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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모린 머독, 교양인, 2022
이 책은 30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러나 30년이 지나 읽어도 공감하는 데는 전혀 손색이 없다. 여전히 진행 중인 가부장의 사슬과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수십억의 여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는 융 심리학을 기점으로 자기 발견의 여정을 말하고 있다. 저자 모린 머독은 무력한 어머니와 우상화된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남성적 가치–성공, 성취감, 만족도 등-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수많은 여성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 영웅의 서사를 따라가는 일은 필요하지 않고 건강하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성취, 성공과 능력을 펼치려는 모든 욕망의 근간에는 자신 안에 있는 남성성, 즉 아버지와 같이 힘 있는 존재(실제 아버지나 힘 있는 어른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한 무의식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 책이 단순한 심리 서적이나 페미니즘 서적과 구별되는 점은 여성의 문제를 이원론적 구조나 외양적 젠더의 문제로 이분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리상담가로서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그러한 고통의 이유가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하며 남성의 길을 따른 데 있음을 밝혀낸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존재의 근원으로 내려가 우리 내면에 있는 다양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 더 나아가 계속해서 고양하려고만 하는 남성성(지나친 성취 욕구)이 빠져 있는 함정을 직시하도록 도와준다. 또 여성은 열등하다고 보는 가부장적 신화에서 벗어나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긍정하고 통합하는 길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내적 성장의 길임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저자는 자신 안에 잃어버린 어머니(여성성)를 찾고 그 길로 돌아가는 일이 외부적으로 볼 때는 하나의 ‘하강’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하강은 영혼의 어두운 밤, 고래의 뱃속, 암흑의 여신과 만남, 지하세계로 가는 암울한 여정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한 여성에게 자신을 대면하고 자신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성장의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모린 머독, (고연수), 교양인, 2022. (표지 출처 = 교양인)
저자는 말한다.
“나는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는 동안, 중증 자궁경부 이형 상피종과 싸우고 있는 동안, 그리고 예술가로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다. 보고 싶지 않았던 나 자신과 내 세계의 진실을 대면해야 할 때, 그리고 변형의 불길로 단련되고 정화될 때마다 그 감정은 나를 찾아왔다.”
수많은 여성이 사는 동안, 이 자발적 소외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는 이혼, 질병, 사고나 가족의 죽음, 실직.... 등등 사회가 말한 실패라 여겨지는 순간들을 자기 삶에 맞닥뜨리며 그들은 자신 안에 그간 죽어 있던 여성성에 눈뜬다. 과거 자신의 어머니(여성성)를 무시하고 아버지(남성성)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깊은 무의식을 대면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을 살게 하는 힘은 바로 이 여성성–조화를 이루며 자신을 균형 있게 둘 수 있는, 어떤 성취와 상관없이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발적 소외의 단계를 거친 이들은 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모든 일에 성취와 경쟁의 마음이 빠져나가고 연대와 공감, 상생의 목소리들이 들어찬다. 자기 존재에 대해 날카롭고 몰인정한 시선을 거두고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듬게 된다.
자기 안에 남성성을 내려놓을 때 이런 소리가 들려올 수 있다.
“여성이 자신을 지배하는 내면의 목소리, ‘그가 옳아. 네 경력에 손해가 될 거고 결국 되돌아오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거부할 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공허감, 혹은 어쩐지 확실한 출세의 길을 밟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한 그들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아니오’라고 말하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내면의 폭군을 침묵시키면서 우리는 강해진다.”
우리는 타인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실망시킨다.
또 우리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선입견을 깨는 일이 두려워 계속 거짓된 자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무지 편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신선놀음이 아니다. 존재함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며 계속 무언가를 하라고 재촉하는 내면의 불안한 소음들을 잠재우는 일이다. 갈채 받는 일을 기꺼이 멈추는 일이다. 그럴 때 놀랍게도 우리는 단단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 누구나 한두 번쯤 겪게 되는 삶의 하강, 자발적 소외의 여정은 실패가 아닌 축복인 것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지난 한 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살아가고 싶은가. 무엇을 하든 당신은 성공과 성과와 증명이 아닌 당신 자체로 이미 반짝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자발적 소외의 길을 걷고 있는 나와 당신이 새해에는 더욱 깊고 단단해지길 기원한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각종 매체에 칼럼 및 영화평과 서평을 기고하며 프리랜서 라이터로 활발히 활동. 현재 남편과 중학생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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