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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
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에 있다는 뜻으로, 책을 읽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임을 이르는 말이다.
至 : 이를 지(至/0)
樂 : 즐길 락(木/11)
莫 : 없을 막(艹/7)
如 : 같을 여(女/3)
讀 : 읽을 독(言/15)
書 : 글 서(曰/6)
출전 : 진계유(陳繼儒)의 암서유사(巖棲幽事)
독서의 중요성, 책 읽기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동서고금의 명구는 많다. 간단히 살펴보면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롭다는 개권유익(開卷有益),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구중형극(口中荊棘)이 있다. 책을 열심히 읽는 현두자고(懸頭刺股), 형창설안(螢窓雪案)도 있다.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은 공자(孔子)가 이 방면에 빠질 수가 없다. 독서를 열심히 하느라 끼니도 잊고 발분망식(發憤忘食), 알고 나면 즐거운 나머지 근심을 잊고 낙이망우(樂以忘憂), 늙어가는 것도 모를 부지노지장지(不知老之將至)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중요한 책 읽기는 자신에게는 물론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도 우선시했다. 우선 천자문(千字文)을 뗀 후 기초과정의 교재로 널리 사용됐던 추적(秋適)의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보자.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이었던 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인데 자녀를 가르치는 훈자(訓子)편에 있다. '지극한 즐거움으로는 독서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자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至樂, 莫如讀書; 至要, 莫如敎子).' 이 말은 원래 중국 노(魯)나라의 충신 자가자(子家子)가 한 말로 되어 있고 좋은 말이라 고전에 많이 인용됐다.
훈자편 이 구절 앞의 말도 유명하다. '황금이 상자에 가득하다 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재주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黃金萬籝,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나온다.
또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 문필가 안지추(顔之推)도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다. '많은 재물을 쌓아 두어도 얕은 재주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고, 배우기 쉽고 사람을 귀중하게 하는 재주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積財千萬, 不如薄伎在身: 伎之易習而可貴者, 莫如讀書).'
책을 읽는 것은 옛날의 성인과 대화하는 것이라거나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선인들이 많이 깨우쳤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고 조사할 때마다 나온다. 이는 자녀를 가르칠 때 독서의 중요성보다 경쟁에서 이기도록 사교육에 열과 성을 쏟은 결과가 아닐까.
▣ 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
책읽기는 인류 문명과 문화의 척도다. 작게는 개인의 지식과 인품을 결정한다. 독서는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과 지혜까지 닦고 기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것은 이치와 뜻이 사람의 마음을 한가지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의 공명이 큰 것이다. 오직 독서만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겠다.
조선조 학자인 허균(許筠)은 저서 '한정록(閑精錄)'에서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소리로 '독서성(讀書聲)', 책 읽는 소리를 꼽았다. 특히 내 자식이 글 읽는 소리(子弟讀書聲)는 으뜸의 소리라고 했다. 이 성어는 조선조 학자인 허균(許筠)이 저서 '한정록(閑精錄) 제12권 정업(靜業)'에서 송(宋)나라 예사(倪思)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예문절공(倪文節公)이 말하였다. "소나무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산새 우는 소리, 들에 벌레 우는 소리, 학(鶴)이 우는 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비가 층계에 떨어지는 소리, 눈이 창밖을 스치는 소리, 차를 끓이는 소리 들은 매우 맑은 소리이다. 그러나 그 중에 독서하는 소리가 가장 좋다. 그리고 남이 독서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그렇게 기쁘지 않지만 자기 자제(子弟)의 독서하는 소리는 그것을 들을 때 기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倪文節公曰 : 松聲澗聲, 山禽聲野蟲聲,鶴聲琴聲, 棋子落聲雨滴堦聲, 雪洒窓聲煎茶聲, 皆聲之至淸. 而讀書伊吾聲爲最.聞他人讀書, 未極其喜, 惟子弟讀書聲, 則喜不可勝言.
또 말했다. "천하의 일은 이로움과 해로움이 반반인데, 온통 이롭고 작은 해로움도 없는 것은 다만 책뿐이다."
又曰 : 天下之事, 利害常相半, 有全利而無小害者, 惟書.
