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산리(Gasan-ri, 加山里)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에 있는 리(里).
천남천이 마을을 굽이굽이 휘감아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개가말, 개와집 땀, 사창골, 안골, 용두동, 재개울, 흥촌이 있다. 개가말은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개와집 땀은 재개울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기와집이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사창골은 가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예전에 세곡을 모아 놓았던 창고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골은 가산리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용두동은 개가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재개울은 마을 양쪽으로 산이 있어 재가운데 있는 마을이란 뜻의 재곁울로 부르다가 바뀐 이름이다. 흥촌(興村)은 어느 지관이 지나가다가 이 터에 마을이 있으면 번창할 것이라고 말한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가산리(Gasan-ri, 柯山里)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리(里).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가목동(柯木洞), 월양곡(月陽谷) 등이 있다. 가목동은 가목골이라고도 하며 가죽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월양곡은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불린 이름으로 월양골이라고도 한다.
가산리(Gasan-ri , 加山里)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가산리는 가산면이 관할하는 법정리 8개 가운데 하나로 면의 남서부에 위치한다.
자연 환경
가산면 남서부에 위치하여 소흘읍과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 금현리, 서쪽으로 소흘읍, 북쪽으로 방축리·마산리와 접한다. 동쪽과 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서쪽이 넓게 트여 있다. 서쪽 지역에 남북 방향으로 포천천이 흐르며, 그것을 따라 평탄지가 형성되어 구래논·진골들·해산이벌과 같은 뜰이 넓게 분포하여 농경지로 조성되었다. 관내를 둘러싼 산들은 대체로 낮은 야산이며, 동쪽 야산을 중심으로 밭농사가 이뤄진다.
마을 서쪽에 포천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에 농경지가 조성되어있다. 서쪽을 제외하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며, 주변에 밭이 형성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2년 행정구역상 포천군 가산면 가산리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가산면 추곡리와 방축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리에 편입하고 가산면 관할에 두었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도동복합시로 승격하여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화산말 또는 화산이라 불렀다. 한편으론 마을에 시우정(時雨亭)이 있어서 시우골, 시우동으로도 불렀다.
자연마을로는 가래울, 남촌, 너먼말, 벌말, 샛말, 평촌 등이 있다. 가산리는 화산 아래 자리잡은 마을로 화산말 또는 화산이라 하였다. 또는 시우정이 있다 하여 시우골, 시우동이라 하였다. 가래올은 시우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추곡동이라고도 한다. 샛말은 가래울과 평촌 사이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으로 간촌이라고도 하였다.
현황
가산리는 3개 행정리로 구획되는데, 북동부는 가산 1리, 남부는 가산 2리, 북서부는 가산 3리이다. 동쪽 지역으로 시군도 4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간다. 서부 지역에는 포천천 쪽으로 널따랗게 농경지가 있으며, 안쪽으로 시우동길을 따라 다수의 중소 공장이 밀집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가래울[추곡동]·간촌·시우동·남촌·너먼말·벌말·홀마루골이 있다. 가래울은 가래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고, 시우동은 시우정이란 정자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역사 유적으로 정만석 선생 묘와 정기안 선생 묘가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에 있는 리(里).
산촌마을이다. 산이 높고 아름다우므로 가칠미라 한데서 가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가칠미, 배쟁이, 불미기 등이 있다. 놀래샘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처음에 가랑잎이 덮여 있어 몰랐으나 나무꾼이 밟자 샘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놀랐다 하는 설이 있다. 다름바우, 마당바우, 말바우, 명경대등의 바위가 많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차령산맥(車嶺山脈) 줄기가 서쪽으로 무이산[462m]에서 만뢰산(萬賴山)[612m], 남쪽으로 문안산(文案山)[415m]에서 두타산(頭陀山)[598m], 동쪽으로 두타산에서 부용산(芙蓉山)[644m]으로 이어진다. 진천읍 중앙에서 이월면·광혜원면·덕산면에 걸쳐 넓은 진천평야가 펼쳐져 있고, 진천평야 중앙으로 미호천(美湖川)이 남류한다. 가산리는 진천평야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은 약간의 나지막한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기후가 온난하고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진천군 월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구리·가암리·산정리의 각 일부, 방동면 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리라 하고 이월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진천읍에 편입되었다.
명칭유래
1914년 가암(佳岩)의 ‘가(佳)’자와 산정(山井)의 ‘산(山)’자를 따서 가산리(佳山里)라 하였다. 산정은 갬절이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있는 우물’을 뜻하는 한자 지명이다. 산 밑에 큰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우물이 남아 있다.
