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정예은
<성리학이 뿌리 내린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삼종지도를 따라야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야 했고, 시집 가서는 남편,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했다. 여자들은 이름도 하나 없었고, 교육은 집안 일에 관한 것만 가르쳤다. 조선 전기에는 여성의 지위는 고려와 비슷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리학이 뿌리 내리고 가부장적 질서가 강화되어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살게 되었다.
꿈꾸는 이예은
<조선시대 금지했던 모내기법을 시도한 백성들>
조선시대 후기에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백성들은 당시 나라에서 금지했던 모내기법을 과감히 시도했다. 모내기법을 시행하면 농민들은 힘을 덜 들이고 더 많은 쌀을 생산하게 된다. 나라에서 보내기법을 금지한 이유는 봄에 가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전란 이후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물을 가둘 수 있는 저수지를 곳곳에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일부 농민들은 넓은 땅을 경작하며 부농이 되었다.
담대한 노주원
<서민들의 삶을 그린 화가>
조선후기에는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와 민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 풍속화를 그리는 대표적인 화가는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김홍도는 주로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그렸고, 신윤복은 주로 여인들을 그렸다.
풍속화란,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정감있게 표현한 것이고, 민화란 일정한 형식이 없고 서민들의 소망을 표현한 그림이다. 풍속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김홍도의 씨름도, 신윤복의 미인도가 있다. 민화의 대표적인 예는 작호도, 화조도, 문자도가 있다.
실천하는 박한나
<영조왕 자기 아들을 죽이다?>
영조왕이 아들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서 8일 만에 죽게했다. 이유는 신하들이 왕에게 세자가 역모를 꾸민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면서 '죽음을 슬퍼한다'는 사도 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