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여자
LA DORMEUSE
루시앙 파브르에게
ㅡ발레리
나의 젊은 연인은 마음에 어떤 비밀을 불태우고 있는가
영혼은 얌전한 가면을 통하여 꽃내음을 빨고 있다.
나면서부터 지닌 그 정열은 어떤 헛된 양식으로
잠자는 이 여자의 광채를 만들어 내는가.
숨쉬고 꿈꾼다, 소리도 없이. 거부하기 힘든 잔잔함.
오오 눈물보다 힘찬 안식이여, 너는 승리를 차지한다.
이 깉은 잠의 장중한 파도와 풍요로움이
이와 같은 원수의 가슴 위에서 힘을 합칠 때.
잠자는 여자여, 그림자와 내팽겨친 황금빛 거름이여
네 역겨운 쉼은 하늘이 내린 은혜를 입고 있으니
오오 꽃송이 옆에 근심스러이 누워 있는 암사슴이여,
영혼은 저승으로 가서 지금은 없으나
부드러운 배 위를 흐르는 한쪽 팔이 가리고 있는 네 모습은
자지 않는다. 내 눈은 네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해설]
발레리는 보들레르, 말라르메를 잇는 상징주의 계보에 속하는 시인이지만, 주지적이며 기교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그는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감이나 정열이 아니라 맑은 의식과 노력이라고 말하였다.
[작가소개]
발레리(Paul Valery. 프랑스. 1871-1945)는 남 프랑스 세트 출신. 몽페리에 법과대학에서 공부하며, 거기서 피에르 루이스와 사귀었고, 앙드레 지드와도 교우 관계를 가졌다. 또한 말라르메와 서신을 주고 받는 기회를 얻어, 후에 화요회(火曜會) 회원이 되었다. 시의 방법론적으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이 결정적이었고, 포, 보들레르, 말라르메로 이어지며, 발레리에 이르러 프랑스 상징주의 시정신의 끝을 장식하였다. 시집으로 <젊은 바르크>, <매혹>, <해변의 묘지> 등이 있다.(김희보)
[출처] 발레리 시 15수|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