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건물 옆에 텃밭 화분 가꾸기를 한지 벌써 4년차이다. 2020년도 첫해에는 오이, 방울 토마토, 참외, 가지 등의 모종을 심었고 열무, 조선 배추 등을 파종했다. 토양이 좋아 모든 채소들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다음해부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땡초와 열무만 심어 왔는데 생각보다 수확량이 적어 그만둘까 하다가 금년에 다시 시도를 했다.
실패한 2년을 복기해 보면 내 잘못이 너무 컸다. 첫해에 채소들이 너무 잘 자라 그 다음해부터도 땅을 고르고 모종이나 파종을 한 후 물만 잘 주면 되겠지 한 것이 오산이였다. 작년의 경우 땡초 6포기와 일반고추 2포기를 심었는데 수확량으로 따지면 총 30~40개나 될까 하는 정도였다.
원래 제대로된 토양에서 고추 1포기당 열리는 숫자는 최소 50개 이상 달리는 것이 정상이다. 처음에는 고추 종자가 잘못되었나? 하고 생각했지만 분갈이를 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되어 금년에는 화분 거름 1포와 낙엽 등을 섞어 텃밭 화분 7개를 만들었다.
그다음날 5일장이 열리는 인근 장터애 가서 땡초 9포기와 일반고추 3포기 및 상추 3포기의 모종을 샀다. 채소는 파종보다 모종이 훨씬 발육이 좋고 수확량이 많다. 나와 인연이 되어 하룻밤을 보내면서 물도 주고 1년간 많은 기쁨을 선사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더니 그 이튿날 싱싱한 자태를 뽐내면서 화답을 했다.
다음날 출근하자 마자 모종을 심으려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안 좋을 것 같아 오후 4시경에 이식작업을 했다. 이번에는 가물어도 수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흙 위에 검은색 비닐로 멀칭작업까지 겸했다. 모종을 심고 난 후에는 물만 듬뿍 주면 뿌리가 내려 잘 자란다. 물론 수시로 물도 주고 지지대도 세워주고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한다. 그것은 쥔장인 내 몫인기에 잘 자라주길 바란다.
내가 매년 텃밭 화분을 가꾸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땡초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찌게, 조림, 국 등 모든 요리에 땡초가 필수 재료이기에 울집 냉장고에는 1년 365일 땡초가 떨어지지 않는다. 요즘 마트나 할인매장에서 파는 땡초는 맵지도 않거니와 가격도 만만치 않다. 1봉지 3천원 하는데 길어야 10일이다.
때문에 직접 길러 수확하면 제철에 싱싱한 것을 먹을 수 있고 또한 수확량이 많으면 냉동실에 보관하여 1년 365일 땡초를 사 먹지 않아도 된다. 시중에서 파는 땡초는 농약을 얼마나 쳤는지 어떻게 길렀는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먹으면서도 찜찜하다. 과일이야 껍질을 깎아서 먹지만 고추는 그럴 수도 없다.
두번째는 정신 건강에 너무 좋다. 매일 출근할 때 직원을 보면 인사를 건네듯이 텃밭 화분을 가꾸면 출퇴근 시간에 매일 인사하고 대화를 한다. 출근하면서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퇴근 할 때는 물을 줘야 하는지 살핀다. 화초나 채소 등의 작물은 쥔장의 역할에 따라 정직하게 반응한다. 업을 하다가 보면 거래처나 직원들로부터 내 생각과 상반되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럴때면 채소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 쥔장님!! 오늘 받는 스트레스 저희들한테 확 풀어 버리세요!! 하고 달래준다. 왕년에는 그것을 술로 풀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이중으로 죽인 꼴이였다. 텃밭 화분은 매일 나를 설레게 한다. 얼마나 자랐을까? 언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까? 하는 기대감이 매일 새벽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한다.
성장은 나를 최고로 만든다. 특히 나처럼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성장할 수도 있지만 남을 성장시키거나 동식물을 키우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대리만족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세번째는 나처럼 매주 정해진 일자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감을 제공해 준다.
파워 블로거나 유명 유튜버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어떻게 저런 콘텐츠들을 수없이 뽑아 낼 수 있을까? 아마 그들도 나처럼 애송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매주 1회 이상 영양가 없는 글을 쓰고 있지만 어떨 때는 내가 왜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지 하고 포기해 버릴까? 하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숙제를 끝내고 나면 역시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뿌듯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배운다. 인간은 통상 80~100세까지 살지만 채소들은 1년도 살지 못한다. 1년을 살던 100년을 살던 사는 과정은 동일하다. 채소들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와 무엇을 남기고 가야할지를 일깨워 준다. 채소들도 인연에 따라 선택받은 생, 화려한 성장, 풍성한 결실, 조용한 죽음 등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유사하다.
남은 인생 얼마나 텃밭 화분을 가꿀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평소에 내가 원하던 전원생활 속의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함께 살다가 생을 마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