님이 만들었다는 부동명왕상이 있다 한다.
(부동당)
금각사를 나와 니시진거리로 간다.
역시나 버스를 이용하는데
금각사앞(kinkakujimae) 버스정거장이 두 군데여서
왔다 갔다 하느라 버스 두대를 보내고 승차,
대덕사앞 정거장에 하차.
아내와 막내는 카페 '사라사 니시진'으로 가고
혼자 대덕사를 가본다.
대덕사는 가마쿠라시대 말기,
대등국사가 지은 작은 암자로 시작했는데 점점 커져서
남북조시대에는 북조 하나노조 덴노와
남조 고다이고 덴노의 귀의를 동시에 받아
두 덴노의 원찰이 되기도 하였고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식을 치룬 절이고
에도시대 자의(紫衣)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
또한 조선 통신사가 묵었던 절로도 유명하다.
자의 사건;
본래 고귀한 자주색의 가사는
교토 5산(천룡사,상국사,동복사,건인사,만수사)의 승려 외에는 입을 수 없는데
황실에서는 교토 5산 외의 사찰에도 자주색 가사를 허용하면서
대신 사찰에서 공물을 헌납 받아 수입에 보탰는데,
(대각사 어령전에서 보았던)고미즈노오 덴노가 대덕사에 허용한 자의를
당시 장인이던 쇼군이 인정하지 않아 덴노를 양위하게 된 사건.
(분홍색이 탑두사원)
절이 컸던 만큼 거느렸던 탑두 사원도 많아서
총문을 들어가면 맨 탑두사원인데
대개는 출입금지이고
용인원,대서원,고동원,서봉원 네군데만 개방이되어
입장료를 내고 출입할 수 있다 한다.
대신 대덕사 경내는 그냥 들어갈수 있다.
(대덕사 삼문)
금모각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는 삼문 이층에는
일본의 다조(茶祖) 센노 리큐의 상이 있다.
모모야마 시대에 대덕사 삼문을 재건할 당시
많은 비용을 센노 리큐가 부담하였고 관례대로 대각사에서는
센노 리큐의 등신대 목상을 이 삼문 2층에 봉안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칙사가 드나드는 삼문의 위에
센노 리큐의 목상을 안치한 것은 건방지다고 트집을 잡아
센노 리큐의 목상을 교토 시내에 효수시켰고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의 화려한 금장 다실을 싫어했고
임진왜란 등을 반대하여 히데요시 미움을 받았다.)
결국 센노 리큐는 할복하였는데
그후 목상은 수습되어 다시 삼문 위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불전)
(불전 천장의 비천도와 본존불)
(불전과 법당으로 이어지는 회랑-시간이 늦어서인지 막아놨다)
(소나무로 들러 싸인 불전과 삼문)
일본 다도의 총본산으로 유명한 고봉암도 근처에 있으나
출입금지라고 하여 포기하고 니시진 거리로 간다.
(온천 표시가 있는 카페, 사라사 니시진)
'사라사'는 교토 시내에 6점포를 가진 카페 체인점인데,
각각의 가게에 따라 메뉴와 분위기가 다르다 한다.
니시진거리의 사라사 카페는 80년된 공중 목욕탕을 개조하였는데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데이트를 한다'에 나왔다 한다.
(니시진의 유명한 빵집,톰소여-빵이 맛났다.)
(후나오카 온천)
(내부는 촬영금지)
니시진 거리의 또 하나 명물,
동네 목욕탕인 후나오카 온천에서 잠시 피로를 풀고
니시키 시장으로 이동 간식을 한 다음,
(어제 점심을 먹은 스시 신)
시조대교를 건너가
하나미코지도리의 밤 모습을 구경하고
(교토 미나미자-가부좌 극장)
(교툐 전통 예능관-입장시간 끝남)
(하나미코지도리-花見小路-의 두 꽃)
가와라마치역 6번 출구 근처 미야코란 입석 우동식당에서
330엔 덴뿌라 우동을 먹고 숙소로. .
2019.07.19 금요일 ,저녁 비.
첫댓글 ㅎㅎㅎ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쪽바리로세
엽전들아 좀 보고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