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끝나고 써두었던 글(의 일부)을 다시 올립니다. 제목은 "홍명보와 엘리트 주의" 였습니다. (글 써진 시점은 홍감독 사임하기 전입니다.) 다른데 올렸던 글이라 평어체인거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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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엔트리에 오른 선수들은 런던 올림픽의 성공을 이뤘던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동나이대 선수인 지동원, 김보경, 기성용, 구자철, 김영권, 윤석영, 박종우, 황석호, 이범영과 와일드 카드였던 김창수, 정성룡, 박주영이 모두 합류했다. 거기에 부상으로 올림픽에 참가 못했던 한국영과 홍정호까지도 합류해서 어떻게 보면 홍명보 감독 입장으로서는 올림픽 때보다 더 강한 팀을 만들었다고 생각 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올림픽에서 놀라운 경기력으로 홈팀 영국도 밟고 올라가서 메달 획득을 해내기도 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러므로 홍명보 감독의 선택에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감독 취임과 월드컵 사이에 1년정도 짧은 시간 밖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리면 적어도 올림픽 때의 퍼포먼스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수들의 폼(=최근 몸상태와 기량) 이라는게 항상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올림픽때 잘해줬던 많은 선수들이 그 이후 부침을 겪었고, 그때보다 퇴보하기 까지 했다는 데 있다. 겉보기엔 화려한 해외 리그 진출에 이 문제가 가려져 있었던게 문제였다.소속팀에서의 활약이 부진하더라도, “거기는 리그가 강하니까. 거기 벤치라도 엄청난거. 대표팀 오면 금방 잘할것.”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보니, 그 선수들의 현재 기량에 대한 판단이 흐려졌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물론 박주영이다. 2년간 풀타임 경기가 한번도 없었고, 이번 시즌은 국대를 제외하면 100분도 공식 경기를 뛰지 못했었다. 그리고 올림픽 때 무리한 다음 부상입고 이후 회복이 안되던 구자철. 강등권 팀에서도 자리를 잃은 김보경. 그 밖에 지동원, 윤석영, 홍정호… 다들 비슷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J리그 소속 선수들도 최근 결장이 잦기에는 마찬가지였다. 김창수는 부상으로 인한 장기 결장 이후에도 간간히 교체로 나왔고, 한국영은 감독과 트러블이라도 있었는지 최근 5경기 이상 명단 제외였다. 황성호 역시 서브멤버인건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개중 가장 폼을 유지하던 기성용도 시즌 마지막에 부상을 당했고, 김진수의 부상으로 막판 합류한 박주호 역시 부상회복이 더뎠었다.
이렇게 제 컨디션을 100% 확인 할 수 없는 선수들을 한꺼번에 전부 엔트리에 올려 버린 홍명보의 선택에는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엄청난 도박이었고, 실패의 가능성이 높았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만 11명이다. 설령 이 각각의 선수들이 국대 합류후 컨디션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80%라고 하더라도 이 11명이 모두 제 컨디션이 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박주영, 구자철, 김창수 등은 매우 좋지 못했고, 김보경, 지동원, 황석호도 기대 이하였으며, 그나마 홍정호, 윤석영, 한국영,기성용 정도만 풀핏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선수들이 100% 잘했다는 뜻은 또 아니다.)
몇몇 키가되는 선수는 소위 ‘클래스’를 믿고 선발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현재의 기량과 컨디션을 보고 뽑았아서 균형이 맞혔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더 최악이었던 부분은 최종 엔트리를 이렇게 선정할거였으면, 진작에 자기가 뽑을 선수들 위주로 팀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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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었던 홍명보가 자기가 잘 아는 런던 올림픽 선수들 위주로 팀을 만들기로 결정했었다면,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럴바엔 그냥 자기 선수들을 처음부터 부르고, 그 선수들 위주로 팀을 만들면서, 그 선수들이 실제로 자격있는 선수임을 보여줬었어야 했다.그리고 그렇게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다른 선수들을 자극 시켰어야 했다. 그러면서 믿었던 선수들의 폼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내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홍명보의 1년은 그냥 낭비였다. 애시당초 머리속에 들어있었던 선수단을 두고, 명분 쇼를 하느라 시간만 보냈다. 그러느라 정작 필요한 전술 점검이나 선수 컨디션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2차례 모의고사 (튀니지, 가나)는, 그냥 이렇게 ‘믿고’ 뽑은 선수들 컨디션/실전감각 올려주는 시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홍명보의 선수 선발을 가르켜 인맥축구니, 의리 축구니 라고 하지만 이건 약간 잘못된 말이다.
홍명보의 선수 선발의 핵심은 엘리트 주의다.
70년대는 잘 모르겠고, 80년대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는 철저한 엘리트 주의로 운영되어 왔었다. 국가대표팀은 대한축구협회가 관리하는 하나의 고정된 팀이었다. 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국가대표로 이어지는 핵심 엘리트라인의 선수들이 항상 대표팀의 주축을 이뤘고, 부족한 부분을 나머지 선수들로 채워넣는 방식으로 팀이 완성되었다. 일정 시간이 지내면 한 ‘세대’가 국대를 그만두고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홍명보는 이런 엘리트 중심의 운영의 정점에 있었던 선수였다. 엘리트로서의 프라이드로 아주 강한 사람이다. 최근 실패 이후 히딩크와의 관계가 재조명되고 (홍명보 본인은 히딩크식 선수 길들이기에 반대한다는 인터뷰) 마찬가지로 이전 감독들(김호, 비쇼베츠,박종환)과의 불화설도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서, 그런 일면이 더 드러나고 있다.
