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분을 친해 가까이 허라
이건 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마는,
수행 해나가는 모든 경전 수행자들이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구절입니다.
모든 경전을 엄격하게 분석을 허면
이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는 두 마디 글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속, 세속에서도 국민학교 학생으로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도 악한 벗을 가까이 함으로 해서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잘못 된 길로 빠지기 쉬운 것이고,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어른들도 악한 벗을 가까이 허며는 패가망신 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학자나 정치가나
법조계인사나 예술가나 다 마찬가집니다.
출가해서 도를 닦는 출가인들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여기에 이 착한 벗, 착, ‘어질고 착한’이라고 허는 것은
선지식또는 선우, 다 그 속에 다 포함이 된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이 삼계에 뛰어나서 생사대해를 건너고자하면 반드시 법의 배를 타야한다.
그래야 고해를 건너갈 수가 있느니라.
법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청량해서 번뇌를, 번뇌의 열(熱)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중생은 번뇌망상과 탐진치 삼독의 불이 훨훨 타, 타서
노상 뜨거운 열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법을 가까이 허고 그 어질고 착한 이는 항상 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법대로 행하고 법대로 생각하고
법대로 닦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며는 자연히 번뇌와 삼독의 독을 식혀줄 수가 있다.”
“그리고 법이라 하는 것은
묘한 약같애서 중생의 맺혀있는 모든 병을, 마음에 병을 고쳐줄 수가 있다.
법이라 하는 것은
중생에 참다운 선지식이니 중생을 크게 이롭게 허고
모든 고뇌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러헌 약이다.
그러므로 일체중생...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며는
일체중생은 그 뜻과 의지력이 결정되지 못해. 그래가지고 확고히 서덜 못해있기 때문에 금방 가까이 헌 대로 물들기가 쉬웁다 그 말이여.
자기의 의지가 굳세고 바른 사상과 신렴으로 확고히 선 사람이면 어디를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건 거기에
물들 까닭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중생은 그러지 못허기 때문에
가까이 헌 대로 물들게 되고, 좋은 것을 가까이 허면
좋아지고, 착한 것을 가까이 하면 착해지고 악한 것을
가까이하면 악해진다.
그래서 악한 벗을 가까이 허면 악, 악업을 지어가지고
생사에 유전 해가지고 끝이 없어.
한량없이 끌려 빨려 들어가는 거다.
착한 벗을 가까이 허며는 신심을 일으키게 되고 공경허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묘한 법을 들어서 받아지니게
되아가지고 사람으로 하여금 삼도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이러헌 공덕으로써 가장 수승한 즐거움을 받게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