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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리(Gucheon-ri, 九川里)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에 있는 리(里).
자연마을로는 벅골, 봉우골, 창팔, 방골, 도기 등이 있다. 봉우골은 옛날 조선조시대 통신수단의 일종인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그 봉화대의 흔적만 남아있다. 창팔은 옛날 장수가 여덟이 났다 하여 생긴 지명이기도 하고, 옛적에 송계라는 분이 있었는데 호를 창의라 하였으므로 호의 창자와 장팔의 팔자를 따서 창팔이라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쌀농사가 주산물이며 근간에는 고추농사로 주소득원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당근이 잘 자라는 토질로 과육이 연하고 선홍색으로 그 향이 독특하여 고추농사와 버금가도록 확대 경작하며, 배추농사도 많이 짓는다.
구천리(Gucheon-ri, 九川里)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북동쪽에는 해발 고도 200~300m 안팎의 나지막한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에서 흘러온 미천이 동쪽으로 돌아 원호리로 흘러든다. 하천 양쪽으로 평야와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미천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보리리·원호리·구미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구천리가 되었다.
명칭유래
미천(眉川)이 굽이쳐 흘러서 구천(九川)이라 하였다. 앞들이 기름져서 복리촌(福利村)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팔룡, 청산골 등이 있다. 팔룡은 용 꿈을 꾼 이가 거듭 여덟 형제를 낳았는데, 이 형제가 모두 등과(登科)를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행정구역 개편시 냇물이 구(九)자 형태로 흐른다고 하여 구천으로 개명되었다 한다. 청산골은 뒷산이 항상 푸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동다리·원구룡·소월·양옥·원심이·한바우 등이 있다.
현황
일직면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안동 시내에서 남서쪽 12㎞ 지점에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2.1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55세대에 107명(남자 51명, 여자 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귀미리, 서쪽으로 운산리, 남쪽으로 망호리, 북쪽으로 원호리와 닿아 있다.
구천리(Gucheon-ri , 龜川里)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서쪽으로 갓들과 새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서쪽에는 장못들이 크게 펼쳐져 있으며, 마을 북쪽으로 장제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 구천, 신천, 욋골 마을이 있다. 구천 마을은 지형이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천 마을은 쌍계천 연안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욋골 마을은 구천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천리(Gucheon-ri, 九川里)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구천리는 부남면의 중부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구천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천과 장터, 병암, 등골이 있다.
자연환경
북동쪽의 무포산(霧抱山)[717.5m]과 북서쪽의 매봉산(梅峯山)[643.5m] 사면이 구암산(九巖山)[807m]의 북서사면과 마주치는 부분의 넓은 계곡 사이를 용전천(龍纏川)이 북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용전천의 북쪽에 해당하는 무포산 사면은 부남면 이현리에서 발원한 노부천(老夫川)이 크게 두 번 곡류하면서 구천리를 다시 양분하고 있으며, 용전천의 남쪽에 해당하는 매봉산 사면은 시계 방향으로 깊숙하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다시 산지를 갈라놓고 있다.
노부천은 구천리의 서쪽 끝자락, 부남면 하속리와 접하는 부분에서 용전천에 합류한다. 노부천의 공격사면(攻擊斜面)[하천이 강기슭에 부딪쳐서 깎여지는 부분]에 형성된 단애(斷崖)들은 세립질 화강암이 지표에 노출되고 난 후 풍화와 침식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병암 화강암 단애는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로 등재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가 발달한 곳이며 앞에 작은 하천이 흐르고 구천교가 놓여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송군 부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속동, 상속동, 병암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천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구천동이 구천리로 개칭되었다.
명칭 유래
마을에 용전천(龍纏川)과 노부천(老夫川)이 흐르는데, 이 하천들을 마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구(九)’와 유사하다 하여 구천(九川)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을 앞에 내가 흐르고, 지형이 거북처럼 되었다 하여 구천리라 이름하였다.
자연마을인 장터는 과거에 시장이 열린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병암은 마을 주위에 있는 바위에서 따온 이름으로 바위의 모양이 병풍과 같다 하여 병암(屛岩)이라 불린다.
