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희 / 춘천한마음교회
소아마비로 평생 어두운 그늘에서 겉으로만 천사표처럼 살았어요. 자살을 시도했었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부족한 2%의 목마름 때문에 갈급했어요. 그러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서울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구요.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걸 제외하곤 그런 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저는 항상 웃고 다녔구요. 얼굴이 밝다고 어른들께 칭찬을 참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제 깊은 속마음은 사실 많이 어두웠죠.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저를 병신이라고 놀렸고 참 많이도 괴롭혔거든요. 일부러 밀어 넘어뜨리곤 ‘메롱’ 하며 도망가구요. 또 책가방을 뺏어 멀리 던져놓고 제가 가까이 갈 즈음 다시 낚아채서 더 멀리 던지구요. 어린 마음에 이런 애들이 정말 미웠지만 전 왕따 당할까봐 감히 저항이나 말싸움 한 번 해보지 못했어요.
전 겉으로는 언제나 의연하고 모범적이었어요. 어른들께 칭찬받고 싶어서요.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려고 했고 웬만하면 애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 주면서 같이 놀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일찍이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 갔던 거 같아요.
사실 두 다리가 다 온전하지 않아요. 누군가 지나가다가 저를 조금만 툭 쳐도 그냥 넘어질 정도거든요. 오른쪽이 왼쪽보단 쫌 낫긴 한데 그나마 수십 년을 오른쪽에만 의지하다 보니까요. 결국 그 다리만 뚱뚱해지고 고장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눈(雪)을 정말 싫어했어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걸 창가에서 내다보면서 사람들은 멋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멋있다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아휴 이따 집에 어떻게 가지?’ 그 생각부터 먼저 들었거든요. 그게 제겐 현실이니까요. 한번은 중학교 때 친구가 이렇게 눈이 올 때면 유난히 눈을 싫어했던 네가 생각난다면서 안부엽서를 보내 왔더라구요. 남들은 멋있다고 하는 눈을 전 또 그렇게나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제 상황이 참 씁쓸했어요.
학교 다닐 때 국물 있는 음식을 일절 먹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웬만한 건물 층층마다 화장실이 다 있지만 그땐 주로 건물 밖에 화장실이 있어서 쉬는 시간 10분 동안 다녀오기엔 어림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좀 더 참았다가 집에 가서 해결하곤 했어요. 가끔은 참다 참다 바지에 실례할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가 혹시 겨울이면 바지가 소변 물기에 얼거든요. 그러면 움직일 때마다 속살을 건드려서 참 많이 쓰라려요. 발갛게 부어오를 때도 많구요. 그래서 지금도 어딜 가면 화장실이 어디있나 그거부터 챙겨보는 게 습관이 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셔서 저희 가족은 경기도 어느 동네로 사글세방을 얻어 이사했어요. 그때 제 방은 다락방이었는데 저는 그 어두운 다락방에서 하루 종일 책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아버지의 술 주사(酒邪)는 갈수록 심해지셨구. 거기에 생활이 더 어려워지면서 저는 점점 살 소망을 잃어갔어요.
그때 전 정말 무기력 했구요. 이렇게 살 거면 그냥 죽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소주에 수면제를 많이 타서 마시면 자면서 그냥 죽는대.” 하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근데 수면제는 한 약국에서 한 번에 많은 양을 안 팔더라구요. 그래서 날짜를 두고 여기저기서 조금씩 샀지요. 달력에 D-day를 정해놓고 하루하루 가위표를 쳐 가면서 그날을 기다렸는데, 전 결국 죽지 못했어요. 소주에 수면제를 타고 마신 거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방안이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엄마가 무슨 일로 다락에 올라오셨다가 저를 발견한 거예요.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서 위 세척을 하고 집에 와서 제가 깨어난 거죠.
그날 저녁 아버지께 정말 많이 혼났어요. “넌 어떻게 그렇게도 이기적이냐, 너만 죽으면 그만이냐? 남은 가족들이 평생 가슴에 못 박고 살 건 생각 못하니?” 전요, 솔직히 제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 생각은 전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어찌됐든 그날 이후 제게 ‘자살’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지워졌어요.
