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이 여름 휴가를 맞추자고 했다.
44년 전에 고교 1학년 동창생으로 만나 어느새 환갑이 되었으니 그동안 지내왔던 세월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지나온 세월의 성상도, 우정의 깊이도 남다른 친구들이었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한 친구는 고대 상대에, 두 친구는 전북대 상대에, 두 명은 각각 경희대 법대와 한의대에, 마지막 한 명은 서울대 약대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삶을 엮어왔다.
'은행 지점장', '한의사', '카드사 마케팅 책임자', '대학교수및 바이오 기업 대표', '삼성그룹 부사장' 등으로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뛰었다.
불혹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부부동반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그 세월만도 어느새 20여 년이 흘렀다.
각자가 너무 바쁜 사람들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모여 식사는 자주 했지만 휴가를 함께 보내기는 매우 어려웠다.
12명의 시간적 교집합을 구하기란 그래서 하늘의 별따기였다.
특히 친구들의 직책이 올라갈수록 활동부분과 책임영역이 대폭 확대되었고, 그럴수록 더더욱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던 까닭에 오래 전부터 약속을 하나 했었다.
"적어도 환갑 땐 12명이 시간을 할애하여 이유를 불문하고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자"고 했었다.
모두가 격하게 동의했다.
한 번 쯤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힐링을 경험하며 멋진 추억을 엮어보고 싶었다.
머리를 맞댄 결과 6명이 동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도 최대가 5일이었다.
친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자의 입장이다 보니 업무가 다양했고 무지 바빴다.
동시에 5일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는 건 무리였다.
이게 현실이었다.
8월 3일부터 4박5일 간 6부부가 '북해도'를 다녀왔다.
'북해도'는 대한민국 면적의 8할 정도인데 그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고작 500만 명 정도였다.
한국인의 눈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구밀도가 희박했다.
그래서 호흡이 용이했고 저절로 미소가 흘렀다.
원초적으로 그곳은 광활한 대지에 한적하며 여유가 넘치는 땅이었다.
자연은 본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짝이며 빛났고 푸르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눈길이 닿는 데마다 아름답고 영롱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혼슈', '시코쿠', '큐슈'도 여러 번 다녀왔다.
자연, 휴양, 음식, 온천, 낭만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단연 으뜸은 상술한 3곳이 아니라 '홋카이도'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사람마다 평가와 기준은 다르겠지만 1989년 대학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꽤 많이 일본을 왕래했던 나의 느낌과 판단으로는 그랬다.
울창하고 깊은 숲, 드넓은 들판과 농장,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야생화들, 높고 험준한 산들과 낮고 푸르른 구릉들, 명경지수 같은 호수와 계곡들, 거기에 수질 좋고 수량도 풍부한 천연 온천까지 그야말로 관광과 휴양엔 최적의 조건들이 두루두루 잘 갖춰진 땅이었다.
우리 부부에겐 이번이 두 번째 '북해도' 여행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부부는 '홋카이도'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두가 방문하는 곳마다 그곳만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과 환호성을 쏟아냈다.
나의 영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 고유의 감동이 더욱 짙어지고 선명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북해도'의 중심은 '삿포로'였다.
일본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고 설국으로 더 유명한 '홋카이도'의 심장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삿포로 맥주 축제' 기간이라 우리도 참가해서 마음껏 즐겼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의 4대 맥주 브랜드는 '아사히', '산토리', '기린', '삿포로'였다.
엄청나게 넓은 '오오도리 공원' 내에 각자 브랜드 별로 큰 규모의 섹션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동가홍상'이라고 했다.
우리가 비행기를 내린 곳이 삿포로 '치토세 공항'이었으므로 가능하면 '삿포로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시원하고 풍미가 깊은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를 마시며 흥겨운 마음으로 다같이 축제를 즐겼다
그곳에서 맥주 축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덤같은 기쁨이요 가외로 얻어진 행복이었다.
이번 여행의 일정은 전적으로 우리가 계획하고 선택했다.
5일간의 방점은, '아름다운 자연', '편안한 휴식'(온천) 그리고 '맛있는 식사'로 잡았다.
이 컨셉을 중심 테마로 삼아 여행을 설계했다.
8개월 전부터 여행사 담당과 내가 머리를 맞대고 여러번 의견을 조율했다.
아무래도 환갑 기념이었기에 숙소는 각 명승지의 '최고급 온천 호텔'로 잡았다.
5일 간 순차적으로 탐방할 장소와 여정도 너무 타이트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선별했다.
