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은 떨리고 입술이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모니터안에 들어가있는 글자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주체하지 못할정도의 심장박동수가 뇌를 흔드는 것 같았다. 우연찮게 '살인'이라고
검색창에 써서 엔터를 눌렀는데 대단한 사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얼마전에 영화로 나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 산골같은곳에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젠장 궁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이라고 말할수도 있는 김대두 살인사건은 자세한 내용을 찾지 못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눈을 끄는 것은 지존파였다. 94년 지존파살인사건은 아니, 살인
사건이라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기위해 살인공장을 만들었으니까.
인간을 도살한다고 표현하는게 더 어울릴 것이다. 그 살인공장에는 고문과 살인을 위해 감
금시설까지 있었고, 소각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살인실습을 했다는 것이
다. 단지 옛일의 글이지만,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글을 계속 읽다가 친구와 약속 때문에 밖으로 나갔지만 머릿속에는 그것들이 떠나지를 않았
다. 이런것들은 미국이나 일본같은 나라에서만 일어난줄 알았다. 친구와 함께 본 영화도 화
성연쇄살인을 소재로한 영화였다. 영화 역시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친구가 영화를 보고 재
미있다고 할때 난 버럭 화를 냈다.
"저게 뭐가 재밌냐? 사람 죽이는게 그렇게 재밌어?"
친구는 아마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혼자 화가 나서 저녁도 같이 먹지 않고 집으
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요
즘 한창 인기있는 유머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저게 뭐가 웃기다는건지. 내 생각을 짓밟아
버리듯 동생은 특정한 동작을 하자 웃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다시 살인사건의 대해 찾아봤다. 한국의 심슨사건이라는 치
과의사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사건인데 1차, 2차에서는 사형, 무기징역이었다가 마
지막 재판에서 무죄로 풀어났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건지 그냥 글만 보면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존파 말고도 영웅파나 막가파도 있었다.
그렇게 불안으로 며칠을 보낸 어느 날, 교수님의 심부름 때문에 평소보다 늦게 집에 귀가하
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멀리서 웅성거림과 싸이렌 불빛이 보였
다. 궁금증으로 결국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겼고, 그곳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보고 있던
동네수퍼 아줌마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여기에 살던 부부 알지? 맨날 소리치고 싸우던 부부있잖어."
"글쎄요."
"에유. 저번에도 여기 남편이 마누라를 죽자로 팼잖아. 동네사람들이 말려서 다행이지 안 말렸으면 그 여자 죽었을거여."
그때서야 아줌마가 말한 부부를 알 것 같았다. 30대 중후반 부부였는데 매일 싸운 것은 잘
모르겠지만, 한달 전쯤에 남자가 여자를 주먹으로 온 몸을 구타한적이 있었다. 그것도 집안
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낮 밖에서 그랬으니 동네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여자가 죽었어. 칼로 배를 수십번 찔렸다나봐. 무서워서 살수가 있나. 경찰들은 남편을 의심하고 있지. 당연한거야. 내가 생각해도 그 남자가 했을 것 같아."
여자의 얼굴은 못 봤지만 구급차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갔고 경찰들은 노란색 줄로 사람들이
못들어오게 막았다. 뚱뚱한 형사는 펜과 수첩을 들고 뭔가 묻고 있었다. 괜히 휘말리기 싫
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읽은지도 얼마 안됐는데 실제로 그 일이 내
주위에서 일어난게 두려울 뿐이었다. 며칠 후 라면을 사러갔다가 아줌마한테 슬쩍 물었다.
"범인은 누구래요?"
"..."
"왜 말을 안 해요?"
"난 몰라. 그런거 묻지마. 몰라. 몰라."
모르면 모르는거지 왜 그리 강조하는지 이상했다. 하얀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 방 안으로
들어간 아줌마는 날 이상하게 흘겨보더니 문을 콱 닫았다. 그러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물
어 볼 수도 없었다.
난 이런것들을 잊어보려고 뭔가 열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학업이었다. 그렇게 내 기
억에서 점차 잊혀갔다. 하지만 도굴단들이 내 머릿속을 파서 다시 기억해내게 만들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살인이 일어났다.
동네 이웃집 정도가 아니다. 동생은 차가워진 시체로 병원에서 만났다. 경찰들이 하는 말로
는 목졸라 죽임을 당했다고.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고. 그리고 범인은 제 3의 인물일 가능성
이 높다고 했다. 이런 답변을 하는 것은 주로 내가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용돈 달라며 애
교 부리던 딸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변해 왔으니 부모님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 쾌감이나 사회의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동생의 죽음이 이런것이라면 범인은 지금쯤 새로운 살인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
의 장례는 정신없이 치러졌다. 난 동생을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에게 찾아갔다. 페인트가 벗
겨져 그 안에 빨갛게 녹이슨 대문을 열자 그 사람은 평상에 앉아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로 수염을 깍다 말았는지 불규칙하게 자라 있었고, 누렇게 때가
찌든 런닝구를 입고있었다. 첫 인상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뭘좀 여쭤보러 왔습니다."
"으응."
이게 신음소리인지 내 질문의 대한 대답인지 잘 알아듣지 못 했지만, 그냥 묻기로 했다.
"요 며칠전에 시체를 보고 신고하셨죠?"
"으응."
"제가 그 죽은 사람의 오빠되는 사람입니다. 경찰한테 대충 듣기는 했지만 오빠로써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요."
"응? 뭐라고?"
지금까지 내 얘기를 듣지 않았던게 분명했다. 짜증났지만 다시 처음부터 말했다. 그의 입안
에서는 썩은 막걸리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뭘 알고 싶다는거냐."
"어떤 상황이었는지."
