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11회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세 영웅호걸(英雄豪傑)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음으로써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굳게 뭉쳤다. 그러나 천하(天下)를 얻으려면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다. 거기에는 군대(軍隊)도 있어야 하고, 무기(武器)와 식량(食糧) 등의 막대(莫大)한 물자(物資)도 필요(必要)하다. 그러나 세 사람은 마음만 뭉쳤지 모두가 한결같이 적수공권(赤手空拳 : 맨손과 맨주먹이라는 뜻)이 아닌가. "어떻게든 될 거요.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하면 천하에 안 될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장비(張飛)는 아무런 계획(計劃)도 없이 덮어놓고 안 될 일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유비(劉備)와 관우(關羽)는 그런 막연(漠然)한 말에는 수긍(首肯)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큰일을 하려면 우선 군대(軍隊)가 있어야 하고, 군대를 유지(維持)하려면 무기(武器)와 군량(軍糧)은 물론이고 말(馬)까지 필요(必要)하오. 그것을 우리가 어떤 방법(方法)으로 조달(調達)하느냐가 큰 문제(問題)요." 관운장(關雲長)이 조목조목(條目條目) 따지고 나오자 유비(劉備)가 말한다. "그렇소! 무엇보다도 군대의 체계(體系)를 갖추려면 먼저 병력(兵力)과 무기(武器)를 갖추고 군량(軍糧) 등의 준비(準備)가 체계적(體系的)으로 갖춰져야 할 것이오. 지금 유주 태수(幽州 太守) 께서 모병(募兵)을 하는 중이므로 우리가 태수(太守)를 찾아가서 우리의 뜻을 알리고 모집(募集) 중인 병력(兵力)과 장비(裝備) 등을 우리가 인수(引受)해 오도록 하는 것은 어떠할지 상의(相議)해 봅시다." 그러자 장비(張飛)가 손뼉을 치며 찬성(贊成)한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지금이라도 당장(當場) 유주 태수(幽州 太守)를 찾아갑시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그 길로 유주 태수(幽州 太守) 유언(劉焉)을 찾아가 그들의 뜻을 전했다. 유주 태수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한다, "정의(正義)에 불타는 귀공(貴公)들의 충심(忠心)을 높이 치하(致賀)하는 바이오. 그러나 의병(義兵)을 양성(養成)하는데 재정(財政)을 털어서 계속(繼續)하여 지원(支援)하기는 현실적(現實的)으로 어렵고, 우선(于先) 급(急)히 필요(必要)한 약간(若干)의 지원을 해 줄 테니, 앞으로는 자체적(自體的)으로 군비(軍費) 등의 제반(諸般)을 스스로 갖추도록 하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유주 태수(幽州 太守)로부터 일백여 명의 의병(義兵)을 거둘 수 있는 무기(武器)와 식량(食糧) 등을 지원(支援)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로 의병 모집(募集)의 방(榜)을 다시 써 붙이기로 하였다. 장비(張飛가 유비(劉備)에게 물었다. "우리가 의병(義兵)을 모병(募兵)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될 것 같소?" "많이는 몰라도 모두 사오백 명은 모여들 것이오. 내가 평소(平素)에 생각한 것이 있어서 우리 고을 청년들을 정신적(精神的)으로 훈육(訓育)을 해 두었기 때문에 그 청년들도 이번 기회(機會)에 기꺼이 동참(同參)하리라 보고, 또 그들을 비롯한 인간(鄰近) 청년(靑年)들이 의병(義兵) 모집에 달려올 수 있도록 근사(近似)한 격문(檄文) 하나를 지어봅시다." "그런 격문(檄文)이라면 형님이 한번 지어보십시오." 관우(關羽가 유비에게 말하자 유비(劉備)는, "글을 짓는 데는 역시(亦是) 관공(關公)이라야 할 것이오."
"아닙니다. 형님이 쓰세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장비(張飛_가, "여보시오 관우(關羽) 형님! 유비(劉備) 형님의 명령(命令)에 복종(服從)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오?" 하고 나무라는 바람에, 관우(關羽)는 껄껄 웃으며 말한다. "자네 말이 옳으니! 그러면 형님의 분부(分付)대로 모병(募兵) 격문(檄文)은 내가 쓰기로 하겠네." 관우(關羽)는 즉석(卽席)에서 격문을 새로 지었다. 나라를 걱정하 우국지정(憂國之情)과 정의(正義)를 수호(守護)하려는 충정(衷情)을 담은 의협(義俠) 지심(至心)이 담긴 명문(明文)이었다. 이 격문(檄文)이 탁현(涿縣) 일대(一帶)에 살포(撒布)되자 열혈청년(熱血靑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여들었다. 