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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동고 총동창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24이규성
2023년 7월 15일(토),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정기산행일이 돌아왔습니다. 매달 종주산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몸이 다시 힘든 산행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만 저는 지난달에 정맥 길에서 매우 힘이 들어서 고생을 했던 연유로 풀코스를 뛰지 않고 B팀으로 갈 생각이어서 마음의 부담은 조금 적은 편이었습니다. 산행이 짐으로 남는 산행을 여러 번 했던 처지에서 B팀의 이번 산행은 그야말로 황제 트레킹이라 할 정도로 순조로웠습니다.(풀코스를 뛴 A팀 동문들에겐 힘든 하루였을 겁니다.)
서울에서 먼 거리에 있는 낙동정맥의 최남단 부분(부산지역)을 공략하는 방법은 한 번 현지에 갔을 때에 가능한 긴 거리를 걷고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번에는 두 개 코스를 합하여 무박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번(북행) 시작점인 명곡리에서 옛길삼거리까지 1.8km 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낙동정맥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남행을 하면 운봉산-남락고개-지경고개-계명봉-장군봉-고당봉-북문을 지나 종착지인 산성고개로 이어지게 되는데 지도상으로 예측한 거리가 22.6km나 되는 장거리입니다.(전 코스를 지향하던 A팀도 시간의 제약으로 북문에서 산행을 끝냈기에 걸은 거리로 18.53km가 GPS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번 산행에는 명산인 금정산(주봉 고당봉, 801.5m)이 들어 있고 명찰인 범어사가 있어 B코스를 가는 B팀은 범어사에서 시작하여 고당봉으로 해서 산행의 후반부를 걷도록 계획하였습니다.(약 9km) 산행에 동문 18인이 참가하였습니다.
참석자 : 16조준희, 23김기창, 23양수석, 23하재룡, 24이규성, 25안철준, 25최원일, 29양장근, 30박형열, 30이상화, 31김종철, 31신윤수, 35손용준, 35정광윤, 39김대휴, 39이경초, 40이국일, 45박용철(18인)
7월 15일이 시작되는 밤 12시 양재역 2번 출구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13인을 태우고 떠난 전세버스는 동천 역에서 5인을 더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차에서 한숨 자고 보니 당진영덕고속도로의 화서휴게소인 듯 했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버스는 달려서 04:36, 산행들머리인 명곡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최근 장마가 계속 중이라서 비가 내릴까 걱정했는데 고속도로 상에서 가끔 뿌리던 비가 현장에 오니 다행히도 그쳤습니다. 산행 준비를 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가 5시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산객 전원의 얼굴이 나오는 기념사진을 찍고 A코스를 가는 동문 10인은 동쪽 산 쪽으로 비장하게 떠났습니다.(05:15경) 이들을 가히 경동의 에이스 산악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특히 80세도 넘는 16회 조준희 선배님께서 주저 없이 풀코스 가는 팀에 동참하셨습니다.(저는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B코스를 가는 팀으로 남았습니다.)
남은 B팀 6인은 버스를 타고 범어사를 향했습니다.(제가 B팀에 속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의 산행기는 B팀의 산행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버스는 명곡리 좁은 길에서 큰길로 나오더니 예상하는 대로 남쪽으로 가는 게 아니고 동쪽을 향해서 가는데 기다란 법기터널을 통과하며 60번 도로를 가다가 7번국도로 들어서서 남향하였습니다.
05:45, 큰길에서 우로 꺾어 산길을 한참 올라가서 버스는 범어사 앞 로터리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아스팔트길 옆의 보도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일주문 가기 전 좌측으로 비석들이 20여개 서 있었습니다. 이 절에서 도를 닦던 스님들의 기념비 같은데 찬찬히 살펴보지는 못 하였습니다. 유명 사찰인 만큼 훌륭한 스님들이 여러 분 계셨으리라고 짐작하게 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특이하게 4개의 기둥위에 서있는 일주문(여기서는 조계문이라 쓰여 있음)이 나오고 “禪刹大本山 金井山梵魚寺”라고 명찰이 붙어 있었습니다.