진계유(陳繼儒)는 명나라 말기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사람으로, 자는 중순(仲醇)이고, 호는 미공(眉公) 또는 미공(麋公)이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고, 고아(高雅)함을 숭상했다. 젊어서 동기창(董其昌), 왕형(王衡)과 함께 명성을 나란히 했다. '금병매(金甁梅)'를 지은 왕세정(王世貞)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9살 때 유자(儒者)의 의관을 태워 버리고 관료의 길을 포기한 뒤 소곤산(小昆山) 남쪽에 은거했다. 나중에 동사산(東佘山)에 살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자가자(子家子)가 말하였다. "가장 즐거운 것은 독서(讀書)만한 것이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일만한 것이 없고(至樂莫如讀書, 至要莫如敎子), 가장 부유(富裕)한 것은 지붕을 기와로 이는 일만한 것이 없고, 가장 곤궁한 것은 전토(田土)를 파는[賣] 일만한 것이 없다."
또한 중국 육조시대 북제(北齊)의 학자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안씨가훈'은 책읽기의 중요성을 극명하고 가르치고 있다.
積財千萬 不如薄伎在身. 伎之易習而可貴者 莫如讀書.
많은 재물을 쌓아 두어도 얕은 재주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고, 배우기 쉽고 사람을 귀중하게 하는 재주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世人不間賢愚, 皆慾識人之多見事之廣, 而不肯讀書.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불문하고 넓은 세상에서 경험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是猶求飽而懶營饌, 欲煖而惰裁衣也.
이는 배부르기를 바라면서 음식 장만을 소홀히 하고, 따듯이 하고자 하면서 옷 해입기를 게을리하는 것과 같다.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세계 책의 날)'이다.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지식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독서와 저술 및 이와 연관된 저작권 증진에 기여하면서 책의 창조적, 산업적, 정책적 측면과 국내적, 국제적 측면 등 다양한 면모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책을 읽고 실천해 세상에 기여하자. "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에 있고,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데 있다(至樂莫如讀書 至要莫如敎子)"고 했지 않는가.
▣ 독서(讀書), 지식(知識)과 지혜(智慧) 습득의 지름길
학문을 하거나 지식이나 지혜를 습득하거나 간에 독서가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지극한 즐거움으로 독서만한 것이 없다(至樂莫如讀書)"라는 말이 있다.
천성적으로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지극한 괴로움으로 독서만한 것이 없다(至苦莫如讀書)"인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새로운 것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책 읽기를 좋아한다. 새 물건 사는 것이나 좋은 음식 먹는 것 등은 외적인 즐거움이지만, 진정한 정신적인 즐거움은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저서(著書)를 좋아하였다. 인구 비례로 볼 적에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 민족은 많은 책을 지어 남겼다. 우리 선조(先祖)들이 남긴 문집(文集)의 종류만 해도 1만여 종에 이른다고 하니, 자랑스런 일이다.
산골의 서너 집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도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고, 오늘날 미국에 이민(移民)간 민족 가운데서 교수가 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도 우리나라라 하니, 책을 좋아하는 민족의 특징을 면면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 열기가 대단한 것도 모두 이런 전통에서 말미암았다고 볼 수 있다.
인류가 각민족 단위로 언어를 창조하여 상호간에 의사(意思)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문자를 창조하여 그 의사를 기록하여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개개인의 지식과 지혜를 교환하고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인류사회가 나날이 발전할 수 있었다. 다른 동물은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발전이 거의 없는 것이다. 제법 영리한 원숭이나 진돗개도 자기가 겪은 경험을 후세에게 전수(傳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축적해 놓은 지식과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독서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평생을 바쳐 터득한 지혜를 책 한 권을 통해서 하룻 저녁이면 다 습득(習得)할 수 있으니까.
▣ 개권유익(開卷有益)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개권유익(開卷有益)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말이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니, 자세히 정성들여 읽는다면,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정성들여 읽어 자신의 정신적 양식으로 삼는다면, 그 유익한 정도는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知識)을 다시 일상생활의 언행(言行)에 실천한다면, 책 속에 담겨 있던 내용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될 것이다.
흔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잊어버리는 것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 전에 읽은 책인데도 지금 그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책의 줄거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할 때, 자기도 분명히 읽었으면서도, 그 이야기 줄거리를 자세히 모를 때, 창피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지능이 좋지 않다고 한탄하면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잊어버리는 것을 걱정할 것 없다. 사람의 머리는 잊어버리는 기능이 있기에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안 좋은 경험이나 인상 같은 것은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려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책을 읽어 습득한 것을 잊어버리지만, 책을 읽음으로 해서 지혜(智慧)는 계속 축적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밥을 먹었다가 얼마 지나면 배가 꺼지지만, 신체는 커 가는 것과 같다. 얼마 지나면 배가 꺼질 것이니 먹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음식(飮食)을 먹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영양실조(營養失調)가 걸려 굶어 죽는 것처럼, 책을 읽어도 곧 잊어버린다고 하여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주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저급(低級)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매일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解決)해 내야만 살아갈 수 있지만, 거기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독서를 통해서 축적(蓄積)해 온 사고력과 판단력을 통해서 문제의 해답을 얻는 것이다.
