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권정생 지음 『몽실 언니』
몽실언니
이 소설은 1947년 봄부터 1954년 10월까지 8살에서 15살까지 살아낸 한국의 한 여자아이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라가 해방이 되고 일본과 만주등지에 살았던 동포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먹고 살 만한 것들이 없었던 그들을 고향사람들은 일본거지, 만주거지라 불렀다. 여기에 무능력한 지아비를 떠나 먼 곳으로 새시집을 간 아낙네가 있다.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아기가 몽실이다. 댓골댁으로 불리는 어머니는 새아버지 김씨의 아이 영득이와 영순이를 낳았다. 영득이를 낳자 시어머니는 몽실이를 못살게 굴었다. 어느날 댓골댁이 이에 불만을 제기하자 김씨는 두 모녀를 마루에서 밀어버렸다. 이때 몽실이는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다. 2년 만에 몽실이는 고모의 손에 의해 노루실에 사는 본 아버지 정씨에게 왔다. 정씨는 북촌댁이라 불리는 여인과 새장가를 들었다. 정씨가 머슴살이 하러 나가 몽실이와 북촌댁 둘이 살아야 했다. 이 때가 몽실이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7월이 되어 북촌댁은 아이를 낳고 죽었다. 아버지는 징집되어 집에 없었다. 몽실이는 난남이를 업고 젖동냥을 하며 살았다. 30리길 건너에 살았던 고모 살강댁은 폭격에 죽었다. 고모부도 징집되어 나가 전사했고, 고종사촌들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몽실이는 장터 최씨네 식모살이를 했다.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가 불구가 되어 돌아왔다. 4살 된 난남이를 데리고 몽실이는 집에 돌아왔다. 몽실이는 동냥을 했고 마을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 사이 댓골 어머니가 죽었다. 몽실이는 동생 영득이와 영순이를 챙기러 먼 길을 가끔씩 다녀왔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부산의 무료진료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16일 만에 진료도 못 받고 죽었다. 몽실이는 고아가 되었다. 김씨 아버지는 새장가를 들고 서울로 이사했다. 쌀쌀한 새엄마는 몽실이가 영득이 영순이를 못 만나게 했다. 몽실이는 난남이를 데리고 부산에서 알게 된 양공주 서금년아줌마네 집에 살았다. 난남이는 입양을 가게 되었다. 어린 몽실이가 동생을 키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된 몽실이는 결심한다. ‘그래 난 앞으로도 이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야. 영득이랑 영순이랑 그리고 난남이를 보살펴야 해.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갈거야, 꼭 찾아갈거야.’
권정생
작가는 고난에 찬 슬픈 인생을 살아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작가의 경험을 기반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되어 부모 따라 고국에 왔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좌우 폭력을 어린 아이의 눈으로 경험했다. 거지생활도 했고, 신장결핵으로 수술은 했고 소변즐을 거치하고 살게 되었다. 그마저도 2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채. 작가는 죽기 전에 글이나 실컷 써 보자 했다. 대표작인 『강아지똥』이 그 때 쓴 것이다. 이후 예상대로(?) 죽지 않은 그는 당시 통념과 다른 동화를 써 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을 배경으로 한 예쁜 동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한 슬픈 동화를 말이다.
작가는 6.25전쟁을 주제로 한 장편 소년소설 세 작품을 썼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1978.1 ~ 1980.07), 몽실언니(1982.01~ 1984.03), 점득이네(1987.03~ 1989 01)이 그 것이다. 몽실언니는 1981년 말에 최완택목사가 운영하는 민들레교회 주보에 2회 연재하고 이후 잡지 새가정에서 1982년 1월부터 1984년 3월까지 연재를 했다. 당시 군사정권하에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기사 그렇다. 인민군 치하의 마을 모습을 소상히 밝히고, 만났던 인민군언니와 오빠의 인간적이고 착한 모습을 그려 냈으니. 더욱이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했으니.
30년 후, 70년 후 몽실언니
소설에서는 몽실언니가 30넌이 지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몽실언니는 기덕이엄마가 되어있었고 시장에 난전을 펼치고 산다. 곱추남편은 구두수선을 하고, 난남이는 폣병을 앓고 요양소에 입원해 있다. 영득이는 우편배달원이 되어 있고, 영순이는 강원도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오늘날 몽실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80대의 몸으로 의연하게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위악스럽지 않게. 그렇다면 세상은? 10살 몽실언니 나이의 아이들은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북관계는? 세상은? 몽실언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선한 영향력
몽실언니를 살아낼 수 있게 만든 이들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댓골의 순덕이네, 노루실의 남순이네, 장골할머니. 식모살이 들어갔던 최씨네 가족, 부산에서 만난 청년 배근수와 서금년아줌마. 고모 살강댁도 그렇다. 몽실이가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을 도왔던 이가 있었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나도 중1때 온양에서 천안으로 초5 동생을 데리고 통학한 적이 있다.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내버스를 탔다. 낸 차표가 여기 것이 아니라는 기사의 말에 당화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대신 차비를 내 주었다. 난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어벙벙 자리에 앉았다. 감사하지만 창피함과 약간의 수치심에 매여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그 고마움은 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 나도 모르게 그 아주머니를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으니. 소설 속의 장골할머니를 보면서 어렷을 적 나를 도와준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같은 경험, 또 다른 수용
또한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식모살이 때 장터에서 만난 꽃파는 아이에게 동정어린 돈을 주려할 때 “난 거지가 아니니까 공으로 돈 받지 않아”라는 말을 듣고 몽실이는 세상을 그런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또한 노루실 야학에서 공부를 하며 몽실이는 사람은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몽실이는 남의 힘을 믿어서는 안되고 남의 말이 아닌 제 스스로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힘이란 나보다 난 것들을 따라가고 자신을 부정하고 현재를 미래에 저당잡히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은 그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꿋꿋하게 해 나가는 힘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 내가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될 때, 남에게 강요하는 ‘남의 힘’과 ‘지배 관념’의 꼰대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성공했다고 잘난 척하게 하고, 내가 모범이라고 으스대고, 나처럼 살라고 남에게 강요하는 헛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