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강론>
(2026. 7. 4. 토)(마태 9,14-1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4-17)>
1)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라고 물은 것은,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을 비난한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마태 11,18-19).”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먹는 모습만 보고,
굶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습니다.
뒤의 12장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말이 있습니다(마태 12,1).
또 16장에는 빵이 없다고 제자들이 걱정했다는
말이 있습니다(마태 16,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들은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을 텐데,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단식은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먹을 것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는, 단식을 할 수도 없지만,
단식이라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을
많이 했다는 것은, 먹을 것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들은 단식을 함으로써 남은 음식은 어떻게 했을까?
만일에 그 음식을 단식하지 않는 날에 다 먹어버렸다면,
그들의 단식은 ‘위선’이 될 뿐입니다.
단식함으로써 남은 음식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옳습니다.
사랑이 없는 단식은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2)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라는 말씀에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단식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참회하고 슬퍼하는 단식이었는데,
메시아께서 이미 오셨으니 그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메시아와 함께 기뻐해야 하는 때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을 메시아로 안 믿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그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는 단식을 합니다.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라는 말씀은,
지금은 ‘신약시대’ 라는 선언이기도 하고,
신약시대의 신앙생활은 구약시대의 신앙생활과는
달라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신약시대 신앙생활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십계명 제3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가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이(주일이) 토요일에 지내는 안식일보다
더 중요한 날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킵니다.
<초대교회 때에 사도들과 신자들은 유대교인으로서
안식일을 지켰고,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도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분리된 다음에는
주일만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계명들은 원래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4)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라는 말씀은,
‘새것’과 ‘낡은 것’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새롭다고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오래 되었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사상들과 이론들 가운데에는 악하고 해로운
것들도 많고, 또 오래 되었지만 계속 지켜야 할
‘선하고 좋은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 것을 잘 식별하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오래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좋은 것들’을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뒤의 13장에,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을 하면서 바꿀 것은 바꾸고,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데, 판단 기준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과 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기준은 생각하지 않고, 장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든 틀을 바꾸는 것도, 또 좋지 않은
관습이나 전통 같은 것 등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지키려고만 하는 것도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