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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 + 서정'의 이야기시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 물려 줄
은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되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 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燈)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거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 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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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동곳 :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은으로 만든 동곳
· 산호 관자 :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 무곡(貿穀) : 이익을 보려고 곡식을 많이 사들임
· 콩실이 : 콩을 싣고 다님
· 둥글소 : 황소, 수소
· 싸리말 동무 : 어렸을 때 마마를 함께 앓으면서 싸리말을 타고 나았던 동무- ‘싸리말’은 싸리로 조그맣게 결어 말처름 만든 것으로, 마마에 걸린 지 12일 되는 날 역신을 쫓아낼 때 쓴다. 배송마(拜送馬)
· 짓두광주리 : (함경방언) 바늘, 실, 골무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반짓고리
· 저릎등 : 저릎의 표준어인 ‘겨릅’은 껍질을 벗긴 삼대이다. 저릎등은 삼대를 태워 밝히는 등 갓주지 : 갓을 쓴 절의 주지 스님. 옛날 아이들을 달래거나 울음을 그치게 할 때 갓주지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했음
· 아라사(俄羅斯) : 러시아의 음차. 아국(俄國)
· 글거리 : (함경남도 방언) 그루터기
◆ 좋은 시란?
1. 시란 낯설게 하기, 몸 바꾸기이다. 어떤 사물을 그대로 보지 말고 시적 이미지로 몸을 바꿀 때 시의 몸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아 낼 때 신선한 시가 될 수 있다.
2. 시인은 독자에 대한 과잉친절이 문제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시인이 다 설명해 버리면 독자는 너무 심심해 진다. 독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 방법만 일러주면 되는 것이다.
3. 시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 시와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아깝다고 해서 이말 저말 다 집어넣다 보면 시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4. 시에선 밑그림이 선명해야 한다.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 핵심이 투명하게 드러나야만 전달이 된다.
5. 창작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에게 분명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왜 이 시를 쓰려하는지? 무엇을 쓰려 하는지? 어떻게 쓰려는 것인지? 목적이, 그 주제가 분명할 때 창작에 들어가면 시의 주제가 선명할 것이다. 어떤 시는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슨 목적으로 그 시를 썼는지 주제도 없는 시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시들은 독자를 우롱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 김찬옥 시인
* 시인은 응축의 세계를 그려내고, 독자는 그 시를 음미하면서, 수수께끼를 풀듯이 풀어내는 데서, 시인과 독자가 서로 만나게 되고, 독자에게 음미하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어설픈 시는 읽으면, 그냥 모든 내용이 그대로 드러나고 음미하는 재미가 없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사색의 여유를 주고, 미처 몰랐던 미지의 세계를 풀어내는 즐거움을 주는 시가 좋은 시다.
많이 생각하고, 음미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얻게 하는 시, 그 속에 내재한 심오한 무엇인가를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다.
- 조성연 시인
◆ 단편 서사시
단편 서사시란, 1930년대 프로시가 당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시적 노력의 성과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시 속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를 등장시켜 계급 투쟁에서 비롯되는 혁명적인 사건의 내용을 간결하게 압축시킨 시를 말한다. 이러한 시 형식은 기존의 단형 서정시가 지녔던 주관적 영탄에서 벗어나 서사시의 소설적 요건, 즉 스토리와 사건의 요건을 어느 정도 소재상이나 문체상으로 흡수하면서 시적 상황을 선명하고 간결하게 압축하여 제시할 수 있었다. 이데올로기만을 강조하던 초시의 목적시와는 달리 계급적 현실의 모순을 시적 정황으로 현상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이야기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후 서사시는 소설에 그 자리를 내어 점차 밀려나게 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나 신경림의 '금강' 등 몇 안 되는 작품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과거와 같은 웅혼하고 장엄한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시가 창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시이다. '단편 서사시'라고도 불리는 이것에는 '여승'(백석) 외에도 '낡은 집'(이용악), '모촌'(오장환)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이야기로서의 줄거리와 뼈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 두산동아 교과서
◆ 이야기체 시의 의미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세워서 쓰는 시로 서정양식과 서사양식이 결합된 개념의 시가 이야기체 시이다.
