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카(Deborah Kerr, 1921~2007)
데보라 카는 1921년 스코틀렌드의 헬렌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소녀시절 런던에서 발레를 했지만 아름답고
유난히 큰 눈을 가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로 인해 영국에서 일찌감치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1941년
<Major Barbara>, 1943년 <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에 출연하였고,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할리우드로 진출하였다. <Perfect Stranger>, <I see a Dark Stranger>라는 영화를 거쳐
<흑수선, Black Narcissus, 1947>에서 수녀로 등장하면서 그녀의 얼굴은 알려지게 되었다.
Robert Newton, Wendy Hiller 과 Deborah Kerr 1941년 영화 "Major Barbara"에서
흑수선, Black Narcissus, 1947, 에서
그리고 버터 랑카스터와 주연한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를 통해 데보라 카는
당대 유명한 여배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하와이 해변가―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격렬한 키스를
나누는 이 장면은 그 이전 영화의 키스신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영화 From Here to Eternity, 1953,에서 Burt Lancaster와의 키스신 장면
데보라 카를 다시 영화에서 다시 만난 것은 율 부린너와 주연한 <왕과 나, The King and I, 1956>에서
였다. 데보라 카는 태국 왕, 샴을 가르치는 영국인 가정교사로 등장하는데 Shall we dance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데보라 카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6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
지만, 정작 한 번도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1994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을 때 그녀의 모습이
짠~ 하게 남는다.
The King and I, 1956, Yul Brynner와 함게
데보라 카는 아서 카-트리머라는 군인의 딸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즐겼지만 처음에는 발레 교육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전문적인 발레리나가 되기에는 너무 키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고 십대에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런던의 웨스트엔드 무대에 처음 오른 것은 1943년의 <하트브레이크 하우스>의
엘리 던 역으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녀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돌며, 엔터테인먼트 내셔널
서비스 어소시에이션(ENSA)—‘매일 밤 무언가 멋진 일(Every Night Something Awful)’이라는 별명으로
불린—이라는 영국군 위문단에서 활동했다.
영화 Quo Vadis 에서 Robert Taylor 과 함께
카는 마이클 파월의 <콘트라밴드(1940)>로 영화에 데뷔했다. <위대한 바바라(1941)>와 < 러브 온
더 돌(1941)> 같은 영화에서 조연을 연기한 후 그녀는 다시 파월과 함께 작업하면서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1943)>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각기 다른 시기의 세 여인을 연기했다. 테크니컬러 화면에서 황홀
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는 다음 몇 년 동안 놀랍게도 연기 활동이 적었다. <철부지 아가씨의 첩보작전
(1946)>에서 히틀러를 위해 영국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맹랑한 아일랜드 아가씨를 연기했고, 파월의
<검은 수선화(1947)>에서 수녀 역을 연기했을 뿐이다.
1943년에 출연한 영화 "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 에서
할리우드에서는 <솔로몬의 보물(1950)>과 <줄리어스 시저(1953)> 같은 영화에서 조신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점잖고 예의바른 역할에 질린 그녀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버트 랜커스터와 파도 속에서 포옹을 하는 요염한 유부녀로 등장했다. 그 후로 <왕과 나(1956)>와
<차와 동정(1956)>, <이구아나의 밤(1964)>에서 연달아 주역을 맡았다. <카지노 로얄(1967)>
에서 웃긴 스코틀랜드인으로 카메오로 등장하고, <악마의 눈(1967)> 같은 기이한 영화들에 출연한 후
1960년대 말에 영화계에서 은퇴했고, 잠시 복귀했지만 <아쌈 가든(1985)> 등 몇 편에만 출연했다.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여섯 번 오르고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유일한 여배우로 기록된다.
파킨슨병으로 사망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예쁘게 생긴 저지 젖소 같다. 그 소와 똑같이 눈가가 처량
하게 처져 있다.” 1945년 앤서니 C. 파틀리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1959년에 이혼했다.
1960년, 각본가인 피터 비어텔과 재혼했다.
첫번째 남편 앤서니 C. 파틀리와 함께
노년의 Deborah Kerr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