원래 양쪽 목발을 짚고 다녀서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어요. 근데 어느 핸가 다리를 수술하게 됐어요. 그때 하나님은 몰랐지만 막연한 절대자를 향해 간절히 기도한 두 가지 소원이 있었어요. 하나는 비 오는 날 내 손으로 우산 받고 걷는 거, 또 하나는 친구들과 손잡고 걷는 거요. 그 소원대로 전 수술 후 쫌 불완전하긴 하지만 목발 없이 걷게 됐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목발 없이 걷게 된 후 처음 비 오던 날, 일부러 우산을 받고 밖에 나가서 걸어봤던 일이예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예전에 그 팔랑거리던 파란 비닐우산 있잖아요. 그 우산이 다 찢어지도록 동네 한 바퀴를 돈 거예요! 야! 정말 그 기쁨은요, 그 감격은요!! 사실 말로 다 표현을 못해요. 옷이 흠뻑 젖어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집에 왔는데요, 뭐 창피한 거 힘든 거 전혀 몰랐어요. “야! 된다, 되는구나! 이젠 비오는 날 나 혼자 우산을 쓸 수 있구나!!” 정말 그게 얼마나 좋던지요. 꿈꾸는 거 같았어요. 아마 그때부터 제 안엔 조금씩 자립의 꿈이 싹 트고 있었던 거 같아요.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모 행정기관에 원서를 접수하러 갔어요. 근데 담당자가 “누가 지원하는 거죠?” “저요.” 그랬더니 담당자 표정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왜…요? 전 안 되나요?” “웬만하면 포기하시죠. 여기는 일 하기가 쉽지 않아요. 야근도 해야 하구, 지방에도 발령나요.”
웬만하면 포기하라…? 전 사실 그 말에 더 오기가 생겨서 원서를 접수시키고 와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만약에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공평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찌됐든 저는 합격했고, 그때 제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두 다리가 불편한 제게 직장 생활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출퇴근길이었어요. 그때까지 전 버스를 혼자 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집에서 직장까지는 중간에 한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제겐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어요.
한번은 버스에 올라 제가 자리 잡기도 전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도시락 가방이 내동댕이쳐진 거예요. 반찬이 버스 안 여기저기에 튀고 달라붙고…. 아수라장이 됐죠. “에이 이거 오늘 새로 입은 바진데.” 하는 말도 얼핏 들렸지만, 그 상황에 죄송하단 말도 못하겠더라구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콱 숨고 싶었어요.
또 버스가 어디쯤 설지 몰라 많이 놓쳤는데요. 그날도 퇴근길에 버스를 많이 놓쳤어요. 그런데 아까 타려다 못 탄 버스가 또 오는 거예요. 제가 차량번호를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까 그 번호가 또 왔어요. 알고 보니 그 버스가 한 바퀴 돌아올 때까지 못 타고 있었던 거예요. 적어도 두 시간을 버스 타느라 이리 저리 뛰어다녔던 거지요.
하지만, 일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게 맡겨진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해냈구요, 주경야독으로 학사 과정도 마쳤어요. 당시 제 직장은 높은 곳에 있어서 비탈길 오르내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그래도 눈을 뜨면 일하러 나갈 직장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더라구요.
어릴 때 아이들에게 저항이나 말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애들 해달라는 대로 해 주며 지냈던 그 마음은 어른이 돼서도 그대로 이어졌어요. 항상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했구요. 남들의 말 한 마디 눈길 하나에도 신경 쓰여서 어떤 땐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다가 또 어떤 땐 몇 날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옆의 직원이 하루 종일 말이 없으면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싶은 거예요. 한마디로 내 인생을 산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산거죠.
암튼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착하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혼자 참고 삭히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겐 ‘천사표’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어릴 때 어른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밝게 웃었던 것처럼 전 어른이 돼서도 똑같이 그 천사표에 걸맞게 살려고 애쓰게 됐던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저를 알잖아요. 천사표는 말도 안 되죠. 사실 제 안에도 미워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이 있고 맘껏 대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사람들이 두려워서 늘 움츠리고 오그라든 거였거든요. 하루에도 수없이 악하고 추하고 거짓된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요. 전 이 이중성이 너무 괴로워서 제가 정말 죄인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어느 날 저는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요, 이 마음을, 이 죄를! 꼭 좀 해결해 주세요. 꼭 만나 주세요.”
전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분명 하날텐데 누가 진짜 이 세상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참된 하나님인가? 정말 ‘진짜’를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종교를 기웃거렸지만 그 어디서도 이 답답함은 해결되지 못했어요.
제가 입사한 지 4년 되던 해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에서 장례를 주관하셨는데, 그런 곳엔 왜 찬송가를 계속 틀어놓잖아요. 근데 어느 때부턴가 제 귀에 찬송가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면서요. 그래서 전 혹시나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엄마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전 그동안 하나님을 참 많이 배척했는데 하나님은 항상 저를 인도해 오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안 떨어진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때서야 전 제가 소아마비에 걸린 거, 놀림 받고 자란 어린 시절, 수술하게 된 거, 제게 직장을 허락하신 거, 또 아버지의 죽음으로 교회에 나가게 된 것까지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과 또 그때마다 저와 동행하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순간!! 운명이 섭리로 바뀌고, 제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 열심히 성경을 읽었어요. 근데 이상한 건 말씀을 들을 때와 기도할 때 은혜와 평강은 분명 있는데 그게 계속되지 못하고 늘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거예요.