장비(張飛)는 모병관(募兵官)의 자격(資格)으로 그들을 한 사람씩 면담(面談)하였다. "자네들은 격문(檄文)을 보고 달려왔겠지?" "네, 그렇습니다. 세 분께서 도모(圖謀)하시는 의거(義擧)에 기꺼이 참여(參與)하겠습니다." "네, 저도 황건적(黃巾賊) 무리를 소탕(掃蕩)하는 데 신명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저는 황건적(黃巾賊)에게 가족(家族)을 잃은 원수(怨讐)를 갚겠습니다." 사연(辭緣)은 제각각이었지만 청년(靑年)들의 의협심(義俠心) 만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음... 좋은 생각과 결심(決心)을 해 주었다. 우리는 황건적(黃巾賊) 모양으로 백성(百姓)들의 재물(財物)을 약탈(掠奪)해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正義)의 깃발을 높이 들고 도둑의 무리를 제압(制壓)하여 나라의 질서(秩序)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 점만은 분명(分明)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할 수 있도록 강력(強力)한 군대(軍隊)를 육성(育成)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 자신의 군율(軍律)을 확립(確立)해야 한다." 장비(張飛)는 모병(募兵)에 동참(同參)해 온 열혈 청년(熱血 靑年)들 앞에서 이런 훈시(訓示)를 내린 뒤에, "군율(軍律)을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실천(實踐) 사항(事項)을 철저(徹底)히 준수(遵守)해야 한다. 내가 읽어 줄 테니 잘 들어 보고 철저히 이행(履行)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자는 엄벌(嚴罰)에 처할 것이다."하고 말하였다. 역시(亦是) 장비(張飛)는 한 고을의 부장(副將)을 지내며 군사(軍事)를 거느렸던 옛날 실력(實力)이 나왔던 것이었다. 첫째, 우리는 상관(上官)의 명령(命令)에 절대복종(絕對服從)한다. 둘째, 우리는 자기 자기(自身)보다도 항상(恒常) 국가(國家)를 소중(所重)하게 생각한다. 셋째, 우리 중에 남의 재물(財物)을 약탈(掠奪)하거나 백성을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處)한다. 넷째, 우리 중에 군기(軍紀)를 문란(紊亂)케 하는 자가 있게 되면 그 또한 엄벌(嚴罰)에 처(處)한다. 장비(張飛)는 의병(義兵) 군율(軍律)을 모두 읽어 준 뒤에, "이만한 군법(軍法)을 지킬 자신이 있는 자는 그대로 남아 있고, 자신이 없는 자는 지금이라도 주저 없이 돌아가라!" 하고 말하였으나 모집(募集)에 응(應)한 의혈(義血) 청년(靑年)들은 아무도 돌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장비(張飛)는 기분(氣分)이 매우 좋았다. "모두가 그만한 각오(覺悟)가 되어 있다니, 매우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당분간(當分間)은 월급을 못 주겠으니 그래도 좋은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누구나 있는 대로 공평(公平)하게 나눠 먹고 나눠 입힐 것이니 그래도 불평(不平)이 없겠는가?" 장비(張飛)가 호쾌(豪快)한 고함(高喊)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찔끔 놀랐지만, 이내, "옛! 알겠습니다!" 하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격문(檄文)을 보고 유비(劉備)의 집으로 찾아오는 열혈 청년(熱血靑年)의 숫자는 오 일 동안 오백 명이나 되었다. 식구가 갑자기 많아지고 보니 당장(當場) 곤란(困難)한 것은 식량(食糧)이었다. 유주 태수(幽州 太守)로부터 지원(支援)받은 무기(武器)와 군복(軍服) 등 군사(軍事)들의 숙소(宿所)로 쓸 수 있는 천막(天幕)도 불과 백 여명 분이 아니던가? 이 문제(問題)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외곽(外郭) 보초(步哨)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장비(張飛)에게 보고(報告)한다. "장 장군(張 將님! 지금 저기 큰길에 말(馬)을 오십여 필이나 끌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뭐? 말을 오십 필이나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장비(張飛)는 말만 들어도 물건이 탐이 나, 주먹 같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자기의 입으로 백성(百姓)의 재(財物)물을 약탈(掠奪)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대적(絕對的)인 군율(軍律)로 만든 만큼 그것을 약탈해 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장비(張飛)는 얼른 관우(關羽)에게 달려가 그 소식(消息)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풍채(風采)가 좋으신 형님이 가셔야만 그 말들을 얻어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내가 말 주이(主人)을 만나서 교섭(交涉_을 해보도록 하지." 