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로 무역적자 해소? 미국내 부동산 거품과 과소비가 문제의 본질 / 5/13(화) / 한겨레 신문
대만 달러화와 원화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이 최근 출렁이고 있다. 그 원흉으로 여겨지는 것은 미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미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요 무역흑자국을 상대로 통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까지 언급한 이 시장의 '소문'에는 근거가 있다. 트럼프의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밀란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작성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를 무기로 무역 상대국의 통화가치를 강제적으로 끌어올리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밀란 위원장의 주장처럼 킹 달러가 달러 약세를 보인다면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는 정말 사라질까. 주류 경제학계의 답은 노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모리스 옵스트펠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교수가 대표적인 반대론자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올해 3월 발표한 미국의 무역적자: 오해와 진실 보고서에 적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 가치와 미국 무역적자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클 때 달러는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무역적자를 포함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비율(경상적자를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비율)이 6.0%로 최고점을 찍을 당시인 2006년 달러 가치는 지금보다 싼 때였다.
구체적으로 당시의 달러 지수는 90을 밑돌고 있었다. 이 지수는 유로, 엔, 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낸다. 현재 달러지수는 10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이는 '달러 약세=무역흑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달러화 가치는 2000년대 들어 금융위기(2008년) 이전까지 뚜렷한 약세를 보였다. 같은 시기 미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는 고공행진 중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는 미국의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빠르고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달러화 약세로 수입품 가격이 높아졌지만 미국의 소비자·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적자를 보면서까지 돈을 많이 썼다는 얘기다.
그 중심에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있다는 게 옵스트펠드 교수의 분석 결과다. 미국의 금융규제 완화와 집값 상승에 힘입은 민간의 대출소비 확대, 정부의 돈 풀기 등으로 외국에서 돈을 빼내 과도한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다른 나라는 흑자를 내는 글로벌 불균형 현상의 원인도 결국 미국 내부에 있었다는 논리다.
옵스트펠드 교수는 "부동산 거품은 무역적자뿐 아니라 제조업 고용 감소까지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한 완전고용 상태에서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서비스 수요가 늘자 제조업이 쪼그라드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한국의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달러화 약세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일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미국이 생산한 상품 중 과연 사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것과 이들 제조업의 경쟁력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