십여 년 전 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되기 시작하자, 앞으로 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 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십 년도 안 지난 지금 다시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정보의 양이 대단히 많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려면 아주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정보를 찾아들어가는 데 몇 단계의 조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컴퓨터는 책보다 휴대하기에 불편하고, 시력보호에도 신경이 쓰인다. 책은 갖고다니며 공원에서도 산에서도 강가에서도 읽을 수 있고, 앉아서도 읽을 수 있고, 누워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삼여독서(三餘讀書)
책 읽을 시간이 없겠는가? 흔히 "나도 본래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책을 읽으려 해도 시간이 없어서...", "그 책 한 번 읽어봐야 되는데, 시간이 있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바쁜 현대생활에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핑계대는 사람은, 대개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지 않을 사람들이다.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사람이 있고, 핑계를 잘 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여건(與件)이 갖추어져도 또 다른 핑계를 대게 마련이다. 시간적 여유를 얻어 조용한 환경에서 책을 읽으려면 평생 기다려도 책 한 권 읽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쁜 속에서 정신적인 한가함을 얻어야 하고, 시끄러움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한다.
조선(朝鮮) 침략의 원흉(元兇)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사살하여 체포된 뒤 사형선고를 받아 집행 날짜가 눈 앞에 다가왔는데도, 여순(旅順) 감옥에서 태연히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이라는 책을 저술하던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정신,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열차 속에서 논쟁(論爭)을 펼치던 상대 학자의 학설(學說)을 꺾기 위해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들고 논문을 집필하던 최현배(崔鉉培)교수의 집념, 남 다른 일을 이룬 이런 분들의 자세를 보고나면,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는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삼여독서(三餘讀書)라는 말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자(老子)에 정통하여 주석서(註釋書)를 지었다. 어떤 사람이 노자를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동우는 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말하기를, "먼저 이 책을 백 번 읽으시오. 그러면 의미를 절로 알 수 있을 것이오(讀書百遍而義自見)"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시간이 없어 괴롭습니다"라고 하자, 동우는, "세 가지 남은 시간(三餘)을 이용해서 읽으시오"라고 했다. 그 사람이 "세 가지 남은 시간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라고 묻기에, 동우는 이렇게 말했다.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이요, 밤은 하루 낮의 남은 시간이요, 흐리고 비오는 날은 맑은 날의 남은 시간이요"라고 했다.
동우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배우겠다는 간절한 생각 없이 스승을 찾아다닌다고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시간을 아껴 독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자 함이었다. 자기 자신이 알고자 하는 정성이 지극하다면, 책 읽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할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겨울, 밤, 흐리고 비오는 날이 여유 있는 시간이지만, 오늘날은 주말이나 공휴일이 여유 있는 시간이다. 요즈음은 여가를 즐기는 것도 너무 유행을 타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 같다. 꼭 차를 몰고 음식을 장만해서 이름났다는 곳을 찾아가야만 여가를 즐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개 여러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휴가철을 맞이해서 이런 곳을 찾다보면, 교통체증(交通滯症), 바가지 요금, 갖가지 소음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분을 더 망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환경 파괴도 적지 않다. 레크리에이션이란, 휴식(休息)을 통해서 활기를 되찾는다는 뜻인데, 이렇게 해서 새로운 창조(創造)를 할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휴가를 즐기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책 몇 권을 챙겨 들고, 고향의 재실(齋室)이나 정자 같은 곳으로 찾아가서 며칠 동안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는 것이 좋은 휴식방법이 아닐까?
