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작품 위작 의혹
'미인도' 위작 논란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고(故) 천경자 화백의 작품 '뉴델리'가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동천 감정학 박사는 지난 21일 천경자 화백의 1979년 작품인 '뉴델리'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며 3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이동천 박사는 1999년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감정학)를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부터 현재까지 랴오닝성(遼寧省)박물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11월 국내 최초로 명지대 대학원에 '예술품 감정학과'를 개설하고 주임교수를 역임했으며 2004년부터 11년간 서울대 대학원에서 '작품감정론1,2'를 강의했다. 현재 중국을 오가며 감정 교육과 미술품 투자를 연구하고 있다.
이 박사는 먼저 서명에 들어간 '뉴'자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천 화백의 작품 11점에서 발견된 '뉴'는 아래 왼쪽 획이 오른쪽 획과 연결되도록 썼지만 '뉴델리' 작품의 '뉴'자는 이와 다르다.
두 번째로 서명에 개칠이 되어 있는 점을 지적했다. 천 화백은 오자가 있거나 글씨가 뭉개지거나 글씨 안료가 바탕에 먹지 않아도 개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델리' 작품 서명에는 '뉴'와 '리'와 '子(자)' 세 글자에 개칠을 한 흔적이 확인됐다.
그는 "서명을 피해 색칠을 다시 할지언정 개칠은 하지 않았다"면서 "쓴 글귀가 마음에 안 들면 줄을 긋고 심지어 그 상태에서 낙관까지 찍었다. 추가할 내용이 있으며 중간에 집어 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글씨 쓰는 속도와 필획이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뉴델리' 작품은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리고 마지막 필획의 끝이 아래로 향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진품에서는 글씨 쓰는 속도가 빠르고 마지막 필획의 끝을 위로 날렸다.
마지막으로 가짜 서명 아래서 지워진 가짜 서명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색 분해 결과 '델'자 아래 현재의 '뉴'보다 더 형편없는 '뉴'자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한 1973년 이후 천 화백의 그림에서 감정 포인트로 꼽을 수 있는 검정색 혹은 고동색 펜을 사용한 밑그림 드로잉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도 위작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펜 드로잉 밑그림 유무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모든 채색화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다"면서 "뉴델리에는 드로잉 흔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천 화백의 16점 연작 작품인 '기행스케치-화문집'은 지난 6월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지만 위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출품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동안 미공개 됐던 '기행스케치-화문집'은 천 화백이 작품 구상을 위해 해외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며 그린 스케치 작품 16점을 모아 화집으로 묶은 작품이다. 천 화백이 1983년 6월 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국의 일상과 정취, 풍광을 묘사해 작가가 여행에서 느낀 감흥이 그대로 전해진다. 추정가는 4억~6억원이다.
당시 서울옥션 관계자는 "해당 작품에 대해 위작 의혹이 있다는 소문이 너무 많이 퍼져서 재감정을 위해 출품을 취소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소장자가 판매 의사를 철회하고 작품을 찾아가 추가 감정을 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이 위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니지만, 진품을 걸기 위해 소장 경로와 진품 확인서를 확인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며 “감정은 저희 손을 떠난 문제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한편 ‘감정학 박사 이동천의 미술품 감정 비책’에는 이날 공개한 ‘뉴델리’뿐 아니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위작임을 밝히는 근거, 천원권 지폐 뒷면에 실린 ‘정선의 계상정거도’와 추사 김정희의 걸작으로 알려진 ‘향조암란’, 그리고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진 ‘묘길상, 월하취생, 포의풍류’, 강세황의 글씨와 조선 명필 이삼만의 글씨 중 상당수가 가짜임을 밝히는 근거들이 포함돼 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던 '미인도'는 25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작 확보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이던 그림 5점을 조사한 상태다.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뉴델리' 작품.<사진제공=라의눈>'뉴델리' 작품에 쓰여진 '뉴'자(왼쪽)와 천경자 화백의 다른 그림 11점에 쓰여진 '뉴'자 비교사진.<사진제공=라의눈>'뉴델리' 작품에 쓰여진 '뉴'자(왼쪽)와 개칠 전후비교사진.<사진제공=라의눈>'뉴델리' 작품에 쓰여진 서명 색분해 결과 사진.<사진제공=라의눈>천경자 화백의 '기행스케치-화문집' 작품.<사진제공=서울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