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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상당히 유명한 목사님들이 사용하고 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에서는 총회결의에 의하여 중보기도 용어 사용을 중지할 것을 결의하고 각 노회에 통보하였음. 남을 위한 기도 혹은 이웃을 위한 기도로 사용하도록 하였음. 1. 총회에서 사용을 중지할 것을 신문에 공고하였음 2. 성경 딤전 2:1 절에 도고, 엔튜크세이스라는 용어가 있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함이 적절함 3. 교단 헌법에도, 신도게요서에도, 대 요리문답에도 중보사역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중보사역을 훼손할 소지가 많으므로 사용중지 4. 중보기도하는 분들이 "내가 중보하여" "중보합시다" 등의 용어를 사용함니다만 잘못 사용입니다. 중보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여 속죄하여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사용한 용어입니다. 5. 중보자자격은 인성, 신성, 무죄를 갖추어야 됨니다. 아래 여러 설명 자료를 올려 놓았습니다. 잘 검토하여 많이 퍼가시어 알려 주십시요 딤전2:1절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과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로 되어 있다. 과거 선배들께서 번역할 때 중보라는 글을 몰라서 여기에 기록하지 않았을 까요. 중보라는 글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다리 역할을 하시어 구속의 재물이 되시면서 유일한 중보되시는 예수님이라고 하셨다. 중보자는 인성(人性) 신성(神性) 죄없음의 자격이 있어야 하고 그 분이 우리 위해 드리는 기도가 중보기도이다. 그런데 우리가 중보기도와 중보 용어를 잘 못 쓰면 주님의 구속사역을 폄하하거나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고신 교단 목회자님들까지 우리들간의 서로의 중보로 폄하하거나 도고기도를 중보기도로 사용하고 있음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부산의 p 교회 k목사님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통합측 목회자 까지도 잘못 되었다고 하는 판인데!!!!!!!!!!!!!!! 기독방송에 말씀증거하시는 통합측 부산의 s 교회 y 목사님도 중보기도 용어 부당성에 대하여 방송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개혁신앙의 뿌리인 칼빈 선생의 인도에 따라 "중보기도"라 하지 않고 "도고기도"라고 쓰고 있다. 기독교계가 중보기도 라는 용어 문제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기도는 어떤 모양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은 안된다 인간인 내가 중보한다든지 내가 중보자가 되어 기도한다든지 나아가 중보기도 한다는 말이 쉽게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선교단체와 대형교회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이다 심지어 예장총회(합동)에서는 사용금지 공고를 내어도 그냥 사용하고 있고 성경, 헌법, 총회결의에 비추어 봐도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 자행되고 있음은 걱정되는 일이다 이 문제는 이단여부를 검토해야할 사항이 안되나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 아래 여러 자료를 올려 놓고 퍼 왔다 참고하여 숙고하여 주기 바란다 현 총회장(합동2006-2007) 장차남 목사님(온천제일교회) 께서 총회신학부 중보기도에 대한 연구조사위원장으로서 총회에 보고한 내용도 아래에 포함되어 있다. 아래 중보기도 책자는 아예 중보한다는 말이 수다하게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중보 용어 사용이다. 우리의 중보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이시다라고 성경은 밝히 알려주고 있다. 신학 부재의 글이다. *** 대적의 문을 취하라 (위력있는 중보기도를 위한 지침서) 신디 제이콥스 지음 고세중 옮김. 조이선교회 출판부. (서론) ... 이제는 중보해야 할 때이다. 라고 말슴하신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1. 중보로 부르시다. - ...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함니다.... p 31.하단 " 리즈 하월즈는 후에 이렇게 기록함니다. " 이 악한 세상에서 성도들을 위한 성령의 중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짐니다." 3. 정결한 영의 원칙 - p41 "중보자란 하나님의 비밀이 기도로 올려지게 하기 위하여 그분이 직접 비밀을 알려주시는 사람입니다" 5. 중보의 사역 - 딕 이스트만 " 중보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싸워 주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중보는 우리 자신을 가장 그리스도아 동일시 하는 활동이다. 중보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에 예쉬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분은 중보하는 삶으로 일관하셨다." 그 외에 여러 장에 나와 있다.... ***"중보기도" (세중보자 -성자.성령.성도.)1998. 8/10 이정현목사 저 베드로서원 간 (서언)- ...p15 '중보에는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중보자의 마음 중심에 있는것이다.'..문자적으로 엘리야의 기도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척박한 땅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성도는 사물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 서야 할 때가 있음을 보아 중보에 관한 정규남 박사의 정의를 수용함이 좋다.'