▶️ 至(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는 ❶지사문자로 새가 땅(一)을 향하여 내려앉는 모양이라 하여 이르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至자는 '이르다'나 '도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至자는 화살을 그린 矢(화살 시)자가 땅에 꽂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至자를 보면 땅에 꽂혀있는 화살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목표에 도달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至자는 대상이 어떠한 목표지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이르다'나 '도달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至(지, 질)는 ~까지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공간이나 시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②영향을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③과분하다, 정도(程度)를 넘다 ④지극(至極)하다 ⑤힘쓰다, 다하다 ⑥이루다 ⑦지향(志向)하다 ⑧주다, 내려 주다 ⑨친근(親近)하다 ⑩표(表)하다 ⑪진실(眞實), 지극(至極)한 도(道) ⑫실체(實體), 본체(本體) ⑬동지(冬至), 절기(節氣)의 이름 ⑭지극히, 성대(盛大)하게 ⑮크게 ⑯최고(最高)로, 가장 ⑰반드시 ⑱마침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를 도(到)이다. 용례로는 더할 수 없이 급함을 지급(至急), 더할 나위 없이 독함을 지독(至毒),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더할 나위 없이 천함이나 너무 흔해서 귀한 것이 없음을 지천(至賤), 더할 수 없이 어려움이나 아주 어려움을 지난(至難), 지극한 정성을 지성(至誠), 더할 수 없이나 지극히 착함을 지선(至善), 더할 수 없이 크다 아주 큼을 지대(至大), 더없이 높음이나 뛰어남 또는 더없이 훌륭함을 지고(至高), 지금까지를 지금(至今), 몹시 가까움이나 더 없이 가까운 자리를 지근(至近), 지극한 즐거움이나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을 지락(至樂),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을 지재(至才), 더할 나위 없이 곤궁함을 지궁(至窮), 더 할 수 없이 존귀함을 지존(至尊),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음을 지극(至極), 한군데로 몰려듦을 답지(遝至), 수량을 나타내는 말들 사이에 쓰이어 얼마에서 얼마까지의 뜻을 나타냄을 내지(乃至),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라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껏 하면 하늘이 움직여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정하고 평등함을 일컫는 말을 지공지평(至公至平), 매우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지근지처(至近之處), 진정한 명예는 세상에서 말하는 영예와는 다르다는 말을 지예무예(至譽無譽), 지극한 정성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이 신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지성여신(至誠如神), 지극히 도리에 맞는 말을 말없는 가운데 있음을 이르는 말을 지언거언(至言去言), 매우 인자함을 일컫는 말을 지인지자(至仁至慈), 지극히 가깝고도 정분 있는 사이를 일컫는 말을 지정지간(至情之間),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함을 일컫는 말을 지고지순(至高至純), 죽음을 당하는 처지에 이르러도 끝까지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사불굴(至死不屈), 거의 죽다시피 되는 어려운 경우를 일컫는 말을 지어사경(至於死境), 매우 어리석은 듯 하나 그 생각은 신령스럽다는 뜻에서 백성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듯하지만 그들이 지닌 생각은 신령스럽다는 뜻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지우이신(至愚而神), 몹시 천한 물건을 일컫는 말을 지천지물(至賤之物), 절대로 복종해야 할 명령을 일컫는 말을 지상명령(至上命令), 지극한 정성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성진력(至誠盡力),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일컫는 말을 지우금일(至于今日), 지극히 원통함을 일컫는 말을 지원극통(至冤極痛), 그 이상 더할 수 없이 매우 곤궁함을 일컫는 말을 지궁차궁(至窮且窮), 더할 나위 없이 정밀하고 미세함을 일컫는 말을 지정지미(至精至微), 매우 가난하여 의지할 곳조차 없음을 일컫는 말을 지빈무의(至貧無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이란 뜻으로 쉼 없이 정성을 다하자는 의미로 지극한 정성은 단절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지성무식(至誠無息),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목적과 행동이 서로 배치됨을 이르는 말을 지초북행(至楚北行)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 莫(없을 막, 저물 모, 덮을 멱)은 ❶회의문자로 暮(모)와 동자(同字)이다. 삼림(森林) 혹은 초원(草原)에 해가 지는 모양을 나타내고 해질녘의 뜻이다. 나중에 음(音) 빌어 없다, 말다의 뜻(無, 毋)으로 전용(專用)되고 해질녘의 뜻으로는 暮(모)자를 만들었다. ❷회의문자로 莫자는 '없다'나 '저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莫자는 茻(잡풀 우거질 망)자와 日(해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莫자를 보면 풀숲 사이로 해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날이 저물었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해서에서는 아래에 있던 艹(풀 초)자가 大(큰 대)자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莫자가 되었다. 