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은 '금요일'이었다.
오후 3시 30분.
이수역 '메가박스'에서 사랑하는 네 형제들이 조우했다.
반갑고 행복했다.
그날의 테마는 '영화 감상'과 '맛있는 식사'였다.
마침, 하루 전날인 25일이 '중복'이어서 스테미너 충전도 할 겸 장어를 먹자고 했다.
'얼죽아'라고 했던가.
아닌게 아니라 고온다습한 날씨엔 '아아'가 최고일 터였다.
'아아' 톨 사이즈를 하나씩 들고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금요일 오후였고,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관객들이 띄엄 띄엄 앉아 있었다.
우리가 본 영화는 요즘 장안의 화제작인 '탈주'였다.
7월 3일 개봉해 7월 3주차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매우 핫한 영화였다.
기대가 컸다.
10년 간의 군대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제대를 앞두고 있었던 북한군 중사 '규남'(이제훈).
그는 자신이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도 돈과 빽이 없는 신분의 굴레 때문에, 그리고 북한 사회의 온갖 감시와 압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냉혹하고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는 창공을 훨훨 날고 싶었다.
그런 열망이 골수에 사무쳤다.
'실패할 수 있는 자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철책선 너머의 남쪽 땅을 몹시도 동경했고 흠모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생각이나 몽상 단계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감행해 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투지를 갖고 있었다.
수도 없이 다짐하고 또 폐부에 새겼다.
목숨 건 탈출의 서막이었다.
미래와 자유를 향해 죽음을 무릅쓴 탈주가 결행된다면, 그보다 더 굳건하고 기세 등등한 반대 조직과 세력도 존재할 터였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
'원 사이드'만 존재하는 세상은 없었다.
현 체제의 유지와 보호를 위해 '반동분자'의 색출과 처단에 혈안인 조직이 있었다.
바로 북한의 '보위부'였다.
그 '보위부'에 젊고 유능한 장교가 활개치고 있었다.
그 장교가 바로 현상(구교환)이었다.
'현상'과 '규남'은 한 마을에서 자란 절친한 형과 동생 사이였다.
현상은 고위층 집안 출신이라 '모스크바'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엘리트 유학파 장교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선을 뚫고 탈출하려는 자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막아내려는 자 간의 숨막히는 추격과 질주 그리고 쟁투와 투지가 스크린을 흥건하게 적시며 흘렀다.
그것은 가슴을 때리는 눈물이었고 때론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사내들의 뜨거운 핏물이었다.
시종일관 속도감과 몰입감이 스크린을 찢어댔다.
두 캐릭터들의 강렬한 눈빛과 숨막히는 질주 장면엔 격한 기립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박진감이 넘쳤다.
불가능한 한계를 극복하고 심각한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자유의 품에 안기고야 말았던, 규남의 집념어린 탈주에 나도 진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끝까지 절절하고 뭉클했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영혼의 절규가 아직도 내 심장을 계속 가격하는 듯하다.
그만큼 여운이 깊었다.
그리고 "내 앞 길은 내가 결정한다"는 그의 간절한 비원과 소망 앞에서 다시 한 번 삶의 숭고함과 진정성이 내 혈관을 타고 돌았다.
곤궁하고 가난했던 집안의 아들 규남.
부잣집에서 태어나 조금도 부족함을 모른 채 성정했던 현상.
그것은 극명한 대비였고 시종을 관통하는 태생적 맥락이자 한계였다.
서로 다른 목적과 대척점을 향해 죽기살기로 치달았던, 그리하여 각자의 길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구별될 수밖에 없었던,
두 캐릭터 간의 불꽃튀는 열연이 영화의 긴장도와 완성도를 가파르게 끌어올렸다고 믿는다.
그들의 찰떡 호흡과 환상적인 케미도 완벽했다.
영화 막판에, 중상을 입어 땅바닥을 힘겹게 기어갈지라도 최후의 일각까지 남녘으로 가고자 처절하게 발버둥쳤던 '규남'을 향해 끝내 최후의 한 방을 쏘지 못한 채 한없이 촛점이 흔들렸던 '현상'의 눈빛도 오랫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상의 눈빛은 석양의 윤슬처럼 자꾸만 흔들렸다.
이미 미동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규남을 바라보며 무수한 은유의 언어들로 소리 없는 공감과 애끓는 당부를 전하고 있었다.
비감했고 처연했다.
그리고 못내 애닲았다.
정말이지 두 사람의 디테일한 표정연기와 호소력 짙은 퍼포먼스는 발군의 연기력이었다.
메가폰을 잡았던 '이종필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이 내 뇌리 속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랬다.
바로 이 한 문장 속에 1시간 40분 간의 복합적인 스토리텔링이 간결하게 함축되어 녹아 있었다.
" Fear a meaningless life not death itself "
"죽음 그 자체 보다 의미 없는 삶을 더 두려워 하라."
굵고 짧았다.
과연 임팩트 있는 통찰이었다.
진정으로 멋진 영화였고 훌륭한 메시지였다.
오랜만에 맛본, 북한군 소재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완전히 결이 다른 감흥에 흠뻑 젖었던 시간이었다.
생경함과 참신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극장을 나왔다.
조금 이른 저녁 식사 자리.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인생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했다.
진정성과 풋풋함이 찰지게 버무려진, 네 형제 간의 유쾌한 대화와 칵테일 우정은 항상 즐겁고 유익했다.
그리고 재미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쿨한 데이트에 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형제들 덕분이었다.
무더위에 항상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무더위 탈출 성공
새로운 발자욱이 남겨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