....... 그러므로 본서의 일차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성도의 중보기도에 관한 성경적 입장을 밝히는데 있다. 세 중보기도자의 성경적 배경, 근거, 위치, 내용, 태도, 그 력과에 대해 주경학적 입장에서 연구될 것이다. 두번째 목적은 본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훌륭한 중보기도가 디도록 돕는데 있다........ 누가를 통해 예수님은 이웃의 필요를 위해, .... 그리고 자녀를 위해 중보하라고 가르치신다. .....저들의 하나됨을 위해서 충만한 기쁨을 위해서,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서, 성결을 위해서, 도한 미래의 공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심과 교훈을 본받아 중보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중보기도 라는 용어 사용은 잘못이다. ****남을 위한 기도를 도고라고 성경에 되어 있다.*** '도고'는 헬라어로 '엔튜크세이스' . 딤전 2:1, 딤전 4:5 절에 있다. 그 뜻은 인터뷰, 사회적 교제등의 개념이다. 딤전 2:1에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함을 말한다. 딤전 2:5에서 '중보'라는 헬라어는 '메시테스'이다. 이 말의 뜻은 화친이나 계약을 맺기 위해 두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도고와 중보라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다르다. 그래서 중보자이신 예수게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드리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도고라고 하는 것이 맞다. ** 중보자의 자격은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가져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성경, 기독교 강요, 헌법 대요리 문답, 신도게요서, 조직신학등 자료) ** 그런데 죄 많은 우리가 어떻게 중보자가 되어 기도하나 다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이다.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주어 우리를 대속하여 주시어 하나님과 인간의 다리 역할을 하신 주님의 역할을 중보라 일컫는다. ****** 중보기도자료를 참고하세요***** 기도부탁을 하면서 중보기도 한다고 하거나 내가 중보한다고 하는 말은 잘못되었다. 중보에 대한 용어는 신약성경에 예수님에 대하여 나온 말씀인데 ** 헌법중 신도게요서(www.gapck.org 총회 홈페이지에 가면 상단에 헌법 규칙 신조 신도게요서등이 나와 있음 )에 보면 "중보그리스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 그리고 헌법 대요리 문답에도 중보에 대하여 중보자에 대하여 문답이 나온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도 칼빈의 주석에도 예수님의 중보사역에 대하여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 고 있다. ** 칼빈의 기독교 강요(김문제역, 세종문화사간,1977 년) p 443 제 12장 - 14장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분과 성육신, 그리스도가 육신을 취하심, 중보자의 두 성품이 한 위격을 이룸등. 제 12 장 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직분을 다하기 위하여 인간이 될 필요가 있었다. 1. 중보자가 하나님과 동시에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 (1-3 항) 1). 중보자가 하나님과 동시에 인간이 되어야 했다(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시기 위하여)(첫째번 이유) (1)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대한 문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었어야 할 분이 참 하나님도 되고 참 인간도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누가 왜 그것이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순하거나 절대적인 필연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하늘의 작정, 즉 인간들의 구원이 의존하고 있는 작정에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 그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한 아무도 화평을 되찾기 위한 중개자 역할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비천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보자를 말하려고 할 때 바울은 옳게 또 분명하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다) 딤전 2:5)라고 알려 주었다. 2. 중보자는 진정한 하나님과 진정한 인간이 되어야 함(둘째번 이유) 이 사실은 중보가 성취했어야 할 일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였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의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시켜 주므로서 인간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에게로나 지옥의 후사들을 하늘나라의 후사로 옮겨 주신 것이다... 3. 참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기 위하여는 육신을 입어야 완전 순종할 수 있음(세번째 이유) ...... 