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에서 둔치로 내려서
오월이 하순에 접어든 넷째 토요일이다. 지난 주말부터 주중은 연일 흐린 날씨에 비가 내렸다. 어제부터 하늘이 맑아지고 대기는 무척 쾌청했다. 금요일 오후 창원으로 돌아와 이웃 아파트단지 상가 주점에서 3인 회동을 가졌다.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 친구와 예전 근무지 동료로 퇴직한 선배였다. 부처님 오신 날 거제 국사봉에 올라 채집한 곰취로 가는 봄날 곡차를 들었다.
날이 밝아온 토요일 아침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달여 놓고 길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창원역에서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둘렀다. 동판저수지 들머리 습지에 심어둔 연은 싱그러운 잎을 펼쳐 자랐다. 주천강을 지난 들녘 일모작지대는 모내기 준비로 일손이 바빠지는 즈음이었다.
면소재지를 지나니 비닐하우스에 겨울을 넘겨 키운 수박은 영글어 출하가 시작되고 있었다. 농부들을 여름 벼농사보다 뒷그루로 심은 수박농사에서 더 많은 소득을 보는 듯했다. 모산에서 북부동을 지난 유청에서 내렸다. 그곳 비닐하우스는 당근을 심어 수확을 앞둔 때였다. 유청마을 한복판 오래 전 폐교된 초등학교는 사립대학 화가 교수가 작업실을 겸한 미술관으로 운영했다.
마을 안길을 걸어 강둑을 넘어 강가 대숲으로 나가봤다. 며칠 전 비가 흡족히 내려 죽순이 솟아나는지 궁금해 가봤더니 때가 아직 일렀다. 자동차를 외진 곳까지 몰아가 낚시를 하는 이들이 몇 명 보였다. 피부색과 체격으로 미루어 동남아인이 아닌 동유럽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로 추정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주말 여가 시간이면 그들 나름의 취미 활동을 누리는 듯했다.
강둑을 따라 유등마을로 내려갔다. 진영에서 흘러온 샛강은 창원과 김해 경계였다. 배수장 수문 근처는 노랑어리연이 점점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노란 꽃 모양이 병아리를 가두어 키우는 어리를 닮았다고 노랑어리연이다. 강둑 정자에 올라 들녘을 굽어봤다. 너른 둔치와 강둑에는 제철을 맞아 피는 금계국이 장관이었다. 수백 만 송이, 수천 만 송이가 될 듯했다.
강둑으로는 라이딩을 나선 자전거 마니아들이 시원스레 달렸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주인공은 독방에서 영어의 몸인데 정작 수많은 사람들이 강둑을 질주함이 아이러니였다. 둔치는 고라니와 꿩들의 좋은 서식처라 그 개체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거진 갈대숲은 고라니들이 몸을 숨길 좋은 은신처와 먹잇감이 되고 꿩들은 둔치가 그들이 낙원으로 삼아 퍼드덕 날아올랐다.
강둑에서 둔치로 내려서니 고삐에 묶인 거구의 황소가 눈을 껌벅이며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싸움소를 키우는 주인은 가끔 둔치로 소를 몰아와 일광욕과 함께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소싸움도 코로나로 구경꾼을 모으지 못해 사양길이지 싶다. 문득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 구절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가 떠올랐다. 싸움소는 큰 덩치에 뿔이 튼튼해 슬픈 짐승이었다.
수산에서 유장하게 흘러온 강물은 삼랑진으로 향해 흘러갔다. 드넓은 둔치는 풋풋한 잎줄기 송이송이 핀 금계국 세상이었다. 앞으로 내 생애 이렇게 수많은 꽃이 핀 길을 몇 차례 더 걸어볼지 황홀했다. 파크골프장엔 여러 골퍼들이 운동을 즐겼다. 시산동산으로 올라 곡차와 김밥을 들면서 강변 풍광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이후 공기업에서 퇴직한 술뫼마을 지인 농막을 찾아갔다.
그분은 고향이 밀양이고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정년 이후 술뫼에 둥지를 틀어 도인처럼 살았다. 텃밭을 일구고 농막생활을 유튜브에 올려 바깥세상과 소통했다. 마침 청정지역 상추와 문어숙회로 점심상을 차려내 나도 수저를 같이 들었다. 지인과 한동안 환담을 나누다가 한림정역으로 갔다. 열차 시각표가 달려져 열차를 탈 수 없어 화포천 습지를 따라 진영역까지 더 걸었다. 21.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