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노래을 오랬만에 다시 읽었다. 요즈음 감상하고 있는 밴드오브브라더와 관련되어 생각이 나서 대출받았다. 선조의 총애를 받아 승진을 거듭하던 이순신은 출전명령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금부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끌려간다. 그가 전력을 다해 양성한 수군은 원균에게 인계했고 그는 죽음을 향해 압송되고 있었다. 죽음을 피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 고문은 길지않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원균이 지휘하던 수군이 전멸함으로서 그는 다시 백의종군하게 된다.
왜군은 배에 법화경을 싣고 중이 타고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들은 목을 베었다. 포로까지 먹일 군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배 12척으로 수백척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니 생지는 없고 사지에서 싸워야 했다. 다만 적에게도 사지인 곳이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왜군은 조선수군이 12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최단 경로를 선택했다. 이순신은 그들의 경로와 출진시간을 척후를 통해 알고 명량에서 일자진을 펼친다. 사실 12척의 배로는 다른 진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조류에 밀리지 않기위해 격군이 온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 했고 새까맣게 다가오는 왜선을 보고 공격하라는 명령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번 재촉을 하고서야 싸우기 시작했고 목숨을 걸고 싸우던중 조류가 바뀌면서 왜선의 선두가 깨지고 후진과 충돌하면서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조가 의병장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이순신은 그렇게 죽지않기를 기대했다. 왕에게 죽임을 당하지않으려면 적에게 죽어야 하는데 이는 백성에게 피해가 되므로 고민에 빠진다. 선조는 백성보다 자신을 생각했지만 이순신은 자신보다 백성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제독으로 잘 알려져있어 그가 임진년까지 해전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새롭다. 옥포해전이 그로서는 처음이었는데 육전과 같이 반드시 척후를 보내 정보를 얻어 작전을 짰다. 옥포의 경우도 적을 척후가 발견했고 척후의 정보에 따라 피아의 사지임을 확인하고 상황에 맞는 전술을 짜서 세계해전사상 전무후무한 전승기록을 시작하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 나와 적을 알고 나를 훈련시키면 위태롭지않을 수있고 승리는 적에게 달려있다. 우리도 나의 장단점을 주기적으로 생각하고 장점을 개발하고 단점을 피할 수있는 기회를 노려야 함을 알 수있다.
이순신이 옥포의 적선을 격침시키고 있을 때 고시니는 한양을 점령하고 있었고 이순신이 남해의 왜선을 부시고 있을 때 그는 예수교의 십자가기를 앞세우고 평양을 공격하고 있었다.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가서 명나라의 도움을 받거나 목숨을 보존하기위해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수교의 교리가 남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라는 정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옥포의 백성을 전투후에 데려간다고 언약했지만 너무 많아 데려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백성은 식량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단기적으로는 군량을 소모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육전의 원리를 수전에도 응용해서 전승을 올렸다. 싸움의 기본은 집중인데 적을 분산시키고 아를 집중시키면 전승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형을 활용하는데 좁은 수로로 적을 유인하여 수적우위를 만들고 하나씩 깨뜨리는 방법이다. 그는 부하에 대한 리더십도 똑같이 응용했다. 예를 들면 부하장수가 교전중이 아닌 적에게 끌려 교전에 참석한 백성을 자신의 부하를 죽였다고 처분하게 해달라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처분해야 할 사람은 적에게 끌려온 백성이 아니고 부하장수이고 자신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분을 허락했다. 하지만 부하장수는 처분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은 물론 부하장수와 백성을 모두 살리는 리더십이었다. 그는 또 군수품을 지원받지 못하자 자급하였고 오히려 조정에 필요한 종이와 화살 등을 보내기도 했다. 이는 그가 지키는 지역에서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해서 가능한 일이었고 부하들도 반으로 나누어 어로와 훈련을 동시에 담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형성한 셈이다.
명의 수군은 강화에서 머무르다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철수를 명령한 이후에 남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접전하기보다는 후위에 있었고 협공보다는 단지 후퇴하는 왜군을 막는 장애물로서나 활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명의 육군은 협공하기로 합의하고도 움직이지 않았고 수군은 대포를 원거리에서 쏘기만 해서 도움이 되지않았다. 이순신은 안개속을 항해할 때는 늙어 경험이 많은 객주를 향도선에 활용했고 순천과 남해의 왜군의 협공을 차단하기위해 통신용 봉화를 올리는 섬을 습격하여 통신선을 차단했다.
명의 육군은 왜군과 접전을 벌인 적이 없었고 그들이 물러난 곳을 그냥 차지하는 형태로 남하해왔는데 이번에도 왜군이 부상병과 포로로 잡아 노역을 시키던 조선백성의 목을 잘라 바치면서 전과를 올리되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니 명과 왜는 실리를 최대한 찾은 셈이다. 그러나 조선은 명분에 살고 명분에 죽기에 이순신은 귀국하는 왜를 멸종시키면서 총탄으로 세상을 떠나는 방안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왜군은 명의 수군에게 전과를 증명하는 수급 2천개를 제공하겠다며 포위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고 척후선이 포위를 풀고 남해의 적과 협공하게 된다.
따라서 이순신은 포위를 풀고 각개전파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그래서 노량으로 이동하여 남해와 순천의 적을 상대하게 되었고 방대한 전선때문에 지휘권을 내려주고 중군만으로 왜선을 격파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최후를 맞아하게 된다. 사람에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기억보다는 표현이 반복되거나 어려웠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책이다. 이순신을 기점으로 그의 후손은 문관에서 전환하여 대대로 무관으로 나라에 봉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