요컨대 오직 하나님인 것 뿐으로서는 그것을 이길 수도 없기 때문에 그는 신성에다 인성을 결합하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한 편의 연약함을 죽음에 순복시켰고 또 다른 한편의 힘을 가지고 죽음과 겨루어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획득하기 위함이였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 어느 하나라도 박탈해 버리는 자들은 결국 그의 존엄과 영광을 훼손하고 그의 자혜(慈惠)를 몽롱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더구나 이에 못지않게 사람들에 대해서도 큰 해를 주어 이리 하여 그들의 신앙을 동요하게 하고 전복시켜 버리게 되는 데 그 이유는 그 터 위에 서지 않는 한 조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칼빈의 주석 9권( 성서교재간행사 한국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 존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역편 1979. 12.5 발행) p 432-433 딤전2:1절의 주석 <물론 나는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네 종류의 기도 가운데 세 기도의 차이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프로슈게는 헬라어에 있어서 온갖 종류의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요, 데 세이스는 특별한 요청이 담겨있는 이상과 같은 형식의 기도를 뜻한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유와 종의 관계에 있다. 엔튜크세이스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에 대한 바울의 일상적인 단어로서 이것이 라틴어로는 'intercessiones' (중재의 기도)이다.> 성경에 도고(intercessiones, )라고 되어 있는 용어를 중보기도라고 쓰는데 문제가 있다.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잘 못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중보자가 되어 기도해 준다고 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므로 ** 총회에서는 중보기도 용어 사용중지** 함 2002 년 9 월 24 일 - 27 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수원 창훈대교회에서 열려 총회 신학부에서 중보기도에 대한 사용중지 공고 와 각 노회를 통하여 사용 하지 말 것을 통지할 것을 결정했다. 2002 년 6 월 21 일자 본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 17 페이지에 <중보기도사용 중지에 대한 공고> 문이 나왔다. 총회장, 신학부장명의로 발표되었다.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대 유행이라 분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부전교회 원로목사님이신 한병기 총회 증경총회장께서 총회 목사 장로기도회에서 또 총신대 100 주년 기념대회에서 말씀하신 내용중 중보기도라는 용어 사용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 하셨다. 총회 홈페이지에서 퍼온글과 함께 몇자 참고로 올린다. 이미 작년 11 월인가 기독신문에 총회 신학부에서 이 건을 다루고 2000 년 진주 총회에서 사용 부당성을 발표 했음에도 아직 사용하여 성도로 하여금 오도하고 있음을 통탄한 기사가 싫렸었다. ---글 순서--- * 1. 장로교통합교단 한국장로신문 칼럼"기독교 용어해설" 32 자료 * 2. 2000 년 총회(장로교 합동교단)보고서 신학부 중보기도보고서 * 3. 중보기도의 문제점- 인터넷 자료 * 4. 중보기도는 카토릴적 성공회적 발상이다 - 인터넷 자료 * 5. 중보기도에 대한 소견 - 인터넷 자료 1. <<통합측한국장로신문에 중보기도에 대한 칼름> > 총회용어위원회 전문위원(숭실대교수)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칼름을 발표 -- <기독교 용어해설32> 2002 7/6. p9 "중보"(仲保)의 사전적 뜻 풀이는 "두 사람사이에서 일이 성사되도록 주선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은 일" 또한 "중보자"의 뜻 풀이는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시키고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 예수를 이른다"고 되어 있다. 기독교서회편 "그리스도교 대 사전"에서도 "중보자"에 관하여 "결정적인 화해자로서의 중보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역할을 맡은 분이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그리스도이며 그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은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즉 유일회적인 희생제물이 됨으로써 영원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로 주장하고 있는데 반하여 로마카토릭 교회에서는 성모마리아 역시 중보자라는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다." 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딤전 2 장 5 절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하여 예수님만이 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보자라고 할 때는 위의 뜻풀이와 동일하게 , 또한 성경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을 가리킨다. 또한 중보기도는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중보기도란 이처럼 예수님께만 해당하는 기도다. 