가암리와 산정리의 이름을 따서 가산리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갬절이(가암), 고속모퉁이(고속돌), 더리(가리), 만도석거리, 벌말, 산우물, 아랫말, 용수동, 웃말, 은구리(주구), 중말 등이 있다. 갬절이는 옛날 가암사(佳岩寺)가 있었다 하여 가암절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고속모퉁이는 옛날 이곳에 고석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더니는 바위가 덧니 나듯 불쑥 나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수동은 마을 앞에 못이 있었는데 거기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은구리는 거북이가 숨어 있는 모양이라 하여 은구리라 한다.
현황
진청군청에서 북동쪽으로 약 5㎞ 떨어져 있다. 2009년 8월 31일 현재 면적은 1.82㎢이며, 총 151가구에 336명[남자 170명, 여자 1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산정·주구·가암 등이 있다. 가암은 산우물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갬절이 또는 개미저리라고도 한다. 마을 뒤쪽에 있던 가암사(佳岩寺)에 신도들이 개미처럼 모여들었다 하여 개미절이라 하다가 갬절이가 되었다고도 하고, 가암사에 개미가 들끓어 기둥을 갉아먹었다고 하여 개미저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국도 17호선이 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어 음성 방면으로 이어지고, 주변에 중부고속도로 진천IC가 있어 서울과 부산 방면으로 이어진다. 진천평야에서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며, 서쪽 구릉지를 중심으로 고추와 잡곡류를 재배한다.
가산리(Gasan-ri , 駕山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있는 리(里).
서쪽에는 국사봉이 있고, 동쪽에는 무심천이 흐른다. 대부분 낮은 산지와 구릉지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산리(멍에미, 머미), 서원말, 신흥, 양달말 등이 있다. 가산리는 산이 멍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서원말은 체화당 비각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흥은 전에 신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양달말은 머미 양지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국가유산으로는 충북기념물 제72호인 한란묘소 및 신도비가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가산리의 북부와 서부·남부에는 각각 해발 고도 300여m와 2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북서부에는 천태산(天台山)[392.1m]이 높이 솟아 있다. 동부에는 가락천(佳樂川)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하천 양쪽으로는 해발 고도 80여m의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갈미봉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평평하고 낮은 고도의 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의당면(儀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의당면 가락동·중산리·구산리(具山里)·신양리(新陽里)·천수동(泉水洞)·태산리가 통합되어 가산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유래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가락동(佳樂洞)과 태산리(台山里)·중산리(中山里)에서 ‘가(佳)’자와 ‘산(山)’자를 따 ‘가산(佳山)’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락골, 군줄, 사장터, 시묘산 마을 등이 있다. 가락골 마을은 지형이 가락과 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군줄 마을은 가락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구씨가 살았다 해서 군줄 마을이라 불린다. 사장터 마을은 중산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시묘산 마을은 옛날 효자가 부모 산소를 모시고 3년 시묘를 살았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현황
의당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3.48㎢이며, 2016년 3월 31일 현재 총 67세대에 149명(남 75명, 여 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총 경지 면적은 72.03㏊로 면 전체 면적의 4.45%를 차지하고 있다. 가락천 연변의 평야는 벼농사 지대이며, 산기슭은 밭농사 지대이다. 하천을 따라 중을·군졸·가산·조산 등의 촌락이 들어서 있다. 지방도 691번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어 북서쪽으로는 중흥리에, 남동쪽으로는 송학리에 연결된다. 곳곳에 소규모의 도로가 놓여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가산리(佳山里)는 가산1리와 가산2리로 이루어지며 선장면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농업이 주요 소득원이지만 인근 공장이나 회사에 취업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명칭 유래
자연환경
가산리는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해변이었는데, 간척사업 이후 광활한 평야지대로 바뀌어 지금은 벼농사 지대를 이루고 있다.
남동부의 학성산(鶴城山)에서 발원하여 선장저수지를 거쳐 삽교호로 흘러드는 학성천과 도고천 사이에 위치하며 대부분이 저지대를 이루고 있고 벼농사에 알맞다.
형성 및 변천
가산리는 본래 천안군 돈의면에 속하였다가 198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신창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락리, 채신언리의 각 일부와 신창군 북면의 오룡동, 신궁리의 각 일부와 대서면의 굴산동, 용당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리라 하고 아산군 초정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충청남도령 제8호령에 의거하여 초정면에서 선장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아산군 선장면 가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선장면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가산리’라는 명칭은 1914년 가락리(佳樂里)와 굴산동(堀山洞)을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가라기, 개뚝말, 단정리, 용당이 등이 있다. 가라기는 가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넓은 들 가운데에 위치하는데 가라지풀(강아지풀)이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뚝말은 가라기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약 60년 전에 뚝을 쌓고 그 안에 집을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단정리는 용당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당이는 가라기 옆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용당이 있었다고 하여 용당이라 불린다.