경사길을 일직선으로 따라가니 곧 천왕문이 나오고 불이문이 나오더니 보제루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 앞의 중심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웅전은 중심마당에서 계단을 18단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대웅전까지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리라 생각하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웅전 옆의 지장전 앞에 멈춰 서서 절을 내려다보며 감상하였습니다.
범어사는 대지 전체가 동향하고 있어서 동쪽의 조계문에서 대웅전으로 서쪽을 향해 주진입이 되는데 동서방향으로는 고저차가 많아서 제법 경사가 급한 편입니다. 대신 남북방향으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건물들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심마당도 주방향인 동서쪽으로는 좁고 남북으로는 기다란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절은 이미 깨어나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고 음식을 나누어주는 트럭이 전각들을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 듯 했습니다. 검은색 기와지붕들이 주는 무게감과 절이 주는 어떤 기운을 느끼며 한참을 지장전 앞에 머무르다가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06:30경)
지장전에서 좌측(남쪽)으로 나가니 주차장이 있고 산으로 가는 돌길이 나타났습니다.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길옆으로 계류가 흐르는데 비가 온 뒤이라서 소리를 내며 흐릅니다. 길은 넓고 경사가 세지 않아 편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부정형의 돌들이 깔려 있어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서 작은 언덕을 넘는데 잠시 멈춰서 뒤로 돌아서니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몸을 달군 무더위를 식혀 주었습니다.
07:26, 금정산성의 북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오늘 처음으로 밟은 것입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산성고개로 가려면 여기서 좌로 틀어 성곽을 따라 남쪽방향으로 4km 정도 가면 됩니다만 오늘의 최고점인 금정산 정상(고당봉)을 보려면 반대쪽으로 1km 가량 갔다가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정맥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갔다가 북문으로 원점회귀하기로 정합니다. 이런 이유로 북문에서 우로 틀어서 고당봉을 향해 걸었습니다.
가는 길에 음용할 수 있는 약수터를 만나 물을 한 잔씩 마시고 다시 길을 가다가 얼마 쯤 올라가서 한참을 멈춰 쉬면서 간식을 들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느린 산행입니다. 하늘은 어둡지만 다행히 비는 뿌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상 근처에 가니 경사가 심해지며 길은 바위 위에 목제 계단이 설치되어 정상으로 이끌고 있었는데 운무가 끼어 정상에서의 멋진 경치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08:24, 해발 801.5m 높이의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에 도착했습니다. 정상 직전에 고모영신당이라는 신당이 하나 있고 바로 위 정상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보통 때라면 주변의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고, 특히 서쪽으로 낙동강을 볼 수 있었는데 안개에 싸여 볼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6월 23일 같은 장소에 올라서 멋진 경치를 감상했던 기억을 살려 보려고 애를 써 보았습니다.(그 때의 사진을 한 장 가져다 아래 사진들 속에 실었습니다.)
정상에는 우리 말고도 몇 사람의 등산객이 있었고, 그 중 한 젊은이는 산악마라톤을 해서 올라왔는데 범어사에서 정상까지 30분밖에 안 걸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천천히 움직이긴 했지만 2시간이 걸린 길입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금정산 명칭의 기원이 되는 금샘(金井)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금샘은 올라왔던 길에서 동쪽으로 몇 백 m 떨어진 곳에 있어 길을 묻고 지도를 보며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찾아갔습니다.
막상 가보니 금샘은 물이 솟는 샘이 아니고 돌기둥처럼 솟은 바위 위에 얕게 파인 우묵한 공간에 빗물이 고여 있는 형태였습니다.(사진 참조) 금샘을 본 후 북문을 향하는데 길을 잠깐 잘 못 들었다가 우측으로 꺾이는 길을 찾아 아까 왔던 길과 평행으로 난, 잘 이용되지 않는 좁은 길을 따라서 북문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비가 뿌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길을 가는데 비는 잠시 후 그치더니 한참 후 다시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하루 종일 비가 대중없이 간헐적으로 내렸는데 다행히 강한 비는 아니었습니다.