홍명보는 지금의 ‘런던’세대를 단순히 “인맥”과 “의리”로만 신뢰하고 있는게 아니다. 홍명보는 이 세대의 선수들을 현재 한국 국대를 이끄는 주축 ‘엘리트’ 선수들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성용, 구자철, 박주영, 김보경등등이 최조조에 달했을때는 믿을수 없을 만큼 좋은 소위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홍명보는 그렇게 ‘엘리트’로 받아들인 선수들을 적극 신뢰했으며, 그들을 중추로 한 팀을 만들고자 했다. (이 애들은 급이 다르게 잘차는 애들이다. 아무리 이 애들이 컨디션 나빠도, 어리버리한 애들 보다 나을 거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에서의 성공이 이런 믿음을 불행하게도 확신으로 바꿔버린것 같았다.
홍명보의 ‘의리’는 단순히 런던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본인이 일단 엘리트로 인정했냐 안했냐의 차이가 있었다. 이를테면 김영권-홍정호 조합 역시 반복된 실수로 계속 실점을 허용했지만, 계속 기회가 주어졌고 곽태휘는 평가전 한번의 실수로 용서받지 못했다. 정성룡, 박주영에 대한 믿음.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구자철, 이청용의 세경기 풀타임 출전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선수풀이 좁았던 예전에는 이런 엘리트 위주의 집중 관리 방식이 사실 정당성이 있었다. 사람의 운동 능력이 정규분포를 그리기 때문에 대개의 ‘될성부른’ 선수들은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었고, 그 선수들을 집중 관리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대표팀 운영방식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뛰는 무대도 한정되어 있어서, 이 선수들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일도 간단했다. 그리고 이런 엘리트 선수들에게 국대 경험치를 몰아줌으로서 팀웍을 맞추면서 선수들을 함께 성장시키에도 용이했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면서 시대 조건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다. 80년대 6개 팀으로 출범했던 프로축구는 1부만 12개 2부 10개 팀을 가진 거대한 “K리그”로 발전했다. (내셔널 리그와 K3까지 합치면 팀수는 엄청나다.) 좋은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 진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상위급 선수라도 J리그, 중국 리그, 중동및 동남아시아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의 일환이 되어 버렸다. 학원 축구와 유소년들의 숫자도 늘어났고, 해외에서 유스 생활을 (자비로)하는 선수들도 생겨났다.
이런 환경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을 집중관리하는 방식은 그 정당성을 많이 잃는다. 유소년 선수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단 선수 파악 자체가 쉽지 않다. 또 모집단이 늘어난 이상, 대기만성형으로 성장하는 선수들도 늘어난다. (김신욱, 이용) 게다가 선수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현재 국대 선수들의 몸상태를 파악 하는 것 만으로도 큰 일이 되어 버렸다. (박주영)
소속팀에서의 활약과 출전을 중시한다는 기본 원칙이 달리 생겨난게 아니다. 국가대표 팀에서 이런 선수들에 대한 관리를 할 수 없으니, 일단 기본적인 것은 원 소속팀에서 해결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홍명보는 처음 취임사에서 이런 원칙을 밝힘으로서 기대를 모으기도 했었으나, 결국 자기가 신뢰하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너무 의지하는 선택을 함으로서, 정작 본선을 망치고야 말았다. (전술적으로는 조금 나았다곤 하지만 조광래도 비슷한 문제로 좌초해 버렸다.)
홍명보의 선택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걸 부정하긴 힘들다. 단순 월드컵 1무 2패의 성적 뿐 아니라고 하더라도 평가전 성적을 포함한 승률이 너무 나쁘다. (27%로 역대 최악이다.) 전술적으로 경직된 단순함이야 원래부터 익히 알려진 문제였는데, 거기에 엘리트 위주의 선수 선발의 문제까지 겹쳐 버리니 큰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자존심 강한 홍명보가 재기를 노릴지 아니면 스스로 사임할지는 잘 모르겠다. (축협에서 경질은 안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실패를 잘 분석하고, 그 원인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미 홍명보는 광저우 아시안게임때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던 점이 있었다. 그러니 올림픽에서의 한번의 성공에 깨어나지 않는다면 같은 실수를 몇번씩 반복할 뿐이다.
첫댓글 공감하네요 비슷한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의리 인맥축구가 아니라 본인의 철학에 맞게 선수선발한겁니나 하지만 그 철학이 잘못된거구요
저도 인맥축구라는 말에는 공감못했지만 나름 의리축구는 맞긴했죠 ㅋ... 뭐, 어쨋든 실패를 한거고 재기를 한다면 달라져야할거라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이 개삽질이다.. 이명박은 4대강이 역사적인 사업이다.. 결국은 대다수의 눈이 맞았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다 같아요. 축구도 같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저건 아니다 싶은건 일이 터지게 되어있죠.. 거짓말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원칙,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어떤 것이라도 모두 망했습니다.
홍명보가 망한건 이런저런 이유 따질것 없이 기본과 원칙을 어기고 거짓말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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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가 무능했다고 비판하고 있는건데, 부도덕하지 않았다고 실드 친다고 받아들이시는거 같네요. 프로세계에서 무능한건 부도덕한것 만큼이나 치욕적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