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4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에 참여해 나치에 저항한 미카앨 스무스가 이스라엘에서 9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영국 BBC가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사망 일시와 원인, 구체적인 장소, 유족 정황 등은 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주재 독일과 폴란드 대사관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에게 애도를 표했다. 독일 대)사관은 엑스(X)에 "그는 나치에 체포돼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후에도 생존을 위해 싸우고 바르샤바 게토의 다른 수감자들을 돕는 등 홀로코스트 기간 반복적으로 목숨을 걸었다"고 밝혔다.
폴란드 대사관은 스무스가 "젊은이들에게 폴란드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표현했다. 그의 유산은 지속된다"고 추모했다.
폴란드 대사관과 영국 자선 단체인 홀로코스트 교육 신탁은 스무스를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마지막 생존 전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2018년 이스라엘 관리들과 BBC를 포함한 국제 언론은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심차 로템이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마지막 생존 전사라고 보도한 일이 있었다.
그는 10대 때 게토 봉기에 참여해 휘발유 폭탄 제조를 도왔다. 포로로 잡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강제수용소와 죽음의 행진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화가 겸 홀로코스트 강사가 됐다.
지난달 이스라엘 주재 독일 대사는 홀로코스트 교육과 양국의 대화 촉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스무스에게 독일 연방 공로 십자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수천 명의 사람들, 특히 독일의 젊은이들이 그의 증언을 통해 배웠다."
스무스는 1926년 폴란드 자유 도시 단치히(현재 그단스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중에 우치로 이주한 후 아버지와 함께 바르샤바 게토로 추방됐다.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게토에 갇혀 가난, 굶주림, 질병, 추위와 싸워야 했다.
스무스는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헬멧을 수리하고 도색하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끌려갔다고 2022년 미국 섬터 박물관을 위해 녹화된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그는 게토의 유대인 레지스탕스에 합류했고, 그와 다른 사람들은 휘발유 폭탄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페인트 희석제를 훔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게토 입구 근처에 있는 모든 집의 지붕에 놓인 병을 채우고 일단 그들이 오면 그것들을 버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1943년 4월 19일, 나치는 유대인들을 격리시켜 박해하기 위해 바르샤바에 만든 거주지인 게토를 비우기 위해 왔다. 저항군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 전선으로 파견된 이탈리아 군인들에게 따뜻한 옷을 건네고 대가로 받은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
스무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봉기"라고 불렀던 저항은 28일 지속됐다. "매우 힘들었다... 샤워도, 음식도 없었다. 그들은 불을 지르고, 한 집씩 청소하고, 당신의 눈에는 연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집 앞에 널려 있던 수천 구의 시신과 "가스 냄새와 부패한 시체"를 묘사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4월 29일 포로로 잡혔다.
그들은 트레블링카 학살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여정 중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내 마음은 돌이 됐다"고 말했다. 도중에 공장에서 끌려간 노동자를 되찾으려는 고용주에 의해 기차가 멈춰 섰다. 또 다른 독일인이 숙련된 일꾼을 찾아왔고, 스무스는 자신과 아는 사람들을 데려가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올해 초 예루살렘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트레블링카로 가는 열차를 탔을 때 내 인생이 끝났다고 확신했다"면서 "하지만 기차가 멈췄을 때 저는 이날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온 몸으로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른 수용소들에서 강제 노동을 견뎌냈고, 마침내 나치가 미군 진입을 피해 달아나기 전에 다하우로 죽음의 행진을 했다.
그는 예루살렘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한 수용소를 탈출하려다 사망했고, 우치에 머물 수 있었던 어머니와 여동생은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스무스는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미국으로 이주해 일하고 공부하며 가정을 꾸렸다.
트라우마 증상을 경험한 후 그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1979년 혼자 이스라엘로 이주해 그림을 시작하며 홀로코스트에 대해 교육했다.
BBC는 그의 부인이 남겨졌다고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