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산과 앵록산
고현과 옥포 중간인 연초면 소재지 삼거리는 죽토리다. 연초삼거리는 하청과 장목으로 나가는 연장된 5호 국도 기점이기도 하다. 우체국과 파출소와 농협이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다. 본동인 관암마을에 이웃한 죽전마을과 야부마을이 합쳐져 죽토리다. 근래 아파트와 원룸이 다수 들어서서 인구가 늘어났다만 예전엔 토박이 의령 옥 씨가 집성촌을 이룬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연초초등학교 뒷산 기슭에 ‘죽림정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재작년 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이 내걸려 있어 퇴근 후 한 차례 올라가 본 적 있다. 거제는 조선소로 근로자들이 유입되어 비교적 젊은 층이 많은 편이다. 전통 사찰은 드물고 곳곳에 신흥 교회가 많음이 같은 섬인 남해와 차이가 나는 점이다. 석름봉에서 연초면과 하청면에 걸쳐 앵산이 진동만으로 뻗어갔다.
석름봉은 석강봉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머무는 연사마을 뒷산이다. 흙으로 덮인 산등선에 그곳만 우람한 바위가 불거져 있었다. 바위 봉우리가 늠름해 보이기도 하고,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해 늠름할 름(凜)이나 내릴 강(降)을 붙인 듯했다. 석름봉에서 산등선 따라 한참 나아가면 앵산이다. 앵산(鶯山) 정상부 바위가 날개를 펼친 한 마리 꾀꼬리 모양으로 진동만을 향해 나는 듯해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석름봉이 앵산으로 뻗어가다가 연초 면사무소로 방향으로 흘러내린 산줄기 남서향이다. 그 끝부분 동남 방향이 관암으로 의령 옥 씨 선산이고 그 아래 문중 회관이 있었다. 낮은 야산이라 산 이름이 없는 무명고지인 줄 알았는데 최근 그 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 암자로 오르는 길에 내걸린 현수막에 ‘앵록산 죽림정사’라 적혀 있었다.
앵록산을 풀면 앵산 기슭이다. ‘록’은 물어보나 마나 산기슭 록(麓)이 분명하다. 죽림정사 주지가 붙인 산 이름인 듯했다. 전통 사찰은 대개 명산을 배경으로 전각을 배치했다. 들머리 일주문 현판에다 ‘영축산 통도사’, ‘가야산 해인사’, ‘금정산 범어사’ 등 큼직한 글자를 새겨두었다. 명산대찰일수록 한자로 쓴 일주문 현판 글씨는 알려진 서예가가 혼을 담아 남긴 작품이다.
연사 와실에 머물면서 일 주 단위 주기가 반환점을 도는 수요일이다. 일요일 오후 건너와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냈다. 수요일과 목요일을 넘기면 금요일 오후 창원으로 돌아가길 반복한다. 오월 넷째 수요일 아침 다섯 시였다. 와실에서 골목을 나서니 건너편 산기슭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보였다. 그 뒷산이 앞서 언급한 앵록산으로 옅은 구름이 낀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서렸다.
앵록산 뒤로 산 너머 고개 너머가 장목면 외포로 헤아려졌다. 진해만 바깥 가덕도와 다대포와 태종대로 이어진다. 더 동쪽으로는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뜬다는 울산 간절곶으로 짐작되었다. 평소 해가 뜨는 기운은 산자락이 잘록하게 겹치는 송정고개 방향에서 봤는데 드물게 앵록산 위 덮인 구름에 비친 엷은 아침놀을 볼 수 있었다. 아침놀은 순간이었고 연방 사라졌다.
어둠이 사라져가는 즈음 동구 텃밭에는 수탉이 홰치는 소리가 길게 들렸다. 첫 홰를 지난 두 번째나 세 번째 홰지 싶다. 출근길은 언제나 그렇듯 학교 방향과 반대인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농로를 따라 걸으니 날이 밝아와 사위가 드러났다. 이른 시각인데도 먼 산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알을 놓을 뱁새 둥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모내기가 시작된 들녘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천변 산책로는 한 사내가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으로 달려가고 산책을 나선 이들도 간간이 보였다. 효촌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연효교로 되돌아와 연사마을 동구에서 교정으로 들어섰다. 앞뜰에서 본관을 돌아 뒤뜰로 가 산비탈 절개지 봉숭아 꽃밭을 살폈다. 봉숭아 잎줄기를 갉아 먹는 애벌레를 네 마리 잡아내고 현관으로 들었다. 21.05.26