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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士觀樹錄 2-5, 옛 그림 속의 소나무(畵中之松)
1) 그리운 그림
재주 없고 그림붓 한번 잡아보지 못한 내가 별나게 부러워 한 사람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지금은 성남 어디에서 교회장로님이 된 내 짝 J군이 11개 음면 학생들이 참가한 군민(郡民) 미술대회에서 연필로 그린 <운동화>란 실물 같은 작품으로 금태 둘린 커다란 상장을 탓을 적에 나도 그림 잘 그려보고 싶었다. 40리 읍내로 중학교에 들어간 후 한 주일에 두 시간씩 든 미술시간은 가장 싫은 공포의 수업 시간 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3년 내내 같은 미술 선생님인데 당시로선 아주 인기도 있고 유명인사로 이미 시집을 몇 권 내셨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선가에 소설도 당선된 적 있는 존경받는 멋쟁이 선생님이란 소문이 자자한 분이다. 나는 그 선생님은 아주 좋아 했으나 미술시간은 매우 싫어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미술시간에 그림그릴 교재, 예를 들자면 도화지, 습자지 그리고 크레용, 튜브에 든 짜서 쓰는 물감, 그림붓 등을 한 번도 준비해간 적이 없는 준비 안 된 학생이었다. 수업 시작 전에 미술선생님은 깜박 잊어버리고 준비 안 해온 학생이나. 나처럼 아예 준비 못해온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반질반질 손때 묻은 교편이란 막대기로 손바닥. 종아리 아니면 까까머리 정수리를 눈물이 핑 나도록 몇 대 얻어맞았다. 잊어버리지 말고 준비해 오라시며, 벌로 교실 밖 복도로 내 보내고 한 시간 동안 서 있게 했다. 나는 준비 안 해 간 것이 아니라 못해갔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서운하지는 안았다. 나는 중학교 3년 동안 거의 학용품 사 쓰란 교재비며 용돈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교실 밖으로 나갈 때 한 책으로 삼년간 미술책은 꼭 가지고 나갔다. 어떤 동화책에서 본, 배고파 술찌개미 끓여먹고 학교 갔더니 선생님이 어린것이 술 먹고 학교 왔다고 야단맞은 교육동화 이야기와 거의 같은 그런 상황이였다.그 때 미술교과서는 다른 책보다 얇았지만 조금 더 컸고 두꺼운 종이에다 천연색 그림이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복도에서 그 미술책 속의 그림, 눈썹 없는 여자의 <모나리자>. <빨간 조끼 입은 소년>. 세잔의 <정물화>.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등을 하도 여러 번 봤기에 잘 기억한다. 참 또 있다. 원근법 소실점 설명할 때 나오는 호베마의 <미델 하르니스의 마을길>) 등 등 조금씩 눈에 익어갔다. 그러나 동향화(한국화)는 정말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미술교재 준비 못해 온 덕분에 얻은 것은 그 책속의 그림을 보고 또 본 것이다. 그 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미술시간이 없어서 참 좋았다.(농업학교이기 때문에 음악 미술 시간이 그때는 아예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웃 학교엘 오게 된 후 기숙사 한방 쓰는 친구를 천행으로 잘 만났다. 그는 원래 미술대 지망생 이였다. 그 친구 책상에는 여러 권의 값비싼 처음 보는 세계명화 도감이 있어서 나는 주인 양해도 없이 부지런해 봤다. 그리고 그 친구 따라 전람회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때 <소>와 <은박지 그림>의 주인 <이중섭>. <나무와 여인>의 <박수근>, 강렬한 색체의 야수파 <루오>, <폴 고갱>과 보리밭의 <반 고호>의 이름을 들었고 <마티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조선인의 학살>이란 작품을 사진으로 봤다. 그 때 나는 내 손으로 그림은 직접 잘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림 보는 눈과 마음>은 가져 보자 생각했다. 나중 강원도에서 군대생활 할 때도 소위 문화주사 놓으려 국전 보려 거의 해마다 일부러 외출과 휴가를 나오기도 했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 읊는다. 고 그러는 사이 그림이 조금씩 닦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교사가 됐다. 또 운 좋게, 자연적으로 미술선생 동료와 가까이 지내게 되고, 나와 같이 근무한 미술 교사들은 거의가 다 홍익대에서 동양화 전공한 분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열성으로 노력하여 후에 대학교수가 되고 국전심사위원장도 되고 또는 조용히 자기 분야만 집중하는 이들이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그 미술선생님 동료와 전람회 박물관 미술관등에 함께 참석하고 2차까지 가는 기회가 여러 번 있어 우스갯소리로 나를 홍대미대 <준동창회원>이란 별명도 얻기도 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림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심리 결과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분들 도움, 동행 덕분에 어깨너머 혹은 귀동냥으로 그림 못 그리는 눈 구경꾼이 조금씩 되어갔고 조금씩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2) 나의 그림 읽는 공부
교직을 물러난 후 본격적으로 자연과 숲을 공부한답시고, 더구나 전공과 먼 역사 까지 공부하려 하니 범위가 한도 끝도 없이 망막했다. 들풀과 나무와 조금 친해지고 역사 이야기의 큰 줄거리가 보일듯말듯 할 때 옛 그림들 속의 자연, 생태가 시각적으로는 조금씩 보였다. 하지만 그림 그린 분의 본뜻(畵意)이 무엇인가? 도무지 내 짧은 생태학 지식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그림들이 자주 보여서 혼란을 겪게 되고 왜? 왜? 만 연발하다가 지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때.