"목이 마르군. 목이 칼칼한데 술좀 먹었으면 좋겠군. 난 술먹고 올테니까 갈려면 가."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행동을 한다는 자체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
었다. 난 끝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평상에 앉아 집구조를 요목조목 살폈다. 30년은 됐을 법
한 집은 여기저기 쥐가 갉아먹은 흔적이 많았다. 대문과 일직선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
이 있었는데 문도 잘 닫혀지지도 않는 붉게 칠해져있는 나무문이었다. 나무문에는 커다란
창문이 달려있지만 불투명유리였다. 그 나무문 앞에는 찢어진 방충망이 달려있었다. 의도하
지는 않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 역시 낡아빠진 물건들로 가득했다. 방은 2개가
있었는데 작은 방은 창고로 쓰는 것 같았다. 큰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는 부적 3장이
붙어있었다. 3장이라서 그런지 방 안에는 사향냄새가 진동했다. 오래된 TV 좌측으로는 뒷산
이 훤히 보이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생김새도 들어오는 문과 비슷했다. 아무래도 통풍이
잘 안되는 위치라서 커다랗게 하나를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거기서 도둑고양이 마냥 뭐하는겨!"
"죄, 죄송해요."
난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은 검은 비닐을 들고 있었다.
"빨리 드시고 오시네요. 오래 걸릴 줄."
"이거 보면 몰라? 여기서 먹으려고 왔지. 너도 먹을거 아녀? 설마 사내새끼가 술 못한다는 얘기는 안 하겄지?"
예상했던 대로 검은 비닐에는 소주가 들어있었다. 일회용 소주잔을 평상위에 올려놓고 소주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랐다.
"마셔. 마셔야 얘기를 하지. 얘기 듣고 싶은거 아니야? 그럼 마셔. 인간이 만든 발명품 중 술이 최고의 발명품이야. 여자말고 최고의 쾌감이란 말이지. 난 언제 여자랑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 캬~ 좋다."
그는 술을 입안에다 털어놓으면서 감탄사로 변환시켜 내뱉었다. 나도 따라 마셨다.
"그 여자랑 남매사이라고 했나? 내가 먼저 보고 신고했지.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냐고. 아까 저기 들어갔을 때 반대쪽에도 들어가는 문처럼 하나 더 있었지? 그곳에서 시체를 봤어. 빤히 앉아있는데 이상한 형체가 보이더라고. 가까이 갔더니 웬 시체가 으.."
말을 끊고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뭐 말할 거는 다 말한거 같으니 술이나 계속 먹자고."
대충 그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술 잔을 같이 비웠다.
"자식들은 있나요?"
"아니, 없어. 나랑 같이 살 여자도 없는데 자식은 다리 밑에서 주워 올 것도 아니고."
"언제부터 여기 사셨어요. 집을 보니까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나 기빠진 날부터 쭉 살아왔지."
마지막 잔을 비웠을 때 그는 엎어져서 코를 골았다. 굳이 깨워서 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
다.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다
가 왠지 가고 싶은곳이 있었다. 난 주위를 살펴 그의 집 뒤쪽을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뒤로 향하는 골목길이 있었다.
동생이 시체로 변해 처음 발견된 곳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살해 되었을까'라는 생
각이 먼저 들었다. 여기서 살해 당했을까 아니면 이미 죽어있는 시체를 여기에다 버린것일
까. 내 동생가지고 이런 생각하는 내가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지만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
지를 않았다. 풀을 이리저리 헤쳐보았다. 경찰이 동생의 소품이나 증거같은 것을 벌써 수집
해가겠지만, 그냥 해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의 시체가 내 기억속에서 거의 사라졌을 때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어렸을 때 그림
책에서만 리모콘 하나만 누르면 밖에서도 집 안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청소하는 로
봇, 설거지하는 로봇,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대화로봇도 생겼다. 나도 이젠 환갑을 바라보
는 나이가 되었으니 인공단풍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어딘가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밥먹듯이 먹었어도 아직 두발로 쩍쩍 걸어다니는 그 사람은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이
다. 인공잔디와 인공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공원에 그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색다른 기사 있나요? 요즘은 하두 세상사는 얘기가 안 나와서."
"세상사는 얘기가 뭐 있냐? 크크."
"왜 웃어요?"
"니가 원하는 세상사는 얘기가 나온 것 같아서 한번 읽어봐."
그는 나에게 신문을 넘겨줬다. 종이가 점점 귀해지자 신문은 비닐로 만들어졌다. 검은 비닐
에 흰 글씨로 기사들이 쓰여있었다. 난 기사를 쭉 읽었다.
"오, 이런. 요즘은 이런걸로 하네요."
"너도 할 수 있을 것 같냐?"
"이런건 머리가 엄청 좋아야죠. 모든 것이 인식으로 되어있으니 말이에요. 도저히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힘들어요."
"야 임마! 나도 그정도는 알어. 나 죽을 때 가까워졌다고 무시하는거냐?"
"하하. 아저씨두. 이렇게 로봇을 조종해서 사람을 죽이면 증거가 아예 없어지겠군요."
"그건 그렇고 너 나이가 몇인데 여자랑 한번도 안 자보냐. 이젠 나이 더 먹으면 할 기회도
없어. 빨리 즐기란 말이야. 내 꼴 되고 싶지 않으면."
컴퓨터로 조종이 되는 인공나무에서 단풍잎이 하나가 뚝 떨어졌다. 눈길이 잎을 따라가다가
포기하고 '새로운 살인방법' 타이틀로 장식된 기사를 다시 읽고 있었다.
카페 게시글
공포소설방
[단편] 살인사건
학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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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11 00:0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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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어요 ^^
아... 저만 이해가 잘 안되나 봐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