현황
가산리의 면적은 2.68㎢이며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125가구에 총 241명으로 남자가 127명, 여자가 114명이다. 가산1리와 가산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단정리, 용당리, 삼선, 가래기의 자연마을이 있다. 가산1리의 단정리는 단쟁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붉은색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용당리는 뒷산에 용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삼선은 예전 삼선초등학교 앞쪽을 가리킨다. 가산2리의 자연마을인 가래기는 예전에 아름다울 ‘가(佳)’, 즐거울 ‘락(樂)’ 자를 써서 ‘가락리’라 하였는데, 변하여 ‘가래기’가 되었다. 가래기는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해변이었는데, 지금은 광활한 평야지대로 변모하여 벼농사를 짓고 있다.
가산리의 동쪽으로는 대흥리, 서쪽으로는 당진시 우강면 내경리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는 궁평리, 북쪽으로는 신문리와 인접하여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주로 벼농사를 통해 주 소득이 형성된다. 일부 한우 농가도 있다. 또한 인근 공장이나 회사에 종사하는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가산리(Gasan-ri , 可山里)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입장면사무소 북서쪽 약 3.5㎞ 지점에 위치하고, 경부 고속 도로 서울 방향 입장 화물 터미널 휴게소가 있다.
자연 환경
천안과 경기도 안성시의 경계인 미양산 아래 서쪽 지역으로, 가재울 방죽[가좌동 인자 금이제(可坐洞 印字 金已堤), 남북 121.21m[400척], 동서 112.12m[370척]]이 있다. 입장천(笠場川)[한천, 한내]과 만나는 지점의 완만한 구릉과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에 천원 목장(天原牧場)이 자리 잡고 있다. 입장천은 일제 강점기 때 준설 채금선(浚渫採金船)이 투입되어 많은 사금이 채취되었다. 입장천의 중상류로 성환, 평택, 안성의 광활한 소사벌판을 바라본다.
작은 산들에 마을이 둘러싸여있는 농촌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 삼동면 가좌동과 토산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가산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입장면 가산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다시 천안군 입장면 가산리가 되었다.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 입장면 가산리가 되었으며, 2008년 6월 23일 행정구 설치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직산현(稷山縣) 삼동면(三東面) 가좌동(可座洞, 可坐洞)[가재울, 가좌울]과 토산리(土山里)[톨미]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가좌동의 ‘가’ 자와 토산리의 ‘산’ 자를 합쳐서 가산리(可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좌울, 승적골, 신아궁 등이 있다. 가재가 많았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가좌울은 주위의 산의 모양이 삼태미처럼 생겨서 동네가 길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승적골 은 불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하며 이 동네에서 불여우 같은 짓을 하면 승적골 불여우라고 부른다 한다. 신아궁은 도깨비가 많아 신아궁이라 했다고 한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 3.70㎢이며, 총 146가구에 350명[남자 197명, 여자 1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산 1·2리의 두 개 행정리가 있다.
토산리(土山里)는 토산리(兎山里)라고도 하는데, 토산리 뒷산의 모양이 토끼를 닮았다고 한다. 예전에 동네가 하천 옆에 있었는데 홍수로 침수당하여 지대가 높은 현재의 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톨미 앞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조립(趙砬)의 효자 정문이 있다.
동쪽은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법전리·서운면 현매리, 서쪽은 입장천 건너편에 입장면 산정리·흑암리·용정리, 남쪽은 입장면 신두리·유리, 북쪽은 입장면 연곡리와 접한다.
특산물로 입장 거봉 포도를 많이 경작하며 논농사가 주를 이룬다. 천원 목장이 자리 잡고 있어 거대한 목초지를 형성한다.
경부 고속 도로 서울 방향 입장 거봉 포도 휴게소[입장 화물 터미널]가 있고, 남쪽으로 국도 34호선이 지난다. 그 옆에 티센크루프(ThyssenKrupp) 엘리베이터 코리아의 탑(塔)이 랜드 마크처럼 입장천 옆에 위례산을 배경으로 높이 우뚝 서 있다. 서울과 수도권이 인접하고 편리한 교통망과 안정된 지형 조건으로 대형 물류 창고와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다.
특산물로는 포도가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에 있는 리(里).
