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아닌 무엇 / 박승우
난 돌이에요
아니 지금은 아늑한 집이에요
버들치가 돌 밑에 쉬고 있으니까요
난 돌이에요
아니 지금은 고마운 길이에요
개울에 놓안 징검돌이니까요
난 돌이에요
아니 지금은 정겨운 담이에요
박꽃 하얗게 핀 돌담이니까요
난 돌이에요
아니 꿈이에요
무엇이 되려고 꿈꾸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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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공부 / 박옥주
6자와 9자를
어려워하는
할머니에게
콩나물이 머리를
쑥 내밀었다.
- 할머니, 나처럼
머리 무거워서 고개 숙인 거
이게 9자야.
- 그럼, 배가 불러 일어나지 못하는
배불뚝이가 6자구나!
- 아하하, 맞아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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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 갇힌 할머니 / 이옥근
깜빡이며 재촉하던
초록빛 신호등이 꺼지자
빵빵대는 성질 급한 차들
놀란 할머니
길 가운데 섬이 되었다
건너야 할 길은 먼데
아직 중간도 못 갔는데
횡단보고 흰 창살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할머니
차들이 지날 때마다
유모차에 실린 배춧잎도
파르르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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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싸움 / 이옥근
상가 뒷골목에 붙은
날카로운 경고장
-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놈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냐?
이튿날 그 아래
삐뚤빼뚤 눌렀느 답장
- 길냥이에게
밥 주지 말라는 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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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저금통 / 이옥근
우리 집 책상 위
뚱뚱하게 살진 돼지
먼 나라로 가
염소가 되었다.
그 염소가 새끼를 낳고 낳으면
이웃집으로 가고
또 이웃집으로 가서
옷이 되고, 밥도 된단다.
올해는 빨간 돼지가
힘을 더 키우고 키워
그 나라 시골 마을의
우물이 되고
아이들의 신발이 되고
가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옥근 시인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내가 쓰는 동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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