9시 30분 경, 북문으로 회귀하여 잠시 휴식한 후 동문을 향해 남쪽으로 성벽을 따라 걸었습니다. 길은 완만하게 솟아서 계속 따라가니 10:02, 해발 687m 되는 원효봉에 도착했습니다. 검은 색 돌로 된 정상석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가(목)주를 한 잔씩 돌려 마시고 간단한 다과를 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주제는 원효와 의상, 두 스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 산에도 원효봉, 의상봉 두 봉우리가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두 분이 지은 절이 전국에 걸쳐 많이 있다는 점이 놀랍고, 불교 공부에 있어 한 분은 국내파, 다른 한 분은 유학파였던 점도 이야기 거리가 되었고, 특히 원효스님의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발한 행위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작금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같은 동문이면서도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정반대여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이야기를 중단하였습니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친한 사이라도 안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진리인 듯합니다.
원효봉은 그 앞에서 휴식을 취하며 확실하게 지났는데 그 뒤의 의상봉은 어디 있었는지 눈치도 채지도 못하고 통과하였습니다. 원효봉 오기 전에 김유신 솔바위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신라 때 장군 김유신이 거기서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원효, 의상, 그리고 김유신이라는 이름이 이곳 금정산성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산이 신라 땅이었고 신라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인근의 해운대가 최치원의 호에서 유래함을 볼 때 부산지역에서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서 온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은 남쪽으로 산책하기 편하게 완만하게 낮아지는데 어느 새 눈치도 못 채고 의상봉을 옆으로 지나치고 부채바위 근처까지 왔는데 11시 10분쯤입니다. 바위 옆 평평한 곳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폈습니다. 12시가 아직 안 되어 이른 점심인데 갈 길이 얼마 남지 않고 산성마을에 가면 일찍 뒤풀이 식사를 할 것 같아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유부초밥, 빵, 소시지, 김치 등에 과자와 과일을 섭취하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너무 앞서 있기에 천천히 가야할 지경입니다. 키가 큰 소나무들이 서 있는 쉼터에서 한참을 쉬고 길을 나서서 한참 내려가니 동문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숲에 가려진 언덕을 넘어가니 오늘의 종착점인 산성고개가 나왔습니다.(12:29) 6시 반에 범어사를 떠났으니 GPS상 거리 9.11km를 6시간에 걸쳐서 걸어 온 셈입니다. 중간에 여러 번 휴식하며 산책에 준하는 느린 걸음(시속 1.5km)으로 걸었으니 소위 “황제 트레킹”을 한 셈입니다. 특히 느린 걸음 속에서 동문들과 이어진 활기찬 대화가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 하루였습니다.
산성고개에서 오늘 연회장으로 예약해 놓은 염소고기 전문음식점인 “녹색의 산장”까지는 약 850m의 거리여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버스는 이미 음식점 주차장에 주차 중) 12:47, 녹색의 장원에 도착하여 걷기를 끝냈습니다. 산객 8인은 여주인의 안내로 찬물 샤워를 마친 후 마당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토리묵, 파전을 안주로 산성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산성막걸리는 여태까지 마시던 장수막걸리와는 풍미(flavor)가 달랐는데 제 입맛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몇몇 동문은 아주 좋다고 하십니다. 다만 도수가 낮은 듯해서 계속해서 마실 수 있었습니다.
