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애관음보살상의 조각연대와 조각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후기인 8~9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돌기둥 처럼 생긴 암벽 남면에 양각한 이 조각은 관음보살상으로 연화좌 위에 서있다. 머리에는 화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오른손은 가슴에 얹어 설법인을 했으며 왼손에는 정병을 들었다.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어 보살의 자비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 입술은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채색한 흔적으로 보인다. 뒷면에 서있는 역시 돌기둥 모양의 다른 바위가 광배같아 보여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신체의 크기와 거의 비슷한 등신불이다. 불상을 크기에 따라 분류하면 신체와 같은 크기의 등신불(等身佛), 신체의 2배 되는 1장6척의 장륙상(丈六像), 장륭상의 2배이상 즉 10m 내외의 대불(大佛)로 분류된다. 그리고 신체 보다 작은 불상을 소불(小佛)이라고 한다.
관음보살은 한 손에는 불사(不死)와 정화의 물이 담긴 정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에 정병의 맑은 감로수(甘露水)를 적셔 온 세상 중생들에게 고루 뿌려줌으로써,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모든 악업과 고통을 씻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양류관음보살(楊柳觀音菩薩)은 33가지 관음보살의 모습 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고려불화의 대표작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도 관음보살 옆 정병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거나, 보살이 직접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개울가에서 한 여인이 피가 묻은 빨래(월경포)를 빠는 것을 보고 물을 달라 하자, 여인은 핏물을 떠서 주었다. 원효가 더럽게 여겨 냇물을 다시 떠서 마시자, 여인은 "더럽고 깨끗함을 분별하는 승려여"라 말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제야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달은 원효는 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첫댓글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慶州 南山 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은 돌기둥 모양 바위에 돋을새김(양각)되어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올려 설법인(說法印) 형태를 취하고 왼손에는 중생을 구제함을 상징하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얼굴과 상반신, 손에 든 정병 등은 도톰하게 입체감이 살도록 높은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몸의 아랫부분이나 허리 아래 옷주름 등은 섬세함을 줄이고 거친 느낌의 얕은 선각 위주로 표현되어 있다.
약간 통통하면서도 입꼬리를 살짝 올려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어 신라 불상 특유의 친근함을 전한다.
정확한 연대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조각 기법과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8~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관음보살상의 입술에 감도는 붉은빛은 자연적인 철분 성분 때문이 아니라, 신라 시대 당시 조성할 때 불상 표면에 직접 도채(塗彩)했던 붉은 색소(주사, 朱砂 등)의 잔흔이다.
보살상의 입술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면 여전히 옅게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 불상을 완성한 뒤 붉은 물감을 칠했던 흔적(채색 불상)이 세월과 풍화를 견디고 현재까지 일부 남아있는 것이다.
입술의 붉은 색선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고 학술 조사를 진행했을 당시 눈썹이나 눈매 주변에도 먹(墨)으로 그렸던 선의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바위 자체의 암석 성분이나 녹슨 철분으로 인한 변색이 아니라, 통일신라 시대의 채색 기법이 남아 있는 드문 사례이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는 보살 중 하나로, 중생의 고통을 소리를 들어 알아차리고 구원하는 자비(慈悲)의 대명사이다. 본래 명칭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또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고통에 찬 부르짖음)를 찰나에 살피고 들어서 구원한다'는 뜻이고,
관자재(觀自在)는 '지혜로 세상과 이치를 자유자재로 관조하여 걸림이 없다'는 의미이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하여 모든 중생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구원하려는 자비심의 결정체이다.
손에 감로수가 담긴 정병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중생의 고뇌와 번뇌를 씻어주는 상징이다.
머리에 쓰는 왕관(보관) 중앙에 스승이자 근본인 아미타여래의 소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관음보살상의 가장 대표적인 도상적 특징이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의 상황과 구원받을 사람의 수준·모습에 맞추어 33가지 다양한 모습(응신)으로 변화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원래 인도 초기 불교에서는 남성형으로 서술되었으나, 자비로움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중국·한국 등 동아시아로 건너오면서 친근하고 자애로운 여성의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었다.