관우(關羽)는 부하(部下) 몇 명을 데리고 말을 몰고 가는 사람을 찾아갔다. 과연(果然) 말 장수 두 사람이 오십여 필의 말을 끌고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 장수는 중산 고을(中山邑)의 거상(巨商)인 장세평(張世平)과 그의 조카인 소쌍(蘇雙)이었다. 관우(關羽)는 두 사람을 만나 자기네가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된 사연(事緣)과 장래(將來)의 계획(計劃)을 웅변조(雄辯調)로 설명(說明)을 한 뒤, 지금 자기네를 도와주면 후일(後日)에 그 은혜(恩惠)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아 주겠노라고 간곡(懇曲)하게 호소(呼訴)하였다. "만약(萬若) 우리들의 계획(計劃)이 수포(水泡)로 돌아가게 되면 배성(百姓)들의 삶은 황건적(黃巾賊)들의 발굽에 짓밟혀 쑥밭이 되고 말 것이오. 그러니 우리네가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소." 하고 진지(眞摯)한 표정(表情)을 지으며 부탁(付託)을 하였다. 그러자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은 관우(關羽)의 당당(堂堂)한 풍채(風采)도 풍채려니와 그의 웅지(雄志)와 말을 신뢰(信賴)를 하면서 두 사람은 뒤로 돌아서서 무엇인가 한참 의논(議論)을 하였다. 그러더니만, "좋습니다. 우리들의 말이 그런 중대(重大)한 의거(義擧)에 사용(使用)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거저 드리겠습니다. 지금 곧 가져가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관우(關羽)는 너무도 간단(簡單)한 승낙(承諾)에 오히려 어리둥절하였다. "허어.... 너무도 간단히 승낙(承諾)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어떤 오해(誤解)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절대(絕對)로 귀공(貴公)의 의사(意思)에 반하여 말을 빼앗아 가려는 것은 아니올시다." 관우(關羽)는 혹시(或是)나 자신(自身)의 요구(要求)를 들어주지 아니하면 강제(強制)로 말을 빼앗아 가려는 의도(意圖)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설명(說明)하자, "실은 우리도 황건적(黃巾賊)에게 재물(財物)을 많이 빼앗긴 사람입니다. 게다가 여기 있는 내 조카 소쌍(蘇雙)은 그놈들에게 아내와 딸까지 빼앗긴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놈들에 대한 원한(怨恨)은 뼈에 사무칠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말을 끌고 가기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그놈들에게 말을 모조리 빼앗겨 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장군(將軍)께서 우리 말을 가져다가 황건적을 토벌(討伐)하는데 유용(有用)하게 쓰시겠다니, 우리로서는 어찌 장군의 부탁(付託)을 거절(拒絕)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들이 선뜻 말(馬)을 주겠다는 데는 나름의 이유(理由)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고맙기 한량限量없습니다. 그러면 이 말들을 끌고 마을까지 함께 들어갑시다. 고마운 신 두 분을 우리의 명주(名主)이신 유현덕(劉玄德) 장군(將軍)에게 소개(紹介)하고 싶습니다." 장세평(張世平)은 유비(劉備)를 만나기 위해 소쌍(蘇雙)과 함께 말을 몰고 관우(關羽)를 따라오며 묻는다. "이런 큰일을 성공(成功)시키기 위해서는 재정(財政)에 밝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必要)하실 텐데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관우(關羽)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기네 도원결의(桃園結義) 삼형제(三兄弟)는 백만(百萬) 대군(大軍)을 指지휘(揮)하는 데는 자신自信)이 있었지만, 군비(軍費)와 군량(軍糧) 등 병참(兵站)을 조달(調達)하는 점에 있어서는 마땅한 재간(才幹)은 없지 않은가? "그것참, 좋은 말을 깨우쳐 주었소. 명주(名主)를 만나시거든 그 말씀도 여쭈어 주시오." 잠시(暫時) 후(後)에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은 유비(劉備)를 만났다. 그들은 유비를 첫 대면(對面)하자 남모르는 예감(豫感)을 느꼈다. 유비(劉備)는 장사꾼이 말(馬) 오십(五十)여 필(匹)을 거저 주겠다는 말에 감사(感謝)해 마지않았다. "장차(將次) 우리의 세월(歲月)을 만나거든 오늘의 신세(身世)를 잊지 않고 두 분께 오늘의 신세를 반드시 갚도록 하겠소. 