다시말하면 중보기도란 중보자(예수님)가 하는 기도란 뜻이며 중보자(예수님)가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 시키는 기도라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 용어다. 우리는 이 중보기도의 뜻을 확실히 알고 이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교회안에서 중보기도란 말을 쓰는 것을 종종 듣게 되는데 그 의미는 "이웃"을 위한 기도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이웃만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을 중보기도라 부르면서 중보기도모임, 중보기도회 같은 이름도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에서 중보자 예수님이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자하는 기도가 중보기도임을 분명히 안 이상 이웃을 위해서 예수님이 아닌 우리가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기도를 할자격이 없다. 다만 예수님 이름으로 그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 이웃을, 때로는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이웃을 위한 기도"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우리가 감히 할 수도 없는 중보기도라는 말을 써야 한단 말인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우리는 항용 "주기도"라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보자(예수님)가 중보의 기도를 하는 것을 우리는 중보기도라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우리들의 기도를 중보기도라 부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2. <<2000 년 총회보고서 신학부 중보기도에 대한 보고서 > > ** 사건개요 ** 1.타인을 위한 기도가 중보기도사역으로 보고 교회안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 84회 총회에 헌의된 바가 있어 연구하게된 것이다. 2. 중보의 언어학적 배경 및 용어 1). 언어학적 배경 영어성경에는 "mediati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있지 않으나 희랍어 신약성경안에는 "중보자(메시테스)"라는 용어가 6 회 사용되어 있고 이와 동일 어원을 지닌 "헤메시투세"가 하나님을 주어로 한번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양자간을 중재하며 이로써 일종의 보증을 제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중보자는 양자간을 중재함으로써 양편의 대리자가 되며 또한 양자간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정의가 실행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보증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희랍어(헤메시투세)가 사용되어 있는 신약성경안에는 화해의 의미가 한층더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의 효율성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히브리어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화해시킨 시로운 중재자라는 의미를 한층 더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적용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이셨는데 이는 항상 "이질적인 것", "사이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서 이 용어는 흔히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대한 이미에 있어서 대화의 통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중보라는 용어의 용례 중보라는 용어는 기독교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는 극히 모호한 용어 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종교에는 필연적으로 자연적인 것과 초 자연적인 것, 그리고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구분되어 있으며, 다양한 존재의 범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될 경우 여기에는 반드시 일종의 중보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 중보의 개념이 종교적인 개념에 가까위 질 수록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수립하고 이를 유지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중보의 개념은 반드시 인간의 죄악성에 대한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서로 다른 두 양식 사이의 분리에 대한 개념을 한층더 보편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반역과 불순종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호소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지 못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가 악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도 악한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일련의 계약들을 준수해야만 했으나 하나님의 모든 ㄷ도우심에도 불구하고 결코 선을 행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자신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그 스스로 방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를 인간에게 보내심으로써 강구하셔야만 했다. 