본면의 북서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서쪽은 삽교천과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어 질 좋은 쌀을 생산한다. 자연마을로는 개실, 한다리, 정광이 등이 있다. 개실은 가야실, 가야곡, 개야곡이라고도 부르며 가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불당이 있다. 한다리는 대교라고도 부르며 한다리가 있는 마을이다. 한다리는 개실 서쪽에 있는 3m 길이의 큰 다리이다. 정광이는 개실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리(里).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마을 주변의 산세가 아름다운데, 동쪽으로 황산이 높이 솟아 있고, 암벽이 발달한 마을 뒷산은 풍치도 수려할 뿐만 아니라 예부터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로 산성(가산산성)을 쌓아 대치하던 요새지였다. 북쪽 아영면 아곡리로 통하는 방고개가 있어 예로부터 아영면 사람들이 운봉을 넘나드는 주요한 통로 역할을 하였다. 해발고도는 570m이다.
마을이 산지에 위치해 있으며 곳곳에 보가 형성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479년(성종 10)에 곡부공씨(曲阜孔氏)가 처음 이곳을 개척하여 움막을 치고 터를 잡았다. 그러나 공씨는 3~4대 뒤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1619년(광해군 11)에 서산유씨(瑞山柳氏)와 경주이씨(慶州李氏)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군 서면 지역으로서 가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지리·매요리·화수리의 각 일부가 합쳐져 가산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에 따라 남원시 운봉읍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유래
가산이란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이며, 방현은 방을 붙인 고개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옛날부터 운봉 관아가 있는 운봉읍과 권농병마사가 있던 아영 지역의 중간 통로였기 때문에 이 고개에 운봉현 유생들이 과거시험 결과를 알리는 방이 붙었는데, 이곳에 합격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방을 기다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자연마을로는 들가운데, 방고개, 양지촌 등이 있다. 들가운데는 가산 남동쪽의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을 말한다. 방고개는 양지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위에 고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촌은 햇빛이 잘 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읍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7년 9월 기준 면적은 2.01㎢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82세대에 135명(남자 63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총 면적은 201.8㏊로 운봉읍 전체 면적의 3%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농업은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림업이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가산산성과 향교 터, 용암사우 터, 명석치, 정려문, 비보석 등 향토문화재가 있으며, 함양오씨 제각인 화포재(華圃齋)와 파평윤씨의 제각인 명석재(鳴石齋)가 있다. 마을 앞으로 24번 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며 동쪽으로 경상남도 함양읍에 연결된다. 이 외에도 8번 지방도가 운봉읍과 인월면을 지나고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있는 리(里).
들이 넓은 지역이며 마을 옆으로 용천이 흐른다. 고가산 밑이 되므로 가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산, 회룡동마을 등이 있다. 가산마을은 가산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는 가산리의 그것과 같다. 회룡동마을은 지형이 좋아 용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리(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 비금면에 편입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으로 편입되었다.
가산이라는 지명은 주변의 산지가 아름답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며 1580년(선조 18) 제주양씨 양무학이 처음으로 이주해 와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산마을, 감낭골마을, 나배을, 노대섬마을 등이 있다. 가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가산리의 그것과 같으며, 가출도 또는 갈침매라고도 한다. 감낭골마을은 가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감나무가 있던 골짜기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배마을은 뒷산의 형상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노대섬마을은 나릇배로 건널 때 그 날로 노를 대지 않으면 조수가 빠져 갈 수 없었다고 알려진, 노대섬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노대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가산리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대동염전(신안 비금도 대동염전:등록문화유산 제 362호)이 있으며 목포항을 오가는 철부선이 운행되는 가산항이 있다.
가산리(Gasan-ri, 加山里)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동쪽으로 원흥산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며 낙동강 연안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만경산 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낙동강이 흐르는 서쪽에 농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쪽은 산악지형이다.
형성 및 변천
약 200년 전부터 김해김씨(金海金氏)·청주이씨(淸州李氏)·안동권씨(安東權氏) 등이 가덕마을과 연산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였고, 1930년 일본인이 마을에 양수장을 설치하여 집단 농장을 경영하였다. 1940년 후반 후생촌(厚生村)이 형성되었다.
명칭유래
산두 쪽 사람들이 자주 흉년을 만나는 것을 저어하여 덕을 보자고 지은 마을 이름 ‘가덕(加德)’과 예전 가산리에 속하던 ‘연산리(蓮山里, 지금의 용산리)’의 첫 음절을 따서 가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덕(加德), 새마, 신흥촌(新興村), 원흥(元興) 등이 있다. 가덕은 약 100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자주 흉년이 들자 덕을 보자고 붙인 이름이다. 새마는 가덕 동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다. 신흥촌은 박원벽(朴元壁)이라는 이가 농지 약 30정보를 정부에 기증하여 면내 빈민 33세대를 정착시키고 한 집에 8단보씩 지급하여 생긴 마을이다. 처음에는 후생촌(厚生村)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신흥촌이라 한다. 원흥은 고려 때 원흥사(元興寺)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흥사는 빈대가 너무 많아 폐사되었다고 한다.
