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권제
◈ 본관은 안동인데, 양촌의 아들이며, 호는 지재이다.
급제하기 전에, 그의 벗 민후생ㆍ최문손ㆍ최효손과 더불어 금천의 삼성산에서 글을 읽었는데, 네 사람이 서로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니, 지재가 벗들에게 부친 시에 이르기를,
벗이 아직 옛 마의를 입었으니
일찍이 용문산의 맹세 이미 어김이 우습네
삼성산 신령은 스스로 경축하리라
네 가지 붉은 계수나무 아침 햇빛에 비추니
하였다. 예전에 여몽정이 젊어서 세 벗과 용문산에서 글을 읽을 적에 맹세하기를,
“장원을 하지 않으면 다시 과거 보지 말자.”
하였는데 여몽정은 장원에 뽑히고, 그 한 사람은 갑과에 오르고, 그 한 사람은 낙제하여 다시 과거 보지 않으매, 여몽정이 시에 붙여 이르기를,
"벗이 아직 옛 마의를 입었다"
하였는데, 지재가 대개 이 일을 쓴 것이다. 《담화》
◈ 지재가 〈세년가〉의 상ㆍ하편을 지었는데, 상편은 중조(중국), 하편은 동국(우리나라)이다. -<본집>
◈ 지재 권제와 판서 조극관과 참판 권극화가 처음에 모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수원의 연정에 이르러, 권제가 이르기를,
“뒷날 뜻을 얻으면, 가랑비 몽몽(가랑비 뽀오얗게 오는 모양)하고 비와 눈이 많이 내리며, 밝은 달 발에 들고 연꽃 향기 자리에 가득한 데에서 서로 술잔 권하고 읊으리니, 또한 충분히 오늘의 이 걸음을 보상할 수 있으리라.”
하니, 여러 공이 웃으며,
“비가 내리면 눈이 많이 내릴 수 없고, 눈이 많이 내리면 달이 밝을 수 없거니와, 연꽃이 어찌 눈 가운데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해에 권제가 장원이 되고, 여러 공이 서로 이어 급제하니 즉시 말하기를,
“수원의 눈 가운데의 연꽃을 이제 한 번 감상할 수 있으리.”
라고 하였다. 뒤에 권제가 감사가 되고 조극관이 이 부에 원으로 나왔는데, 마침 연꽃이 한창 피어 있자, 서로 보고 웃었다. 권제의 시에,
눈과 비가 쏟아지는데 달이 정히 밝고
연꽃 향기 스며오니 온 뜰안이 맑네
당년의 이런 말을 귀신이 응당 감추었으나
20년 전 일이 이미 이루었네
라고 하였다. 《필원잡기》
◈ 지재 부자가 서로 이어 대과에 장원하였는데, 손자 권건이 남은 글들을 모았는데, 서달성(이름은 거정)이 그 위에 제목하여 이르기를, 《영가연괴집》이라 하고, 점필재가 그 끝에 서문을 썼다. 《동문선》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