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야구기술서적에는 포수의 상황별 수비자세를 다룸에 있어 홈으로 뛰어들어오는 주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이 빠지지 않고 들어있는데, 그 중 공통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포수는 축구의 골키퍼처럼 홈으로 뛰어들어오는 주자를 공으로 생각하고 확실하게 막아내야 한다. 특히 가속도가 붙어 돌진해오는 주자와의 충돌에 대비해 양 손으로 미트 안에 들어 있는 공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확실하게 움켜잡고 있어야 한다. 다만 정면충돌하게 될 경우,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홈 플레이트의 한쪽 귀퉁이를 살짝 열어놓고 태그 플레이에 임하도록 한다. 만일 주자가 태그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포수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든다면 포수는 태그를 하면서 동시에 옆으로 몸을 돌려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지난 4월 6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와 LG전에서 3루 주자였던 롯데 가르시아(35)가 후속 타자의 내야땅볼 때 홈으로 쇄도하면서 공을 잡고 홈 플레이트 앞에 일자로 서 있던 LG 포수 김태군(21)을 몸으로 들이받은 장면을 두고 팬들의 설전이 무성하다.
“가르시아는 잘못이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홈으로 뛰어들 때는 몸을 날려 포수를 들이받더라.”
“한 발도 아니고 두 발 앞에서 김태군이 이미 공을 잡고 기다리고 있던 상황인데 가르시아가 팔뚝을 이용해 포수를 밀친 것은 비신사적인 주루플레이다.”
“가르시아가 잘못했다면 두 눈 멀쩡히 뜨고 서서 아웃 되라는 말이냐?”
“살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동료의식이 없는 행위다.”
“김태군이 너무 안일한 수비를 했다. 살짝 옆으로 피했어야 했다.” 등등….
한편 그보다 3일 앞선 4월 3일, 문학의 SK와 두산 전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루 주자였던 두산의 이종욱이 이원석의 2루타 때 홈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공을 잡고 주자에 대한 블로킹을 하던 SK 포수 박경완을 향해 그대로 몸을 던져 들이받은 일이다.
위 두 가지 상황의 공통점은?
포수가 끝까지 공을 손에 쥔 채 주자를 아웃 시키기는 했지만 대신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나가 떨어져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에 비해 선수간의 몸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운동경기다. 일반적으로 공격 측의 타자 또는 주자와 수비측 야수간에 충돌이 일어나면 타격방해나 주루방해, 아니면 수비방해를 적용해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그런데 선수간의 충돌이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 없이 그대로 방치해두는 치외법권 지역이 딱 한 곳 존재하는데, 바로 홈 플레이트다. 이곳은 득점하려는 주자와 이를 막아내려는 포수의 상반된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르시아나 이종욱의 예처럼 아웃이 아무리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이들 주자들이 가미가제식 포수와의 정면충돌을 선택한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경기규칙상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충돌로 포수의 공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득점에 성공할 수 있고, 다른 주자가 루상에 있었다면 그 주자의 진루도 이끌어낼 수 있는, 공격측으로서는 그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공격방법이 된다.
그러면 홈 플레이트에서 벌어지는 주자와 포수의 충돌은 그 어떤 경우라도 합법적으로 정당화 된다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포수가 자신을 향해 공이 날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주로(走路)상에서 득점하려는 주자와 충돌했다면 주루방해로 인정받는다. 반대로 주자가 아웃을 모면하기 위해 포수를 손을 사용해 고의로 밀어낸다거나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이단 옆차기로 들어온다면 수비방해로 지적 받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2009년은 한마디로 포수의 수난시대였다. 진갑용(삼성), 박경완, 정상호(SK), 최승환(두산), 이도형(한화), 강민호(롯데) 등, 거의 전 구단 포수들이 한두 번쯤 부상에 울어야 했고, 그 원인 중의 대부분은 주자와의 충돌이 주요 원인이었다.
두산 최준석 VS 삼성 진갑용(6월 14일), 삼성 강봉규 VS 두산 최승환(5월 17일), 롯데 가르시아 VS 한화 이도형(7월 16일), 롯데 이대호 VS SK 정상호(7월 19일) 등이 그런 경우였다. (한화 김태균 VS 두산 최승환의 대결에서는 주자였던 김태균이 나뒹굴며 부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주자와의 대형 충돌로 포수가 부상을 당한 사례들인데 수비방해로 선언되어 포수가 득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포수는 투구나 타구 등의 공에 맞더라도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 헬멧, 마스크, 급소 보호대, 프로텍터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경기에 나서지만 목적이 다른 주자와의 충돌에는 장비는 물론 규칙까지도 백약이 무효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부상에 기록상 실책까지 덤으로 보태지는 일도 가끔 생겨난다. 주자와의 충돌여파로 공을 흘려 아웃이 분명할 주자가 득점에 성공했다면 포수에겐 실책이 주어진다. 비슷한 타이밍이었다면 굳이 실책까지 얹혀지는 가여운 일은 없겠지만 누가 봐도 공을 떨어뜨려 주자가 살았다면 포수가 당한 충격파는 정상참작이 되질 않는다.
경기규칙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포수의 주자 블로킹이 기록규칙에서도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루상의 다른 주자가 포수가 공을 놓쳐 혼절(?)한 사이 진루했다면 이 또한 실책으로 기록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국 쏟고 발 덴 격’이라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지난 4월3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SK 포수 박경완과 두산 이종욱이 홈에서 충돌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