현황
2009년 1월 현재 총 103가구에 239명[남 109명, 여 13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덕, 새마을, 신흥촌, 원흥 등 마을 모두가 낙동강 연안에 있어 토지가 비옥하며 수리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벼농사를 비롯한 원예 작물을 재배한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가산리는 영덕군 창수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며, 행정리로 가산1리·가산2리가 있다. 자연 마을로 구미, 동짝모태, 두들마, 복치락골, 서원마, 서짝모태, 우렁티, 점못이 있다.
자연환경
가산리 마을 뒤로는 등운산 줄기가 뻗어 있고, 남으로 배나리의 뒷산이 솟아 있으며, 서북으로는 큰 한티, 작은 한티가 있다. 그 사이로 울령천과 오서천이 만나 동해로 흐른다. 마을 중앙으로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가산리의 위치는 동은 인량리, 남서는 신기리, 북은 미곡리, 칠보산의 지맥으로 큰한티, 작은한티가 솟아 있다.
형성 및 변천
가산리는 조선시대 영해도호부에 속한 동리였다가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해군 서면으로 편제되었다. 1914년 3월 1일 영덕군 창수면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때 우앙현(愚仰峴)과 우상동(愚上洞) 일부를 합쳐 가산동이라고 하였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면서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가산리(佳山里)는 마을 주변의 산세가 아름답다고 하여 가산(佳山)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자연마을로는 구미(龜尾), 동짝모태, 두들마, 서원마, 서짝모태, 점못, 우렁티 등이 있다. 서원마는 가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단산서원(丹山書院)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가산리는 마을 주위의 산세가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가산리는 2020년 말 기준으로 면적은 5.66㎢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72가구에 122명[남 58명, 여 64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으로 인량리, 남쪽으로 신기리, 서쪽으로 미곡리, 북쪽으로 등운산과 접해 있다. 가산리는 영해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제918호선을 따라 5㎞ 가다가 창수면 소재지에서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을 타고 약 1㎞ 떨어진 곳에 있다.
비봉산[103.8m]과 대봉산[184.2m] 끝자락을 따라 가옥이 집촌 형태를 보이며, 그 앞으로 가산들·앞들이라 불리는 넓은 평야에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봉산 뒤로는 가산지가 있어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산세가 수려한 마을로서 일찍이 역동(易東) 우탁(禹倬)[1263~1342]이 가산리를 보고 감탄하였으며, 회양당(晦養堂) 권상정(權尙精)은 가산팔경을 지정하였다고 한다. 주요 유적으로 구산정(龜山亭), 봉주정사(鳳洲精舍), 추달재(追達齋), 불매정(不寐亭), 우현정(愚峴亭) 등이 있다. 이외에도 가산리 북쪽의 복치락골이라는 마을에 있는 복철암에는 나옹대사가 머물렀다고 한다.
가산리(Gasan-ri , 佳山里)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마을 동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쌍계천(雙溪川)이 마을 앞을 흐르고, 그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멀리 북쪽 비봉산(飛鳳山)에서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마을의 북부 평야 지대에 도달하며, 이곳에 마을의 대부분 취락이 집촌을 형성하면서 여러 곳에 분산 입지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가지가 발달해 있는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가음면의 가상동·가중동·가하동·계산동 및 토현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가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거하여 가산리로 개칭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가상동·가중동·가하동과 계산동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산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인 고바우는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이 곳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며, 그 후 산 아래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계산(溪山)이라 불렸다. 들감 마을은 들을 낀 아름다운 산 아래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들감 위쪽 산 밑 마을은 대숲이 있다 하여 죽근림(竹近林) 또는 중근림이라 불렀다. 새땅, 새터[신기(新基)] 등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며, 새실지[新實地]는 새로 결실을 거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남쪽으로 새들, 가음들, 샛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밑으로 쌍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장제지, 덕천못 등이 있어 수원이 풍부하다. 자연마을로 고바우, 새, 죽림 마을이 있다. 고바우 마을은 고바우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 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죽림 마을은 대나무 숲이 무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가산리는 가음면의 남서부에 자리잡고 있다.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2.8㎢이며, 총 167가구에 356명[남자 177명, 여자 179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로는 가산 1리, 가산 2리, 가산 3리, 가산 4리가 있다. 동쪽으로 양지리, 서쪽으로 귀천리, 남쪽으로 순호리, 북쪽으로 장리와 인접하고 있다.
