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때의 초기백제 위치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백제 나라의 동쪽(북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동쪽)에는 말갈이 있다.
방향을 각각 반대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말갈은 강원도 지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도는 옛부터 예족이라하여 말갈족이 도읍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말갈족이 바로 이 말갈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十三年 春二月 王都老化爲男 五虎入城 王母薨 年六十一歲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疆境 少有寧日 況今妖祥屢見 國母棄11)養 勢不自安 必將遷國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土壤膏 宜都於彼 以圖久安之計 秋七月 就漢山下 立柵 移慰禮城民戶 八月 遣使馬韓 告遷都 遂定疆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九月 立城闕
13년(서기전 6) 봄 2월에 서울[王都]에서 늙은 할멈[老]이 남자로 변하였고, 다섯 마리의 범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나이가 61세였다. 여름 5월에 왕이 신하에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동쪽(북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동쪽)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이즈음 요망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가 돌아가시니 형세가 스스로 편안할 수 없도다. 장차 꼭 도읍을 옮겨야 하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漢水)(한강)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길이 편안할 수 있는 계책을 도모하여야 하겠다."
온조왕은 처음에 한수이북에 도읍을 정하였으나 국모(소서노)가 돌아가시자 도읍을 한강이남으로 옮긴것으로 보입니다. 한산은 지금의 한강이북의 한양 정도의 위치라고 보여집니다.
가을 7월에 한산(漢山) 아래(한강 이남)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들을 옮겼다. 8월에 사신을 마한에 보내 도읍을 옮긴 것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는데 북쪽으로는 패하(浿河)(예성강:대방)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웅천(熊川)(공주:마한)을 경계로 하였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고, 동쪽으로는 주양(走壤)(춘천:말갈족)에 이르렀다. 9월에 궁성과 대궐을 세웠다.
北史 列傳 (북사 열전) 百濟 (백제)기사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諸本脫[北接高]三字, 據《周書》卷四九《百濟傳》補.《隋書》作[北拒高麗]. 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王姓<餘氏>, 號[於羅瑕], 百姓呼爲[ 吉之], <夏>言 王也. -하략-
《周書》[統]上有[方]字. 城之內外人庶及餘小城, 咸分 焉./$諸本脫[人]字,《周書》有[民]字,《通志》卷一九四《百濟傳》有[人]字. 今據《通志》補.
그 나라(백제)는 동쪽으로 '신라'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고구려'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큰 바다에 경계하니 소해(패하)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서로 사백오십리이고 남북이 구백여리이다. 그 도읍을 '거발성'이라 하는데 또한 '고마성'이라고 한다. 그 밖으로는 오방이 있는데, 중방을 '고사성' 동방을 '득안성' 남방을 '구지하성' 서방을 '도선성' 북방을 '웅진성'이라 한다. 왕의 성은 '여씨'이고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부른다. '하'나라 말로 왕과 같은 것이다. -하략-
북방을 웅진성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의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첫댓글 "樂浪 南與三韓 分海,故 為之封畛,使島夷 不得北侵,而中外之防 峻矣."을
"낙랑은 남으로 삼한과 더불어 바다로 나뉘었다(경계를 이루었다), 그런까닭에 그곳(바다)이 경계가 되니, 도이(일본)가 북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고로 중국외곽(국경) 방어가 튼튼하였다."라는 식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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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分海 의 海 란 윗글의 <소해>를 가르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소해를 <패하>라고 생각하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예전엔 (수<하<해)를 지금은 (강<조금 큰강=소해<해() 이런 식으로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전에는 한수는 한강, 항하는 좀더 큰강, 대해는 바다... 이런식이 아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