관음보살이 손에 쥐거나 정병에 꽂아 두는 버드나무 가지(양류, 楊柳)는 관음신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버드나무는 중생의 병과 고통을 치료하는 '약(藥)'의 상징이다.
예로부터 버드나무 껍질과 가지에는 통증을 진정시키고 열을 내리는 성분(아스피린의 원료가 되는 살리신)이 있어 천연 해열·진통제로 쓰였다.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양류관음)은 중생의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고뇌, 번뇌라는 병을 깨끗이 고쳐준다는 '치유와 구원'을 의미한다.
관음보살은 한 손에는 불사(不死)와 정화의 물이 담긴 정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에 정병의 맑은 감로수(甘露水)를 적셔 온 세상 중생들에게 고루 뿌려줌으로써,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모든 악업과 고통을 씻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버드나무 가지는 바람에 잘 꺾이지 않고 부드럽게 휠 정도로 유연하다.
이는 중생의 어떤 거친 마음이나 악업도 유연하고 따뜻하게 감싸안는 관음보살의 무량한 자비심과 유순(柔順)함에 비유된다.
양류관음보살(楊柳觀音菩薩)은 33가지 관음보살의 모습 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고려불화의 대표작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도 관음보살 옆 정병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거나, 보살이 직접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음보살과 파랑새(청조, 青鳥)는 관음신앙, 특히 바다 건너 사찰이나 해수관음 성지(예: 양양 낙산사)의 연기설화에서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상징적 존재이다.
설화 속에서 파랑새는 관음보살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나타난 변화신(變化身)이거나, 관음보살의 뜻을 전달하는 신령스러운 전령(메신저)으로 등장한다.
중생이나 고승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 참모습)을 만나기 위해 기도할 때, 길을 안내하거나 관음의 출현을 알리는 신조(神鳥) 역할을 한다.
파랑새와 관음보살의 연관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신라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낙산사 창건 설화이다.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만나기 위해 동해안 바닷가 굴(관음굴) 위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어디선가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파랑새는 의상대사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바위 굴 속으로 들어갔다.
의상대사가 파랑새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기도한 끝에, 동해 바다 연꽃 위에서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직접 접견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의상은 관음의 뜻에 따라 그곳에 절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해수관음 성지인 양양 낙산사다. (낙산사 의상대 옆에 있는 암자 이름이 '홍련암'인 이유도 이 설화와 연결된다.)
파랑새가 나타났다는 것은 간절한 기도가 관음보살에게 닿았음을 의미하며, 고통에서 벗어날 구원의 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다.
파랑새는 높은 하늘(보리, 깨달음)과 지상(중생)을 오가며 관음의 대자대비한 자비심을 세상에 전파하는 매개체이다.
관음보살 설화 속 파랑새는 단순히 예쁜 새가 아니라, 간절한 구도의 마음과 관음의 자비가 만나는 접점을 상징하는 거룩한 존재로 여겨진다.
원효대사 역시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러 가던 길에 파랑새(청조)를 만난 설화가 전해진다.
원효대사는 낙산 해안 굴 속에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상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관음보살을 직접 만나 예경을 드리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낙산 근처 들판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들판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대사가 여인에게 다가가 관음보살이 어디 계신지 묻자, 갑자기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 "벼를 베는 저 신옷 입은 여인이나 찾아보시지" 하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사라져 버렸다.
원효대사는 그 벼를 베던 여인이 바로 관음보살의 변화신(變化身)이었음을 알지 못하고 계속 길을 나아갔다.
이어서 개울가에서 한 여인이 피가 묻은 빨래(월경포)를 빠는 것을 보고 물을 달라 하자, 여인은 핏물을 떠서 주었다. 원효가 더럽게 여겨 냇물을 다시 떠서 마시자, 여인은 "더럽고 깨끗함을 분별하는 승려여"라 말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제야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달은 원효는 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의상대사는 파랑새의 인도를 받아 관음굴로 들어가 관음보살을 성공적으로 접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했다.
원효대사는 파랑새와 여인으로 나타난 관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하여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일체유심조)"는 분별심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