이 고민 중에 문제 해결에 상당한 도움을 줄 지남철 같은 책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책 이름 <동양화 읽는 법>, 사실 나는 서점에서 매주 쏟아져 나오는 ㅇ ㅇ 하는 법(HOW TO --), 부자 되는 법 . 공부 잘하는 법 , 연애 잘하는 법. 무슨 장생법 등류의 책은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었다. 더구나 저자 <조용진 >교수는 아주 짧은 한 때였지만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한 적도 있고 그의 학구와 집념을 옆에서 본 사람이게 때문이다. 이 책을 밑줄 치며 읽고 또 읽었더니 드디어 어라! 내가 혼자 고민하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젠 그림 앞에서면 “아하! 그랬구나! 그래서 저랬구나. 하고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일 수 있었고 가끔은 동행한 분에게 아는 척 하기도 했다.
책 <동양화 읽는 법>은 우선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다(讀畵).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은 그림 읽는 법을 몇 가지로 요약해 준다. 첫째, 먼저 생태적으로 보다 그림 그린분의 할 말을 여러 가지 자연 소재를 통해서서 한 화면에 그려 놨다는 것을 보라 한다.
둘째로 그림에 나타난 소재를 동음이자(同音異字), 원 뜻과는 다른 소재이지만 소리가 같은 것을 빗대어 그렸다는 숨은 뜻을 읽어야 하는 것. 그리고 셋째로 우의(寓意)로 읽은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 즉, 그림 중 소재가 갖고 있는 옛 고사나 전설 우화 격언 등의 뜻을 빌려와서 그림을 그렸다는 의도를 읽으라는 것. 마지막으로 고전명구(古典名句)나 일화(逸話)를 상기하여 읽는 법 등으로 정리 하였는데 이점만 유의하면 거의가 다 이해 되가는 것이었다. 당신도 이 책을 보면, 읽기 전후의 그림 보는 눈이 확 달리질 것을 확신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도덕경의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게 자각한다.
행행 행중지(行行 行中知)요 거거 거중각(去去 去中覺)이라 자꾸 그림을 보면 알게 된다는 말이다.
3) 우리 엣 그림에 나타난 소나무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짝사랑하듯 그림을 보고 나름으로 공부해오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점으로 하나는 어느 화가가 특정소재로 그림을 아주 잘 그리거나 아예 그것 하나만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나비를 아주 잘 그려서 호나 이름 보다 별호로 <남나비>인 남계우. 메추라기를 아주 잘 그려서 <최메추라기>란 별명을 얻은 조선의 반 고호 <최북>은 그의 호 <최칠칠> 또는 붓으로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도 있었지만 많은 이가 <최메추라기>라 불렸고. 고양이를 잘 그린 변상벽의 별명은 <변고양>이라 했는데. 소나무만을, 소나무를 아주 잘 그려서 위와 비슷한 그런 별명을 얻은 이는 아직 못 봤다. 하기는 큰 소나무가 있는 개울물 건너자고 어린아이가 당나귀와 승강이하는 그림, 이제는 널리 알려진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를 그린 <김시(金禔)>는 그의 호가 양송당(養松堂), 양송헌(養松軒), 양송거사(養松居士)이니 소나무의 뜻을 본받고 닮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소나무 전문 화가는 아니나 소나무를 잘 그린 것 같다. <조용진>교수 조사에 의하면 조선 중기(임진왜란) 이후 활동한 서화가(書畵家)들의 아호(雅號)에 石 字가 든 호가 43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 竹 자가 38명, 松 자 든 이가 23명이나 된다. 이는 소위 세한삼우<歲寒三友>의 송죽매<松竹梅>에다 묵직한 바위<石>가 당시 우리들 삶의 닻이 되고 자연에서 배우려는 정신의 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 역사상 소나무 그림은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에서 몇 점 보이고 백재에서는 <산수문수전>전돌 배경에 솔밭그림이 배경으로 나오고 신라의 것으로는 보지는 못했어도 저 유명한 솔거의 황룡사의 벽화 <노송도>가 전설로만 남았고 고려시대 역시 소나무 실물 그림은 잘 보이질 않으나. 도자기에 나오는 바위. 솔. 대 의 소위 삼청도(三淸圖)외에는 별로 안 보인다.