중보자나 중보의 뜻은 "사이에 들다",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내려 오시는 것은 납득이 되긴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인간의 죄로 불가능해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3. 중보란 무엇인가? 중보의 문자적인 개념을 살펴보면 먼저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중보하다(intersecede)는 "사이로 들어가거나 통과하다", "서로 다투거나 사람들을 화해시킬 목적으로 당사들 사이에서 활동하다", "중재하다", "조정하거나 중재하다"의 조정을 의미한다. 조정한다(mediate)는 (1)양 극단 사이에서 양자 모두의 친구로서 당사자들을 중재하다. (2)화해시킬 목적으로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협상하다.(3)화평을 조정하는 중보의 뜻으로 나타난다. 즉 조정(mediation)을 정의하고 중보가 조정을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중보의 개념은 조정하고 양자 사이에 들어가고 서로를 위해 변론하고 법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해 한 쪽을 대표하지만 그러나 한쪽에 국한되지는 않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중보의 히브리어 "파가(paga)"는 "만나다"라는 뜻이다. 시 85:10 에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라고 했다. 긍휼과 진리와 의와 화평의 하나님은 죄인에게 접촉될 수 없다. 죄를 멸하시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야만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죄인인 우리가 의 자체가 되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요 14:6 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오 올 자가 없느니라"한 말씀과 딤전 2:5 에 "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다. 이로 보건데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중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4.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딤전 2:1-2 에 보면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한 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를 섬기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 기도의 네가지 종류인데 그 중 세번째 도고하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도고(intercession prayer)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중보기도의 능력>이란 책에 보면 (35p) 중보기도에 관련된 용어로 첫째 합심을 말한다. 합심기도의 중요서에 대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고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중보기도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표현이 아니고 행 1 에 나타난 120 명의 성도들이 합심기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지, 이것을 중보기도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의 중보기도에 보면 전체교회와 국가와 성직자와 귀족과 평민을 위해 중재하고 고인을 기리는 기도의 형태로 성공회 교회법 55조(1604년)는 설교에 앞서서 설교자들이 이 기도를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기원을 보면 고대의 전례에서 설교나 복음서 낭독 이후에 등장했던 흔히 연도 형태의 도고 중보기도에 유래했다. 이것은 로마카토릭의 성 금요일 전례의 기도문과 일반 라틴 미사문의 독립된 오레무스에 잔존하여 있다 9 세기경 사제는 일요일과 축일의 미사에서 설교후에 모든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인을 추모아였다. 처음에 그것은 사제의 재량에 맡겨졌으나 점차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펴 나갔다. 오늘날 중보기도는 대학교와 재판설교와 국가 절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계에서 중보기도라 하여 많은 교회들이 사용하는 것은 유감그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맺는 말 조직신학 기독론(p234)> 에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중보의 자격은 성경에 명시되어 잇다. 중보의 자격은 1) 그는 반드시 사람이실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가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성을 취해 입으신 이유는 그가 우리 인류를 구속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2) 그는 반드시 무죄하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는 반드시 신적 인격이실 것이다. 