가산리는 넓은 농경지를 생활 터전으로 하는 농촌 마을이지만, 가산리의 북서편 지역은 가음면 면소재지인 장리와 인접하여 농촌 소생활권 중심지인 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이곳으로 남쪽의 대구광역시 군위군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79호선과 금성면·춘산면 방면의 지방도 68호선이 교차하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 가음 초등학교 및 병설 유치원이 있다.
가산리(Gasan-ri, 架山里)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가산리는 가산(架山)[902m]의 완만한 북사면에 산촌(山村)을 형성하고 있다. 서쪽의 모래재에서 동쪽의 두리봉[444m]에 이르며, 북쪽에 용선대(龍仙臺)[558m]가 우뚝 솟아 있다. 가산리는 인근의 용수리, 응추리와 더불어 사창천(社倉川)의 상류에 해당된다. 산당과 한뜸을 지나는 가산천, 그리고 북창을 지나는 북창천 등 2개의 개울이 각각 용수리의 김남정 마을과 용계 마을 앞에서 사창천에 합류한다. 사창천은 북쪽으로 흘러 위천(渭川)에 합류된다. 높이 845m 산등성이에 가산 바위가 있는데, 270여㎡[약 80평] 크기로 자른 듯 평탄하여 100여 명이 올라설 수 있다. 이곳에서 맞은편 유학산과 멀리 대구광역시 또는 경상북도 구미시 지역까지 조망할 수 있다.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로, 왼편에 작은 하천이 흐른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칠곡군 동북면(東北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산당, 대둔, 북창 등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이라 하고 칠곡군 가산면(架山面)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명칭 유래
가산 산성(架山山城)의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가산(架山)이라 이름 붙였다.
가산성 밑이 되므로 가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산, 마당바우, 절골, 북창, 산당, 상산당, 하산당마을 등이 있다. 가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가산리의 그것과 같다. 마당바우마을은 마당처럼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절골마을은 신라때의 절인 대둔사가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북창마을은 북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당마을은 가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뒷산에 당집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상산당마을과 하산당마을은 각각 산당의 위쪽,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 한다.
현황
2013년 12월 현재 가산리의 면적은 8.8㎢이며, 인구는 2011년 8월 93가구, 164명으로 남자가 84명, 여자가 80명이었으나, 2013년 12월 현재 92가구, 159명으로 남자가 81명, 여자가 78명이다. 칠곡군에서 인구가 매우 적은 동리에 속하며, 인구와 가구가 정체 양상을 보인다. 가산로를 따라 자연 마을인 산당(山堂) 마을, 한뜸[大屯] 마을, 북창(北倉) 마을 등이 들어서 있다. 가산리의 중심 마을은 산당 마을이다. 산당 마을은 아랫산당과 윗산당으로 나뉜다. 아랫산당의 서쪽에 한뜸 마을이 있다. 한뜸 마을에서 모래재를 넘으면 금화리에 이르고, 윗산당에서 두무실재를 넘으면 동명면 학명리 두무실에 이른다.
북창 마을은 가산리에서 가장 높은 고도인 400~500m에 위치한 산촌(山村)이다. 원래 가산 산성의 군량미와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북창 마을 산신제가 열리고 있다. 북창 마을에서 성돌재를 넘으면 동명면 남원리에 이른다. 쌀농사 이외에 양봉을 비롯하여 사과 등 과수 재배, 옥수수 등 노지 재배 또는 오이·토마토 등 시설 재배를 많이 한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리(里).
마을의 대부분의 지대가 평탄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북서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새밭, 감남, 대밭 마을 등이 있다. 새밭 마을은 신전이라고도 불리며, 밭이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남 마을은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대밭 마을은 대나무밭이 있었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가산리(佳山里)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부북면 월산리, 서쪽으로 무안면 동산리, 북쪽으로 부북면 퇴로리와 대항리, 남쪽으로 부북면 청운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환경
가산리는 북쪽에 가산저수지가 있고, 서쪽에 독산이 있는 평야 지역으로 전형적인 도시 근교 농촌 마을이다. 마을 뒤쪽의 독산은 북풍을 막아 주고 마을 앞쪽의 숲은 마을의 후덕한 인심을 상징한다고 한다.
화악산 지맥 하나가 서편으로 내리 뻗어 그 여세로 독산을 솟게하였고, 그 앞쪽 기슭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국도 24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대구부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으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가산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가 되었다.
