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1: 5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2. 하나님의 응답 ( 1: 5 – 11 )
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8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10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11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사람을 유다인에 대한 도구로 삼아 그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것은 유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며 그 소식을 듣고 놀라고 놀랄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은 사납고 포악하며 성급한 백성으로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 소유가 아닌 거주지들을 점령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울 것이며 표범보다 빠르고 독수리처럼 날쌔며 이리보다 사나울 것이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여러 나라들과 방백들을 멸시하고 모든 견고한 성들과 요새들을 취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신(神)으로 삼고 지나친 학대와 탈취로 죄를 범할 것이다.
합 1: 5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문맥상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고, 독자로 하여금 말하는 사람이 바뀌었음을 알게 하기 위해 임의로 번역한 듯하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침묵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임을 보다 분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말씀을 건네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말씀하시는 자리에 계시고,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 말씀을 듣고,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할 때 그냥 대화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지나치지 말고,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늘 할 일을 지시하실 수 있고 우리를 보다 완전한 길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완전하신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이다.
(2)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우'와 '하비투'는 주로 함께 사용되었다.
* 대상 21: 21 -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 시 10: 14 -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여기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보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불평하는 것은 나름의 생각과 사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으로 느끼고 침묵하신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을 하나님의 침묵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의 독선이 빚은 생각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의 말씀 속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예민함이 없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는 성도라면 우리 삶 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 말씀에 우둔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침묵하신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는 분이 아니시다.
* 눅 12: 32 -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는 말을 단순히 말씀을 하시는 의미로, 자신의 처지에서 이해했다.
사람이 어떤 일로 고민하거나 상황이 불리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내 삶을 내버려두시기를 바란다. 죄의 길이나 불순종의 길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좀처럼 죄를 멀리하지 못한다.
죄는 그만큼 달콤하고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조금 멀리하시기를 바란다.
(3)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타메후 테마후'는 칼 동사와 히트파엘 동사가 합쳐져서 매우 강조되어 놀라움의 최고 절정을 의미한다.
이로써 당시 이스라엘에게 닥칠 일의 심각성이 어떠한지를 나타낸다.
우리도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불행이 오랜 시간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하박국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침묵하시면서 뒷짐을 지고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시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르시되"라는 말로 다가오시면 우리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긴장하게 된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 수준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여전히 말씀하시고 일하시고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2]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그 일은 예루살렘의 몰락으로 이루어졌고, 그러한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국가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생전에"라는 말이다.
그 말속에는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일어날 일을 계획 중인데, 그 중요한 일을 너희가 보는 수준에서 하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말을 분명하게 해석하면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일은, 너희가 목격하는 일은, 그 일을 겪는 살아 있는 당시의 일로만 생각하겠지만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수준에서 일하지 않고 그 생각을 뛰어넘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일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겪는 일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이 살아있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큰 일을 할 것이다. 그 큰 일 중에 네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한 가지 만을 볼 것이다'는 말이다.
3]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단순하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도 예비하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일은 미처 깨닫지 못하므로 항상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외적인 평안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그 큰 은혜를 바라보지 못한다.
실제로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 우리 눈에 보이는 일은 그 가운데에 지극히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일에 몰두해서 그 일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작은 일에만 우리의 시선이 집중하면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행복을 담아 나의 인연 모든 분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미소와 함께 전해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