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부터 이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의 성과로 기안84가 MBC 연예대상의 유력 후보가 되고 하반기에도 그만큼의 성과를 타 예능 프로그램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 산다>는 꾸준히 MBC 대표 예능으로서의 위명을 지키고 심지어 어제 방영분에서 기안84의 마라톤 에피소드가 대박을 쳤다. 이 정도면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MBC 연예대상은 기안84 몫이 맞다.
어떤 의미로도 기안84의 대상 수상은 입지전적인데, 전문 방송인이 아닌 웹툰 작가가, 그것도 MC 능력이 있는 안정환 같은 타입이 아닌 '태어난 김에 사는' 캐릭터로 경력을 쌓고 심지어 수많은 구설수를 겪으면서도 대상을 타는 건 전무후무한 일임.
그런데 그의 구설수라는 게 뭐냐. 과거 그의 작품 <복학왕>에서 1. 청각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 비하 및 희화화 논란 2. 봉지은 캐릭터를 통한 젊은 여성 취준생 비하 논란이 있었음. 이 중 2가 특히 난리가 나서 <나혼산> 하차 청원도 있었던 거고.
이 정도로 논란이 있던 사람이면 방송 일이 끊기거나 절대 상을 타선 안 된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자신의 명백한 과오를 스스로도 계속 인식하고 그가 잘 나갈 때도 언론과 대중은 그 과오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게 내가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얘기다. 즉 기안84가 <태계일주>의 활약이나 <나혼산>에서의 달라진 모습으로 사랑받는 만큼, 과거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본인과 우리 모두 잊진 말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얘기는 기안84에게 주어진 기회가 남성에게만 허락된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하고 인지해야 한다는 거고.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더 나아질 수 있고 그 가능성을 미리 막을 필요는 없다. 어떤 의미로든 올해 방송에서의 기안은 <태계일주>에선 편견 없는 태도로 인도 사람들과 교류했고 <나혼산>에선 더 사회화 되고 더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후자의 경우엔 이시언, 성훈 대신 키, 코쿤, 이주승처럼 덜 한남적인 남성들이 자리를 차지한 덕이 크다고 보는데(물론 분위기가 덜 한남적이라는 게 남성 출연자 위주 구성이란 것에 대한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환경의 변화로 누군가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응원할 일이지 비웃을 일은 아니다.
다만 변명의 여지 없을 만큼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럼에도 계속 기회를 얻고 그 덕에 새로운 이미지를 얻는다면, 그 기회에 대한 감사함을 인지하고 감사한 만큼 과거의 잘못을 안고 가는 청교도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안고 그 무게를 지고 가는 게 '성장'이라면 이미지만 바꾸고 과거의 일이 없던 것처럼 사는 건 '세탁'이다. 내 기준에 장동민은 '성장'이 아닌 '세탁'을 한 연예인이다. 난 진심으로 기안84는 '성장'했길 바란다. 적어도 혐오로 장사하는 박태준보단 그가 양심적인 작가라고 나는 믿는 편이다. 그에 대한 내 양가적 입장은 예전 글들에서 얘기했고.
이 정도면 할 얘길 거의 다했지만 굳이 젠더 맥락을 한 번 더 얘기하겠다. 이처럼 기안84에게 주어진 '성장'의 기회(실제로 성장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가 여성에게도 주어지는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려운 게 방송계에서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비하 3관왕을 한 여성 방송인은 없어서다. 요즘처럼 젠더갈등이니 혐오니 하며 그 어느 때보다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혐오발화가 논란이 되는 시기에 기안84 정도의 기회를 얻는 건 굉장한 특혜다. 그가 특혜를 얻어 잘못이란 게 아니라 그게 특혜가 안 될 정도로 더 많은 여성들의 잘못에 대해 관대해지는 게 필요하단 거다. 몇 달 전 피드에서도 얘기했던 예원 논란을 떠올려 보라. 그게 방송에서 그토록 오래 퇴출될 일이었나? 기안84랑 비교해봐라. 그는 오랜 시간 방송에서 퇴출됐고 별 거 아닌 그 과오조차 '세탁'하는 대신 자기 캐릭터로 받아들였다.
기안이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면 좋은 일이다. 그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도 좋고. 그렇다면 그런 기안만큼 앞으로 과오를 저지른 많은 여성들에게도 기회가 가면 좋겠다. 나는 기안84의 연예대상을 반대하거나 냉소하는 대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리고 그들에게 '성장'을 전제한 관용이 베풀어지길 요청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s://www.instagram.com/p/Cy8RXRxRF8_/?igshid=MzRlODBiNWFlZA==
첫댓글 진짜 항상 사람이 아떻게 저렇세 말씀하실까...
와....
말 진짜 잘 한다 와
좋아요 백개 누르고 싶음
기안이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면 좋은 일이다. 그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도 좋고. 그렇다면 그런 기안만큼 앞으로 과오를 저지른 많은 여성들에게도 기회가 가면 좋겠다. 나는 기안84의 연예대상을 반대하거나 냉소하는 대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리고 그들에게 '성장'을 전제한 관용이 베풀어지길 요청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너무 맞는말이다.. 근데 난 올해 mbc연예대상은 안볼란다
위근우 복제해주세요
어떤 의미로도 기안84의 대상 수상은 입지전적인데, 전문 방송인이 아닌 웹툰 작가가, 그것도 MC 능력이 있는 안정환 같은 타입이 아닌 '태어난 김에 사는' 캐릭터로 경력을 쌓고 심지어 수많은 구설수를 겪으면서도 대상을 타는 건 전무후무한 일임.
이거 ㅈㄴ 공감이다…
인스타 좋아요 중복으로 누를 수 있게 해줘
우와...
진짜 하나하나 띵언에 공감한다..나 진짜 위근우님 인스타 글 보면서 매번 감탄하고 머리 띵해 나보다 젠더감성 더 깊으신거같애 불편하던 점을 너무 조리있고 이해하기 쉽게 잘 긁어주심
와 말을진짜 잘하신다
생각을 어떻게 이렇게 하시는지 궁금해
그리고 우리나라 남자는 죄짓고 반성안해도 그냥 나오는대 여자들한텐 꼬리표마냥 붙어서 발목 ㅈㄴ 붙잡는거 진짜 싫음
진심 너무나맞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