위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개인의 기도를 부탁받아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다만 " 합심기도", "개인기도", "부탁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보아야 겠다.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소위 요즈음 말하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함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사역을 약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기도를 이웃을 위한 (남을 위한)기도라 함이 합당하다고 본다. 이상 85회 총회에 보고한 내용 발취한 것임 ******************************************************* 중보기도란 ? 이름:조영식 (dna23key@korea.com) .홈페이지:http://korea21net.com .작성일:2001.4.22(일) 22:43 .way-board.htm (8KB, DN:14) 3. <<중보기도의 문제점 >> 위에 기사는 2001 년 2 월 28 일에 중보기도의 문제점에 다한 나의 질의가 기독신문에 기고 되였다 <월간목회지 3 월호> 에 특집으로 기고된 내용이다 장신대교수 정장복 교수에게 질의한 문건을 월간목회에서 내가 올린 내용대로 기사화된것이다 나는 오늘 주일밤 설교중에 중보의 뜻에 대하여 설교를듣고 이글을 다시 올리는 것이므로 내가 착각을 하였는지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민중서관 국어대사전에 수록된내용 중보(仲保)(1)둘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사람 (2)<기독교>신과 사람과의 사이를 유화(宥和)매개 (媒介)하는일. 그리스도는 신과 사람과의 사이에 서서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인류를 속죄(贖罪)하고 구제(救濟)하였음 중-보(重寶) 귀중한 보배. 귀중한 물건. 중보자(仲保者) 중보의 역활을 하는 사람 곧, 그리스도. 성경말씀 데모데전서 2 장 5 절 "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中保)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라 " 문제점 1 여기에 기록된 한문 中保 는 仲保(국어대사전에 기록됨)의 해석 잘못이며 (원어의번역 잘못을 전문가 시인함) 문제점 2 설교시간에 인용한 로마서 15 장 30 절 에는 "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 로 되여있음 여기에는 중보기도의 뜻이 없음. 문제점 3 디모데전서 2 장 1 절에서 5 절 까지 1 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懇求)기도와(祈禱)도고와(禱告)감사를(感謝)를 하되" (문제) 도고(禱告)=(원어=엔툭세이어): 해석: " 만남.모임.담화.인사.말.기도.탄원.애원.기원. 중재.조정.아무를 위한 기도" 등. 여기에 중재란 용어는 (1) 다툼질의 사이에 들어 화해(和解)를 붙임. 조정(調停) (2) <법> 제삼자 또는 제삼국이 쟁의(爭議)를.... (3) <사> 노동쟁의 조정법..... 위에 나렬 된 국어의 내용이라면 중보기도란 우리들이 임의로 하여서는 모순이 있음을 상기 시킴 또한 중보자와 중보가 다르다고 하는 설교에는 이해가 안됨니다 예 : 중보자는 예수님이시고 중보는 사람이 할수 있은 것이라면 .국어사전에 나 디머데 전서 2 장 5 절에는 " 중보(中保)도"(성경대로임..원래는 仲保가맞음)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라 여기에서 중보를 사람이 할수있다고 한다면 위에 있는것과 같이 중보기도 하는 나도 예수님이 될수있다는 결론이 됨니다 문제점 4 도고의 관주해석 의 잘못 원어의 도고는 위에 나열된것과 같이 만남. 모임.담화.인사.말.기도.탄원.애원.기원. 중재. 조정. 아무를 위한 기도 .로 되여 있는데 왜 ("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를 의미함 ") 이라고 했느냐 하는 것이다 월간 목회지에 기고된 내용과 기독신문에 재게된 내용을 보면 신학자 들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자제 할 것 *************** 4. <<중보기도는 카톨리적, 성공회적 발상입니다 > > 아래에 몇개의 토를 달았지만 잘못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더러 계신듯해서 간단한 글을 올립니다. 원래 카톨릭에서의 신부의 위치는 메디아 코트릭스(협동 중보자}입니다. 죄인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막고 앉아서 자신들이 예수님의 중보자 역할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고해성사가 바로 그런 것이지요. 카토릭신도들은 하나님께 직접 죄의 용서를 구하지 못하지요. 대신 신부들에게게 고해하면 "네 죄를 사하노라" 그러지요. 그러면 신자들은 죄가 사해진다고 믿도록 가르칩니다. 기도도 하나님께 직접 하지못하고 성인들의 이름으로 간접적으로합니다. 카토릭신도들은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직접 나가서 기도할 수 없다고 세뇌되고 그 결과 중간에 성인들을 통해서 하는것입니다. 물론 신부들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대신 기도해주지요. 이런것을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이야말로 도둑놈들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직접 나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도록 지성소의 휘장을 찢어주셨는데 이제 그들은 그 권리를 도적질한 것입니다. 성공회도 중간쯤 개혁한 교회라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매우 희미합니다. 한국에서 개신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런 용어들을 남발하지요. 대천덕신부같은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예수원이나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같이 범하고있습니다. 