그러니 莫자에 쓰인 大자는 艹자가 잘못 바뀐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莫자는 이렇게 날이 저물은 것을 표현한 글자지만 지금은 주로 '없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가 사라졌다는 뜻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다시 日자를 더한 暮(저물 모)자가 '저물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莫(막, 모, 멱)은 ①없다 ②말다, ~하지 말라 ③불가하다 ④꾀하다(=謨) ⑤편안하다, 안정되다 ⑥조용하다 ⑦드넓다 ⑧아득하다 ⑨막(=膜) ⑩장막(帳幕)(=幕) 그리고 ⓐ저물다(모) ⓑ날이 어둡다(모) ⓒ나물(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이것을 양념하여 무친 음식)(모) 그리고 ⓓ덮다(멱) ⓔ봉하다(열지 못하게 꼭 붙이거나 싸서 막다)(멱)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힘이 더 할 수 없이 셈을 막강(莫强), 매우 중요함을 막중(莫重),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또는 막약(莫若), 벗으로서 뜻이 맞아 허물없이 친함을 막역(莫逆), 매우 심함이나 더할 나위 없음을 막심(莫甚), 매우 심함을 막급(莫及), 가장 좋음을 막상(莫上), 아닌게 아니라를 막비(莫非), 깊은 밤이나 이슥한 밤을 막야(莫夜), 몹시 엄함을 막엄(莫嚴), 말을 그만둠이나 하던 일을 그만둠을 막설(莫說), 더할 수 없이 매우 강함을 막강(莫強), 황폐하여 쓸쓸함을 삭막(索莫), 고요하고 쓸쓸함을 적막(適莫),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무가내(莫無可奈),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을 일컫는 말을 막역지우(莫逆之友),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상막하(莫上莫下),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가내하(莫可奈何), 막역한 벗의 사이를 일컫는 말을 막역지간(莫逆之間), 동서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막지동서(莫知東西), 자식을 가르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막여교자(莫如敎子), 어느 누구도 감히 어찌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막감수하(莫敢誰何), 모든 것이 다 운수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을 막비명야(莫非命也), 인적이 없어 적막하도록 깊고 높은 산을 일컫는 말을 막막궁산(莫莫窮山), 두려워서 할 말을 감히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막감개구(莫敢開口), 더할 수 없이 매우 강한 나라를 일컫는 말을 막강지국(莫強之國),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불감동(莫不感動), 아주 허물없는 사귐을 일컫는 말을 막역지교(莫逆之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중요한 곳을 이르는 말을 막중지지(莫重之地),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구막추(窮寇莫追), 매우 무지하고 우악스러움을 일컫는 말을 무지막지(無知莫知), 가는 사람은 붙잡지 말라는 말을 거자막추(去者莫追), 남의 활을 당겨 쏘지 말라는 뜻으로 무익한 일은 하지 말라는 말 또는 자기가 닦은 것을 지켜 딴 데 마음 쓰지 말 것을 이르는 말을 타궁막만(他弓莫輓),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닿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이 그릇된 뒤에는 후회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한 말을 서제막급(噬臍莫及),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이나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讀(읽을 독, 구절 두)은 ❷형성문자로 読(독)의 본자(本字), 读(독)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賣(매, 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讀자는 '읽다'나 '이해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讀자는 言(말씀 언)자와 賣(팔 매)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賣자는 물건을 파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물건을 팔고 나면 얼마를 벌었는지 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팔다'라는 뜻의 賣자에 言자가 결합한 讀자는 물건을 팔아(賣) 돈을 센다(言)는 것을 뜻했었다. 讀자에는 아직도 '계산하다'나 '세다'라는 뜻이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讀자는 돈을 세며 중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이러한 뜻이 확대되어 '읽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讀(독, 두)은 ①읽다 ②이해하다 ③세다 ④계산하다 ⑤구절(句節) ⑥읽기 그리고 ⓐ구절(두) ⓑ구두(읽기 편하게 구절에 점을 찍는 일)(두) ⓒ이두(두) ⓓ풍류의 이름(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책을 그 내용과 뜻을 헤아리거나 이해하면서 읽는 것을 독서(讀書),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 따위의 출판물을 읽는 사람을 독자(讀者), 글을 읽는 소리를 독음(讀音), 글을 읽어서 이해함을 독해(讀解), 지도나 도면을 보고 그 내용을 해독함을 독도(讀圖), 글을 막힘 없이 죽 내려 읽음을 독파(讀破), 글을 읽어서 익힘을 독습(讀習), 그림을 관상하며 음미함을 독화(讀畫), 책을 읽고 난 뒤를 독후(讀後), 단어 구절을 점이나 부호 등으로 표하는 방법을 구두(句讀), 자세히 살피어 읽음을 정독(精讀), 소리를 높이어 밝게 읽음을 낭독(朗讀),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읽음을 통독(通讀),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 등을 사서 읽는 것을 구독(購讀), 풀이하여 읽음을 해독(解讀), 차례나 방법 및 체계가 없이 아무렇게나 읽음을 남독(濫讀), 식사나 축사 등을 대신 읽음을 대독(代讀), 글을 빨리 읽는 것을 속독(速讀), 많이 읽음을 다독(多讀), 열심히 읽음을 열독(熱讀), 글에 맛을 들여 자세히 읽음을 세독(細讀), 글을 소리내어 읽음을 송독(誦讀), 소리를 내지 않고 글을 읽음을 묵독(默讀), 익숙하게 읽음으로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읽음을 숙독(熟讀),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세 여가 즉 겨울이나 밤이나 비올 때를 이르는 말을 독서삼여(讀書三餘),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 버렸다는 뜻으로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를 잃어버리는 것 또는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을 독서망양(讀書亡羊), 책을 읽음으로써 옛 현인과 벗한다는 말을 독서상우(讀書尙友),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또는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삼매(讀書三昧), 글 읽기를 백 번 한다는 뜻으로 되풀이 하여 몇 번이고 숙독하면 뜻이 통하지 않던 것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을 독서백편(讀書百遍),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주경야독(晝耕夜讀),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갠 날에는 밖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비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청경우독(晴耕雨讀) 등에 쓰인다.