조선시대에 오면 소나무가 유교사상의 절조 청절 등의 이미지가 잘 맞아 그림으로 아주 많이 나타나게 된다.
<유홍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7가지로 분류하고(우리겨례의 삶과 소나무 -배상원 편, 25쪽부터) 내 눈에 잡힌 각 각의 소나무 그림을 찾아 연결해 보면 이러하다.
㉮ 궁중 장식화에 나타난 소나무 - 대궐 법전 용상 뒷자리에 병풍 형으로 서있는 일월오악도 그림 중의 양 쪽에 두 그루씩 선, 줄기 붉은 소나무 네 그루, 그림 중에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것. 아직 그 진정한 그림의 뜻은 모른다. 중국. 일본에는 없고 우리나라 유일의 형식. 그리고 국보 249호 <동궐도>의 소나무가 모두 559그루가 보인다.
㉯ 삼청도(三淸圖)의 소나무 - 삼우도(三友圖)라고도 하는데 松 竹 梅의 세 가지 소재에다 바위가 곁들인 그림으로 수없이 많이 있다.
㉰ 산수화에 나타난 소나무 -중국의 <소상팔경도>을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사시팔경도>등 산수화에 필수로 소나무가 들어가 있다. 또한 문인 사대부들의 사적인 자유로운 모임을 그린 아회도(雅會圖) 즉 요즘으로 치면 야유회 기념사진 성격의 그림에도 필수적으로 소나무가 나와서 운치를 더해준다.
㉱ 진경산수화의 소나무 -조선 후기로 와서 정선의 그 많은 진경산수도에 굽거나 곧은 소나무 무리가 나타난다. 소나무는 정선 산수의 핵심을 이루는 소재이다. 특히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서의 소나무는 한국 자연 정취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
㉲ 문인화 단독으로서 소나무- 조선시대에 와서 문인화가 대 유행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소나무 그림이 많이 나온다. 소나무의 이미지와 선비 그리고 성리학 정신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져서 소나무 단독으로 혹은 집. 학, 선비들과 함께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산수 그림에 무석부송 무송불기(無石不松 無松不奇)라 소나무 없는 산수화는 그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이름난 작가의 그림만 간단히 적어본다.
*강희맹 -<송하인물도> * 이인상- <송하관폭도>와 <설송도> 이설송도는 내가본 소나무 그림 중에 가장 위대한 느낌을 줬다. * 김홍도 -<송하취적도><함흥본궁도> <송월도> *이인문 -<무진강산도>―(태평성대의 산수를 그린 대작으로 첫머리에 노송이 나온다)와 <송하인물도> * 김정희 - <세한도>―두물머리 세미원에 그림을 재현해 놨다.
㉳ 청화백자의 소나무 -백자의 흰 판에 푸른 소나무 그림은 그저 문양이 아니라 화폭의 주인이 그림이고 그림의 소나무 위상이 나타나 있다.
㉴ 민화에 나타난 소나무 -서민 예술의 그림으로 서민 삶에 스며든 그림으로 <까치와 호랑이>와 함께 소나무가 같이 나오고 이는 소나무가 서민의 안식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삼천만이 즐기는 <화투(花鬪>놀이의 정월 그림의 <솔 또는 송학>인 것은 다 안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본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화투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들어왔고 이것이 일본식으로 변경, 일제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그들은 왜 일월 즉 정월을 솔로 그렸을까? 솔이 <으뜸>을 뜻하는 것을 저들이 우리 문화가 일본으로 들어갈 때 그 뜻을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 넉 장 솔에서는 소나무 솔 같은 이미지가 전혀 없으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다.
위에 열거한 화가의 그림들은 너무나 잘 알려 진 그림으로, 검색하면 상세히 해설과 더불어 밝은 그림이 화보같이 나오니 꼭 한번이라도 보시기 바란다.
그동안 그림을 읽으며 다시 알아낸 사실은 어느 그림치고 사연 없는 그림은 없었다. 그림마다 곡절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깊이 숨있더라는 것이다.
<그림 없는 소나무 그림 이야기>를 읽느라 인내심이 많이도 필요했을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의 정신적 선생님이시다. 그래서 소나무 있는 그림을 가까이 놓고 보면 많은 영감과 암시를 받을 것이다.
앗싸 송(ASSA SONG)이 아니라, 아사송(我師松) 소나무는 나의 스승이시다. 우리 모두 소나무에서 배우자!
(다음 계속, 소나무 마지막으로 <알송찬송 십이송(謁松讚頌 十二松)> 내가 찾아 뵈온 소나무 열두 곳의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