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들의 짧은 글짓기 당선 작
* 대상 : 가슴이 뛰어서 사랑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부정 맥'이라네요.
* 금상 : 종이와 팬 찾는 사이에 쓸 말을 따먹었네.
* 은상 : 병원에서 3 시간 기다렸다 들은 병명은 '노환''입니다.
* 동상 : 일어나기는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 장려상 : 자명종이 울리려면 아직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
* 장려상 : 몇 가닥이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 요금.
* 장려상 :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신다.
* 장려상 : 쓰는 돈이 술 값에서 약 값으로 변하는 나이.
* 장려상 : 젊게 입은 옷에도 자리를 양보받아 허사임을 알았다.
* 장려상 : 이봐, 할멈! 자네가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 장려상 : 일어섰다 용건을 까먹어 다시 앉는다.
* 장려상 : 자동 응답기에 천천히 말하라며 고함치는 영감.
* 장려상 : 심각한 건 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이다.
* 장려상 : 안약을 넣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 장려상 : 비상금 둔 곳을 잊고 아내에게 묻는다.
* 장려상 : 경치보다 화장실에 신경 쓰이는 관광지.
* 장려상 :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 장려상 : 이 나이쯤 되어 보니 재채기 한 번에도 목숨을 건다.
* 장려상 : 손에 들고 있으면서 휴대폰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 장려상 : 마누라 이름을 잊으면 건망증, 마누라 얼굴을 잊으면 치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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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인이나 한국 노인이나 노인은 모두 같은가 보다.
모두 나의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았네.
하하 나는 무슨 상을 받을까?
"내 이름이 9살까지는 장영(場永)이었는데 지금은 태영(泰永)이다.
장영으로 살았어야 할까? 태영으로 살았어야 할까?
어떤 이름이 더욱 나의 노후를 좋게 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는가?"
마누라 얼굴을 기억할 때까지만 살다 가면 좋겠다.
<옮긴 글>
첫댓글 장영(場永)과 태영(泰永)을 놓고 보면 상징적으로는 꽤 다른 느낌입니다.
場永(장영) — 마당 장, 길게 이어질 영
‘場’은 사람이 모이고 사건이 펼쳐지는 자리·무대·공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泰永(태영) — 클 태/편안할 태, 길게 이어질 영
‘泰’에는 크다, 평안하다, 넉넉하다, 태평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좀 더 안정과 평온, 큰 흐름을 향합니다.
그래서 굳이 이름의 상징만으로 노후를 이야기한다면, 저는 泰永(태영) 쪽이 오히려 노년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봅니다.
젊을 때 세상이라는 ‘場’에서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이, 나이가 들어 泰—넉넉하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그림이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9살까지 장영으로 살았고, 이후 태영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두 이름 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장영이 태영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9살까지의 장영은 삶의 첫 장이었고, 그 이후의 태영은 그 첫 장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장영으로 살았어야 했나, 태영으로 살았어야 했나?”라는 질문에는 제가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장영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태영으로 살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노후가 어떤 이름 때문에 좋아지거나 나빠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인생의 방향을 암시하는 상징일 수는 있어도, 인생 자체를 결정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히려 지금의 태영(泰永)을 이렇게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크고 평안한 것이 오래 간다.”
젊은 날에는 이름을 바꾸면서 삶의 방향도 바뀐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노후에는 泰永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조금 더 넉넉하고 평안한 삶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두 이름 모두 永(영)**이라는 겁니다.
앞의 글자는 場에서 泰로 바뀌었지만, 마지막 글자는 그대로입니다.
장영 → 태영.
바뀐 것은 앞부분이고, 끝까지 남은 것은 永입니다.
저는 그게 꽤 의미 있는 우연처럼 느껴집니다.
김종승 선생 님! 엎드려 큰 절을 올립니다.제 이름을 가지고 이처럼 좋은 해석을 주시다니 절로 마음이
흥을 찾습니다.
제가 제 이름을 올린 이유가 있습니다.기왕에 나온 말씀에 보탬을 드리고자 저에 대한 몇 가지를 올려 드립니다.
저에게 뭐 필명(筆名)이라고 까지 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쇠뭉치'입니다. 거친 이름이지요. 심지어 한창 메일로
주고 받을 때 많은 친구들이 좋은 이름 놔두고 '쇠뭉치'가 뭐냐? 순한 이름으로 하지 그러느냐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먼저 場永과 泰永의 이름부터 밝히겠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17세 때 결혼을 하셔 6 남매를 낳으셨는데 .4 남매가
두 살 전에 세상과 이별하고 누나와 저 둘 만 남았습니다.그때 겪은 부모 남의 아픔은 오죽하였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제가 다섯 째인데 어머님이 산월)産月)이 되었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가셨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 급한 김에 마당에 있는 두엄 자리에서 소변을 보시다가 제가 태어났답니다.마당에서 저를 낳으신
것이지요.때는 11월 3일이니 추운 때였습니다. 그래서 마당 장 자(場) 장영이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자식 넷을
잃으신 부모님은 이름을 거칠게 지어야 한다는 -
@쇠뭉치 생각에서 그러셨답니다. 그때는 그랬었지요. 거칠게 이름을 지어야 오래 산다는 속설 때문이랍니다ㅣ.
그렇게 장영으로 9살 까지 불리던 제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니 태영 호적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제 필명(筆名)이 쇠뭉치입니다.집안이 가난하여 중학교도 가지 못하며 1년 쉬면서
어머님과 솔방울 .장사를 하여 이듬 해 집에서 40 리나 되는 중학교에 들어가 매일 왕복 80 리를 걸어서
다녔지만 3년을 지각, 조퇴, 결석 한번 하지 않고 다니던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날 학교에 갔는데 첫시간
역사 선생님이신 서정석 선생님이 오시어 "태영이 왔니?" 하고 묻기에 "예 왔어요"하고 일어서니 물이 줄줄
흐르는 제 모습을 보시고 "저놈 오늘도 왔네. 저 놈 "쇠뭉치" 야 하시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날부터 쇠뭉치가 되었습니다.(쇠뭉치 정신으로 살았기에 60년 간 지각, 조퇴, 결석 한번 않고
살았습니다. 저, 아이들 3, 손녀 합하여 5 명이 )
메일을 한창 주고 받을 때 친구들이 "좋은 이름 놔두고 쇠뭉치가 뭐냐? 순한 이름으로 써라 " 하였지만 제 삶은
쇠뭉치로 살았기에 오늘에 이르렀다 생각합니다.그래서 쇠뭉치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