▶️ 書(글 서)는 ❶회의문자로 书(서)는 간자(簡字)이다.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적은 것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글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書자는 '글'이나 '글씨', '글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書자는 聿(붓 율)자와 曰(가로 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붓'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말씀'을 뜻하는 曰자가 더해진 書자는 말을 글로 적어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참고로 일부에서는 曰자가 먹물이 담긴 벼루를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書(서)는 성(姓)의 하나로 ①글, 글씨 ②글자 ③문장(文章) ④기록(記錄) ⑤서류 ⑥편지(便紙) ⑦장부(帳簿) ⑧쓰다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월 문(文), 글 장(章), 문서 적(籍)이다. 용례로는 책 또는 경서와 사기를 서사(書史), 편지를 서신(書信), 글 가운데를 서중(書中), 남이 하는 말이나 읽는 글을 들으면서 그대로 옮겨 씀을 서취(書取), 책을 넣는 상자 또는 편지를 넣는 통을 서함(書函), 글씨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을 서가(書家), 글방을 서당(書堂), 글씨와 그림을 서도(書圖), 책의 이름을 서명(書名), 대서나 필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서사(書士), 글자를 써 넣음을 서전(書塡), 책을 보관하여 두는 곳을 서고(書庫), 남편의 낮은 말서방(書房), 책을 팔거나 사는 가게서점(書店), 이름난 사람의 글씨나 명필을 모아 꾸민 책을 서첩(書帖), 글씨 쓰는 법을 서법(書法), 유학을 닦는 사람을 서생(書生), 글방에서 글을 배우는 아이를 서동(書童), 글씨와 그림을 서화(書畫), 문서를 맡아보거나 단체나 회의 등에서 기록을 맡아보는 사람을 서기(書記),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을 서도(書道), 책 내용에 대한 평을 서평(書評), 글자로 기록한 문서를 서류(書類), 책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을 서재(書齋), 문자의 체제를 서체(書體), 참을 인 백 자를 쓴다는 뜻으로 가정의 화목은 서로가 인내하는데 있다는 말을 서인자일백(書忍字一百),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서불차인(書不借人), 편지로 전하는 소식이 오고 간다는 말을 서신왕래(書信往來),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함을 이르는 말을 대서특필(大書特筆), 책을 빌리면 술 한 병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책을 빌릴 때와 돌려보낼 때의 사례로 술 한 병을 보낸 것을 이르는 말을 차서일치(借書一瓻), 영 땅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설명한다는 뜻으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대어 도리에 닿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영서연설(郢書燕說),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를 잃어버리는 것 또는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망양(讀書亡羊),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또는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삼매(讀書三昧), 글 읽기를 백 번 한다는 뜻으로 되풀이하여 몇 번이고 숙독하면 뜻이 통하지 않던 것도 저절로 알게 됨을 이르는 말을 독서백편(讀書百遍), 소의 뿔에 책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소를 타고 독서함을 이르는 말로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하는 데 힘쓰는 태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각괘서(牛角掛書), 눈 빛에 비쳐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가난을 무릅쓰고 학문함을 이르는 말을 영설독서(映雪讀書), 저지른 죄가 너무 많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는 말을 경죽난서(磬竹難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