분명 성경에는 ‘자복하여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기록돼 있는데 전 그런 죄 사함의 확신이 안 생기는 거예요. 된 것 같다가도 안 되고 후련한 것 같다가도 또 뭔가 개운치 않구요. 그러다 보니 전 또다시 사마리아 여인처럼 목말라했고 교회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어도 몇 년 동안 주변만 배회하고 있었어요.
춘천 한마음교회 / 유진희 간증
그러던 어느 날, 춘천한마음교회에 다니는 직장 동료를 따라 교회에 가게 됐는데요. 그때 처음 들은 말씀이 예수님의 ‘부활’이었어요. 부활? 기독교인들 중에 부활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근데 목사님이 고전15:3-4 말씀을 읽어주시면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33세의 청년 예수가 죽었다! 그럼 그가 하나님이신 증거를 대체 뭘로 알 수 있겠냐? 부활밖에 없다! 그것도 갑자기 부활한 거냐? 아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거다!”
전요, 그때 ‘성경대로’란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게 모두 ‘성경대로’ 이루어진 거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거구. 그럼 내가 그동안 예수님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예수를 믿는다고 한 거였네! 그때서야 그렇게 감정에 따라 동요되었던 제 신앙의 실체가 확실히 보였어요. 이건 2%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신앙의 기초가 잘못되었던 거더라구요.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게 확증되니까 바로 ‘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요16:9 말씀을 통해 ‘아! 예수 믿지 않은 게 죄구나! 그럼 그동안 내가 죄라고 생각했던 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짓게 된 죄의 열매였던 거구나!’ 그걸 깨달은 순간! 제가 왜 그토록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그동안 제가 하나님 앞에 회개했던 건 예수를 주인으로 믿지 않은 근원적인 죄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죄의 열매만을 회개했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가슴이 확 뚫리고 모든 게 선명해졌어요. ‘부활’이 풀리니 ‘죄’가 풀리고, 죄가 풀리니 정확한 ‘회개’를 할 수 있었지요. 저는 그때 예수 믿지 않은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참된 주인으로 영접했어요.
‘부활’로! 성경의 모든 말씀이 믿어지니까 고후5:17 말씀에 그대로 ‘아멘’ 할 수 있었어요.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똑똑히 봐라! 새것이 됐잖냐?
저는 제가 육체의 ‘장애’에 대해선 잘 극복해 왔다고 생각했거든요. 문제가 있다면 끝없이 사람들을 의식하고 죄인 심정으로 사는 이 마음, 이 마음만 문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잘 생각해 보니까요. 그 건강치 못한 마음은 애초에 육체의 ‘장애’ 때문에 생긴 결과더라구요.
그걸 깨닫는 순간! 이 고후5:17 말씀이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제 마음 저 깊은 곳까지 온 영육 간에 새 피조물의 은혜가! 폭포수같이 부어지고 있었어요. 이젠 장애도! 죄인 심정도! 한 방에 모두 끝난 겁니다! 이전 것은 분명히 지나갔구요. 이제 저는 예수님 안에서 새 피조물 된 제 모습을 정확히 보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사람이 이미 된 것입니다.
정말 후련했어요. 이후 제 삶은 완전 달라졌어요. 틈 날 때마다 예수님을 전했고 기독교인이라면 진저리치던 여동생에게도 복음을 전해 지금 주님 안에서 함께하고 있어요.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마디만 들어도 잠 못 자던 제가 체면과 자존심 다 내려놓고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과 무시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만큼 담대해진 걸 보면 정말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5년 전 직장에서 명퇴를 했어요. 앞으로의 제 삶을 오직 주를 위해 달려가기로 다짐했거든요. 승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 명예보다 “내 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고 싶더라구요. 가끔 옛날 직원들로부터 안부전화가 와요. “직장 다니다 그만 두면 우울증 온다는데, 괜찮냐?” “우울증이요? 날마다 기쁘고 즐거운데요. 하루해가 짧아요.” 이러면 모두들 할 말 없어 하셔요. 제가 일주일에 작은 교회 예배를 세 번 드리거든요. 그러다 보면 말씀 준비하랴 사람 만나랴 정말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영원히 ‘할 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사는 목적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거예요. 저 어두운 다락방에서 죽음을 생각했던 저를 밝은 곳으로 불러내어 천국 소망을 주시고 새 피조물로 담대히 영혼을 살리는 ‘사명’까지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끝까지 이 사명에 충성하다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 칭찬받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 정말 새 피조물의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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