마을의 형성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1726년(영조 2)에 설연과 설찬 형제가 함안에서 퇴로로 이주했는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가 꿈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꿈의 내용은 돼지 일곱 마리가 나타나 놀다가 어딘가 가기에 그 뒤를 따라가 보니 옛 둔던곡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 돼지가 멈춰 섰던 곳에 터를 잡아 이주하라는 예시몽임을 깨닫고 이주하였다고 한다. 형제가 이주한 터가 지금의 가산 뒤쪽 독뫼 북편 기슭이고, 그 후 조금씩 남쪽으로 옮겨서 지금의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
가산리는 화악산(華嶽山) 지맥 중 하나가 서쪽으로 뻗은 앞쪽 기슭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넓은 들을 앞에 두고 마을 어귀에 우거진 숲이 있으니, 아름다운 산, 즉 ‘가산(佳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가산마을이 있다. 가산마을은 마을 내에 있는 남산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94가구, 176명[남자 85명, 여자 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산리 마을 앞으로 국도 제24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가산리는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가산리 효자각과 마을 입구 정문(旌門)은 설광욱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고 마을 안의 가산재(佳山齋)는 가산리로 옮겨 온 설연과 설찬 형제가 만년에 서책을 읽으면서 학문을 익히던 장소로서 1779년 창건된 것이다.
특산물로는 꽈리고추가 유명하다. 폐교된 월산초등학교가 밀양아리나로 바뀌어 주말이면 부산 등 인근 대도시에서 연극 관람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외 관광지로는 체험 학습장인 밀양연꽃단지가 있다.
국가유산으로 가산리 성지가 있는데, 서남방 약 2km의 산상에 있으며 둘레는 약 2km로 비교적 규모가 큰 토성지이다. 대부분 붕괴되고 없으며 흔적만 남아있다. 특산물은 풋고추이다.
가산리(Gasan-ri, 駕山里)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에 있는 리(里).
남쪽으로 남해가 펼쳐져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가화천이 바다로 흘러든다. 용수저수지가 있으며, 벼농사와 어업을 주로 하는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산(조창), 가구머리, 꽃당, 도창, 바깥꼬당(외화당), 살뿌딩이, 성지골, 숯골, 안꼬당(내화당), 용산, 용수(아랫골짝), 이처리 등이 있다. 가산은 나라의 조세를 받는 조창이 있었으므로 조창이라고도 하였는데, 후에 가산리가 되었다. 도창은 제민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수는 지형이 용의 머리 형국이라고 한다.
가산리(Gasan-ri, 佳山里)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금정산이 있고, 서쪽의 호포는 양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대체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금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형성 및 변천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근거는 없고 약 800년 전인 고려 말기나 조선 전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 문종 때 남양방씨 방태경이 이곳에 입주하였고, 1887년에 나주정씨(羅州丁氏)와 함안조씨(咸安趙氏)가 입촌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부 좌이면의 공창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리가 되었다.
명칭유래
앞쪽에서 가산리를 쳐다보면, 작은 능선이 횡으로 가로질러 있어 이 능선 두 개가 시릉대 같다고 하여 시릉대 ‘가(架)’ 자를 붙였고, 동쪽은 금정산 고당봉 북서쪽의 배면으로 산이 많아 ‘산(山)’ 자가 붙어 가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갈밭, 사그마, 탑골 마을 등이 있다. 갈밭 마을은 갈대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사그마 마을은 사기마치라고도 불리며 사기를 구웠던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탑골 마을은 탑처럼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있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현황
동면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9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95㎢이다. 2011년 8월 31일 현재 총 271세대에 556명(남 288명, 여 26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금정산을 경계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쪽은 물금읍 증산리, 남쪽은 부산광역시 북구, 북쪽은 금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주로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지명으로는 옹기골과 절터골이 있으며, 문화 유적으로는 금정산 서쪽 사면에 가산리 마애여래입상과 호포 왜성지, 그리고 양산 가산리 도요지가 있다. 국도 35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 북쪽으로는 양산JC나 남양산IC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로 연결된다. 부산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호포역이 있다.
가산리(Gasan-ri, 佳山理)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영봉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로 북동쪽은 해발 100~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산리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반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북편에는 가산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동편과 남편에 급격한 경사의 산지지대를 배경으로 하여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대산천이 흐르며 가산저수지가 있다.
변천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의 가산동(佳山洞), 길성동(吉省洞), 계룡동(溪龍洞)과 이반성면(二班城面)의 용암동(龍岩洞) 일부를 합쳐 가산리(佳山理)라 하였다.
