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복지기관에서 상담은 대면이 기본이었다. 문을 열고 찾아온 주민을 맞이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만남이었다. 그런데 요즘 주민들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안부를 묻는 일도,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일도 화면 너머에서 먼저 이루어진다. 우리가 충분히 준비하기도 전에 주민의 일상이 먼저 디지털로 건너간 셈이다.
그래서 스마트복지는 새 시스템을 도입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달라진 주민의 삶과 만남의 방식을 현장이 어떻게 다시 이해하고 채워 갈지 묻는 일이다. 신복지 5.0이 말하는 스마트복지도 기술이 복지의 본질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환경 속에서 주민과 더 깊고 정확하게 연결되기 위한 실천의 전환으로 읽어야 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위기가구 발굴, 안부 확인, 고독사 예방, 돌봄 지원, 민원 응대, 행정 자동화까지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늘고 있다. 서울시의 ‘외로움 없는 서울’이나 대전시의 AI 돌봄로봇이 대표적이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뿐 아니라 개별 복지기관에서도 작은 변화가 이어진다. 한 조사에서는 비영리 현장 활동가의 절반쯤이 이미 업무에 AI를 거의 매일 쓴다고 답했다. 이제 AI는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책상 위에 놓인 업무 도구가 되어 가고 있다.
다만 현장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상담과 사례관리 기록, 프로그램 운영 자료, 지역 자원 정보가 기관마다 따로 쌓인 채 연결되지 못한다. 데이터가 안전하게 정리되고 이어지지 않으면 AI도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스마트복지의 출발점은 거창한 기술도입보다, 날마다 현장에서 남기는 기록을 쓸 만한 데이터로 정리하고 흩어진 자료를 현장에 맞게 잇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구의 사용자를 넘어 설계자로
AI 시대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단순한 사용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누군가 만들어 준 도구를 받아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시중의 도구는 늘 어딘가 현장과 어긋났다. 상담 기록의 미묘한 맥락, 지역마다 다른 자원 환경, 어르신을 부르는 호칭 하나까지 현장을 모르면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을 아는 사람과 현장을 아는 사람이 떨어져 있으면 결과물은 현장의 요구에서 비껴가기 쉽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복지사의 새로운 역할이 열린다.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필요한 도구를 설계하며, 그 기술이 주민의 권리와 존엄을 해치지 않도록 판단하는 사람. 사회복지사는 기술의 소비자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기술을 만들어 가는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가. 다행히 이제는 코드를 깊이 몰라도 풀고 싶은 업무 문제를 말로 설명하며 프로그램의 초안을 만들 수 있다. 이른바 ‘바이브코딩(Vibe Coding)’이 그 변화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만든 도구들도 대단한 솔루션이 아니라 ‘우리기관의 불편’에서 출발했다. 예전 같으면 외부 업체에 맡겨 몇 달을 기다릴 일을 담당자가 며칠 만에 직접 손볼 수 있다. 무엇이 불편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것을 고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AI 시대 사회복지사에게 열리는 변화다.또한, 이렇게 현장이 직접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 달라지는 건 업무 시간만이 아니다. 그동안 사회복지실천에서 기관의 자산은 경험 많은 이들의 몸에 밴 암묵지로 남아, 그 사람이 떠나면 함께 사라지곤 했다.
말로 다 옮기기 어렵던 그 노하우가 도구에 담기면 동료와 후배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팀마다 칸칸이 따로 쌓여 막혀 있던 기록의 사일로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흩
어져 있던 자료가 모이면 혼자서는 놓치기 쉬운 변화도 함께 살피게 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만큼 빨리 찾아낼 수 있다.
물론 무엇이든 AI에 맡길 수는 없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은 사람이 직접 판단할지 정하는 일은 결국 사회복지사의 몫이다. AI가 문서 초안을 정리하고 안내문을 쉽게 바꾸고 언어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주민의 맥락을 읽고, 관계를 맺고, 권리를 옹호하며, 삶의 변화를 함께 견디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현장이 함께 준비해야 할 것들
그렇다면 현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먼저 기록을 데이터로 바꾸는 준비다. 상담과 사례관리, 프로그램, 자원 연계 기록 등이 일정한 기준으로 정리되고 필요한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 주체의 동의, 목적 제한, 접근권한 관리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데이터는 많이 모으는 것보다 책임 있게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음은 활용 역량과 윤리·보안 역량을 함께 기르는 일이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도 필요하지만, 주민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어떤 정보를 외부도구에 넣어도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가리는 판단이 더 중요하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믿지 않고 편향과 오류를 점검하며, 최종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원칙도 분명히 해야 한다.
디지털에서 밀려나는 주민을 살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기술이 앞서갈수록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운 사람도 함께 늘어난다. 스마트폰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장애인, 언어와 정보 격차로 온라인 신청조차 버거운 주민에게 스마트복지는 또 다른 문턱이 될 수 있다. 스마트복지는 디지털 활용을 넓히는 일이자, 디지털 소외를 줄이는 포용적 실천이어야 한다.
끝으로 현장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실험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AI 활용은 한두 사람의 관심만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관 차원에서 동료들이 함께 배우고 작은 문제를 찾아 부담 없이 시도해 볼 공간과 기회를 열어야 한다. 도구 사용법을 배우는 교육을 넘어, ‘우리 기관의 어떤 문제를 AI와 디지털로 풀 수 있을까’를 함께 묻고 풀어 보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스마트복지는 기술의 문제이기 전에 사람의 문제다.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그 기술로 누구의 삶을 더 잘 살필 것인가이다. 신복지 5.0이 그리는 스마트복지도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주민 곁으로 옮겨 놓는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이제 사회복지사는 AI 시대의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전환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변화는 먼 곳의 누군가가 아니라, 오늘 사람을 만나는 우리에게서 시작된다.
※ [월간 복지저널 2026년 7월호(통권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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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복지타임즈(http://www.bokj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