오늘의 고마움을 어떻게 설명(說明)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장세평(張世平)은 그 말을 듣더니, "그러면 우리가 지금 말에 싣고 가던 금은(金銀) 오백 냥(五百 两)을 비롯하여 빈철(鐵) 일천 근(一天 斤)과 수피(獸皮) 직물(織物) 백 필(百 疋)도 모두 드리고 갈 테니 이것도 군비(軍費)에 보태 써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劉備)는 장세평(張世平)의 호의好意)에 크게 감동(感動)하며 물었다. "장사꾼이란 자신(自身)에게 이익(利益)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법인데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요?" 그러자 장세평(張世平)이, "그건 제가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장사꾼이기 때문입니다. 장사꾼은 상대(相對)하는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만난 세 분의 눈은 아주 맑습니다. 그러니 장군(將軍)들의 계획(計劃)은 성공(成功)할 것으로 확신(確信)합니다. 또 한 가지 병사(兵事)를 일으키기에는 지금이 적절(適切)한 시기(時機)입니다. 그렇게 큰일을 하시려면 말(馬)뿐만 아니라 검(劍)과 식량(食糧)도 필요(必要)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내어드리는 물자(物資)로 어느 정도 준비(準備)를 갖추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십 년(十年) 삼십 년(三十年)이라도 상관(相關)없습니다. 세 분이 이름을 떨치고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한 뒤에 오늘 드리고 가는 물자(物資)의 이자(利子)를 붙여서 돌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소이다 그러면 장공(張公)께 이 말들과 재물(利子)을 후일(後日) 돌려드리는 조건(條件)으로 기꺼이 빌리기로 하겠소이다." 유비(劉備)는 장비(張飛)에게 지물(紙物)과 먹을 가져오게 하여 즉석(卽席)에서 말(馬) 오십(五十) 필(匹)과 금은 화(金銀貨) 오백 냥(五百 两), 빈철(鐵) 일천 근(一天 斤)에 수피(獸皮) 직물(織物) 백 필(百 疋)의 차용 증서(借用證書)를 만들어 장세평(張世平)에게 건네주면서, "그렇다면, 귀공(貴公)께서 우리 삼형제와 손을 마주 잡고 천하(天下)의 대세(大勢)를 같이 도모(圖謀)하며 우리 군(軍)의 군수(軍需) 병참(兵站)을 맡아 주시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부탁(付託)을 하였다. 그러나 장세평(張世平)은 그 말에 고개를 좌우(左右)로 내저었다. "나는 장사꾼이므로 전쟁(戰爭)에 가담(加擔)할 용기(勇氣)는 없습니다. 그러나 금후(今後)에도 도와드릴 수 있는 데까지는 힘써 도와드릴 것이니 돈이 필요(必要)하시면 언제든지 우리를 찾이와 주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은 다시 만날 기회(機會)가 있기를 기약(期約)하며 길을 떠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이 남기고 간 재물(財物)은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삼형제(三兄弟)가 처음 의병(義兵)을 일으켜 군대(軍隊)의 모습을 갖추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군마(軍馬)가 오십 필(匹)에 비철이 천 근(斤), 직피가 백 필(疋)에 현금이 오백 냥(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는 돕는다더니, 이것이야말로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恩惠)요!" 삼형제(三兄弟)는 그렇게 말하며 용기(勇氣)를 크게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빈철 천 근(斤)을 가까운 대장간에 갖다 맡겨서 창(槍)과 검(劍)을 만들게 하였는데, 특(特)히 유비(有備)는 쌍고검(雙股劍)을 만들게 하였고 관우(關羽)는 무게가 팔십두 근(八十二斤)이나 되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만들고 장비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만들게 하였다. 그때에는 이미 모여든 의병(義兵)의 규모(規模)도 오백여 명이나 되었는지라. 장비(張飛)는 이들을 주야(晝夜)로 훈련(訓鍊)시키기에 여념(餘念)이 없었으며, 날이 갈수록 모여든 의병(義兵)은 사기(士氣)가 왕성(旺盛)한 군대(軍隊)가 되어가는데 부족(不足)함이 없었다. 삼국지 - 12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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