그의 신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불신자 혹은 다른 사람들의 중보자쯤으로 착각하면서 중보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전적으로 무지의 소산이고, 신학적으로 매우 잘못된 용어입니다. 하루 속히 이런 잘못된 흐름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도고란 용어가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할때는 그 단어를 가르치고 사용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란 용어를 생각없이 사용해운 분들은 당장 그것을 끊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바른 용어의 사용을 권합니다. 자신이 협동중보자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 5. <<중보기도에 대한 소견 > > 지금 게시판에서는 중보기도에 대한 견해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견해를 대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용어 사용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성도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고 중보기도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그래서 교계에서는 이 용어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어버린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뿐만 아니라 다른 용어에 있어서도 검토하여 교정을 해야한다. 성경에서 중보라는 용어는 죄없으신 예수님께만 적용되어진 용어이다.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는 예수님뿐이심을 밝히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남을 구원키 위해서 였는데,오늘의 누가 남을 위해서 대신 죽음으로서 그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고 하여 예수님과 동등되게 메시야적 죽음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은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구원이지만 우리의 대신 죽음은 한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일뿐이다.그렇기때문에 메시야적 죽음이라고 말할수가 없듯이,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 주님께만 적용되는 중보라는 용어를 붙여서 중보기도라고 표현함은 주님의 중보사역을 약화시키든지 성도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있어서 교단에서는 이 용어 사용을 중지시켰다고 여겨진다. 성경 딤전2:1에 도고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고집함은 어떤 연유에서이겠는가? 오늘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준비찬송" 등의 용어도 너무 생각없이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는가? 나는 나의 목회 현장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처음에는 습관적으로 그런 용어들이 튀어나왔었는데 조심하였더니 고쳐졌다. 중보기도에 대해 조영식님이나 여러분들이 올바른 해석을 나타내셨는데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 하나님께 성령님의 도움으로 사정을 아뢰는 것인데 예수님 이름으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경우를 목격하기 쉽지않은가? 이런것은 결국 우리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별생각없이 사용하여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고치기가 어색한 것인줄 안다."그런 용어를 사용하여 피해를 본것이 있는가?"라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피해가 있기때문에 사용치 않아야 하는가? 올바르지 않으면 고치고 사용을 중단할수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용어 사용이 드러난 피해가 별로 없을지 몰라도 개인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만 살펴서는 안된다.그만큼 이 용어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백성기 신학적 성경적으로 맞다고 동의하면서 쓰고 있는것이 잘못 되었음 아마 1980 년대까지도 이런 용어 별로 들어본적 없는데 90 년부터 부쩍 선교단체에서 부터 나왔어요 합동교단(부전교회 충현교회 등) 헌법 과 통합교단(영락교회 등) 의 헌법을 보면 예배의식에서 기도항에 합동교단에는 기도난에 간구다음에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라 되어 있고(헌번 만들때부터 있음) 통합교단에서는 이 항을 아예 "중보기도"라고 개정하여 쓰고 있음. 같은 교단 목회자도 틀렸다고 함. 방송도 되었음. 07·01·26 11:14 삭제 백성기 대한예수교장로회헌법 대요리문답 제 41문 어찌하여 우리 중보를 예수라 칭하였는가? (답)우리의 중보를 예수라 칭한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었다. (마 1:21) 문 42. 