'노보리베츠', '오오누마', '하코다테', '고료카쿠', '도야 호수', '사이로 전망대', '요테이산과 후키다시', '니세코', '오오도리 공원', '다키노 레이엔' 등이었다.
'홋카이도' 중부와 남부 지역에선 보석같은 명승지로 평가받는 장소였다.
하나 같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 잡았던 멋진 '뷰 포인트'였다.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북해도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웅장하고 특별한 '요테이산'(1,898m)을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볼 수 없었다.
산이 높다보니 6부 능선 이상을 짙은 운무가 휘감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쉽게 걷히지 않았다.
끝내 '요테이'의 정상 부위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할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비경을 놓쳤다.
혹여 가족 단위나 친구, 클럽,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홋카이도' 중,남부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이 장소를 적극 추천해 드리고 싶을 정도다.
6년 전에도 세 부부 여섯 명이 '북해도' 여행을 함께 했었다.
그땐 승합차를 렌트하여 '후라노', '오타루', '샤코탄', '다이세츠산', '비에이와 아오이 이케', '흰수염 폭포' 그리고 '조용한 온천'을 찾아다녔다.
지도 한 장 들고 구석구석을 신명나게 드라이브 했었다.
다음에 다시 기회를 만들어 아직 가보지 못한 '홋카이도'의 동쪽과 북쪽을 중심으로 샅샅이 훑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심을 다해 동행해 준 여행사의 담당에게도 심심한 사의를 전한다.
그는 '북해도'에서 오랬동안 살았던 '일본 전문가'였다.
그래서 단편적인 '주마간산'이 아니라 그곳만의 깊숙한 속사정과 '스토리텔링'을 소상하게 들려 주었다.
덕분에 생생한 정보를 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곳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매우 넓어진 듯하다.
장삿속으로 고객을 대하지 않았고 늘 문화체험과 트레킹 본연의 목표에 충실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여행사의 경영철학과 시스템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신뢰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만족이었다.
좋은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함께 떠났던 '홋카이도' 환갑 여행.
그것도 신뢰하는 여행사와 공저로 우리가 선정했던 장소를 소재 삼아 멋진 추억의 '에세이'로 완성할 수 있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힐링 여행을 추진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시종일관 같은 모습으로 열정과 배려의 손길을 건네준 친구들과 각 배우자들께 이 지면을 빌려 재삼재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여행은 늘 그렇지만 추억이자 감동이며 사랑이었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 한다.
수많은 사진과 경비정산도 우리들의 게시판을 통해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렇게 또 한 페이지의 일기장을 감동과 추억으로 채웠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순' 이후의 인생은 돈이나 명예가 메인 테마가 아니라 건강과 소통, 공감 여부가 핵심이라고 믿는다.
동의한다면 '행운유수'를 기억하자.
떠나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살고 의미 있게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면 되리라.
삼척동자도 다 알듯이 통하면 아프지 않으나 불통이면 아프다.
통하면 공감이지만 불통이면 오해가 생긴다.
그래서 건강의 핵심도 '혈액순환'에 달렸다.
잘 흐르게 하는 것이 '무병장수'의 지름길이다.
신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네 정신과 감성도 마찬가지다.
통하면 공감과 행복으로 이어지나 불통이면 우울, 칩거, 외토리로 전락하기 일쑤며 끝내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진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통'과 '불통'의 문제가 '돈'이나 '권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삶의 요체임을 절감하고 있다.
'슬픔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의 깊이'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슬픔의 크기는 대개 비슷할지라도 절망의 깊이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지만, 인생 2막 이후에 가장 어려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얻고 상호간에 신뢰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일이다.
누군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진실로 상대를 안아준다면 생의 연료가 소모되는 모든 순간 순간들이 언제나 '생의 절정'일 것이다.
당연지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 나의 생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인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서고, 먼저 소통하며 상대의 손길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헌신'의 자세가 핵심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향기로운 우정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희구한다.
하지만 그런 우정과 신뢰는 결단코 만나 온 햇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향한 조건 없는 '헌신'과 '배려'에 한해서만 비례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변은 없었다.
살아보니 반드시 그랬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힘찬 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추억어린 사진이나 행복한 미소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깨우침이 하나 있었다.
인생의 요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헌신'과 '배려'였다.
묵묵한 '실천'과 '행동'이 문제겠지만 말이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오래된 좋은 친구들과의 여행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건강한 모습들에 감사한 마음이네요.
멋진 우정 오래토록 지켜나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