풀코스에 도전한 A팀과는 몇 번 전화로 연락하였는데 초기에는 예정대로 잘 진행된다 하였는데 점심 식사 후 계명봉 올라가기 전에 두 사람이 범어사로 방향을 바꾸었고, 또 두 사람이 장군봉 전에 범어사로 방향을 바꾸어 범어사 도착 후 대중교통으로 이곳(금정산성 먹거리촌)으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6인도 시간의 제약으로 북문까지만 산행한 다음 음식점의 승합차로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2인, 2인, 6인의 순서로 A팀 선수들이 모두 도착하자 미리 벌여 놓은 연회장은 더욱 열기가 돌았습니다. 염소고기를 포식하고 오리백숙과 쌀죽으로 마무리하였는데 산성막걸리는 계속 비워지고 있었습니다. 18인의 동문 중 최연장자이면서도 용기 있게 A팀과 같이 한 16회 조준희 선배님의 건배사가 있었고 가장 길게 산행을 한 여섯 분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박수를 쳐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후 6시 쯤 긴 산행과 긴 잔치가 다 끝났습니다.(연회가 끝나고 나서 계산하는데 음식 값으로 일백만 원이 넘게 나와서 요즘 물가가 보통이 아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연회를 끝내고 오후 6시 9분, 버스가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버스는 예상과 달리 남진하더니 구포의 덕천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낙동강을 건넌 다음 북행하여 중앙고속(부산-대구)도로를 타고 동대구JC에서 경부고속도로 - 김천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 낙동JC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속리산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청주JC에서 경부고속도로ㄹ를 달려서 밤 10시 27분 양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GPS상 거리 387km를 4시간 18분에 주파한 셈입니다. 차가 생각보다 일찍 서울에 도착한 관계로 전철을 이용하여 귀가하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습니다.
- 후기 -
풀코스를 뛴 A팀에게는 길이 멀고 산이 험하여 매우 힘이 든 지옥산행이었던 것 같고, 제가 동행한 B팀은 반대로 느리고 여유 있는 황제트레킹을 한 하루였습니다. 두 팀 간에 극명한 차이가 있었던 산행이었습니다. 다행히 여기저기 물난리를 내고 인명까지 빼앗아간 장맛비가 우리들이 종주하는 산길에는 간헐적으로 약하게만 내렸다는 것입니다.(그 분의 가호였다고 생각됩니다.)
여느 때처럼 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이번 시는 주로 B팀의 진행과정을 보여드리는 시입니다.
[제31차 낙동정맥 종주에 부쳐]
22km를 걸으려면
무박이 답이다
새벽 0시 양재역 떠나
5시에 명곡리에서
A팀을 전송했다
강인한 그들을 보내고
남쪽을 공략하는
B팀에 투신했다
범어사에서 시작하는
황제트레킹
시간이 넉넉하니
여유 있게 살핀다
새벽부터 깨어나서
청소중인 큰 절에서
웅장한 건물들과
산지이용 가람 배치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음에
한참을 머물렀다
돌을 깐 경사로를
땀 흘리며 걷다가
뒤로 돌아 서보니
골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식혀준다
고색창연한 북문에서
우로 틀어 1km 오르면
바위로 된 고당봉
오늘의 최고점인데
개스에 가려서
낙동강을 굽어보는
명승경치가 막혔다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 건 아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옛날 보았던 이미지를
추억 속에서 소환해 본다
바람 센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 찍어두고
이왕 온 김에
금샘(金井)을 찾아본다
금정산 이름의 기원
바위기둥 위 작은 웅덩이
빗물만 고여 있어
무늬만 샘이다
북문으로 원점회귀
남쪽으로 전진한다
윈효봉에서 한참 쉬며
마가(목)주 한잔 나누는데
사방은 안개 속이다
간헐적으로 오는 비는
다행히 견딜만한데
의상봉을 가볍게 지난다
김유신 바위도 나타나고
원효, 의상 두 분이
이 길에도 나타나니
전국에 절을 창건한
부지런한 두 스님의
업적을 이야기한다
특히나 해골 속 물
달게 마신 원효 스님
천의무봉의 화엄 행각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
여유 있는 걸음걸이
한 번 더 휴식하고
동문을 통과하고
종점인 산성고개에
쉽게도 도착했다
산성마을 전부가
술익는 마을이다
녹색의 장원 음식점에
일찍 도착한 B팀
찬물로 샤워하고
산성막걸리와 만났다
색다른 기호로
갈증을 풀어주나
도수는 약하니
한없이 목을 넘는다
천신만고 산행 마친
A팀도 도착하여
산성마을의 별식인
염소고기 포식하고
오리백숙에 죽으로
배부르게 마감한다
오늘 하루 회고해 보니
A팀의 강인한 체력과
결연한 의지가
험한 종주길과
대결을 벌인 날
살아서 돌아왔다
B팀의 여유는
짧은 길 택해서 생긴 여유
황제 트레킹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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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동고 총동창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24이규성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