왜 우리의 중보를 그리스도라 칭하였는가? (답) 우리의 중보를 그리스도라 칭한 것은 낮아지고 높아지신 그의 신분에서 그의 교회와 선지자 제사장 및 왕의 직분을 행하게 하시려고 한량없이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고 성별되시어 모든 권위와 재능을 충만히 받으셨기 때문이었다. (요 3:34, 시 45;7, 요 6:27, 마 28;18-20, 행 3:21-22, 눅 4:18, 21, 히 5:5-7, 히 4:14-15, 시 2:6, 마 21:5, 사 9:6-7, 빌 2:8-11) 07·01·27 10:40 삭제 백성기 중보기도나 중보에 대한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음에 대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최대 교단인 합동 교단 총회에서 사용중지 하기로 했음은 매우 중요한 결단이라 봄니다. 금번 새찬송가 서론에 찬송 찬양에 대한 격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교리상 성경상의 잘못을 한국 교계가 하고 있습니다. 바로 합시다/. daum.net/jbgdproblem 에 와서 반론 찬성론을 올립시다. 교수님 목회자 여러분 피하지 맙시다.!!! 07·02·17 10:44 삭제 백성기 *** 대적의 문을 취하라 (위력있는 중보기도를 위한 지침서) 신디 제이콥스 지음 고세중 옮김. 조이선교회 출판부. (서론) ... 이제는 중보해야 할 때이다. 라고 말슴하신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1. 중보로 부르시다. - ...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함니다.... p 31.하단 " 리즈 하월즈는 후에 이렇게 기록함니다. " 이 악한 세상에서 성도들을 위한 성령의 중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짐니다." 3. 정결한 영의 원칙 - p41 "중보자란 하나님의 비밀이 기도로 올려지게 하기 위하여 그분이 직접 비밀을 알려주시는 사람입니다" 5. 중보의 사역 - 딕 이스트만 " 중보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싸워 주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중보는 우리 자신을 가장 그리스도아 동일시 하는 활동이다. 중보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에 예쉬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분은 중보하는 삶으로 일관하셨다." 그 외에 여러 장에 나와 있다.... 07·02·20 09:44 삭제 백성기 ** 칼빈의 주석 9권( 성서교재간행사 한국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 존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역편 1979. 12.5 발행) p 432-433 딤전2:1절의 주석 <물론 나는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네 종류의 기도 가운데 세 기도의 차이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프로슈게는 헬라어에 있어서 온갖 종류의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요, 데 세이스는 특별한 요청이 담겨있는 이상과 같은 형식의 기도를 뜻한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유와 종의 관계에 있다. 엔튜크세이스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에 대한 바울의 일상적인 단어로서 이것이 라틴어로는 'intercessiones' (중재의 기도)이다.> 07·02·20 09:48 삭제 |
백성기 | 중보와 도고의 이해 작성자 이석봉 작성일 2007-12-09 조회수 64 중보와 도고의 이해 아직도 중보와 도고가 혼동되어 사용되는 듯 합니다. 그 어원을 잘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하길 바래서 올립니다. 1. 도고 성경에 도고는 딤전 2:1절에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엔툭시스"인데 영어로는 in·ter·ces·sion(인터쎄션)으로 번역합니다. 그 의미는 중재, 조정, 알선이며 성경에서는 (남을 위한) 기도[간청, 진정]로 사용하였습니다. 2. 중보 도고는 여러 곳(갈 3:19; 딤전 2:5; 히 8:9, 9:15, 12:24)에 나타난다. 헬라어로는 "메시테스"이며 영어 동사는 me·di·ate(미디에잍) 이고 라틴어 「한가운데에 두다」의 뜻에서〕왔으며, (중간에서) 조정[중재]하다, 화해시키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명사는 me·di·a·tor(미디에이더)로 중재인, 조정자, 매개자;[the Mediator]를 뜻하며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이로 보건데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것은 도고(남을 위한 간청 기도)이며 중보는 보상을 통한 화해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속죄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성숙된 한국 교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기도는 중보가 아니라 도고 임을 분명히 깨닫고 바르게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중보 기도는 속죄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도고는 보상없는 중재요 중보는 보상있는 중재입니다. 샬롬 |
- 네이버 발췌
중요한 내용 색이랑 굻게하고 밑줄그엇어요^^
길어서 보기 힘드시면 그거라도 보시길~ㅋㅋ
아주 정리를 잘해놓으셨더라구요
어떤가요?
"도고하다" 로 사용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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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넹!!!! 엄청 길다... @_@
도고하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인영아.. 불량은... 뭐 기계가 불량이다 라고 할때 불량이란다..ㅋㅋㅋㅋ 분량!!!!ㅋㅋㅋㅋ
이 글 기독교 자료실로 고고씽~~
윤용안 목사님?
얼른 다시 이길로 들어서시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