자연마을로는 구천, 서원, 장터, 배티나뭇골, 딸밭골마을 등이 있다. 구천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구천리의 그것과 같다. 서원마을은 구천 동쪽에 있는 마을로, 병암서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마을은 장이 섰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배티나뭇골마을은 배티나무(도토리나무의 일종)가 많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딸밭골마을은 산딸기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구천과 장터, 병암, 등골이 있다. 구천은 구천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로 2017년 1월 기준으로 5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매봉산의 남사면 밑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부남로에서 갈라져 나온 얼음골로가 마을을 관통하여 지나간다. 장터는 과거 이 마을 부근 마평에 사람이 많이 거주하여 자연스럽게 시장이 열린 곳이어서 장터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장이 열리지 않고 있다.
용전천과 노부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 부남로와 얼음골로가 갈라진다. 병암은 곳곳에서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단애가 형성되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1702년(숙종 28) 청송부사(靑松府事) 이문징(李文徵)이 창건한 병암서원(屛巖書院)이 이곳에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가 1978년에 부남면 홍원동 송전리 입구에 복원 건립되었다. 등골은 용전천의 남쪽에 해당하는 매봉산 사면에 시계 방향으로 깊숙하게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열촌(列村)이다.
병암 화강암 단애는 단애 뒤편에 있는 범덤숲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암은 최고 140m 높이의 수직 절벽으로, 이 절벽은 범이 떨어져 죽은 벼랑이라 하여 ‘범덤’ 또는 ‘범디미’라 불려 왔고, 주변의 범덤숲도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주요 도로에는 부남로와 얼음골로가 있으며, 두 도로는 구천삼거리에서 갈라진다.
현황
행정리는 구천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전체 면적은 약 9.9㎢에 이르며, 인구는 143가구에 272명[남자 136명, 여자 136명, 외국인 제외]이다. 구천리는 동쪽으로는 부남면 화장리·양숙리와 맞닿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부남면 하속리, 북쪽으로는 주왕산면 부일리와 경계하고 있다.
용전천과 노부천 주변에 형성된 들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구천리(Gucheon-ri , 九川里)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에 있는 리(里).
본면의 북부에 있하며 광대산과 대릉산 등의 산이 있고, 지전곡, 암텃골, 곤독골 등의 골짜기가 많은 농어촌마을이다. 본래 거제군 동부면의 지역으로서 구천이라 한데서 구천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구천, 연담, 삼거리미, 유천 등이 있다. 연담은 배리목이라고도 부르며 서당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천은 구천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천리(Gucheon-ri, 九川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구천리(九川里)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울주군 상북면, 양산시 원동면 선리와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 범도리, 남쪽으로 고례리가 있다. 북쪽으로 실혜산[828.3m]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 원서리를 비롯하여 여러 동리와 경계를 이룬다. 표충사가 있으며, 자연 마을로 구천, 삼거, 신지가 있다.
자연환경
구천리의 동쪽과 남쪽에 천황산, 재약산과 향로산[979.1m], 백마산[776m]을 잇는 산줄기가 에워싸면서 울주군과 양산시의 경계를 이룬다. 북쪽과 서쪽의 산내면과의 사이에는 실혜산[828.3m]과 정각산[860m] 줄기가 지난다. 재악산의 사자평은 해발 800m의 고지대로 오래전부터 화전민이 고냉지 채소를 재배하고 약재를 캤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목장으로 이용되고 스키장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억새밭이 유명하여 영남알프스에 속한다. 옛날 사자평에 있던 사자암(獅子庵)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계류천이 발원하여 구천천과 신지천을 이루고 삼거마을 일대에서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서쪽의 하천 유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상류에는 층층폭포(層層瀑布)를 비롯한 여러 경승이 있다.
밀양군의 동북쪽 변경에 위치한 산악 지대의 마을 이다. 표충사(表忠寺)의 서북쪽 정각산(正覺山) 동편 기슭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북쪽 골짜기로부터 남으로 내려오면서 정승동, 재말리, 도래재, 귀내, 삼박골 등의 자연 땀이 차례대로 두 갈래 하천(河川)을 분포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천리 일부가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가 되었다.
구천리의 취락은 구천천과 신지천 유역에 형성되어 있다. 중심 취락인 구천마을은 서쪽의 다래재에서 발원한 구곡천의 유역에 형성되어 있다. 다래재는 산내면과 단장면을 이어 주는 고개이며 구천천과 원구천(元九川)이 합류하는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류 유역의 산막골은 화전민들이 약초를 캐면서 개척한 마을이다. 삼거마을은 구천천과 시전천의 합류 지점에 형성된 마을이다. 삼거마을은 다래재와 표충사와 서쪽으로 밀양시로 이어지는 길목이 되어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삼계리(三溪里)’로도 표기한다. 조선 후기 김해김씨와 김녕김씨를 비롯한 여러 성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시전은 표충사에 인접하여 오래전부터 사하촌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시전(柿田)’ 이름은 사찰의 곶감을 생산하기 위한 감나무밭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칭 유래
‘구천’은 북쪽 도래재 남쪽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을을 흐르는 귀천(龜川)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구내’, ‘구천리(龜川里)’로 표기하기도 한다.