명칭유래
영봉산에서 시작된 산의 줄기로 인해 주위의 환경이 아름다워 가산(佳山)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상촌, 중촌, 하촌 등이 있다. 상촌(上村)은 면도를 중심으로 위쪽에 있다 하여 상촌이라고 불린다. 이 마을의 주된 성씨는 진양 정씨와 진양 강씨이며 그외 성씨들도 살고 있다. 중촌(中村)은 가산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옛날 가수개면과 진산초등학교가 있던 마을인데 지금은 면사무소가 용암리로 이전하고 초등학교는 길성으로 이전하였으며 초등학교에는 제일산업사란 가구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의 주된 성씨는 철성 이씨와 밀양 손씨이다. 하촌(下村)은 가산 제일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하촌이라 불린다. 이 마을의 주된 성씨는 김해 김씨이다.
위치와 교통
이반성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대천리, 남쪽으로는 길성리, 북쪽으로는 용암리와 접하고 있다. 2번국도가 가산리의 남쪽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면도가 남북으로 지나면서 2번국도와 교차한다. 북편으로는 철도 경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현황
가산리는 상촌, 중촌, 하촌의 3개 행정리로 구분된다. 이전에는 가수개면사무소와 진산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각각 길성리와 용암리로 이전하였고, 하촌의 뒷산에 한국농촌공사가 축조한 대형 저수지가 있다.
가산리(Gasan-ri , 佳山里)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에 있는 리(里).
토곡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비교적 낮은 고도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산, 노천깽븐, 토골 마을 등이 있다. 가산 마을은 산수가 아름다운 토곡산 밑에 자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천깽븐 마을은 가산 길가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토골 마을은 토곡이라고도 불리며 토곡산 아래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가산리(佳山里)
양강도(량강도) 보천군 남서부에 있는 리.
가림천과 압록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은 보천읍, 동쪽은 보천읍·의화리(儀化里)·신흥리(新興里), 남쪽은 화전리(樺田里), 북서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경계를 이룬다.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가산리와 봉수리 일부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보천군 가산리가 되었다.
동부와 북부로 가면서 지세가 점차 높아져 보천읍과 접한 지역은 해발고도 1,000m 정도의 평탄한 대지로 되어 있다. 산림은 리 면적의 82%를 차지한다. 전반적으로 아한대성 침엽수림이 분포하며 주요 수종은 잎갈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전나무 등이다.
경작지는 리 면적의 15%를 차지하며 밭으로 되어 있다. 이 일대는 식물생육기간이 짧고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이다. 주요 재배작물은 감자·홉·양배추·갓 등이며 특히 홉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리에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와 같은 교육기관과 병원이 있다. 교통은 위연~평물 간 철도가 지나며 군소재지인 보천읍까지의 거리는 약 2㎞이다.
가산리(嘉山里)
평안북도 운전군 중부에 있는 리.
북쪽은 북일리(北一里)·삼광리(三光里), 동쪽은 대연리(大淵里)·보석리(寶石里), 남쪽은 서삼리(西三里)·금계리(金溪里), 서쪽은 용봉리(룡봉리, 龍鳳里)와 경계를 이룬다.
8·15광복 당시에는 박천군 가산면 동문동·남신동이었는데
-1949년 10월 동이 리로 개편되면서 박천군 가산면 남신리가 되었고 일부 지역은 지장리가 되었다.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지장리·동문리·남신리·봉소리가 통합되어 운전군 가산리가 되었다.
리의 경계에는 낮은 산들이 둘러서 있고 곳곳에 구릉성 산지가 있다. 산에는 소나무·밤나무·참나무 등이 분포하며 노루·꿩이 서식한다. 대연리와의 사이에는 1920년대 말에 건설된 대성저수지(면적 0.72㎢)가 있다.
리 면적에서 산림이 85%, 경작지가 13%를 차지한다. 군에서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리에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와 같은 교육기관과 병원이 있다. 군소재지인 운전읍까지의 거리는 약 6㎞이다.
가산리(佳山里)
평안북도 철산군 북부에 있는 리.
전장천 연안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은 동림군 삼개리(三介里), 동쪽은 가봉노동자구, 남쪽은 연수리(련수리, 蓮水里), 서쪽은 문봉리(文峰里)와 접한다.
8·15광복 당시의 철산군 여하면 가산동, 임천동, 도덕동이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가산리가 되었다.
산지는 리 면적의 30% 정도이며 그 대부분이 높이 70m가 안 되는 구릉지대이다. 북부 동림군 삼개리와의 사이로는 전장천이 흐른다. 서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경작지에서 논이 66%를 차지한다. 이곳에서는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리에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와 같은 교육기관과 병원이 있다. 군소재지인 철산읍까지의 거리는 약 8㎞이다.
가산리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리에 있는 마을.
개사니. 황해북도 판문군 임한리 북쪽에 있는 마을. 가산리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