서정과 서사의 결합, 곧 시에다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체 시는 1930년대 임화의<우리 오빠로와 화로>, 오장환의 <야행차 속>, 이용악의 <낡은 집>< 백석의 <여승> 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70년대에는 김지하의 담시(譚詩)인 <五賊)을 비롯하여 서정주의 <해일>, 신경림의 <농무>로 이어진다. 80년대에 이르면 연작시 <대꽃>을 쓴 최두석의 「이야기시론」에 입각, 본격적으로 이야기체 시의 확산을 꾀한다.
저마다 사람들은 살아온 내력과 더불어 일종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잇다. 각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근거로 세계를 해석하고 깨우침을 얻는다. 그것은 한 보편적 인간 삶의 뿌리가 된다. 이야기를 구연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상황 묘사와 화자의 정서적 반응 및 견해를 곁들여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구성한다.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으로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고 말한다. 사실 우주는 온통 내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세계다. 하나의 풀잎, 모래까지도 이야기로 얽혀 있다. 또한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무수한 사건들로 이어진 인생사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생할 주변에는 수많은 이야깃 거리들이 숨어 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내 옆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이야깃거리가 아닌 것은 없다. 식물, 동물, 바위도 다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수천 년을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살아온 내력과 더불어 일종의 이야기를 구연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상황 묘사와 화자의 정서적 반응 및 견해를 곁들여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구성한다.
한 인간의 삶, 생애란 바로 사건의 연속이고, 그 연속성에 벗어날 수가 없는 것. 만일 시인으로서 진지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깨달음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야기를 만들과, 여기에 나름의 의미를 심어갈 것이다.
◆ 이야기 체 시의 전개
이야기체 시의 내용 전개는 대체로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① 발상, ② 에피소드의 선택 혹은 창작을 통한 이야기화, ③ 배열, ④ 변용이 그것이다.
먼저 '①발상'은 보고 겪은 경험의 주관적인 사색이나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모티브이다. 시인은 자기만의 사색이나 깨달음을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책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끄며내게 된다.
그 다음으로 '② 이야기화'는 두 가지 경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창작으로서 이야기를 상상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체험에서 얻어진 의미 있는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화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완결된 이야기로 써야 한다는 것, 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것, 반전이 이는것, 압축된 사건 중심으로 감각적으로 제시 할 석, 제시된 이야기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떤 내면화된 의미로 함축해야 하는 것 등이다.
'③ 배열'에서 이야기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하나의 소재로서 단순한 이야기(fable. fabula) 가 아니라 구성(plot. sjufet)으로 재편, 재구성되어야 한다. 서설적인 전개로 도입, 발전, 갈등, 위기, 결말 등의 순서를 감안하면서도 cut back(전장면 회귀기볍)과 같은 시간의 재구성, 시 공간에 텐션 주기, 대립적 구조 등 이를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 가령, 먼저 결말을 이야기하고 도입부를 중간에서 진술하는 것과 같이 순서를 뒤바꾸는 전개라든가, 특별한 에피소드를 강조하거나 중첩시키는 전개라든가. 혹은 독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시적 효과를 귿대화한다든지, 두 개의 다른 이야기들을 대조적으로 전개한다든지, 액자식으로 전개한다든지, 회고적인 방식으로 전개한다든지, 연상에 의하여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나아가 화자 시점의 설정에 있어서도 일인칭('나') 주인공의 시점, 일인칭 참여자로서의 시점, 삼인칭('그') 관찰자 시점, 이인칭('너' 혹은 '당신') 시점 삼인칭 전능자 시점 등 그야말로 다양하게 활용 할 수 있다.
마지막 '④ 변용'을 통한 전개이다. 이야기체 시에서의 이야기 구성은 시에 알맞도록 대폭적으로 변형되지 않을 수 없다. 시이기 때문에 내용면에서 극도의 압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또 묘사는 주관적이고 정서적 표현에 의존한다. 뿐만 아니리 시는 순간적이고 직관적인 의미로 제시하고, 그 전개에 있어서도 상상력이 이원적 대립이나 등가성의 반복 등 상상력의 논리를 적용해야 재미있고 환기력이 높아진다. 그러하니 여기에는 비유, 상징, 역설, 아리러니, 풍자 등의 시적 장치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도한 언어의 음악적 기능을 살리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야기체 시의 실제
해일
서정주(1915~2000)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 항시 누에게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동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 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