‘구천리(仇川里)’ 지명이 『호구총수』[1789]에 실려 있어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호구총수』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는 ‘삼거리(三巨里)’ 지명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삼거리’ 지명은 시전천 하류의 삼거마을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천, 삼거리 마을이 있다. 구천 마을은 재약산(載藥山) 동서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흘러내리는 아홉 개 계천(溪川)이 합쳐지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 마을은 아불(阿佛), 표충사(表忠寺), 원구천(元九川)으로 나누어지는 세 갈래 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385가구, 666명[남자 327명, 여자 33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천리의 농업은 취락 주변의 소규모 농경지를 이용하여 이루어진다. 주로 사과를 비롯하여 대추, 한천, 표고버섯, 맥문동을 비롯한 밭작물이 재배된다. 마을에는 수령 250년이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표충사는 구천리 주민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시전마을은 대표적인 사하촌이며, 삼기마을의 많은 농지는 사찰 소유의 토지이기도 하다.
구천리는 자연 풍광이 뛰어나 계류천 유역에 캠핑장을 비롯한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도래재에는 도래재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특산물은 구천사과와 들깻잎이 있다.
구천리(Gucheon-ri , 龜川里)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넓은 들이 펼쳐진 농촌지역으로, 구천저수지가 자리한다.
형성
진주목 시대에는 내진성면(內晋城面)에 속했으나, 1914년에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도동(道洞), 구천(龜川) 2개 마을이 형성된 후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입향하고, 다음 진양정씨가 입촌하였다.
명칭유래
조선 전기 이래로 이천(耳川)[귀내]이라 하다가 1995년에 구천(龜川)이라 개칭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귀내 또는 구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구천(龜川), 원기(院基), 도동(道洞)마을이 있다. 구천마을은 본래는 구계(龜溪)라 하였는데 조선시대 전기 이래로 이천(耳川)이라 하다가 1995년에 구천(龜川)이라 개칭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귀내 또는 구내라 한다. 원기(院基)마을은 옛날에 서원(書院)이 있었다 하여 원기라 불리고, 주민들은 원터라 한다. 도동마을은 냇가 옆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도천(道川)이라 불리다가, 후에 도동으로 개칭되었다.
현황
문산읍과 접경한 진성면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쪽에 경전선 철도가 지나는 간이역이 있다. 구천리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있는데, 세골[細谷], 존지골, 탑골, 월영이(月影)[월영산 아래에 고려시대 동씨(董氏)가 제일 먼저 와서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 갓골[冠谷], 돌빗먼당[석비에 글이 새겨져 있다는 산먼당], 귀내[耳川] 등지가 널리 알려져 있다.
도동(道洞)마을은 저동(猪洞)과 원기(院基)의 2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동은 진양정씨 세거지이며, 원기는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저동은 1980년대 남강 하류 농업용수사업으로 큰 저수지가 조성되어 주민 대부분이 이곳으로 이동하여 살게 되었다. 이곳에도 야시골, 절골, 빈댓골, 소주골, 대밭골, 절골, 바람골 등 널리 알려진 지명들이 산재한다.
구천리(駒泉里)
황해북도 사리원시 구천일동, 구천이동
→ 황해북도 사리원시 구천일동. 황해북도 사리원시 구천일동, 구천이동 영역에 있던 폐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봉산군 영천면의 신촌 · 묘동 · 양암동을 병합하여 영천면에 신설한 리로서 구천이라는 샘이 있으므로 구천리라 하였는데, 1918년에 사원면에 이관되었다. 1929년에 사리원면 구천리로 되었고, 1939년에 사리원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사리원읍 구천리로 되었다.
광복 직후에 다시 사리원면 구천리로 되었고, 1947년에 사리원시 구천리로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일부 지역이 사리원시 상매리로 개편되고, 또 일부 지역이 신양리에 편입되었다. 1954년에 황해도가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도되면서 황해북도 사리원시 구천리로 되었다가, 1955년에 구천일동과 구천이동으로 분리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